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 스킨스쿠버 살인사건 (3)2022.03.09.
“오지영 씨가 버디로 같이 다이빙을 하셨던 거로 아는데요. 정민규 씨는 어떻게 사망하게 됐나요?”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은 흥분한 얼굴로 허리춤에 두 팔을 짚고 있는 오지영을 향해 질문했다. “조사관님, 다이빙은 해 보셨어요?” “직접 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다이빙을 하면서 사람이 죽기 쉽다는 것 정도는 알죠.” “참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설명하려니까 힘드네…… 조류가 심한 곳이었어요. 물길이 소용돌이치는 곳이니까 빠져나오기 힘들었죠. 저도 겨우 빠져나왔으니까요…….” “조류가 심한 곳이라…… 혹시 그걸 증명해 줄 사람이 있을까요? 아! 오해는 마시고요. 전 보험사에서 나온 거라 형식적인 조사 차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지영은 강준의 말에 답하지 않고 한참을 노려봤다. 그리고는 자신이 우위에 있는 걸 확인하듯이 강준에게 소리쳤다. “어떻게 유족한테 그런 말을 하죠? 증명이요? 사람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증명해야 한다고요!” “박 과장님… 일단 그 문제는 나중에…….” 옆에 있던 이유린 기자가 강준을 말렸다. “아닙니다!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이빙 포인트가 어디였죠? 어느 지점에서 조류가 발생했다는 겁니까?” 오지영은 눈물을 쥐어짜려는 듯 계속 노려봤지만, 눈물은 맺히지 않았고 턱만 부들부들 떨었다. “이 기자님! 당장 저 사람 데려나가지 못해요! 대한뉴스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실망이네요!” 그러자 옆에 있던 피터 장이 강준을 도왔다. “저도 여기 푸켓에서 10년 넘게 일한 가이드인데, 다이빙 포인트의 조류는 다이빙 보트 운영하는 현지인들이라면 이미 빠삭하게 알고 있을 텐데요?” 그 말에 오지영이 벌떡 일어나 강준과 피터 장에게 다가갔다. “웨스트 오브 에덴! 거기 포인트 이름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탄 배가 그 근방에서 몇 킬로나 더 움직였는지는 나도 모르고요!” “알겠습니다. 저희도 조사해 보도록 하죠.” 객실을 나가려던 강준은 뒤를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를 더 던졌다. “근데 오지영 씨! 한국에는 언제 들어오실 겁니까? 유족들이 아마 정민규 배우의 유골을 기다릴 겁니다. 남궁진 대표도 마찬가지고요…….” “여기 일이 정리되면 들어갈 거예요.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저도 모르죠!” 날이 선 목소리의 오지영을 뒤로하고 강준과 피터 장이 객실을 빠져나왔다. “박 과장님,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웨스트 오브 에덴은 조류가 약한 포인트예요. 근데 조류에 휩쓸렸다고요?” 피터 장은 나오자마자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강준은 그와 대비되게 침착했다. “저도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시밀란 군도의 포인트들을 잘 아는 사람을 섭외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다이빙 전문가라면 더 좋겠군요.” “물론이죠. 수심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테크니컬 다이빙 전문가를 제가 한 명 알거든요. 소개해 드릴게요!” “아! 그리고 다이빙을 할 수 있는 보트도 준비 부탁드립니다. 직접 바다에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물론, 비용은 제가 대죠!” 보트를 준비하라는 강준의 말에 피터 장은 놀란 눈빛으로 되물었다. “다이빙 전문가한테 자문하는 게 아니고 직접 다이빙을 하시겠다고요?” “저도 여기까지 출장 왔는데 다이빙 좀 즐기고 가야겠습니다. 하하! 시밀란이 세계에서 이름난 다이빙 장소라고 해서 말이죠.” “아… 물론 그야 그렇지만…….” 강준은 씩 웃었지만, 피터 장으로서는 강준이 무슨 꿍꿍이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수중카메라를 찾아야 한다……!’ 강준이 오지영의 기억 속에서 본 것은 정민규가 죽어가는 장면뿐만이 아니라 고의적인 살인이라는 걸 증명할 핵심증거, 바로 정민규가 이마에 장착하고 있었던 수중카메라였다. 그날 바닷속의 시야는 나쁘지 않았다. 정민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던 과정에서 떨어진 수중카메라에는 분명 오지영의 범행을 입증해 줄 장면이 담겼을 터였다. 그리고 강준이 마지막으로 오지영에게 물었던 건 그런 수중카메라를 두고 태국을 떠날 수 없는 그녀의 상황을 다시 한번 확인했던 거였다. * * * 푸켓 시내 노천식당. 그곳은 각국의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었기에 한국인의 모습을 한 남녀 한 쌍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돼지고기가 기름을 가득 두른 커다란 웍에 볶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냄새와 연기가 노천식당을 더 혼잡스럽게 만들었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해? 자기 말대로 했는데 지금 한국에서 난리가 났잖아. 차라리…… 처음부터 사망보험금만 먹으면 깔끔하게 끝났을 문제라고!” 노천식당에 앉은 커플은 정민규의 전 아내 오지영과 매니저였던 이진섭이었다. “지영아, 여론에 압박을 받는 게 누구일 거 같아? 너는 그냥 여기서 일 마무리될 때까지 짱박혀 있으면 돼. 내가 아는 남궁진 그 인간은 얼마 못 버티고 어떻게든 해결하고 가려고 할 거다.” “정말 그럴까……?” “당연하지! 생각해 봐. 법률적으로도 그 정산금은 네가 갖는 게 맞지. 활동 기간으로 산정하면 그건 정민규가 살아 있었을 때 받아야 하는 돈이니까 유산으로는 포함이 안 된다니까.” 한껏 걱정에 휩싸인 표정의 오지영이었다. 그녀는 불안감에 손가락으로 계속 테이블을 두드렸다. “여론이 안 좋아. 나에 대해서 자꾸 파헤치려고 하고, 그 대한뉴스 이유린 말이야…… 나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했어. 앞에서는 온갖 입에 발린 소리를 하더니 한국 돌아가서 뒤통수를 쳤다고!” 이진섭은 테이블 위에 놓인 볶음국수를 한입 가득 넣고는 우악스럽게 씹었다. “됐고! 제발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넌 그날 실수한 거 되찾을 생각이나 하고 있으라고!” “내가 뭐 놓치고 싶어서 그랬어? 자기도 알잖아. 물속에서 한 사람 끌어올리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휴… 알겠고. 너 어디서 카메라 놓쳤는지 그것만 잘 기억해 놔라.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니까…… 일찍 들어가서 자고!” 짜증이 섞인 듯한 이진섭의 말투였다. 오지영은 그런 이진섭에게 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게 누구 때문에 시작된 일인데 그래! 왜 나한테 지랄이야!” “뭐? 이게 진짜…… 시발 됐다! 그만하자!” “뭘 그만해? 내 말이 틀렸어?” 이진섭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참는 듯 맥주를 꿀꺽꿀꺽 목구멍에 밀어 넣고는 일방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머니에서 계산을 끝낸 남자는 택시를 잡았다. 오지영은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문이 열린 택시의 뒷좌석에 탔다. “센트럴 호텔! 오케이?” 술기운인지 목소리가 거칠어진 이진섭이었다. 노천식당의 한쪽 구석에서는 강준이 아까부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오지영과 이진섭의 만남부터 헤어짐까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사이 강준이 간간이 찍어 둔 사진은 그 둘의 보험 살인사건 공모를 입증할 증거로 쓰일 예정이었다. 강준은 이진섭의 모습이 사라진 후, 카메라를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 강준을 다시 앉혔다. “박 과장님, 채증은 잘됐어요?” 뒤돌아본 강준의 뒤에서는 최은정 팀장이 밝게 웃고 있었다. “아니! 여기까지 웬일이십니까?” “박 과장님이 수고하시는데 저도 힘을 보태야죠.” “근데,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나요?” “피터 장이 알려 줬죠. 제가 밀레니엄 호텔에 방 하나 잡아 놨어요. 짐도 그쪽으로 옮겨 놨고요.” 최은정은 강준에게 호텔 키를 내밀었다. “아… 전 피터 장이 내준 방도 괜찮은데…….” “괜찮긴요, 여기까지 와서 고군분투하는데 이 정도 대우는 해 줘야죠.” 강준은 좀 더 편안하게 말해야 할 것 같았다. 푸켓까지 찾아온 최은정은 나름 머리를 환기하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솔직히 말해서 보험조사팀이 하는 일이 회사에 돈 벌어다 주는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왜요? 그동안 박 과장님이 해결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간접적으로 회사의 신뢰도가 높아진 부분도 크죠.”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본사 분위기는 어떤가요?” “아빠가 위독하세요. 가족들도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거 같고요…….” “아…… 팀장님이 심적으로 힘드시겠네요.” “네, 힘들어요. 그러니까 오늘 밤은 박 과장님이 술 한잔 사 주세요.” “하하! 얼마든 지요.” 강준은 점원을 불러 병맥주 몇 개와 꼬치구이를 시켰다. “지난번 대인해운 일은 정말 고마워요. 그때 바로 고마움을 표시했어야 했는데 많이 늦었죠?” “아닙니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뭘.” “덕분에 대인해운 구상옥 회장이 우리 쪽에 선 거잖아요. 큰오빠가 그룹을 지키는데 결정적이었죠.” 최은정은 맥주병을 들고 건배를 제안했다. 짠! “최진호 대표님이 그룹을 잘 이끄실 겁니다. 해외 보험사가 치고 들어오긴 하지만 손해보험사 부분의 노하우는 쉽게 넘볼 수 없을 테니까요.” “맞아요. 하지만 생명보험 쪽은 얘기가 달라요. 외국계 보험사의 자산운용 실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거든요.” “그래도 생명보험은 계속 끌고 가실 테지만 성원증권은 매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금융이라는 측면에서 증권사와 보험사는 상호 보완적이잖아요? 증권사를 버리기는 쉽지 않아요. 제가 걱정하는 건 둘째 오빠의 성원건설과 한국보험이에요.” 성원그룹의 경영권 문제는 우선 최 회장의 장남인 최진호 쪽으로 기울고 있었지만,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 “둘째 오빠가 그룹을 분할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했어요. 물론 본인 생각이 아니라 윤미경 그 여자 생각이겠지만요…….” “그룹보다는 본인들 챙길 건 챙기겠다는 심산이군요.” “네, 물론 계열사를 매각하는 걸 무턱대고 반대만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주주들의 이익을 배신하고 이면에서 대주주 이익만 챙기는 건 문제가 되겠죠?” “그걸 형법 용어로 배임죄라고 하죠.” 강준은 최은정의 맥주병에 살짝 부딪치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피터 장한테 들었어요. 내일 아침에 에덴의 서쪽 포인트에 가신다고요?” “네, 팀장님도 같이 가시겠어요? 이왕 여기까지 오셨는데.” “어쩌죠? 전 다이빙을 해 본 적이 없는데…….” “그럼, 배에서만 계시죠. 일이 끝나고 나면 공기통을 메고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스노클링 정도만 하셔도 되니까요.” “근데…… 강준 씨는 다이빙을 언제 배우셨어요?” 생각해 보니 강준은 회귀한 이후로 한 번도 바다 다이빙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빙의한 박강준의 몸이 어떻게 적응할지는 내일 아침이 되어 봐야 했다. “예전에 취미로 몇 번 해 봤습니다. 근데 내일은 긴장 좀 하셔야 할 겁니다. 보험사기범들과 직접 맞닥뜨려야 할지도 모르거든요.” “알겠어요. 내일 기대해 보죠.”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지만,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이어 나갔다. 어쩌면 서울의 본사 사무실에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얘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건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