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83. 금융위기 (2) (83/250)

083. 금융위기 (2)2022.02.21.

2008년 7월. 주식시장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연신 그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라는 말을 떠들어 댔다. 그리고 경제전문가들은 죄다 지구 반대편 월스트리트라는 곳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강준은 그 무렵 김준혁에게 주가 연동 상품에 대해 조사를 시키기 시작했다. ‘금융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봐야겠다!’ 보험조사 2팀의 최은정 팀장도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한국보험에서 고객들이 주가 폭락으로 변액보험을 해지하겠다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어요. 우리 성원 쪽에서도 미리 대비해야 할 거 같아요.” “팀장님, 성원생명이 저축성 보험을 주로 판매했으니 그쪽이 더 문제일 겁니다.” 주가 연동 보험상품을 조사했던 김준혁이 강준 대신 대답했다. “준혁 씨 말이 맞아요. 주가가 폭락하니 해약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문제는 정작 해약할 때가 되니까 약관 내용이 다르다는 보험계약자들이 많다는 거죠.” 한국보험에서는 김미영을 필두로 회사와 갈등을 빚는 상황이었다. 폭락한 주가 때문에 스타덱스 연금보험에 들었던 계약자들이 대거 해약했고, 그에 따른 원금보장을 설계사들에게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는 불완전 판매한 설계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심지어는 설계사들의 입사 시 받아두었던 보증보험을 통해 손실액의 구상권을 청구하기도 했다. 김준혁이 그간 조사했던 주가 연동 상품인 변액보험의 현황에 대해 보고했다. “팀장님, 성원화재에서 판매한 상품 중에 주가지수 연동상품은 모두 저축성으로 설계된 게 아니라서 원금보장으로 오해될 만한 소지는 없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근데 성원생명 쪽은 사정이 다릅니다…….” “계속해 보세요.” 김준혁은 강준 쪽을 한번 보고는 다시 보고를 이어갔다. “내부 운영 내역을 보니 해지환급금이 마이너스인 상품인 3개 정도 됐습니다. 물론 고객이 당장 해지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한국보험처럼 고객들 사이에서 불안감이라도 퍼진다면…….” “대규모 해지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네. 게다가 지금 주식시장이 단기간에 회복될 거 같지도 않고요.” 최은정은 주먹을 쥐고는 테이블을 잠시 짚었다. 마침 중요한 시점에 악재가 닥친 거였다. 최창식 회장은 결국 큰아들인 최진호를 병원에서 빼내 그룹으로 불러들였다. [김 이사, 이번이 내가 힘쓸 수 있는 마지막이야! 진호 그 녀석 이번 임기 안에 실적 못 내면 물러난다고 주주들한테 편지 돌려.] [네, 회장님.] [미경이 쪽은 어때?] [윤미경 감사 쪽도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 모양입니다. 회장님이 이번처럼 단호하게 추진하시면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진 못할 겁니다.] 최은정은 최 회장의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은정아, 너는 큰 오빠 도와서 진태한테서 그룹부터 되찾아와. 그리고 난 다음에 둘이서 잘 합의해서 그룹을 이끌어가 봐. 여기 있는 김 이사가 너희를 잘 도와줄 거다!] [네. 그렇게 할 테니까, 아빠는 이제 얼른 항암치료 시작하세요. 안 그러면 저도 아빠 말 안 들어요.] 최창식 회장은 자신의 건강을 빌미로 후계 구도를 확실히 정리하려고 했다. 최은정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녀가 당장 해야 하는 건 부실한 상품을 정리하고 대량 해약 사태를 막아내는 것이었다. “팀장님, 한국보험 쪽 일이 생각보다 심각한 거 같더라고요. 우리가 한번 조사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한국보험을요?” “네, 그쪽에서 사태가 돌아가는 걸 보면 우리도 미리 대처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박 과장님이 직접 조사하실 건가요?” 팀원 모두가 강준의 입을 주목했다. “이번 일은 설계사분들이 연관된 일입니다. 그 설계사분들은 대부분 여성이 많으시고요. 송지희 씨가 직접 조사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단독으로요?” 최은정은 강준에게 물었지만, 그건 송지희에게 묻는 거나 다름없었다. “네, 입사한 지도 꽤 됐고, 이제 단독으로 사건을 맡아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지희 씨 생각은 어때요?” 잠시 망설이던 송지희는 이내 생각을 정리했는지 답했다. “네, 해 보겠습니다! 한국보험 쪽 설계사들의 불완전판매는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문제니까요.” “그래요. 그럼 지희 씨한테 맡길게요. 그리고 준혁 씨는 지금처럼 계속 상품이 위험해지는 추이들 지켜봐 주시고요!” 최은정은 마지막으로 강준을 바라봤다. “저한테 뭘 시키실지 생각하시는 거죠?” 미리 넘겨짚는 강준이었다. 그런 강준의 말에 최은정이 피식 웃었다. “네, 뭐 생각해 둔 거라도 있어요?” “혹시 자산 운용팀에 아시는 분 있으십니까?” “성원생명 자산 운용팀 말씀이세요?” 성원화재의 변액보험도 생명보험사인 성원생명의 자산 운용팀이 대신 관리해 주고 있었다. “네. 성원생명의 주가 연동 상품들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직접 한번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자산 운용팀장을 알고 있어요. 한번 말해 볼게요. 근데…… 우리는 보험조사팀인데 자산 운용팀이 하는 일까지 간섭하는 건 좀 오바 아닌가요?” 이번에는 최은정이 강준의 말에 의구심을 품었다. “오바 맞습니다. 근데 이번에는 오바 좀 해야겠습니다. 왜냐면 지금이 아주 위기상황이거든요. 잘못하다간 성원생명 실적이 곤두박질칠지도 모르는 거고요.” 최은정은 여전히 납득되지 않았지만, 강준이 뭘 어떻게 할지가 궁금해졌다. “알겠어요. 제가 운용팀장한테 시간 한번 내 달라고 할게요. 회의는 이걸로 마치죠.” “네, 알겠습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각자 자리로 흩어지고 회의실에는 강준과 최은정 둘이 남았다. 최은정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진태 오빠가 이번 일을 빌미로 한국보험 보험설계사들을 대량 해고하려고 해요.” “설계사들이 없으면 실적이 하락할 텐데…… 왜 그런 걸까요?” “단기적으로는 흑자 전환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영업을 축소하는데도요?” “지점을 일부러 줄여나가고 있어요. 지점을 폐쇄하면서 해당 보험설계사들을 해촉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지급해야 할 설계사들의 잔여 수수료를 주지 않아도 되거든요.” 장기적으로는 영업에 차질을 빚지만, 단기적으로는 보험사의 운영비가 줄어들어 이익이라는 얘기였다. “저도 보험설계사들이 자주 교체될수록 보험사에 이익이라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부정하기는 힘드네요. 어차피 보험영업이라는 게 지금까지 설계사들의 지인들 위주로 해온 게 사실이에요. 어쩌면 이렇게 보험업계가 성장해온 건 밤낮으로 고객들을 만나고 다닌 설계사들 덕분일 거예요.” 최은정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그래도 외부에 드러나는 실적이 좋으면 최진태 이사가 재계에서 주목받을 겁니다. 보험설계사를 정리한 대가로 얻는 이익이 경영수완으로 포장될 테니까요……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나요?” “아직 보고드리지 못했어요. 하지만 평소에 아빠는 보험설계사들이 회사를 같이 키워 왔다고 여기셨어요.” “성원생명 최진호 대표님은요?” “큰오빠야…… 당연히 진태 오빠와는 다른 길을 가겠죠. 고집이 있는 사람이에요. 아마 아빠 항암치료가 걸려 있지 않았다면 그룹으로 돌아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강준은 최진호를 만나보고 싶었다. 회귀 전 최진호에 관한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를 직접 대면해 본 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셔야겠군요. 혹시 최진호 대표님을 만나게 해 주실 수 있나요?” “아까는 자산 운용팀을 만나게 해 달라더니 이번에는 큰오빠를요?” “하하! 같이 만나 봬도 되고요.” “알겠어요. 자리 한번 마련해 볼게요. 강준 씨는 이미 우리 회사의 스타잖아요.” “방송빨이 생각보다 오래가는군요.” 강준이 민망해하며 뒷머리를 긁었다. * * * 송지희는 한국보험에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있는 김미영 플래너를 찾았다. 그녀는 이미 한국보험에 책상이 빠져 있는 상황이었다. 송지희의 요청에 김미영은 하소연할 곳을 찾았다는 듯 회사 아래의 카페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지금 그럼 해촉되신 건가요?” “……네, 일방적으로요. 잔여 수수료도 못 주겠다고 그러는데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죠!” “받아야 할 잔여 수수료가 얼마죠?” “한 1억은 될 거예요. 앞으로 3년간 나눠 받아야 할 금액이었으니까요.” “해촉되면 그걸 다 못 받는 건가요?” “……네. 막막하죠. 근데, 정말 문제는…… 고객들이 여전히 절 찾아온다는 거예요.” 김미영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이 드러났다. “해촉됐는데…… 왜?” “날 사기꾼이라고 그래요…… 고객들이.” “회사에서 제공한 보험상품을 팔았을 뿐이잖아요. 그럼 책임도 회사에서 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고객을 직접 상대하고 설득한 사람은 저잖아요…….” 그때 카페에 들어온 한 남자가 김미영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김미영 씨, 얼굴도 참 두껍네! 아니 회사에 그렇게 민폐를 끼쳐 놓고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야? 이야…… 독종이네, 독종!” 남자는 한국보험 강남지점장 백상현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김미영에게 스타덱스 연금보험을 가입한 사람들이었다. “김미영! 너 어떻게 할 거야! 회사에서는 원금보험 안 된다고 그랬다는데 왜 나한테는 보장된다고 했어!” 그들은 김미영의 친언니가 운영하는 시장 가게의 상인들이었다. 김미영이 가슴 아픈 건 자신 때문에 친언니까지 곤란해졌다는 거였다. “오 사장님, 제가 어떻게든 해결을 해드릴게요…… 근데 전 정말 사장님 속인 적은 없어요. 맹세할게요. 전 회사에서 설명한 내용대로 판매한 죄밖에…….” 그 순간 오 사장의 남편인 것 같은 사람이 김미영의 어깨를 밀쳤다. “끝까지 변명이야! 끝까지!” “야! 김미영! 네가 불완전판매한 거라고 인정하면 여기 지점장님께서 우리 돈 돌려준다고 했어!” “네가 버티고 있으니까 우리가 해지환급금을 못 받는 거 아니야!” 시장 상인들은 김미영을 몰아붙였다. 백상현 지점장은 고객 클레임을 보험설계사의 민원 해지로 처리하고 고객들에게 나갈 보상금을 보증보험을 통해 받아 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보증보험사는 김미영 같은 보험설계사에게 구상권청구를 하게 된다. 결국, 사측인 한국보험은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야! 네 언니 봐서 보험 들어줬더니 우리를 배신해!” “잠시만요…… 제 말씀을 좀 들어보세요…….” “미영이 네가 서류 한 장 써 주면 끝날 일을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 김미영의 얼굴은 완전히 흙빛으로 변해 있었다. “잠시만요! 고객님들 전 한국보험의 모기업인 성원그룹의 보험조사관 송지희입니다!” 송지희의 말에 지점장이 당황한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왜? 성원그룹에서…… 이 사안은 한국보험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이거 엄연한 경영 간섭이에요!” 백상현 지점장의 말을 무시하고 송지희는 자료 하나를 꺼내 사람들에게 보였다. “경영 간섭 그런 건 나중에 따지시죠. 일단 여기 보세요. 2005년에 배포되었던 한국보험의 교육 자료예요. 여기 뭐라고 쓰여 있죠?” 송지희가 가리킨 곳에는 ‘원금이 보장되는 스타덱스 연금보험!’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세부 약관을 읽지 않는다면 중도 해지 시에도 원금이 보장될 것으로 오해될 만한 문구였다. “이건 엄연히 한국보험 본사 측의 문제예요. 설계사들이 잘한 건 없지만, 여러분들이 보상을 받으셔야 할 대상은 한국보험 본사죠!” 송지희의 말에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16555209334266.png

16555209334271.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