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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7. 고미술품 보험사기 (4) (77/250)

077. 고미술품 보험사기 (4)2022.02.15.

최기동은 호텔에 들어가려는 강준을 막아섰다. “왜 막아서는 거냐?” “박강준, 네가 내 일을 망칠까 봐. 어차피 김종문한테서 나온 돈은 변 선생한테 흘러갈 거야. 그러니까 기다렸다가 우린 변 선생만 잡으면 되는 거라고!”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나 보험사기 잡는 보험조사관이야. 너처럼 돈이나 슈킹하려는 범죄자가 아니라고.” 강준의 일갈에도 최기동은 흔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보험사기 그거 잡는 데 증거 필요하지 않아?” “뭐? 증거?” 최기동의 말이 강준의 발걸음을 돌려세웠다. “너도 알겠지만, 채원이 가지고 있던 도자기가 깡그리 도난당했잖아. 근데 그걸 훔쳐 간 사람이 누군지 알아?” “혹시 ……변 선생?” “그렇지. 근데 그 훔쳐 간 도자기는 어떻게 했겠어?” “글쎄, 모조품인데 없애 버리지 않았을까? 괜히 갖고 있을 이유도 없고.”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황당하게도 변 선생 저 인간이 그걸 다시 여기 청도까지 가져왔더라고!” “뭐? 모조품을 해외 반출했다고?” “전시용 상품으로 통관했을 거야. 그럼 관세가 안 붙거든.” 최기동은 나진패션에서 물류 담당자였다. 그렇기에 그는 변 선생의 거처를 뒤지다 도자기 반출에 관한 통관 서류를 알아봤던 거였다. ‘……중국으로 가져오면 보험조사관이 절대 못 찾을 거로 생각했겠지! 근데 이를 어쩌나 기왓장 아끼려다 대들보 썩는 꼴일 테니…….’ “그래서? 그 도자기들이 여기 청도 바닥 어디에 있는지, 네가 안다는 거야?” “대충은…… 그러니까 우리 서로 협조하자고!” “최기동,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우리 지금 목적이 같은 거 아니야? 내 도움 없으면 너도 보험사기 증거 잡기 힘들걸?” 최기동의 말이 맞았다. 재판정에서 변 선생이 감정서를 허위라고 인정할 리도 없었고, 도자기 도난이 자작극이었다고 할 증거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확실한 증거인 도난 도자기를 찾게 되면 한 방에 모든 게 해결되는군!’ “좋아. 네가 원하는 건 변 선생이 돈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거지?” “변 선생을 잡아두고 김종문이 돈을 보내게 할 거야. 돈이 입금되면 변 선생 그 자식을 족쳐서 내 돈을 찾을 거고.” “뭐…… 그래, 네 말대로 한번 해 보자고. 근데 변 선생은 어떻게 잡을 거야? 여기 한국 아니고 중국이야. 괜히 공안이라도 뜨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어.” “박강준, 너 싸움 좀 하잖아. 우리 둘이서 저 늙은이 한 명 감당이 안 되겠냐?” 밑도 끝도 없는 제안이었지만, 최기동이 알고 있다는 보험사기에 이용된 도자기들을 찾기 전까지 강준은 그에게 협조하는 게 유리할 것 같았다. 강준이 제안에 수긍하자 최기동은 곧바로 호텔 앞 길가에 나가 택시를 잡았다. “城陽 家乐福(청양 까르푸!)” 청양은 한인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최기동은 그중에서 한 낡은 오피스텔 건물로 강준을 데려갔다. 1층에는 한국 물건을 파는 슈퍼가 있었지만, 그곳의 주인은 중국인이었다. 무역이나 물류의 간판을 내건 정체 모를 회사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여기가 변 선생 사무실이 있는 곳이야?” “사무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먹고 자고 하더라고.” 4층에서 내린 최기동은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양 뚜벅뚜벅 복도를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는 투명한 유리 벽으로 된 사무실 앞에 다다랐다. “여기야.” “뭘 어쩌라고? 나보고 문이라도 따라는 거야?” 최기동은 말없이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 “업자 불러서 열쇠 맞췄다. 내가 여기 주인인지 아닌지 확인도 안 하더라고.” 태연하게 문을 연 최기동은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변 선생이 나타날 거야. 그때까지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놈을 우리 구미에 맞게 이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 되는 거고.” 최기동은 익숙한 듯 구석에 놓인 간이침대에 몸을 눕혔다. “배고프면 이거라도 먹던가…….” 그가 비닐봉지에 든 무언가를 던졌다. 안에 든 건 차갑게 식어 있는 삶은 옥수수였다. 강준은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붙였다. 잠시간의 휴식이었다.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던 강준은 축적된 피로가 몰려왔다. 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잔 걸까? ……강준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눈앞에 벌어져 있었다. “쇠스케 같은 새끼가 여가 어디라고 나대니! 죽으려고 환장한 새끼!”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강준의 뺨을 툭툭 쳐대는 이들은 연변 말투를 쓰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었다. “당신들 누굽니까?” “우리? 그건 네가 알아서 뭐 하니? 지금부터 내 말 똑똑히 들으라! 너랑 같이 있던 최기동이 어디 갔네?” 강준은 정신을 차리고 사무실 안의 상황을 살폈다. ‘눈앞에 칼을 든 놈 두 마리, 출입구 지키는 또 한 마리! 총 세 마리네!’ 민머리의 남자는 강준의 눈에 긴 회칼을 들이밀었다. “조용히 갈래? 아니면 여기…… 그리고 또 여기. 토막 나서 나갈래?” 민머리는 강준의 허벅지 두 곳을 칼날로 지그시 누르며 협박했다. 비릿한 미소를 지은 그들은 한눈에 딱 봐도 전문 해결사들이었다. ‘꽤 눈매가 매섭네…….’ 강준은 최기동을 찾았다. 하지만 최기동은 사무실에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갑시다. 굳이 피 볼 거 있나요?” “잘 생각했다…… 간나! 머리 굴렸다간 국물도 없을 줄 알라! 포를 떠 버릴 테니.” 살벌한 말을 늘어놓는 민머리가 칼등으로 강준의 뺨을 다시 툭툭 쳐댔다. 그때, 밖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라졌던 최기동이 또 다른 놈에게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퉁퉁 부은 그의 코와 입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때다!’ 강준은 민머리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을 때를 이용해, 자신을 겨눈 칼 손잡이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한쪽 팔로는 민머리의 목덜미를 휘감고 나머지 한 손은 칼날로 그를 위협했다. 그 순간 민머리의 기억이 강준에게로 들어왔다. [5만 위안 내쇼.] [우리 뒤꽁무니 쫓아다니는 놈 확실하게만 처리해 주면 5만에 더해서 5만 더! 우 실장이 일 하나는 확실하게 잘하는 거 아니까 내가 좀 더 쓴 거야.] [잠깐. 우리 계산은 제대로 해야 하지 않갔어? 사람 하나 담그는 데 50만 위안이야. 10만이면 어디 한 군데 병신 만드는 정도지. ……손목 어떻갔어?] 그 말을 듣고는 중절모를 벗어 책상 위에 올려두는 변 선생이었다. 그는 예의 그 긴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그건 우 실장님이 뭐 알아서 하시고……. 대신 뒤처리는 깔끔하게 해 주시는 거 아시죠? 어쨌든 전 믿고 맡깁니다. 하하!] 변 선생은 우 실장으로 불리는 민머리 놈에게 두툼한 돈뭉치를 내밀었다. 낄낄거리는 변 선생의 표정을 마지막으로 우 실장의 기억은 끝이 났다. 강준이 기억에서 깨어났을 때, 힘을 준 팔뚝이 아직 우 실장의 목덜미를 꽉 쥐고 있었다. “네가 우 실장이구나?” “뭐야? 너 누기야? 너 누군데 나를 알아……!” “변 선생이 알려줬어.” “뭐? 변 선생! 그 쇠스케 같은 새끼!” “하나만 묻자. 지금 변 선생 어디 있냐?” 강준의 질문에 우 실장은 답하지 않았다. 의뢰인의 정보를 누출하는 건 전문 해결사로서 용납되지 않는 원칙이었다. “어차피 변 선생은 널 배신했어!” 강준은 민머리의 무릎을 가격해 바닥에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의 복부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칼끝을 꽂았다. “크아아악……!” “내가 여기서 칼날을 비틀면 넌 죽는다. 아무리 못해도 한 시간 안에 과다출혈로 사망하겠지. 이쯤에서 정리하자. 너 10만 위안 받았지? 겨우 그 돈 받고 죽을 거야? 변 선생 지금 어디 있어?” “……그걸 ……크으으 ……내가 ……말할 거 같니?” “괜한 고집 부리지 마라. 다시 한번 물을게. 변 선생 지금 어디 있냐?” 강준은 손목에 힘을 주고 칼날을 좀 더 깊이 박았다. “……끄으으윽!” 민머리는 신음을 내지르다 못 참겠는지 강준의 말에 굴복했다. “……通济街道(통지지에다오)!” “거기가 어디야?” “……변 선생 창고가 ……크으으 ……있는 데야…….” 강준은 피가 흐르는 입을 막고 있는 최기동을 바라보며 물었다. “최기동! 너도 아는 데야?” 최기동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아는 곳이라고 답했다. “우 실장, 나 그럼 조용히 갈 테니까. 우리 서로 문제 생기게 하지 말자. 공안 불러 봤자. 넌 청부살인으로 감방 가야 할 거야.” 강준의 말에 우 실장은 부하들을 보며 외쳤다. “다들 칼 버리라……!” 그의 말에 나머지 셋은 쥐고 있던 몽둥이와 칼을 바닥에 내던졌다. “최기동 뭐 해? 거기 칼이라도 하나 잡아!” 머뭇거리던 최기동은 놈들이 떨어뜨린 칼을 잡고는 경계하듯 주춤거렸다. “정신 차리고 입구 뚫어!” 강준은 그 말을 외치고는 우 실장을 밀쳐냈다. 부하들이 강준을 향해 달려들려 했지만, 강준은 기다란 회칼로 놈들을 위협하며 출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으 ……박강준 ……저쪽……!” “잠깐만! 우 실장, 차 좀 빌리자.” 나가려다 돌아선 강준의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 우 실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피가 새어 나오는 복부를 부여잡고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했다. * * * 강준은 우 실장에게 빌린 차량으로 변 선생의 창고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최기동, 괜찮아?” 운전대를 잡은 최기동의 윗입술은 퉁퉁 불어 있었다. 출혈은 멈췄지만, 그의 얼굴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 “어딘지 알고 가는 거지?” “……알아. 거기도 한 번 갔었어.” “변 선생이 가져왔다던 도자기도 거기 있는 거군.” 최기동은 강준의 말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박강준, 우 실장이라는 사람 ……넌 알고 있었어?” “몰랐어.” “아까 그 대머리한테 먼저 우 실장이라고 말하던데?” “그건 여기 청도에서 해결사로 유명한 사람이 우 실장이라고 해서, 그래서 때려 맞춘 거야.” 적당히 둘러댄 강준이었다. 최기동은 차량을 아스팔트 길에서 흙길로 몰았다. 변 선생의 창고는 쯔모시 외곽의 아주 외진 곳에 있었다. “최기동, 변 선생이 정말 여기 있을 거 같아?” “그건 나도 모르지. 난 사무실로 올 줄 알았거든…… 칼잡이들을 보낼 줄은 나도 몰랐어.” “근데 아까 넌 어디로 도망갔었던 거냐? 나 버리고 도망간 거였어?” “그럼 어떻게 해! 칼 들고 들어오는데…….” 최기동과 강준은 서로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먼저 말을 연 건 최기동이었다. “박강준…… 근데 너 싸움 잘하더라…… 고맙다. 아까…….” “고맙긴. 고마우면 내 부탁 하나만 하자.” “뭔데?” 그때 최기동이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 저기 변 선생이다!” 변 선생은 혼자 차를 끌고 창고로 온 것이었다. 최기동은 타고 있던 차를 그대로 몰고는 변 선생의 차 앞 범퍼를 들이받았다. 터엉! 앞으로 급격히 몸이 기울어진 강준은 차가 멈추자마자 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깜짝 놀라 차 밖으로 나온 변 선생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퍼억! 퍼억! “컥……! 누구세요……?” “네가 죽이려고 했던 사람. 변재문 넌 살인 교사범이야 개새끼야!” 퍼억! 퍼어억! 강준은 한동안 찰지게 변 선생을 두들겨 패고는 그의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움켜잡고는 고개를 젖혔다. “너, 우 실장한테 10만 위안 주면서 최기동 죽여 달라고 했지?” 놀란 눈으로 강준을 바라보는 변 선생이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놀람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너 보험사기로 들어갈래. 아니면 살인죄로 들어갈래? 선택해!” 강준은 변 선생의 코를 완전히 꿰어 버렸다. “네가 그 보험조사관……?” “그래, 내가 너희 보험사기꾼들 쫓아온 성원화재 박강준이다. 우 실장 보낸 건 내가 묻어줄 수 있는데…… 어때? 나한테 협조 좀 할래?” 강준은 아직 상황을 모르는 채원과 김종문의 돈을 털어먹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건 변 선생을 쫓아다녔던 최기동이 진짜 원했던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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