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 무역회사 보험사기 (2) (103/250)

103. 무역회사 보험사기 (2)2022.03.13.

강준은 텅 빈 SI화학 사무실을 확인한 후, 컨테이너 작업을 했다는 곤지암의 창고건물을 향해 차를 몰았다. “박 차장님, 우리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 “컨테이너 작업했다는 데가 좀 이상한 거 같아서 그 작업자들 명부를 한번 확인해 보려고.” “아! 서류상 명부랑 실제 작업자들이랑 맞는지 확인해 보시려는 겁니까?” “아니! 내가 볼 때는 빈 컨테이너였다면 아예 작업을 안 했을 거야.” “수출 품목인 합성수지인 PVC 파이프인데…… 무게가 비슷한 뭔가를 대신 채워 넣지 않았을까요?” 강준은 말없이 서류 소포 하나를 내밀었다. 사무실에서 나오기 전 막 도착한 국제 특송 소포였다. 그 안에는 홍콩에서 보내온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건 텅 빈 컨테이너 사진이었다. “클레임을 걸어온 홍콩업체에서 보내온 사진이야.” “……정말, 아무것도 없네요.” 김준혁은 이동하는 와중에도 수첩에 뭔가를 이것저것 적고 있었다. 그런 김준혁이 강준이 건넨 사진을 들고는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다. “김 대리, 어떻게 완전히 텅 빈 컨테이너가 나갈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바로 그거예요! 아무리 수출 간소화 절차가 됐다고 해도…… 선적할 때 이상한 점이 있지 않았을까요?” “일반적인 40피트 컨테이너의 무게가 3.8톤 전후야. 서류상으로는 완벽하니까 선적할 때는 컨테이너 안이 비어 있더라도 별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테지.” 김준혁은 강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강준은 속으로는 홍콩업체에서 보내온 사진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다. 창고건물에는 한밤인데도 작업자들이 컨테이너 적재작업에 한창이었다. 창고 사무실에도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계십니까?” “어디서 오셨어요?” 한밤에 찾아온 사람을 경계하는 창고직원이었다. “성원화재 보험조사팀에서 나왔습니다. 여기 창고에서 적재한 SI화학의 컨테이너 작업을 확인하고 싶어서요.” “네? 무슨 화학이요?” “SI화학이요. 한 달 전인 4월 8일에 작업했었고요.” 사무업무를 보는 창고직원은 짜증이 난다는 듯 되물었다. “그래서요? 뭐 문제라도 있어요?” “여기 작업확인서에 나와 있는 인부들, 여기 창고 소속 아닌가요?” “정직원도 아니고 일용직으로 그날그날 모집해서 쓰는 거니까 여기 소속이라고 하기도 뭣하죠?” “그럼, 오늘 작업자분들 중에 여기 리스트에 서명한 분이 있으신가요?” 창고직원은 짜증 내는 표정은 그대로였지만, 못 이긴 척 서류함에서 출근부를 꺼내 보여 주었다. “여기 있네요. 김종만 씨! 어…… 어디 보자…… 박용훈 씨, 참! 이 사람은 뺀질거리기만 하는 사람인데……. 거기 작업확인서에 있는 작업자 중 이 둘이 전부네요!” “제가 가서 한번 얘기해 봐도 될까요?” “근데 너무 방해하지는 마요. 중간에 흐름 끊기는 거, 저 사람들 엄청 짜증 낼 거예요. 아니면 뭐 음료수라도 사 와서 얘기 한번 해 보든지…….”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준은 노하우까지 슬쩍 알려 주는 창고직원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그의 말대로 강준은 음료수와 간식을 사서 작업자들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누구슈?” 모자를 거꾸로 눌러쓴 남자는 강준에게 누구냐를 묻고는 나르던 박스를 계속 날랐다. “잠깐, 이거 좀 드시고 하시죠!” “어! 간식이네! 어이, 다들 좀 쉬었다 합시다!” 사람들은 강준이 누구인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컨테이너의 화주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작업자들은 한곳에 모여 한 손에는 빵을 쥐고 나머지 손으로는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다. “김종만 선생님 되시죠?” “그렇소만, 무슨 일이쇼?” “보험사에서 나왔습니다. 혹시 이 사람 기억하십니까?” 강준은 미리 준비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그건 김용식의 사진이었다. “어! 이 사람…… 김 씨, 그때 그 사람 아닌가?” “누군데 그래?” 김종만은 함께 작업하고 있던 박용훈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리고 박용훈은 사진 속의 사람을 확인한 듯 말했다. “이 사람, 우리한테 그날 5만 원씩 준 사람 아닌가?” “맞지? 맞네. 완전 날로 먹는 날이었지. 문제가 생겨서 물건이 안 나왔다고 했었거든. 근데도 작업자들 시간 뺏었다고 일당을 줬었지.” “그래서 서류에 서명해 주신 건가요?” 잠시 기억을 떠올리던 김종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준의 말에 호응했다. “맞아! 자기들도 임금 처리를 하려면 서류가 필요하다고 했었지. 근데 이제 와 그걸 왜 묻는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여러분들이 보험사기에 휘말리신 거 같습니다…….” “뭐? 우리가 사기를 쳤다고!” 김종만과 박용훈은 놀라 반발했다. “물론 의도를 가지고 그러신 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허위로 서명한 작업확인서는 분명히 사기행각의 일부분으로 이용됐습니다.” “우리는 전혀 몰랐다니까!” “그러니 경찰서에 오셔서 경위서만 한 장 써 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는 협조해 주실 수 있지 않나요?” 둘은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마저 맛있게 드시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우리 그럼 그날 일당을 되돌려줘야 하나?” “글쎄요. 그걸 범죄수익으로 보기에는 좀 어렵지 않나요? 두 분이 경찰 조사에 잘 협조하시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강준은 원론적인 답변을 해 준 것이었지만, 둘의 표정은 다시 밝아진 듯했다. 곤지암의 창고를 벗어난 강준은 연남시로 차를 몰았다. “김 대리, 내일은 악질 한 명 잡아야 하니까 일단 연남시 도착하면 잠 좀 자 두자!” “그 악질이 누굽니까?” “세금계산서 장사꾼!” 강준은 김용식의 유령회사 SI화학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준 곳을 이진철에게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찾은 삼양PVC라는 회사가 예상대로 세금계산서를 팔아 이득을 챙기는 유령회사라는 게 확인된 것이었다. “오! 국세청에서 눈독 들이는 범죄자 아닙니까?” “맞아. 그래서 내일은 이진철 경감이 내려오기로 했다. 괜히 우리끼리 움직이다가 다칠 수가 있거든.” 조수석에 앉은 김준혁이 긴장하는 듯했다. 강준은 슬슬 대리로 진급한 그에게 단독 사건을 맡겨야 할 타이밍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다. ‘걱정은 되지만 언제까지 그 자리에 머물게만 할 수는 없지!’ * * * 다음 날 아침. 강준 일행과 이진철 경감은 연남시 시장통의 한 육개장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워낙 신출귀몰한 놈이라 찾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전, 경감님이 잘 찾아주실 줄 알았습니다.” 강준은 육개장 국물을 한입 가득 넣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허! 박 차장님, 차장 다시더니 이제 점점 염치가 없어지시네…….” “원래 제가 염치는 좀 없었잖습니까? 그래도 경감님도 제 덕분에 국세청에도 큰소리칠 수 있게 된 거 아닙니까?” 강준은 지난번 만났던 이진철의 기억을 살짝 읽었었다. 막, 광역수사대 경제수사과의 팀장이 된 이진철의 고민은 국세청과의 업무협조였다. 세금자료가 공유되지 않아 경제사범의 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진철이었다. 그런 그에게 유령회사를 차려 세금계산서를 무단으로 발행하는 경제범에 대한 정보를 준 건 경제수사과와 국세청 간의 적극적인 업무협조를 만드는 호재였다. “험험! 뭐 그야 그렇지요!” 슬며시 미소가 흘러나온 이진철이 민망한 듯 육개장 그릇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 집은 참 안 변하네! 아주 얼큰합니다! 얼큰해!” 강준이 못 본 척 계속 말을 이었다. “경감님, 삼양PVC 제가 말씀드린 그곳에 있죠?” “네 중고차 매매단지에 모여 있더라고요. 근데 정말 어떻게 안 거예요? 아무리 김용식과 연관이 있다지만…… 사업자 상의 주소는 서울이던데…….” 세금계산서 장사꾼 삼양PVC의 진짜 사무실은 일전에 김용식이 운영하던 YS무역의 자동차 매매단지에 있었다. “그건 정말 감으로 맞춘 겁니다. 원래 나쁜 놈들은 자기네들끼리 모여 있거든요.” 강준은 회귀 전 경찰이었던 시절, 김용식을 수사하면서 그 일대를 뒤진 적이 있었다. 그때, 김용식과 관계된 모든 인물을 추적했었고, 그중 한 명이 세금계산서 장사꾼 이두철이었다. “그쪽에서는 꽤 유명한 놈들이더라고요. 왕년에 힘 좀 쓴 놈들이라 그래서 우리도 여기 두 경사님이 지원 나온 겁니다.” 이진철은 옆 테이블에서 마주 앉아 육개장을 들이키고 있는 덩치 좋은 두 형사를 가리켰다. 그중 한 명은 마약반이었던 허찬 경사였다. 그 둘이 든든해 보이긴 했지만, 강준은 그걸로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왜냐면 이두철 일당은 웬만한 흉악범들 못지않은 놈들이었기 때문이었다. * * * 중고차 매매단지 C동. “저기 3층 보이시죠? 저깁니다. 일단 저와 여기 김 경사가 문 따고 들어갈 테니, 박 차장님은 허 경사님과 함께 퇴로를 막아 주시면 됩니다.” “경감님, 총은 가져오셨어요?” “아! 물론 가져오긴 했죠. 별로 쓸 일은 없겠지만…….” 강준은 막 진입하려는 이진철을 막아섰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한다고 제가 먼저 세금계산서 사러 온 사람인 척 들어가서 동태를 살펴보겠습니다.” “에이…… 퇴로도 한 군데인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 “제가 물어볼 것도 좀 있고 해서요. 제가 안에서 문자를 드리면 그때 들이닥치시죠. 꼭! 총은 장전해서 들어오시고요.” 물러서지 않는 강준이었다. 만약, 그대로 이진철과 경사들을 들여보냈다간 피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강준의 우려를 이진철도 눈치챘다. 똑! 똑!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강준은 김준혁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 누구요?” 거친 목소리의 남자는 세금계산서 장사꾼 이두철이었다. 그는 연변 출신으로 다른 조선족들을 한국에 데려와 그들의 명의로 여러 개의 사업자를 만들었다. 그렇게 획득한 사업자로 마구잡이식 세금계산서 장사를 하다 국세청의 단속에 걸리면 폐업하고 다시 다른 조선족의 명의로 사업자를 만들어 장사를 계속해 왔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조세체계를 위협하는 악질 경제사범이었다. “계산서 좀 사려고요.” “누구 소개로 왔는데요?” “김용식 사장님 소개로 왔습니다.” “아…… 저쪽에 잠깐 앉아 계시죠.” 이두철은 강준과 김준혁을 사무실 한쪽의 접객실로 안내했다. 김준혁은 앉자마자 바깥쪽에 대기 중이던 이진철 경감에게 내부 사정을 알렸다. 이두철을 호위하는 부하는 둘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잃을 거 없는 그들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제압이 쉽지 않아 보였다. 접객실 바깥에서는 이두철이 강준을 흘끔흘끔 보며 김용식과 뭔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곧 난리가 나기 직전이었다. 접객실에 들어간 강준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을 맞닥뜨렸다. 그는 연남시 건축과의 김기동 사무관이었다. 연남시의 문화복합단지 개발의 핵심 인물! 그런 그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이두철의 사무실에 와 있는 거였다. “혹시 시청 건축과 분 아니십니까?” 강준의 질문에 김기동의 안색이 싹 변했다. “아닌데요? 사람 잘못 보신 거 같은데요?” “맞는데…… 건축과 사무관 김기동…… 당신 맞잖아!” 강준의 압박에 김기동은 시선을 외면했다. 그때, 사무실 입구에서 총을 든 이진철 일행이 사무실을 급습했다. “김 대리, 우리는 이분만 붙잡고 있자고, 우리가 조사하는 무역 보험사기에 연루되셨을 수도 있는 거니까!” 강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준혁은 김기동의 팔꿈치를 꽉 붙잡았다. 김기동의 표정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16555211139927.png

16555211139934.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