소설리스트

108. 약혼자 실종사건 (3) (108/250)

108. 약혼자 실종사건 (3)2022.03.18.

이호준은 도현우의 아파트 집 앞에서 체포됐다. “난 그냥 짐 정리해 주러 들렀을 뿐이에요…… 친구 도와준 게 죄입니까?” “당신이 도현우 씨랑 무슨 관계인데요?” “제 친구가 도현우 법적 부인이라니까요!” “당신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건 엄연히 절도죄야.” 물론 허찬 경사가 김은혜와 이호준의 관계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이호준을 붙잡아 이런저런 조사를 할 시간을 벌어야 했다. 끌려가는 와중에 이호준이 김은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끝내 받지 않았다. 허찬 경사는 이호준의 절도 혐의를 조사한다는 핑계로 버닝 바의 CCTV를 압수했다. 광역수사대 조사실에 끌려 온 이호준은 그 사실을 알고는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시발! 대한민국 경찰이 이래도 되는 거야? 법치주의 국가에서 함부로 사유재산에 손을 대?” 허찬 경사는 그 말에 꿈쩍도 하지 않고는 이호준의 혐의가 적힌 자료를 뒤적였다. “지금 사는 오피스텔 3개월 전에 전입신고가 되어 있네? 반전세인가? 보증금 6천에 월세 70만 원? 맞지?” 조사가 시작되자 짧게 말투가 바뀐 허찬 경사였다. “네,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요?” “보증금 6천 어디서 난 거야?” “하아아…… 진짜! 짜증 나네…… 내가 그 6천도 없었을까 봐요?” “너 신용불량자잖아. 은행거래 막혀서 현금으로 보증금 지불했고. 이미 공인중개사한테 확인한 내용이야. 근데 내가 한 가지 이상한 건 말이야…….” 한 번 뜸을 들인 허찬 경사는 이호준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말을 이었다. “네가 오늘 턴 도현우의 명의로도 양재동에 오피스텔이 하나 있었는데, 네가 오피스텔 계약을 하기 직전에 전세를 줬더라…… 그 계약을 한 사람이 바로 너고!” “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실종된 도현우의 명의로 된 오피스텔에는 김은혜가 살고 있었다. 그런 오피스텔의 전세 계약은 분명 도현우가 직접 해야 했지만, 김은혜는 이호준을 도현우로 둔갑시켜 전세를 줬던 것이었다. “아, 그리고 또 이상한 게 있네? 이 서류 한번 볼래?” 허찬 경사가 내민 건 도현우의 명의로 된 생명보험 계약서였다. 당연히 그곳에는 자필 서명란에 사인이 되어 있었다. “……이게 뭔데요?” “네가 작성한 보험계약서.” “……네?”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이호준이었다. 하지만 허찬은 그 눈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압박을 이어 나갔다. “나도 참……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널 이렇게 딱 보니까 이해가 된다. 도현우랑 너랑 말이야……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코, 그리고 살짝 올라간 눈매…… 이렇게 비슷한 게 우연일까?” 허 경사는 팔짱을 끼고는 몸을 이호준 쪽으로 기울였다. “너랑 김은혜…… 계획적으로 너랑 비슷한 인물을 고른 거지? 이왕이면 돈도 많으면 좋고 말이야? 안 그래?” 보험사기는 처음부터 계획된 거였다. 도현우는 그런 그들의 계획에 아주 적합한 인물로 선택된 것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사기 전과까지 있었던 이호준이 순순히 자백할 리 만무했다. “……변호사 불러주세요. 그전까지 묵비권 행사할 거고요. 그래도 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형사님?” 마치 허 경사는 조롱하는 듯한 말투의 이호준이었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는 거지? 좋아, 네가 언제까지 버티나 한번 해 볼까?” * * * 용산전자상가 구름다리. “김 대리님, 여기에 복원 업체가 있다는 거예요?” “네, 전에 제가 와 본 곳이니까 실력은 확실해요. 물론 비용은 현금만 받아서 영수증 처리가 안 된다는 게 문제지만요…….” “그 부분은 염려 마요. 증빙하지 않아도 되는 활동비에서 제하면 되니까요.” 한참을 걸어간 김준혁과 송지희가 향한 곳은 여러 개의 동으로 나뉘어 있는 나진상가였다. 김준혁은 익숙한 듯 그 빌딩 사이를 누볐고, 어딘지도 모르는 복도를 따라 한 복원 업체의 사무실에 다다랐다. ―하나솔루션 간판 밑에는 ‘하드디스크 복구 전문, 10년 경력의 전문 노하우!’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경을 쓴 남자가 컴퓨터 본체를 만지며 작업하다 김준혁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오셨어요?” “전화로 예약한 사람입니다.” “아! 보험사 직원분?” “네, 성원화재 김준혁 대리입니다.” 정중히 인사를 건넨 김준혁은 백팩을 열고는 버닝 바에서 압수한 CCTV 영상이 담긴 하드디스크를 건넸다. “여기에 CCTV 영상이 계속 덮어 씌워지면서 기록됐거든요. 6개월 전의 영상을 꼭 찾아야 하는데…… 가능할까요?” “일단 줘 봐요. 나도 봐야 가능한지 아닌지를 알죠.” 케이블을 연결한 남자는 모니터 화면으로 이런저런 창을 띄우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몇 개의 영상을 재생시켰다. “……화질이 제대로 나올지는 모르겠네…….” “최대한 복구해 주시면 됩니다. 사람 얼굴 정도만 알아볼 수 있게끔요.” “한번 해 보죠. 근데 이거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요…… 한 이틀 주셔야겠는데?” “네, 가능합니다.” “비용은 50만 원, 복구 안 되면 돈 돌려드리고요.” 자신감 있는 사장의 말투였다. “네, 그렇게 할게요. 복구되면 이 번호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돈은 잠시만요…….” 김준혁은 성원화재 명함을 사장에게 남겼다. 그리고 현금을 꺼내려 할 때, 송지희가 나섰다. “사장님! 혹시 영상복구도 하세요?” “영상복구요……? 뭐 해 보긴 했는데…… 뭘 말하는 거예요? 영상이 깨진 거 아니면 해상도가 떨어지는 거?” “화면이 흐릿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거든요.” “그건 해상도 문제인데…… 강제로 영상 데이터를 증폭시켜서 살펴보는 방법이 있긴 한데…… 장담은 못 해요.” 송지희가 김준혁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김 대리님, 김은혜 차량을 찍은 영상 있잖아요. 뒷좌석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는 그 영상요. 그거 복구 한번 해 봐요.” “복구한다고 해도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을 텐데요…….” “누군가 타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김은혜의 진술을 뒤집을 수 있는 거니까요.” 송지희의 말을 들은 김준혁은 백팩 속에서 노트북을 꺼내 부팅시켰다. 허찬 경사에게 받았던 영상을 찾기 위해서였다. * * * 하나솔루션 사장은 정확히 이틀 후, 김준혁에게 연락을 해 왔다. ―영상 복구됐습니다. 하드디스크 찾아가세요. 다시 찾은 용산전자상가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김준혁은 우산을 뒤집어쓰고는 빠른 발걸음으로 길을 건넜다. ―차량에 둘이 타고 있는 영상 복구해 봤는데, 흐릿하긴 해도 분명히 뒷좌석에 다른 사람이 타고 있더라고요. 김준혁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보험조사관이 되고 난 이후 지금처럼 흥분된 적이 없었다. ‘내가 추리했던 대로 차량 CCTV에 공범이 잡혔어!’ 이제는 차량 CCTV에 잡힌 사람이 김은혜와 함께 범행을 공모한 이호준이라는 것만 밝혀내면 끝나는 일이었다. 김준혁이 하나솔루션 사무실에서 하드디스크를 찾고 복구에 대한 설명과 잔금까지 치르고 나온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도현우 실종사건의 모든 증거가 김준혁의 백팩에 든 셈이었다. [지금! XX컴퓨터에서 경품행사를 진행합니다! 딱 1분만 시간 내셔서 룰렛 돌리기로 경품 타 가세요!] 도우미 몇 명이 거리의 행인들을 붙잡고 경품행사에 참여를 유도하고 있었다. 삽시간에 사람들은 불어났고, 김준혁도 그 길을 뚫고 지나가고 있었다. 땅만 바라보며 발길을 옮기고 있는 김준혁을 막아선 건 그가 처음 보는 낯선 남자 둘이었다. 그들은 덩치만 큰 건달이 아니라 날렵한 체격에 냉정한 눈빛을 지닌 이들이었다. “김준혁 씨?” “…….” 김준혁은 이 순간 자신의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뒤돌아 뜀박질을 시작했다. 손에 쥔 우산은 던져 길가의 행인들을 혼란스럽게 했고, 인도를 벗어나 반대편 건물을 향해 대각선으로 달려 나갔다. 빠아아앙! 빠아앙! 경적이 급하게 울리며 도로에 차들이 뒤엉켰다. 다행히 김준혁은 차에 치이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고, 달릴 수 있는 최대한으로 달렸다. 놈들이 쫓아오지 않았다. 굴다리만 통과하면 택시를 잡아타고 광역수사대 본부로 갈 생각이었다. 백팩에 담겨 있는 증거를 살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철퍽! 철퍽! 철퍽! 빗물을 머금은 도로는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었다. 김준혁은 땅바닥을 보고 앞으로 달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퍼억! 콰당! 어떻게 넘어지게 된 건지도 모르게 김준혁은 큰 충격과 함께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뒤에서 쫓아오던 놈과는 다른 남자가 김준혁의 백팩을 뺏어 들었다. “야…… 쫓아오면 넌 죽는다.” 짧고 간결한 말이었다. 김준혁은 다리에 힘이 풀려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김준혁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애써 찾은 모든 증거가 한 방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 * * 을지로 성원화재 본사. “김 대리 몸은 괜찮냐? 병원에 안 가도 되겠어?” “……네, 괜찮습니다…… 박 차장님께 면목이 없네요. 지희 씨한테도요. 열흘도 넘게 고생한 조사내용을 날려 버렸으니까요.” 홍콩 출장을 준비하고 있던 강준은 김준혁이 습격당했다는 소식에 놀라 본사 사무실로 복귀해 있었다. “괜찮아요. 다시 시작하면 되죠. 김 대리님이 활약하셔서 이호준을 잡을 수 있었던 거잖아요.” 송지희는 의기소침해져 있는 김준혁을 위로했다. “이호준은 어떻게 됐나요……? 뭐 나온 거라도 있나요?” “변호사를 부르긴 했는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서 계속 구속해 놓고 있기는 힘들 거 같대요.” “그럼 곧 풀려나겠네요?” “……아마도요.” 고개를 푹 숙인 김준혁의 어깨를 강준이 다독여줬다. “김 대리, 괜찮아! 나랑 같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 지희 씨 말이 맞아. 공범인 이호준을 찾았으니 사건을 거의 다 해결한 거나 마찬가지야.” “이호준의 자금 행적을 더 추적해 보면 뭔가가 나올 겁니다. 버닝 바의 직원들을 조사해 봐도 이호준에 대해서 구체적인 뭔가를 증언해 줄 거고요!” “그렇지! 발로 뛰면 뭐라도 나오는 법이거든!” 그제야 표정이 밝아지는 김준혁이었다. 강준은 벌써 광역수사대에 붙잡혀 있는 이호준을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이호준의 기억 속에서 의외의 인물을 발견했다. 그 인물은 바로 세금계산서 장사꾼 이두철이었다. 이호준은 이두철에게 거액의 현금을 전달했고, 그 현금은 위안화로 바뀌어 누군가에게로 흘러 들어갔을 터였다. 강준은 그 자금의 종착지가 바로 도현우의 행방을 밝혀 줄 사건 해결의 실마리라고 생각했다. ‘감방에 있는 이두철부터 면회 신청을 해놔야겠다!’ “김 대리, 근데 말이야…… 경찰이 아예 이호준한테 알아낸 게 없는 건 아니더라고.” “박 차장님 그게 뭔가요?” “이호준이 당시에 거액을 환전한 정황이 포착됐거든. 일단은 그 환전상부터 만나러 가 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차장님!” 현장에서의 시련이 김준혁을 한 발 더 성장시킨 듯했다.

16555211514636.png

16555211514645.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