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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 연예기획사 마약 사건 (3) (94/250)

094. 연예기획사 마약 사건 (3)2022.03.04.

“그게 별일 아니라고요?” 구민철은 길정훈의 해명에 어이가 없었다. 로아 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마약 수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게다가 구민철은 강준에게서 길 대표가 일부러 소속 연예인들에게 마약을 하게 했다는 얘기까지 들은 상태였다. “벌써 얘기가 다 끝난 겁니다. 이번 사건은 다인이랑 몇몇 배우들 선에서 무마될 겁니다. 구 사장님께는 무척 애석한 일이지만요…….” “누구랑 얘기가 끝났다는 겁니까? 전 길 대표님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요.” 길정훈은 대답 대신 새로운 투자계획서를 구민철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제가 이번에 베이징에 들어갔을 때, 왕총 대표와 계획한 투자계획안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규모를 좀 더 키워 보려고요.” 구민철은 아무 말 없이 투자계획서를 쓱쓱 넘겼다. 거기에 적혀 있는 투자는 애초에 길정훈이 자신에게 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베이징에 왕총과 중국 TV 방송국이 주주로 함께 참여한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라마와 영화, 음반 제작까지……. 구민철은 그 모든 사업 건들이 자신의 손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데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어쩌면 길정훈은 구민철이 부은 초도 투자금 5억 원에 대한 면피용으로 그 투자계획서를 내밀었는지도 몰랐다. ‘추가 투자를 안 한 나한테 책임을 미루려고 그러는 거군…….’ 투자금이었기에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입술을 살짝 깨문 구민철은 눈을 치켜뜨고는 길정훈을 노려봤다. “길 대표님, 그래서 추가 투자금은 얼마란 겁니까?” “왕총 대표가 100억 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대인해운 후계자이신 구 사장님께도 그 정도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뭐 그 정도 돈은 문제가 안 되는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네요.” 예상치 못한 구민철의 답변에 눈에 총기가 돈 길정훈이 허리를 바짝 세우며 되물었다. “그게 뭔가요? 걸리는 게 있으면 헤치고 가야 하는 게 사업 아닌가요. 하하!” “다인이 문제 말입니다…. 그래도 한때나마 제 애인이었는데 구제를 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길정훈은 배다인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피식 한번 웃고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구 사장님…… 솔직히 다인이 같은 애들은 쌔고 쌨습니다. 제가 원하시면 다른 애를 붙여 드리죠. 멀리 보십시오.” “아뇨. 전 다인이를 원합니다.” “하하…… 어차피 걘 연예계에서 끝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미 마약 사건으로 기사가 나가지 않았습니까? 대중들은 다 돌아선 거나 다름없고요. 인기가 빠진 여배우…… 퇴물이나 다름없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길정훈이었다. “길 대표님 뒤를 봐준다는 그 검사 말입니다. 그쪽 라인을 활용하시면 충분히 구제되지 않을까요? 아직 약물 검사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고요.” “물론 그야 그렇죠…….” 말을 얼버무리는 길정훈이었다. 그는 단호한 구민철의 표정을 보고는 망설였다. 100억 원이라는 추가 투자금이 탐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욕망은 그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알겠습니다. 한번 얘기해 보죠…… 근데 구 사장님…… 이것만은 기억해 두시죠. 다 쥐고 갈 수는 없는 겁니다. 때로는 마음이 아프더라도 버릴 건 버려야 하거든요.” 연배가 높은 길정훈이 마치 충고해 주는 듯한 말투였다. “죄송합니다. 전 지키고 싶은 건 꼭 지키는 타입이라서요.” 구민철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시사뉴스닷컴 사무실. “그러니까…… 길정훈 대표가 만났던 검사가 차명학 검사였다는 겁니까?” “네. 항상 차 검사가 자기 뒤를 봐준다고 했었죠. 그 차 검사 뒤에 누가 있는지는 내가 모르지만요…….” “근데 지금 배다인 씨의 말을 입증할 방법은 이 녹취록밖에는 없는 겁니다. 그리고 이 녹취록에는 차 검사에 관한 얘기가 없고요.” “그러니까 그건 함 기자님이 입증해 주셔야죠.” 함지훈 기자를 만난 배다인은 구민철과 길정훈의 대화녹취록을 전달했다. 배다인이 말했던 폭로에 구민철이 도움을 준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취재를 통해 퍼즐을 맞춰 보겠습니다. 근데, 배다인 씨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여론에서는 배다인을 질타하는 기사들이 쏟아졌으며, 일각에서는 그녀의 은퇴를 거론하고 있었다. “억울한 점은 있지만, 마약을 손에 댔던 건 사실이에요. 벌 받고 대중 앞에서 용서를 빌어야죠.” “구민철 씨와는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민철 씨한테도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우리 관계는 이제 그이한테 달린 거겠죠. 하지만 양심도 없이 절 이해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 함 기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가지만 더 여쭤 보죠.” “네…… 뭐든지요.” “구민철 씨에게 접근한 거 계획적인 거였나요?” 함 기자의 질문에 배다인은 시선을 외면하며 잠시 허공을 쳐다봤고, 잠시 후 핸드백에서 주섬주섬 담배를 꺼냈다. 함 기자는 테이블 위에 있던 재떨이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 마음이 절대 편하지 않을 거 같은데요?” 담배에 불을 붙인 배다인이 한 모금을 빨고는 말을 이어갔다. “계획적인 거 맞아요. 길 대표가 제가 약을 한다는 걸 무마해 주는 대신 구민철을 구워삶으라고 했어요. 안 그러면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할 판이었거든요.” “일종의 강압적인 협박이었네요…….” “다 제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죠. 애초부터 약을 시작한 건 저였으니까요.” 후회하는 눈빛의 배다인이었다. 그녀는 연인도 돈도 모두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었다. “배다인 씨가 약에 손대게 한 것도 길정훈의 계획이었습니다! 박종길이라는 놈을 통해서 배다인 씨에게 계획적으로 접근시켰죠.” “애초부터 양아치 같은 놈이랑 얽히는 게 아니었는데…….”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배다인이었다. 함 기자는 그런 그녀에게 뭐라도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진짜 그녀를 위하는 건 길정훈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것이었다. “박강준 과장은 길정훈의 보험사기를 의심하더군요.” “네? 보험사기요?” 길정훈의 보험사기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인 배다인이었다. “길정훈이 로아 소속사 연예인에게 음주나 마약 문제가 터지면 피해 보상을 받는 기업보험 상품에 가입했더라고요.” “…개새끼……!” “길정훈이 다인 씨 마약 복용 사실을 안 게 언제죠?” “……1년 전이요.” “상품 가입 시기가 6개월 전이니까 보험사기 요건을 충족하네요. 혹시 법정에서 증언할 수 있겠어요?” 배다인은 눈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길정훈 그 양아치 같은 인간은 여기 연예계 바닥에 돌아다녀선 안 되죠!” * * * 길정훈의 비밀 별장은 양평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간 곳에 있었다. 진입로가 하나밖에 없어서 누가 오고 가는지 눈에 띄었고, 인근에는 농가밖에 없는 곳이었다. 강준은 낡은 트럭에 농기구를 싣고는 별장 인근의 농부로 위장한 채 며칠을 잠복근무 중이었다. 그리고 강준의 옆에는 오랜만에 현장에 나온 김준혁이 함께 앉아 있었다. “들어간 지 한참 된 거 같은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데요?” 별장에 검정 세단 차량 두 대가 들어간 지 몇 시간째였다. 김준혁은 그런 상황이 답답한 듯했다. “박 과장님, 배다인이 한 말이 맞을까요? 길정훈이 여기서 또 누군가에게 접대할 거라는 거요?” “길정훈은 배다인이 위약금 때문에 자기 뒤통수를 치지 못할 거로 생각하거든. 그러니 원래 패턴을 바꿀 이유가 없는 거지.” “그럼 더 기다려 봐야겠네요.” “……그렇지.” “박 과장님, 근데 채증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야, 네가 이걸로 해야지.” 강준은 긴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김준혁에게 건넸다. “저기 커튼으로 다 막혀 있는데 무슨 수로 찍어요?” “김준혁! 저기 봐라.” “네? 어디요?” “수리수리 마수리…… 열린다 열려!” 강준의 장난스러운 말이 끝나자 잠복하고 있던 트럭에서 보이는 별장의 거실 커튼이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김준혁이 어디선가 봤던 인물이 팬티만 입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대인해운의 후계자 구민철이었다. 찰칵! 찰칵! 거실에는 속옷 차림의 남자와 여자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들은 비밀 파티를 즐기는 중이었다. “김준혁 여기서 잘 찍고 있어라!” “어! 박 과장님, 어디 가시게요?” “어디 가긴, 저기 가봐야 할 거 아니냐.” “네? 직접 쳐들어가시게요?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김준혁이 움직이려는 걸 강준이 막았다. “넌 여기서 채증이나 잘 부탁한다. 그거 시키려고 너 부른 거야.” “아…… 정말 같이 안 가도 되는 겁니까?” “걱정하지 마라. 나 안 죽는다. 만약에 한 시간 지나도 나한테 연락 없으면 경찰에 신고 좀 해 주고!” “네! 알겠습니다!” 트럭 문을 닫은 강준은 별장으로 걸어가 벨을 눌렀다. 띵동! 띵동! 벨을 눌렀지만,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하지만 강준도 지지 않고 벨을 계속 눌렀다. 그러자 한참 만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누구십니까? 여기 별장에 아무도 안 계시는데요?” “전 구민철 사장님 초대로 온 사람입니다. 안에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강준의 말에 안에서는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두꺼운 대문이 철컥하고 열렸다. “정말 오셨군요. 성원화재 박강준 과장님!” 충혈된 눈으로 강준을 맞이한 이는 로아 엔터의 길정훈이었다. “구민철 사장을 만나러 왔습니다.” “……구 사장보다 박강준 씨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죠.” 터벅터벅 발길을 옮긴 길정훈을 쫓아가자 그곳에는 술에 취한 차명학 검사가 널찍한 가죽 소파에 기대 있었다. 그는 약에 취했는지 술에 취했는지 길정훈처럼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야! 박강준 이리 와서 앉아!” 고압적인 말투였다. 맞은편의 구민철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강준과 눈빛을 교환했다. “야! 너희들은 잠깐 방에 들어가 있어!” 헐벗은 여자들에게 차 검사가 명령했다. 그 여자 중 한 명은 강준도 본 적이 있는 로아 엔터의 신인 여배우였다. “뭐 해? 길 대표, 커튼 닫아!” 거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강준의 가슴팍에 차 검사의 발길질이 와 닿았다. “넌 뭐 믿고 대한민국 검찰한테 개기는 거냐!” 퍽! 퍽! 발길질은 계속됐지만, 강준은 팔로 막고 있었다. 차명학이 제풀에 지쳐 숨을 헉헉대고 있을 때, 강준이 몸을 일으켰다. “뭐 믿고 개기냐고? 차명학 검사! 당신이 언제까지 검사 노릇 할 수 있을 거 같아? 이렇게 냄새 풀풀 나게 노는데?” 강준의 말에 차 검사가 미쳤냐는 표정으로 강준을 노려봤다. 그러자 강준은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김준혁이 망원렌즈로 채증하고 있는 트럭을 가리켰다. “저기서 내가 차 검사 당신이 뭔 짓을 하는지 다 찍었거든! 비밀 별장에서의 유흥 파티라! 이거 위에서 알면 꽤 부담되지 않겠어요?” 다시 정중한 말투로 돌아온 강준이었다. “이 새끼야! 너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고 싶냐? 아니면 영혼까지 탈탈 털어 줄까?” 차 검사는 강준과 김준혁 따위는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릴 수도 있다고 협박하는 듯했다. “아뇨. 저 털리기 싫습니다. 저랑 거래하시죠. 제 직원이 찍은 디지털카메라의 메모리칩과 저 양아치 길정훈을 맞바꾸는 거 어떻습니까?” 강준에게 지목받은 길정훈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차명학 검사는 물끄러미 길정훈을 돌아봤다. 그리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박강준…… 역시 듣던 대로네. 좋아! 근데, 일단 저거 갖고 와. 메모리칩!” 순간, 길정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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