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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7. 스킨스쿠버 살인사건 (1) (97/250)

097. 스킨스쿠버 살인사건 (1)2022.03.07.

태국 시밀란 군도. 한국의 중견 배우인 정민규는 신혼여행으로 그곳을 찾았다. 물론 초혼이 아닌 재혼이었기에 남들에게 알리지 않은 비밀스러운 신혼여행이었다. 호화로운 리버보트는 둘의 5일간의 다이빙 투어를 위해 단독으로 운행되는 선박이었다. 10개의 편안한 침실, 하루 3번 나오는 고급 정식, 그리고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라운지 바가 포함된 총 3개 층의 휴식공간. 둘만의 완벽한 신혼여행이었다. 그리고 그건 평소 정민규의 재혼 상대자 오지영이 평소 바라왔던 것이었다. 그녀는 정민규를 다이빙의 세계로 이끈 장본인이었다. 다이빙 강사로 활동하던 오지영은 다이빙을 배우러 온 정민규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둘은 사귄 지 1년 만에 결혼했다. “오빠, 여기 포인트를 내가 잘 아니까 나만 따라오면 돼, 알겠지?” “오케이! 여기 포인트 이름이 에덴의 서쪽이라고? 이름 한번 기막히네!” “그만큼 물속이 아름답다는 거지.” “지영아, 나 먼저 들어간다.” 풍덩! 정민규는 선상에서 거꾸로 몸을 굴려 자연스럽게 입수했다. 그걸 본 오지영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정민규를 따라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민규는 끝끝내 살아서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는 무리한 깊이까지 다이빙을 감행하다 질소 마취가 왔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정상적인 호흡을 하지 못했다. 오지영이 뒤늦게 정민규를 물 밖으로 끄집어 올렸지만, 패닉 상태의 정민규를 구할 수는 없었다. 결국, 정민규는 사망했고, 그의 직접적인 사인은 폐에 물이 들어찬 익사로 기록됐다. * * * 대인해운 광화문 본사. 강준은 대인해운 본사 건물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대인벤처스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 사무실의 주인인 구민철이 강준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시죠. 박 과장님!” “언제 벤처투자사를 차리신 겁니까?” “하하! 얼마 안 됐습니다. JIN필름이 제 첫 번째 투자작이죠.” “얘기는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영화 프로젝트가 있다고 하더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구민철은 사뭇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실은 오늘 뵙자고 한 게 JIN필름 문제 때문인데요…….” 목소리를 낮춘 구민철이었다. “무슨 문제가 터졌군요.” “네, 이번 영화의 주연으로 활약할 예정이었던 정민규 배우가 사망했습니다.” “네? 언제요?” “어제 태국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JIN필름에서 알려왔거든요.” “그럼…… 아직 언론에 나가지는 않은 거군요.” “네, 근데 남궁진 대표 얘기로는 정민규한테 거액의 보험금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보험금을 노린 누군가의 살인이라는 얘기인가요?” 고개를 끄덕이는 구민철이었다. “박 과장님, 저와 같이 JIN필름의 남궁민 대표를 한번 만나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이라면 범인을 밝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보험금 지급이 되든 안 되든 남궁민 대표로서는 배우를 바꿔 촬영하면 그뿐입니다. 하지만 사망한 정민규 배우는 오늘날 JIN필름을 있게 해 준 일등 공신이죠.” “JIN필름으로서도 손해가 막심하겠군요.” “네… 근데 그보다는…… 좌우간 직접 당사자에게 말씀을 들으시죠.” 구민철은 강준에게 직접 할 수 없는 말이 있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가시죠.” * * * 구민철이 강준을 데려간 곳은 청담동의 JIN필름 사무실이었다. 남궁진은 강준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구 대표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배우를 잃게 돼서 안타깝습니다.” 먼저 위로를 건넨 강준이었다. 남궁진은 충무로 영화판의 조연출 출신이었다. 그렇기에 배우들이 그를 믿고 JIN필름과 선뜻 계약했던 것이었다. “곧 언론 보도가 있을 테지만…… 사실 정민규 배우가 비밀리에 결혼했었습니다. 재혼 상대자 오지영 씨와는 혼인계약서를 써서 전처와의 자식들 사이에 분쟁은 애초부터 없앴다고 들었는데…… 문제는 저희 쪽에서 이번에 꽤 많은 액수를 정산해 줘야 한다는 겁니다.” 오지영이 들어놨다던 생명보험과는 별개의 얘기였다. “금액이 얼마나 되나요?” “지난번 흥행한 영화의 러닝 개런티와 CF 출연료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대략 10억 원 정도 됩니다.” “……그걸 오지영 씨가 알고 있었나요?” “저도 그 부분이 애매합니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전 이번 일을 순수하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네요.”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말이었다. “사인은 어떻게 됩니까?” “다이빙 중에 일어난 사고입니다…… 아직 정확한 사인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네요.” “현지에는 지금 누가 있는 겁니까?” “그게…… 개인적으로 간 신혼여행이고 워낙 극비리에 진행한 결혼이라…….” 강준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은 시신을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정민규 씨의 생명보험은 보험사가 어딥니까?” “다행히도 성원화재입니다.” “잘됐네요. 제가 회사의 허락을 받게 되면 바로 태국 현지로 출국하겠습니다. 혹시 현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남궁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누군가를 떠올렸다. “사고 현장인 시밀란에서는 떨어져 있겠지만, 일전에 영화 촬영을 하러 갔을 때 협조를 구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인인가요?” “푸켓의 관광 가이드인데…… 아! 어쩌면 다이빙 사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수 있겠네요. 진짜 이름은 모르고 현지에서는 피터 장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강준은 수첩을 꺼내 몇 가지 사항을 적었다. 그리고 질문을 이어갔다. “전처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사실 아이들 때문에 왕래는 계속 있었으니까요…… 물론 둘 간의 관계를 제가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양육비 문제에 있어서 갈등은 없었습니다.” “전처가 재혼 사실을 알고 있나요……?” “아마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오지영과는 혼전계약서를 작성한 거고요.” “혼전계약서의 내용을 아시나요?” 남궁진은 손에 깍지를 끼고는 작은 기억들도 끄집어내려는 듯 애썼다. “……그건 대부분 기존 재산의 상속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앞으로 벌어들이는 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죠. 그래서 민규 씨의 정산을 해 줘야 하는 저희로서는 고민에 빠지게 된 거고요.” 남궁진은 오지영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강준에게 그는 정산금을 오지영에게 지급하지 않을 근거를 찾는 거로 보였다. “일단 알겠습니다. 정민규 배우 유족분들의 연락처 부탁드립니다.” “네, 잠시만요…….” 남궁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구민철이 은근슬쩍 물었다. “뭔가 의심스럽죠……?” “다이빙 사고는 혐의를 입증하기가 무척 까다롭습니다. 보통 피의자들이 본인들도 빠져나오기 힘들었다고 해 버리면…… 더 이상 추궁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박 과장님은 진짜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형사 같으십니다.” 구민철의 답변에 강준이 내심 놀랐다. 회귀 전 경찰이었던 시절 겪었던 스킨스쿠버 사건들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험조사관도 여러 케이스들을 찾아보고 공부하고 하죠. 하하! 별거 아닙니다.” “그래도 전 박 과장님이 왜 그 바닥에서 인정받는지 알 것 같네요.” 구민철은 흐뭇한 웃음을 내보였다. 어느덧 친해진 강준과 그는 농담을 주고받을 사이로 변해 있었다. “어쨌든 좋겠습니다. 시밀란이라는 곳이 엄청난 휴양지라고 하던데, 저도 며칠 쉬러 다녀오고 싶네요.” “구 대표님, 말 나온 김에 같이 가시죠. 제 보험조사 업무도 좀 도와주시고요.” “에이…… 됐습니다. 여름휴가까지 기다리죠. 어쨌든 업무차 가시더라도 이왕 가신 김에 좀 즐기시고 오세요.” “……네, 그랬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며칠 후 출장을 가는 강준은 구민철의 말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출국하지 못했다. 인천공항에 정민규의 유족인 전처 이해영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전남편의 죽음을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표정으로 강준에게 다가왔다. “민규 씨 죽음을 조사하러 가신다고요?” “저희 보험사 측에 생명보험이 가입되어 있었습니다. 금액이 좀 있어서 의례적인 조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해영은 앞에 놓인 차도 마시지 않은 채 강준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마…… 타살일 거예요.” “…네? 왜 그런 말씀을……?” “오지영 그 여자 민규 씨에게 일부러 접근한 거였어요.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으니 결말이 좋을 리가 없죠.” 그녀의 눈빛에서는 원망과 회한이 교차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전 남편이 잠깐 쉴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전 매니저였던 이진섭이 스킨스쿠버를 하자며 연락을 해 왔죠.” “이진섭이라는 사람이 정민규 씨의 전 매니저였군요.” “네, 4년 정도 매니저를 맡았었는데 결국은 돈 문제로 일을 그만뒀었죠. 질이 나쁜 사람이었어요.” 단정하듯 말하는 전처 이해영이었다. “그래도 스킨스쿠버를 하자는 제안에 선뜻 응한 걸 보면 정민규 씨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나 봅니다…….” “그게 문제였죠. 사람을 쉽게 믿는 거!” 이해영은 작은 주먹을 꼭 쥐어 보이더니 그제야 차를 한 모금 입에 댔다. “오지영도 이진섭이 소개한 사람이었어요! 같은 다이빙 강사라며 투어에 같이 데리고 다녔나 본데…… 그러고는 결국 사달이 난 거죠…….” “전 남편분을 원망하세요.” “지금은 원망보다는 안됐다는 마음이 더 커요.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아빠였거든요. 물론 오지영과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저에게도 자상했었고요.” 출국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강준은 불편한 상황이어도 궁금한 걸 바로 물어봐야 했다. “사모님께서는…… 남편분이 재혼한 걸 알고 계셨나요?” “네? 재혼이라고요?” 순간 이해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모르고 계셨군요. 아마 오지영은 남편분의 사망보험금뿐만 아니라 JIN필름에서 나오는 거액의 정산금까지 노린 거 같습니다.” “아…… 이제야 확실해지네요. 왜 오지영이 민규 씨한테 접근했는지…… 아! 그럼 뒤에는 분명히 이진섭이 있을 거예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이해영은 말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결정적인 무언가가 생각나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그냥 제 감이 그렇게 말하네요…… 이진섭이 뭔가 끼어 있을 거라고요…….” 때때로 여자의 직감은 무서운 구석이 있는 법이었다. 이해영과 헤어지고 난 강준은 출입국심사대로 걸어가면서 광역수사대 이진철 경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경감님, 오랜만입니다. 부탁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사건이죠? 같이 공유 좀 합시다! 하하! “자세한 건 메일로 드리겠습니다. 배우 정민규 씨 전 매니저 이진섭의 출입국 기록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강준은 전화를 끊고서 JIN필름의 남궁진 대표의 번호를 이진철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강준이 비행기에 탑승했을 무렵 답신이 왔다. [이진섭, 지금 태국에 있네요. 자초지종은 남궁진 대표에게 들었습니다. 살인사건이라면 저도 합류해야겠네요! 호텔에 도착하시면 전화 주세요!] 이번에도 영락없이 이진철 경감이 사건에 합류하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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