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98. 스킨스쿠버 살인사건 (2) (98/250)

098. 스킨스쿠버 살인사건 (2)2022.03.08.

푸켓 공항에서 강준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남궁진 대표가 소개한 피터 장이었다. “박강준 과장님? 피터 장입니다. 제가 1주일간 박 과장님 모실 예정입니다.” “여행사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푸켓 쪽 가이드로 10년 됐죠. 남궁 사장한테는 입금도 받았습니다. 박 과장님이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헤헤!” 언뜻 가벼워 보이는 남자는 구릿빛으로 태운 피부를 가진 30대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붙임성만은 확실히 좋아 보였다. 주차장에 주차된 밴에 올라탄 그는 차를 자신의 사무실로 몰았다. “제가 알아보니까 시신은 인터내셔널 병원에 있더라고요. 거기가 민영 병원이라 좀 비싸긴 한데…….” 피터 장은 자신이 쓸데없는 얘기를 했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고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경찰이 벌써 검시를 했는데 익사로 처리했더라고요…… 외국인 관광객의 단순 다이빙 사고로 취급하니까요.” “그럼 이후에 시신 인계 절차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게 알아보니까 벌써 동행했던 오지영 씨가 화장 처리를 해 버렸더라고요.” “네? 검시 후에 바로 화장 처리를 했다고요?” 다른 유족들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시신을 화장해 버린 것이었다. “물론 시신 송환 비용이 몇 천만 원 드니까…… 화장하는 게 당연하긴 한 건데…… 정민규 씨가 유명한 배우잖습니까? 돈도 많을 텐데…… 서둘러 화장한 게 저도 좀 이해가 안 되네요.” “오지영 씨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푸켓 시내 한 호텔에 머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좀 만나 봐야겠는데요…….” “보내 주신 연락처로 연락이 안 되니 호텔 쪽으로 연락을 취해 볼게요. 참, 그리고 박 과장님은 괜찮으시다면 제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시죠. 누추하긴 해도 주무시는 데는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겁니다.” 붙임성만큼이나 과한 친절을 베푸는 피터 장이었다. “염치없지만 신세 좀 지겠습니다.” “에이! 신세는…… 남궁진 대표가 다 부탁한 것들인데요, 뭐, 하하!” 강준은 피터 장의 친절이 남궁진 대표의 것임을 알게 됐지만, 넉살맞게 웃고 있는 피터 장이 그리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 먹고 합시다! 먹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강준은 피터 장에게 연락처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이진섭이라는 사람의 여기 태국 연락처입니다.” “…이진섭이라… 어디 보자! 어! 혹시……?” 눈을 크게 뜨고 강준을 바라보는 피터 장이었다. “아시는 분이십니까?” “아…… 알죠! 방콕에서 사업한다고 여기저기 교민들 돈을 끌어다 썼었는데…… 그게 잘 안 됐다고 하죠.” “무슨 사업이었는데요?” “쇼핑몰 사업인데, 태국 왕가의 공주 한 명이 끼어 있다고 했던가…… 어쨌든 쇼핑몰 리모델링 사업이었죠. 한국 상품들 판매하는 한국관을 만든다고 설명회를 하고 그랬었는데.” “그때 방콕에 계셨었습니까?” “에이! 나는 계속 여기서만 있었죠. 근데, 푸켓이나 방콕이나 한국 교민들끼리는 서로 다 알게 돼요. 소문이 얼마나 빠른데…….” 강준의 머릿속에서는 이진섭이 어떤 인물인지 그려졌다. 그리고 같은 다이빙 강사였던 이진섭과 오지영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만약 둘이 돈이 필요했던 거면…… 이진섭이 오지영을 이용해 정민규를 다이빙 쪽으로 끌어들인 합당한 이유가 되는 거군…….’ “근데 이진섭이라는 사람은 왜 물으시는 겁니까?” “정민규 배우의 전 매니저였습니다. 오지영도 이진섭의 소개로 정민규를 만나게 된 거고요.” “아! 그럼 혹시 그때 그 여자인가?” “왜요? 뭐 아는 바가 있습니까?” “전에 그 쇼핑몰 관련해서 일한다는 여자를 본 적이 있거든요. 우연히 지인들이랑 식당에 갔다가 만난 건데…… 헤헤! 저도 확실하지가 않네요.” “그럼 얼굴을 보면 알아보실 수는 있을까요?” “음…… 그건 가능하죠. 근데 일단 먹고 합시다! 제가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는 스타일이라서요!” 잠깐 자리를 비웠던 피터 장은 식당에 음식을 차려두고 강준을 불렀다. “박 과장님, 김치찌개입니다! 드시죠!”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우리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이 한식을 잘합니다. 제가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잘들 하더라고요. 하하!” 후루룩! 쩝쩝! 한참을 먹어 치운 피터 장은 움직일 생각도 없이 담배를 피워 물려고 했다. “피터 장, 이제 일하러 가 보실까요?” “네? 첫날인데 좀 쉬시죠. 게다가 밖에는 해도 졌는데…….” 울상이 된 피터 장은 창밖을 가리켰다. 그가 말한 대로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잘됐네요. 오지영도 밤이 됐으니 호텔로 돌아오겠죠. 어차피 전화해서 만나 달라고 해도 만나 주지 않을 거 아닙니까?” “아…… 그야 그렇죠.” 호텔 직원은 오지영이 외출했다고 알려 왔었다. 그랬기에 강준이 오지영을 만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호텔 로비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박 과장님 듣던 대로 정말 워커홀릭이시네요! ……근데, 이거 한 대 정도는 피고 갈 수 있잖아요. 괜찮죠?” “네, 그렇게 하시죠.” 피터 장은 찡긋 웃으면서 담뱃불을 붙였다. * * * 푸켓 시내 센트럴 호텔. 호텔은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로비만 지키고 있다고 오지영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제가 뭐라 그랬습니까? 무턱대고 여기 온다고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프런트 직원은 뭐라고 합니까?” “그게… …객실에 들어오면 얘기해 준다는데 모르죠. 쟤네들도 우리를 귀찮아하는 눈치네요.” 호텔 직원은 외국인인 강준 일행에게 협조적이지 않았다. 오지영의 행보를 그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낯익은 사람이 강준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대한뉴스의 이유린 기자였다. 그리고 그녀도 강준을 알아봤다. “성원화재 박강준 과장님, 어떻게 여기에 계신 거죠?” “그러는 이유린 기자님은요?” “전 취재를 왔는데요.” “혹시 정민규 배우의 일…… 알고 오신 겁니까?” “저도 사망했다는 건 들었어요. 근데 제 취재원이 정민규 배우에 대해서 뭔가 말할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강준은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그 취재원이 오지영 씨인가요?” “이름은 몰라요. 메일로만 연락했으니까요.” “아마 오지영이 맞을 겁니다. 이 호텔에 오지영이 묵고 있거든요. 이번에 정민규 배우와 재혼한 여자고요.” “네? 정민규 배우가 재혼했었다고요……?” 자초지종을 모르고 있는 이유린 기자였다. “이유린 기자님, 혹시 취재원을 만날 때 저도 함께 만나도 되겠습니까?” “그…… 그건 곤란한데요. 취재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전 그 취재원이 정민규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다이빙 중에 사망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만한 근거는요?” “거액의 생명보험이 있었고 JIN필름에서도 정민규에게 지급될 거액의 정산금이 있었으니까요.” “정황상의 추측이군요…….”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이유린이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도와주세요. 제가 보니까 그 여자 의심스러운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그 여자 애인이 방콕에서 사기 쳤던 사기꾼이에요!” 강준은 확인되지 않은 걸 마치 사실인 양 말하는 피터 장을 만류하려 했다. 하지만 피터 장은 팔꿈치로 강준을 툭툭 쳤다. “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좋아요! 동행하기로 하죠.” “잠시만 이 기자님, 그건 전적으로 이분 주장이긴 한데…….” “그래서요? 박 과장님 생각은 어떠신데요?” 이유린은 강준의 개인적인 견해를 묻는 것이었다. 어쩌면 여러 보험사기 사건을 다룬 베테랑의 의견을 묻는 것일지도 몰랐다. “제가 아직 경험이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오지영이 의심스러운 건 사실입니다.” “그럼 됐어요. 취재원을 만나게 되면 신분만 밝혀 주세요. 그 이후에 전 취재원의 뜻을 따를게요.” 이유린 기자가 선택한 일종의 타협안이었다. 어차피 취재원에 대해서 강준이 더 많이 아는 상황이었기에 그녀가 노출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올라가시죠. 지금 8층 객실에 있다네요.” “어! 프런트 직원은 아직 안 들어왔다고 했는데…….” 피터 장은 프런트 직원을 한번 쏘아보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엘리베이터를 올라탔다. 803호. 카펫이 깔린 복도 중간에 있는 방이었다. 띵동! 띵동! “대한뉴스 이유린입니다!” 안에서 기척이 들리더니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그리고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강준과 피터 장을 바라봤다. 그때 피터 장은 예의 그 친숙한 미소를 보였다. “이분들은 어떻게 되는 분들이시죠?” “전 성원화재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현지 조사차 나왔다가 이유린 기자님과 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겁니다. 그리고 이쪽은 현지 가이드이신 피터 장이시고요.” 경계하는 눈빛의 오지영은 이유린 기자를 쏘아봤다. “언론에서 일을 이런 식으로 하나 보죠?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거요.” “먼저 사과부터 드리죠…… 하지만 어차피 오지영 씨는 정민규 씨 사망보험금을 받으려면 박강준 조사관을 만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도 굳이 박강준 조사관을 떼놓고 오지 않은 거고요.” “제가 정민규 와이프라는 건 어떻게 아셨죠?” “대한뉴스가 그 정도 조사도 없이 취재를 왔겠어요?” 능청스럽게 강준이 준 정보를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양 말하는 이유린이었다. “……들어와요.” 호텔 방 안에 특별한 점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피터 장의 눈에는 이상한 점이 보였다. 이유린 기자가 취재를 준비할 때 피터 장이 귓속말로 강준에게 속삭였다. “다이빙 장비를 넣은 짐이 안 보이네요…… 정민규 씨 짐까지 있다면 캐리어가 적어도 몇 개는 되어야 할 텐데…….” 호흡기와 수중 핀, 다이빙 슈트까지 하면 보통 캐리어를 두 개씩 끌고 다녀야 하는 다이빙 투어였다. 강준은 어쩌면 그 순간이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강준은 오지영의 캐리어를 열어 보려는 듯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당연히 오지영은 그런 강준을 보고는 불쾌한 듯 다가왔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남의 짐에 함부로 손대도 되는 거예요! 이게 내가 문제 삼을 거예요!” 강준의 팔목을 거칠게 쳐내는 오지영이었다. 그런 오지영의 손목을 강준이 붙잡았다. “사망한 정민규 씨의 유품이 없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강준은 그 말을 남기고는 오지영의 기억으로 들어갔다. 꾸르르르! 꾸르르르! 강준이 읽어 들인 기억 속에서 오지영은 바다 한가운데서 다이빙 중이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몸이 축 처진 다이버 차림의 정민규가 보였다. 그는 깊은 수심으로 인한 질소 마취 현상이 온 듯 호흡기를 입에 문 상태에서 공기 방울이 새어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오지영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보조 호흡기를 입에 물려주고는 천천히 수면 위로 상승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등 뒤에 있는 공기통의 밸브를 잠갔다. 그러자 정민규가 괴로운 듯 몸을 뒤틀었고, 그럴 때마다 격렬하게 그의 폐에서는 공기 방울이 새어 나왔다. 정민규가 익사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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