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90. 선박 피랍사건 (4) (90/250)

090. 선박 피랍사건 (4)2022.02.28.

인도네시아 센바쿵(Senbakung) 해안 인근. 대한민국 해군은 슈퍼링스 헬기가 포함된 4천 톤급 구축함을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맞붙은 해역에 파견했다. 이미 인도네시아 정부와는 물밑 협상이 끝난 상태였다. 여명이 떠오르는 새벽 시간 구축함에서 함포가 발사됐다. 퐈아아앙! 펑! 퍼펑! 위협 사격이 끝나고 나서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슈퍼링스 헬기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헬기에 장착된 K―6 중기관총에서 갑판 위에서 허둥대고 있는 해적들을 향해 불이 뿜어졌다. 타타타탕! 타타탕! 투다다당! 타당! 인질을 관리하던 아부 사야프 조직원들은 한국 해군의 기습작전에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그들은 한국 해군의 공격 소식에 대해 바실란 섬의 본부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했었다. 오히려 본부에서는 병력을 빼내 쏭발란 지역으로 보내라고 명령했었다. 그곳에는 아부 사야프의 핵심 마약 생산기지가 있었고, 얼마 전부터 중국계 조직인 흑룡회와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었기 때문이었다. “투입! 작전을 개시한다!” 헬기의 기관총 공격이 끝나고 나자 30명의 정예병력으로 된 한국의 해군 특수전단 요원들이 화물선 위로 침투했다. 재빠르게 선교의 조타실을 점령했고, 저항하는 이들을 단호하게 사살했다. 탕! 타탕! 짧은 총성과 함께 아부 사야프의 해적들이 픽픽 쓰러졌다. 20명의 인질을 지키는 해적의 수는 대략 15명 선이었다. 갑판 아래로 해적들은 허겁지겁 도망쳤고, 특수전단 요원들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기관실에 인질이 있습니다!” 갑판 아래로 내려간 요원 중 한 명이 손을 들며 외쳤고, 그때 어둠 속에서 절박하게 외치는 현지어가 들렸다. 그리고 현지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남자가 한국말로 그들의 말을 전했다. “다가오면 수류탄을 터트려 버리겠답니다!” 통역은 배필립의 부하였던 제이콥이었다. 강준은 김갑수의 핸드폰을 살펴보던 중 그의 번호를 알아냈고, 긴 설득 끝에 한국 측으로 포섭했다. 어차피 제이콥으로서는 김갑수를 놓쳤기 때문에 배필립에게 돌아갈 수 없는 형편이기도 했었다. “제이콥! 지금 다 포위됐다고 투항하면 살려 주겠다고 해.” 고개를 끄덕인 제이콥은 한참을 남은 해적들과 협상했다. 피랍된 선박에 남아 있던 해적 삼분의 이가 사살된 상황에서 남은 해적들의 사기 역시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단 기다리시죠.” 어느새 요원들 사이로 들어와 있는 강준이었다. 강준은 괜히 해적들을 자극해 봤자 인질들에게 해가 갈 것을 우려했다. 그렇게 4시간이 지났을 때, 강준은 다시 대치하고 있는 갑판 위로 올라 사진 몇 장을 작전 지휘관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아마 해적들도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여기가 자신들의 보스가 살고 있던 본거지였으니까요.” 사진 속에 쑥대밭이 되어 버린 곳은 바실란 섬의 이슬람 반군 지도자 오마르 마르케스가 있던 호화 빌라였다. “자기들 보스 마르케스가 벌써 도망갔다는 걸 알게 되면 여기서 버티고 있는 해적들도 더는 버티지 못할 겁니다.” 강준의 말대로였다. 몇 시간을 인질의 목숨을 담보로 버티던 해적들은 승산이 없음을 알고 결국엔 투항했다. * * * 필리핀 쏭발란 지역 인근 해역. 배필립은 이미 아부 사야프 반군에게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반군의 수장인 오마르 마르케스가 몇 년째 구워삶았다는 로웰 중령은 어쩐 일인지 듣도 보도 못한 중국인들의 편에 서서 반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야! 빨리빨리 실어!” 배필립은 필리핀 인부들에게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명령했다. 반군에게서 구한 소형선박에는 나무 상자들이 잔뜩 실려 있었다. 배필립은 상자를 열어 안에 있는 필로폰 덩어리들을 직접 확인했다. 그 덩어리들은 한 번 더 정제해야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그것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끝나면 안 되지……. 얘들아, 이제 우리가 직접 생산한다!” 배필립은 자신을 호위하고 있던 한국인 조직원들에게 선언했다. 그 말에 조직원들은 호응하며 주먹을 위로 치켜들었다. “맞습니다. 형님! 우리가 직접 못 할 게 없습니다. 필로폰 합성은 한국에서 기술자를 데려와서 하면 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근거지를 마닐라 인근으로 옮기시죠!” “로웰 중령을 처음부터 믿으면 안 됐습니다!” 로웰 중령은 마르케스의 초호화 빌라를 공격하는 데 직접적인 공을 세웠다. 어쩌면 자신과의 유착관계를 지우기 위해 더 달려들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때 멀리서 총격 소리가 들렸다. 이슬람 반군인 아부 사야프가 필리핀 정부군인 해상경비대에 밀리고 있는 것이었다. “자자! 다들 서둘러! 우리도 아차 하다간 저놈들이랑 여기 수장되겠다!” “알겠습니다. 형님!” “근데 제이콥 이 자식은 왜 아직 도착을 안 한 거냐?” “형님, 혹시 우리 배신한 거 아닙니까?” 부하의 말에 배필립의 미간이 좁혀졌다. ‘설마 그 새끼가…… 아니야. 나 아니면 앞으로 가난에 허덕여야 할 텐데 그럴 리가 없어!’ 제이콥은 배필립이 당분간 은신할 수 있는 무인도를 안내하겠다며 선발대로 먼저 그곳을 확인하러 간 중이었다. 부아아앙! 부아아앙! 그때, 고무보트 소리가 들렸다. 보트에 타고 있는 이는 제이콥과 조슈아였다. “뭐야?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너 혹시 딴생각하는 거 아냐?” “보스! 그럴 리가요! 이 선박도 제가 구해온 거잖습니까?” 제이콥의 말은 사실이었다. 도주하는 소형선박은 제이콥이 아부 사야프의 반군들로부터 빼내온 것이었다. 배필립은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다 다시 칼집에 밀어 넣었다. “그래서 늦은 이유가 뭐야?” “……해안경비대가 여기저기 깔려 있어서요……. 보스! 서둘러야 합니다! 늦어지면 해안경비대에 걸릴 수도 있어요!” “그래? 네가 말한 무인도까지 여기서 얼마나 걸려?” “한 서너 시간을 나가야 합니다…… 말레이시아 국경까지 다가가야 하는 곳이라서요…….” “뭐? 필리핀을 벗어난다고?” 망설이는 배필립이었다. 따지고 보면 필리핀이었기에 교도관을 매수해 탈옥할 수 있었고, 자신이 마음껏 범죄를 저지르고도 여태껏 멀쩡할 수 있었던 거였다. “안 돼! 우린 필리핀 영내에 머무른다!” “로웰 중령이 눈에 불을 켜고 보스를 찾으려고 할 겁니다. 그래야 자기가 한 짓들을 덮을 수가 있거든요.” 한차례 망설인 배필립이 제이콥을 노려보며 말했다. “……제이콥! 너 허튼짓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배필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덩치 큰 부하들이 제이콥과 조슈아를 둘러싸고 겁박했다. “아…… 알죠……. 절대 허튼짓 안 합니다! 근데 일단은 피하셔야 합니다……!” 배필립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이콥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로웰 중령이 돌아선 걸 보면 괜한 불똥이 자신에게 튈 수도 있었다. 배필립은 배를 몰아 좁은 쏭발란 지역을 지나 시부투 해협으로 빠져나갔다. 그곳은 필리핀의 행정력이 점점 옅어지는 곳이었다. 배가 넓은 바다로 나왔을 때, 배필립의 시야에는 멀리 수평선 끝에 점같이 생긴 뭔가가 있었다. “제이콥! 저거 뭐야?” “그…… 글쎄요…… 그냥 어선 아닙니까?” “그래? 그럼, 무시하고 우리 갈 길대로 간다!” 제이콥의 보고는 거짓말이었다. 점 같은 뭔가는 점점 커졌고, 선박 간의 거리가 좁혀졌을 때, 배필립은 그게 뭔지 완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선박은 단순 어선이 아니라 중무장한 한국의 고속정이었다. 그 고속정에는 한국 해군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마약밀매 조직을 상대해왔던 허찬 경사가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은 배필립을 공해상에서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당장 선박을 멈추고 우리 통제에 따르기 바란다!” 고속정은 경고 사격 없이 배필립의 선박에 다가와 확성기로 투항할 것을 권했다. 배필립의 부하들은 10여 명도 채 되지 않았으며, 가지고 있는 무기도 권총과 회칼뿐이었다. “시발……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냐…… 젠장……!”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배필립은 허리춤에 있던 단도를 꺼내 주저 없이 제이콥의 복부를 찔렀다. 여러 차례 칼날을 박아 넣은 배필립은 제이콥을 발로 차 바닥에 나뒹굴게 했다. “갈 때 가더라도 배신자는 응징하고 가야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뺀질거리기나 하고! 쯧!” 풍덩! 배필립의 부하들은 피를 흘리는 제이콥을 바닷속으로 던졌다. 그때, 고속정에서 일제히 총격이 가해졌고, 바다로 뛰어드는 몇몇 요원들이 보였다. “야! 다 죽여버려! 어차피 여기서 갈 곳도 없잖아!” 배필립은 머뭇거리고 있는 부하들에게 총구를 겨눴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권총을 빼 들고 엉거주춤 요원들에게 방어할 태세를 갖췄다. 탕! 타탕! 총격이 시작됐고, 훈련받은 특수전단 요원들에 겁먹은 배필립의 부하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방에서 쏘아대는 총알에 배필립의 부하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앞에서는 기관총이 난사되고 있었고, 퇴로는 바다로 막혀 있었다. “바로 저놈입니다!” “배필립 칼 버려!” 어느새 요원들과 함께 갑판에 올라 배필립을 가리키고 있는 자는 허찬 경사였다. 그는 권총을 들려는 배필립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탕! 타탕! 배필립은 다리에 총상을 입고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사격 중지 저놈을 죽이지 마십시오! 배필립 이놈은 반드시 한국으로 송환해야 합니다!” 요원들은 재빨리 배필립의 부하들을 제압해 갑판에 일렬로 무릎을 꿇게 했다. 허찬 경사는 재빨리 상의를 벗어 배필립의 허벅지를 감쌌다. 더 이상의 출혈은 위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필립, 그는 결코 죽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 * * 일주일 후, 인천항. 배에서 내린 배필립의 양옆으로는 해군 특수전단 요원들이 그의 팔짱을 끼고 호송 중이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광역수사대의 이진철 경감이었다. “피의자 배필립 본명 배기원, 인계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거수경례하는 이진철은 함께 나온 형사들에게 배필립을 인계하도록 했다. 결국, 배필립은 대한민국 땅으로 송환됐다. 찰칵! 찰칵! 찰칵! 미리 대기하고 있던 언론 기자들이 그 광경을 촬영했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대대적으로 해군의 필리핀 해적 소탕 작전을 뉴스로 다뤄왔다. 그리고 청부살인업자였던 배필립의 검거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모든 송환 과정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는 박강준이었다. 그의 옆에는 필리핀에서의 작전을 함께 수행했던 허찬 경사가 서 있었다. “이제 다 끝났네요. 다 박 과장님 덕분입니다.” “해군의 공이 컸습니다. 물론 허 경사님의 도움도요. 이제 함부로 한국 국적의 선박을 노리는 놈들은 없을 겁니다. 한국 선박을 건드렸다가는 어떻게 된다는 걸 확실히 보여줬으니까요!” “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이런 일에는 선례를 남기는 게 중요하죠!” 그때 고급승용차 한 대가 강준의 앞에 섰다. 안에는 필리핀에서 함께 했었던 구민철 과장이 타고 있었다. 그는 꾸벅 인사를 하더니 본론부터 꺼냈다. “박 과장님, 저희 대인해운에서 과장님을 뵙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십니다. 저랑 같이 가시죠!” “혹시 그분이 구 과장님 아버님인가요?” 그 말에 구민철 과장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한 번도 자신이 구상옥 회장의 아들이라는 걸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6555209860942.png

16555209860949.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