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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 연예기획사 마약 사건 (2) (93/250)

093. 연예기획사 마약 사건 (2)2022.03.03.

광역수사대 경제수사과. “박종길이 마약 유통상이라고요?” “네, 아마 배다인에게 마약을 공급해 준 인물이 박종길일 겁니다.” 갑자기 박종길을 지목하는 강준에게 이진철 경감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근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마약반은 아니지만… 마약 유통이 그게 초짜가 달려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나름의 라인도 있어야 하고요…….” “양태식이 한때 송종철 사장과 관계가 있었지 않습니까? 아마 그때 필리핀에서 마약을 공급하는 사람들과 연을 맺었을 겁니다.” “혹시 지난번 송환된 배필립에게서 이슬람 반군의 마약을 공급받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진철은 강준이 짐작하는 바를 날카롭게 되물었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못할 것 같네요.” “만약 그렇다면…… 큰일이죠. 새로운 마약 유통 세력의 출현이니까요.” “경감님, 일단 박종길 신원 좀 파악해 주시겠습니까?” “잠시만요…….” 강준이 박종길의 신원 파악을 기다리는 동안 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박 과장님, 저 김준혁입니다. “어, 좀 알아 봤어?” ―네, 해리츠 보험에서 최근에 로아 엔터테인먼트에 판 기업보험이 있네요. 예상하신 대로 공연취소나 영화 제작 중단에 대한 보상보험인데…… 특이하게도 소속 연예인들의 음주운전, 마약으로 인한 손해배상이 포함되어 있네요. “보험계약 날짜를 알 수 있나? 보험금 액수도?” ―그건…… 저희 쪽에서 알 수가 없어요. 물론 비공식적으로는 알 수 있지만요……. “조사해 봐. 불법 접속이 문제 되면 상급자인 내가 책임지지…… 단 이건 우리 내부의 사건조사용이라는 것만 잊지 마.” ―네,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짜릿한 일 하나 해 보겠네요! 김준혁은 오랜만에 화이트 해커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생각에 들뜬 모습이었다. 강준은 그런 김준혁이 지금까지 묵묵히 보험조사 2팀에서 일해 준 것에 사뭇 고마움을 느꼈다. 전화를 끊은 강준에게 박종길에 대한 정보를 손에 든 이진철이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 “박 과장 말이 맞았어요! 최근에 박종길한테서 온 EMS가 일주일에 두세 건씩 정기적으로 있었어요. 발신자는 마닐라의 주변의 다양한 주소지고요.” 그가 건넨 자료에는 수십 건의 EMS 통관 내역이 적혀 있었다. 물품은 시계부터 건강식품, 의류까지 다양했다. “여기 주소지도 확실히 나와 있네요. 박종길 이놈은 아직 치밀하지 못한 겁니다.” 이진철이 흥분하듯 물품의 수신지 주소를 가리켰다. “경감님, 같이 가 보시죠.” “물론이죠. 이거 잘하면 넝쿨처럼 뭔가 큰 걸 건질 거 같습니다!” * * * 박종길의 거처는 논현동의 한 빌라였다. 그는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일부러 고른 듯했다. “여기서 기다리시죠. 어차피 지금 잡아 봐야 모든 걸 부인할 테니까요.” 이진철은 편의점에서 산 커피를 강준에게 건넸다. “광역수사대에서 생활은 좀 어떤가요?” “지난번 배필립 검거 이후로 윗선에서는 해외범죄 사건을 맡으라고 권유하기는 하는데…… 전 아직 모르겠네요.” “어쩌면 이 경감님께는 꽤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앞으로의 경제 범죄는 한국을 무대로만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이진철은 강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역시 해외범죄를 맡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차츰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임철호 서장은 요즘 좀 어떤가요?” “지방경찰청장으로 승진한다는 얘기가 들리네요. 예정된 승진코스를 타게 되는 거죠…….” “한승일 시장이 뒤에서 밀어주니 당연히 그리될 수밖에요.” “하지만 최근에 감찰반이 임철호 서장을 주시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죠…….” 입조심을 하는 이진철이었지만, 강준은 경찰 내부에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귀 전과는 다르게 임 서장의 출세 가도에 제동이 걸린 것이었다. 전대성의 자금지원을 받던 한승일 시장이 주춤하고 있으니 임 서장의 안위도 자연히 불안정해진 것이었다. ‘그래도 회귀 전과는 많이 달라지는군…….’ 강준은 나름의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 빌라에서 막 나온 박종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주변을 경계하는 그였다. 품에 뭔가를 감싸고 나오는 거로 봐서는 마약 거래를 하기 위한 게 뻔했다. 강준과 이진철은 망설임 없이 차에서 내려 박종길에게로 향했다. “야! 박종길!” 이름을 부르자 멈칫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박종길이었다. 그는 이진철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갑자기 뜀박질을 시작했다. 하지만 반대편 길목에 강준이 도망치는 그의 멱살을 잡고는 바닥에 그대로 내팽개쳤다. “커헉!”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고꾸라진 박종길에게서 강준은 그의 기억을 읽어 냈다. [야! 너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내 말 잘 들어야 한다…… 약 장사하려면 검사 정도는 구워삶을 수 있어야 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넌 나 없이는 바로 감방행이라고 봐야지.] 박종길에게 은밀한 말을 건네는 이는 로아 엔터테인먼트의 길정훈 대표였다. [헤헤, 당연히 저도 알고 있죠. 그러니까 눈에 안 띄게 이렇게 조심조심하는 거잖습니까?] [근데 말이야…… 이번에는 판을 좀 키워 보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인데요!] [내가 우리 회사 매니저들 소개해 줄 테니까. 걔네 통해서 물건을 넘기면 돼.] [정말 팔아도 되는 겁니까? 대표님 소속사 연예인들이잖아요……?] 의문을 표하는 박종길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길정훈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근데 이 새끼가… 너 언제부터 내 말에 토 달았냐……?] [아니… 전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뭐? 내가 그랬지 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고! 생각은 내가 해! 넌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강압적이면서도 상대를 깡그리 무시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박종길은 자신을 키워 준 길정훈에게 차마 대들 용기가 없었다. 박종길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이거 놓으시라니까요!” 기억에서 깨어난 강준의 눈앞에선 그를 밀치고 도망치는 박종길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뒷덜미를 붙잡은 건 함께 출동했던 이진철이었다. “야! 어딜 도망가! 너 지금 마약 거래하러 가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도대체 누구신데 이래요?” “몰라서 물어? 대한민국 경찰이다!” 박종길은 발뺌했지만, 이진철은 그의 품 안에서 검은 봉지에 담긴 마약을 빼앗았다. “이거 뭐야? 이 정도 양이면 너 형량 좀 나오겠는데?” 이진철은 박종길의 목덜미를 잡고 그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웠다. “시발! 그거 내…… 거 아니에요. 나도 그냥 모르는 사람한테 택배 받은 것뿐이라니까요!” “헛소리 작작 하고! 일단 경찰서 가서 얘기하자고.” 강준이 몸부림치고 있는 박종길에게 다가갔다. “혹시 그거 길정훈 대표 물건이야?” 흠칫 놀라는 박종길에게 강준은 계속 몰아붙였다. “넌 이걸 길정훈 대표한테 전달만 하는 전달책이지? 아니면 네가 직접 이걸 판매하는 몸통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강준에게 당황한 건 오히려 이진철이었다. “박 과장님,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여기 이렇게 증거가 나왔는데요?” “제 생각에는 로아 엔터테인먼트의 다른 연예인들도 마약검사를 해 봐야 할 거 같네요. 아까 저희가 조사를 해 보니까 길정훈 대표가 일을 좀 꾸몄더라고요.” 강준의 말을 들은 이진철은 판을 키우려는 강준의 의도를 눈치채고는 박종길에게 물었다. “……야! 박종길 그게 정말이야?” “네? …그… 그게…….” “너 생각 잘해라. 대량 마약 유통의 주범과 단순 동조자의 형량 차이는 어마어마해!” 로아 엔터의 대표인 길정훈이 자신을 봐주고 있다던 검사를 운운한 걸 듣긴 했지만, 박종길의 머릿속은 당장 눈앞의 상황에서 도망치는 게 먼저였다. “네, 맞아요. 전 그냥 심부름꾼이었을 뿐이라고요……!” 이진철은 한 건 해냈다는 듯 강준을 바라보며 엄지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박종길을 일으켜 그의 등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 * * 로아 엔터테인먼트 청담동 사무실. 먼저 체포된 박종길이 말한 연예인 명단을 들고 광역수사대 마약반이 들이닥쳤다. 갑자기 일격을 당한 사무실의 직원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허둥댔다. 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이상하리만치 침착했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었다. “정말 어디 있는지 몰라요?” “진짜 우린 대표님 어디 있는지 몰라요…… 며칠 전부터 안 나오셨어요.” “아니, 대표가 어떻게 회사를 안 나옵니까?” 이진철의 질문에 직원 한 명은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지금 우리도 답답해요… 우리 월급도 밀렸다니까요…… 벌써 두 달째인데, 분명히 해결해 주신다고 했거든요!” 오히려 경찰에게 길정훈의 행방을 되묻는 직원들이었다. 직원들은 이미 대표인 길정훈의 행적을 의심하고 있던 것이었다. “자! 다들 머리카락 하나씩 뽑아서 조사하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마약반 형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소속 연예인들은 사무실에 없었다. 마약반 팀장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이진철에게 다가왔다. “이 경감님, 소속 배우들은 지금 자택이나 촬영장에서 시료 채취를 하고 있을 겁니다.” “네, 한 명도 빼지 않고 부탁드립니다.” “근데… 배다인 씨 행방이 확인되지 않았다는데…… 혹시 경감님이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마약반 팀장은 이진철이 재벌 후계자의 애인인 배다인에 대해서는 더 잘 알고 있을 거라는 듯 말했다. “글쎄요…… 대인해운 후계자인 구민철 씨한테 한번 연락해 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그런 큰 기업을 건드리기엔 부담이 좀 돼서요.” 마약반 팀장은 자신의 할 일이었지만, 뻔뻔하게 이진철에게 부담스러운 일을 미루고 있었다. 이진철은 처음부터 수사에 누군가가 개입한다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수사의 정보가 유출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긴급체포로 들이닥친 로아 엔터테인먼트의 사무실에서도 길정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사무실 입구에서 또각또각하는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긴급체포 현장인 사무실로 걸어온 이는 구민철의 애인 배다인이었다. “대표님은 어디 계시죠?” 그 모습에 이진철이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배다인 씨, 마약 복용 혐의로 긴급체포합니다!” “네, 그러세요. 조사에 협조하죠. 근데 저 혼자만 체포한다고 될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요?” “길정훈 대표 말입니까? 길 대표가 마약 공급과 연관이 있는 거죠?” “글쎄요…… 그건 길 대표한테 직접 물어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배다인 씨는 아시죠? 길정훈이 지금 어디 있는지요?” “아마…… 냄새를 맡았으면 한국에 없겠죠? 워낙 치밀한 인간이라서 말이에요.” 이진철은 배다인이 왜 도피하지 않고 제 발로 찾아왔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런 이진철의 궁금증을 알기라도 하듯 배다인이 말을 이었다. “길정훈 그 인간 실체를 까발려 주기 위해서 여기 온 거예요.” “배다인 씨는 지금 마약 복용혐의자입니다.” “네, 맞아요. 마약 복용했어요. 그것 때문에 길정훈 그 인간에게 약점 잡혀서 여기까지 온 거였고요!” 본인이 인정한 이상 마약반의 형사들은 그녀를 체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배다인이 아닌 다른 배우 몇몇을 잡는 거로 마무리하기로 되어 있던 거였다. “배다인 씨를 마약 사범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미란다 원칙을 말하며 체포하는 이진철을 마약반 형사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들에게 배다인의 등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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