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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약혼자 실종사건 (2) (107/250)

107. 약혼자 실종사건 (2)2022.03.17.

“이호준 씨를 먼저 만나 보죠.” “……김은혜가 아니고요?” “네, 김은혜가 도현우 씨 실종 시각 직전에 사용한 신용카드가 양재사거리의 한 편의점에서 사용됐어요.” “……그래서요?” 송지희는 아직 김준혁이 말하는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 편의점에서 100미터 거리에 이호준의 거주지가 있거든요.” “아…… 그럼, 김 대리님은 이호준이 도현우의 실종에 관여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김준혁은 다시 새로운 모니터 창을 띄웠다. “허찬 경사님께 받은 CCTV 화면이에요. 김은혜가 도현우의 평촌 자택 인근에서 찍힌 화면이죠. 운전자는 김은혜, 동승자는 분명히 도현우가 맞는데…… 여기 이 부위를 보세요.” 김준혁이 가리킨 곳은 김은혜와 도현우 사이의 뒷좌석 부분이었다. CCTV의 화질이 흐렸기에 확정할 수는 없었지만 어떤 물체의 윤곽이 보였다. “김 대리님은 차량 뒤편에 이호준이 타 있었다는 거예요?” “그건……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김은혜는 도현우의 실종 당일 그를 평촌 자택으로 데려다주고 자신은 다시 양재동의 오피스텔로 돌아왔다고 진술했다. 평촌 자택에 찍힌 CCTV에서 도현우가 내리는 모습이 찍혔기에 김은혜의 알리바이는 완벽했다. 송지희는 막 외투를 걸쳐 입은 김준혁에게 계속 질문했다. “그럼 우린 지금 이호준의 거주지로 가는 거예요?” “아니요. 이호준이 운영하는 바로 갑니다. 무슨 바인지는 모르지만, 항상 바텐더를 구한다는 채용 공고를 인터넷에 내더라고요.” “……김 대리님, 제가 외근 나가 있는 동안에 많이 알아보셨네요.” “헤헤, 제가 하는 일이 그런 거잖아요. 첫 사건인데 꼼꼼히 살펴봐야죠.” “잘될 거예요. 자신감을 가져 봐요!” 송지희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이호준이라는 제삼의 인물을 직접 만나게 되더라도 그가 순순히 협조해 줄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양재동 모던 바 버닝. 이호준이 운영하는 바에 들어간 김준혁과 송지희는 사뭇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그곳은 손님들이 술을 마실 때 종업원들이 옆에 붙어 함께 대화하는 속칭 토킹 바였다. 짧게 원피스를 차려입은 종업원들이 김준혁과 송지희를 힐끗힐끗 보고 있었다. 김준혁은 이호준이 누구인지 물어보지도 못한 채, 구석에서 술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술을 못 마시는 김준혁은 이미 취한 듯 해롱거리는 눈빛으로 바텐더가 있는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김 대리님, 정신 차려요! 제가 이호준이 가게에 나왔는지 물어보고 올 테니까 여기 가만히 있어요!” 송지희가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김준혁이 팔목을 잡고 제지했다. “우린 지금 잠복근무 중입니다. 잠복의 원칙 중 하나가 상대에게 들키지 않는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술만 마시고 있다고 사건 조사가 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김준혁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바의 입구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계산대 포스기를 비추고 있는 CCTV가 달려 있었다. “CCTV를 압수하면 뭐라도 나올 겁니다. 이호준의 그날 행적이 담겨 있을 수도 있고요.” “그날이라면 도현우가 실종된 날요?” “맞아요. 경찰에서 이호준을 추궁하면 분명히 여기 바에 있었다고 하겠죠. 하지만 이호준이 도현우의 실종을 도왔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겠죠…….” “근데 벌써 6개월 전인데…… CCTV 기록이 남아 있을까요?” 김준혁은 취한 눈으로 술잔을 들었다. “복원!” “복원요? 가능하겠어요?” “해 봐야죠. 일단 저걸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마시고 내일 다시 오자고요…….” 김준혁은 술에 취해 테이블 위에 고꾸라졌다. 송지희는 잠시 김준혁을 내버려 두고 CCTV가 있는 곳을 응시했다. 입구 쪽에 있었기 때문에 만약 CCTV를 복원할 수 있다면 바를 출입하는 모든 이의 출입 기록이 기록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때 입구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사건 파일에서 봤던 도현우의 약혼녀 김은혜였다. 그녀의 옆에는 키가 훤칠한 남자가 함께 들어왔다. 송지희는 그를 김준혁이 의심했던 제삼의 인물 이호준으로 짐작했다. “오늘 매출 얼마야?” 남자는 홀을 관리하는 여자 바텐더에게 익숙한 듯 물었다. “지금까지 80이요…….” “왜 이리 저조해?”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이게 진짜…… 너 많이 건방져졌다!” 옆에 있던 김은혜가 남자를 말리듯이 입을 열었다. “호준 씨, 됐어. 안 되는 곳은 접든지 해야지. 일하는 애들 잡아서 뭐 해?” 어느새 바텐더 근처로 와 칵테일을 주문하고 있던 송지희는 둘의 대화를 통해 남자가 이호준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런 송지희의 눈길을 의식한 김은혜와 눈이 마주쳤다. 송지희는 어색함을 넘기려는 듯 일부러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혹시 누구……? 일하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술 마시러 왔어요. 왜요? 안 돼요? 제가 오면 안 되는 곳인가요?” “아가씨, 아가씨는 요 앞에 호스트바를 가셔야지. 여기는 아가씨들 오면 재미없어요.” “아…… 그렇구나, 그럼 나가야겠네.” 송지희는 의자에서 일어나 김은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카드를 내밀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저기, 저 오빠랑 같이 왔는데 계산 좀 해 주세요.” 김은혜는 여자 바텐더에게 카드를 넘기지 않고 본인이 직접 카드단말기에서 계산했다. 그녀가 모던 바 버닝의 실질적인 운영자라는 얘기였다. “사장님이신가 봐요.” “……뭐, 그런 셈이죠.” 애매하게 답하는 김은혜였다. 송지희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는 뭔가가 떠오른 척 반갑게 웃으며 입을 뗐다. “혹시 현우 오빠 여자친구분 아니세요?” “네? 아…… 현우 오빠랑…… 아시는 분이세요?” “저 현우 오빠 대학 후배예요. 예전에 한 번 뵌 거 같은데 저도 정확히 기억은 안 나네요!” 송지희는 김은혜에게 일종의 미끼를 던져 본 것이었다. 도현우와 김은혜가 결혼을 전제로 1년을 사귀어 온 사이였다면 서로의 지인들에게 얼굴을 보여 줬을 가능성이 컸다. 송지희의 예상이 적중했다. 김은혜의 얼굴에서는 당혹스러움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아, 그러시구나. 근데 어쩌죠? 저도 요즘 현우 씨 못 본 지 좀 오래 됐어요…… 지금은 헤어졌거든요.” 실종된 약혼자를 헤어졌다고 둘러대는 김은혜였다. 그녀로서는 도현우가 실종됐다고 말해 봤자 더 많은 말을 늘어놔야 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김은혜에게 불리했다. “죄송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더 대화가 이어지지 못했을 때, 어느새 다가온 김준혁이 술에 깨진 못한 채, 흐느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 현우 형이 여기 있다고? 나 형한테 사기로 한 물건이 있는데……!” “야! 김준혁! 정신 차려! 여기는 현우 오빠 여자…… 아니…… 전 여자친구분이셔.” 게슴츠레한 눈으로 김은혜를 바라보는 김준혁이었다. “그 형 요즘 도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 내가 그 형한테 롤렉스 살라고 돈까지 준비해 놨는데! 전화를 안 받아요, 이 형이!” 롤렉스라는 말에 김은혜의 옆에 있던 이호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명품 시계이기에 몇 천만 원을 호가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은혜는 그런 이호준의 눈빛을 재빨리 간파했다. “제가 사귈 때는 그런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현우 씨한테 제가 모르는 취향이 있었나 보네요.” “그 형이 다른 쪽으로는 돈을 안 써도 시계 쪽은 마니아였거든요. 몇천짜리 시계도 갖고 있었다니까요…… 시계 보관도 막 계속 돌아가는 와치 와인더에 보관하고 그랬어요.” “그랬군요…….” “그 형이 자기 집에 꼭꼭 숨겨 두고 잘 안 보여 주는데 저한테만 한 번 보여 준 적이 있거든요. 헤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헤벌쭉 웃는 김준혁이었다. “제가 연락될지는 모르지만, 만약 연락되면 시계 얘기는 전해드릴게요.” “헤헤…… 고맙습니다! 오늘 잘 마시고 갑니다!” 돈은 송지희가 냈지만, 김은혜를 향해 꾸벅 절하고 나오는 김준혁이었다. 바에서 나오자마자 송지희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명품 시계 얘기, 낚으려고 던진 거죠?” “그럴듯했어요? 원래 이쪽에서 있는 사람들이 명품을 더 알아보잖아요. 그래서 그냥 던져 본 거죠.” “이호준의 눈빛이 달라지던데요? 아마 도현우의 평촌 자택을 뒤지러 다시 올 거 같아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김 대리님, 분명히 김은혜가 미끼를 물 거예요. 제가 볼 때 물욕이 있는 여자거든요. 몇천만 원짜리 시계를 놓칠 리가 없죠.” 김준혁은 아직 술이 덜 깬 얼굴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는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편의점에서 술 깨는 약이나 먹고 가시죠. 내일 또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김준혁은 2차를 가는 대신 대리운전을 부르고는 혼자 편의점으로 쏙 들어갔다. 그런 그를 보며 송지희가 피식 웃었다. * * * 다음 날 오전. 광역수사대 본부. 김준혁과 송지희는 강준이 미리 말해 둔 허찬 경사에게 경위를 설명하고 있었다. “버닝 바의 CCTV를 압수해 달라 이 말이죠?” “네, 어쩌면 이호준 이 사람이 공범일 수도 있거든요.” “음…… 새로운 인물이네요. 일단 용의자 특정부터 하고 CCTV는 참고용으로 압수하면 되겠네요. 근데, 이호준이 김은혜와 내연관계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허찬 경사는 김준혁에게 물었다. “전 내연관계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하하! 그…… 그렇긴 하죠.” “보험조사관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거 잘 알지 않습니까? 잠복하면서 김은혜를 따라다녔습니다. 그 와중에 알게 된 거고요.” 김준혁은 차마 자신이 김은혜의 메일을 해킹해 정보를 알아 낸 거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좋습니다. 어쨌든 실종된 도현우 씨를 찾아야 하는데…… 혹시 뭐 또 알고 있는 거 없나요?” “도현우 씨의 자발적인 칩거가 아니라면 설명될 수 없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신용카드 사용 내역도 없고, 핸드폰 신호음도 잡히지 않고 있으니까요.” “김 대리님 말씀은 한마디로 도현우 씨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는 거네요…….” “그렇죠.” “근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셋 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도현우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출입국 사무소에서는 출국 기록이 없다는 거죠?” “벌써 확인을 했죠. 근데, 위조여권이라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닌데…….” 마약반 출신답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언급하는 허찬 경사였다. 골똘히 생각하던 허찬 경사와는 달리 김준혁은 확신에 찬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생각하는 대로 이호준이 도현우 납치의 공범이라면 분명 이호준의 행적을 추적해 보면 단서가 나올 겁니다. 그리고 아마 지금쯤 이호준은 도현우의 집을 뒤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호준이 도현우의 집을요? 그랬다간…… 의심을 살 게 뻔한 데도요?” “당장 눈앞에 있는 물욕이 더 앞설 테니까요.” “그럼 김 대리님 말씀대로 한번 가 봅시다! 정말 이호준이 있다면 현장에서 불법 가택 침입으로 체포할 수도 있으니까요…….” 김준혁은 미리 도현우의 아파트 현관 입구에 CCTV를 달아 놨었다. 이호준이 다녀갔다면 분명 그 CCTV의 화면이 김준혁의 메일로 전송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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