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고미술품 보험사기 (2)2022.02.13.
답십리 고미술품 상가의 한복판에 고미술품협의회의 사무실이 있었다. 강준은 감정서를 직접 써 준 변재문을 찾지 못한다면 타인의 기억을 읽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할 기회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 변재문 이사님을 찾아왔는데요?”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방에 가득 차 있는 고미술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석재로 된 불상부터 시작해서 오래된 동양화와 도자기, 그리고 철로 된 갑옷까지 보였다. “혹시 어디서 오셨죠?” 강준은 서동휘 팀장이 제공한 감정서를 내밀었다. “여기 협의회 이사님이 작성하신 도자기 15점에 대한 감정서입니다. 이게 맞는지 한번 확인하러 왔습니다.” “아…… 보험사에서 나오셨구나…… 잠시만요.” 사무실을 지키던 젊은 남자는 눈치 빠르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두루마기를 걸쳐 입은 한 남자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보험사에서 오셨다고? 변 이사는 지금 한국에 없는데…….” 말이 좀 빨라 보이는 남자는 고미술품협의회의 이동식 회장이었다. “제가 볼 때는 이 감정서가 틀린 거 같아서요?” 강준은 이동식 회장을 자극했다. “음…… 한번 봅시다. 명대 영락제 때의 청화백자인데, 징더전(景德鎭)에서 만들어진 물건이라…… 그럼 이 정도 가격이 맞는데?” “도자기 하나가 5억이 넘는다니…… 근거가 뭡니까?” “청화백자가 왜 비싼지 압니까? 청화백자의 파란 물감이 코발트에서 나오는 건데 17세기 후반까지 코발트 광산을 중국에서 못 찾았거든요. 그러니 아라비아에서 어렵사리 수입해서 쓸 수밖에 없었죠. 회회(回回)청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오.” “그러니까…… 이 도자기들이 그 회회청으로 만든 청화백자란 말이죠?” “그렇죠. 게다가 영락제 시절 청화백자라면…… 5억이 아니라 수십억에 호가하는 물건들도 있어요.” 이 회장은 뭘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강준에게 우쭐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징더전이 도자기를 납품하던 지역으로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징더전에서 만들어진 거라면 5억? 전 오히려 변 선생이 아주 보수적으로 감정했다고 봐요.” 강준은 바로 이 회장의 말에 반박할 수는 없었지만, 뉘앙스에서 뭔가를 숨기려 한다는 걸 느꼈다. 어쩌면 그건 전직 경찰의 본능적인 의심인지도 몰랐다. “여기 용이 승천하려는 그림 보이죠? 이게 바로 명나라 시대의 용의 문양인데…….” “잠시만요……!” 감정서의 사진을 가리키는 이동식 회장의 손을 강준이 덥석 붙잡았다. 그리고는 곧장 이 회장의 기억을 읽어 들였다. 이동식 회장은 자신을 찾아온 변 선생과 마주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사기를 치려는 거야?] [에헤…… 회장님, 사기라니요? 이건 엄연히 고미술계의 한중 간 발전적인 협력 아닙니까?] [어디 말이나 못 하면…… 쯧! 괜히 김 사장 부추겨서 중국 현지로 경매 판매하러 가시게? 어차피 바이어라고 해 봤자 변 선생 중국 친구들이잖아.] [아니 이거 왜 이러십니까? 다들 그쪽 고미술계에서 한가락씩 하는 인물들인데!] [그래 봤자 위조품 거래하는 놈들이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아, 됐고! 여기 후원사나 써 줘요! 협의회가 이럴 때라도 회원들한테 도움이 돼야지! 언제 되겠어요?] [이 사람이 성질은…….] 이 회장은 변 선생을 타박하면서도 그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변 선생이 가져온 두툼한 돈뭉치가 사기 행각을 묵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하는 시늉은 해야 해. 괜히 저번처럼 클레임 걸리게 하지 말고!] [당연하죠. 지난번엔 진짜 나도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요. 청도까지 데려갔는데 바이어가 갑자기 약속을 취소했다니까요!] 뻔뻔하게 예의 그 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 변 선생이었다. 이동식 회장의 기억은 거기서 끊겨 있었다. “아니 왜? 이 용 문양…… 명나라 시대 문양이 맞아.” 뭔가 거리끼는 것이 있는지 이 회장의 말이 자신 없이 들렸다. “혹시, 변 선생 지금 경매하러 청도에 가 있는 겁니까?” “어? 뭐?” “경매 말입니다. 보통 한국 소장자들 데리고 중국으로 경매로 팔겠다며 나간다면서요?” 다 알고 왔다는 표정으로 이 회장을 압박하는 강준이었다. “……그건 ……나도 잘은 모르지. 변 선생이 여기 이사이긴 하지만 나한테 일일이 보고하고 다니는 건 아니니까.” 협의회에서 후원한 경매행사라면 강준이 쉽게 찾을 수 있는 문제였다. “다시 여쭙겠습니다. 여기 대한 고미술협의회 후원 행사 중에 지금 중국에서 열리는 경매 행사가 있습니까?” “아니 내가 그걸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나……?” “전 이번 사건을 경찰 쪽에 정식 고발할 생각입니다. 그 전에 회장님께 협조를 구하는 거고요.” 갑자기 몰아붙이는 강준의 태도에 이동식 회장은 한발 물러선 듯 되물었다. “변 선생이 보험사기를 쳤다고 확신하는 거요?” “네. 그리고 그 보험사기의 책임에는 여기 고미술협의회도 한몫했다는 걸 부정하시진 못할 겁니다! 감정서는 분명 협의회 명의로 나간 거니까요.” 강준의 말에 이동식 회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솔직히 감정이라는 게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하는 거거든요…… 저번 변 선생 감정은 중국인 전문가들이 참가했는데 나도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기가 힘들죠.” 은근슬쩍 책임을 회피하는 이동식 회장이었다. 끝까지 압박해야 입을 열 인간이었다. “위조품이라는 거 알고 계셨죠……?” 강준은 테이블 위에 두 팔을 짚고는 이 회장을 노려봤다. 손가락을 미세하게 떨고 있는 이 회장은 그 시선을 외면했다. “아니라니까 그러네……. 일 다 봤으면 그만 가시죠.” “여기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감정을 받아 봤습니다. 여기 감정서의 사진만 보고서도 위조품이라는 걸 대번에 알아채더군요. 고미술협의회 회장님이 그걸 모르셨을 리는 없는 거고요.” 다른 곳에서 감정을 받고 왔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강준은 이동식 회장을 한번 떠본 것이었다.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감정서를 들여다보는 척했다. “아…… 다시 보니까 의심스러운 점이 있긴 한데…… 나도 협의회 회장이라고 남들보다 더 잘 아는 건 아니에요. 그냥 순번이 돼서 회장을 한 거뿐이라고…….” 여전히 책임 회피성 발언을 이어가는 이 회장이었다. 그러다 은근슬쩍 아까와는 다른 얘기를 흘렸다. “……여기 도자기 굽 바닥에 문양 보이죠…… 이게 가만 보니까 청대 문양 같기도 하고 그러네…….” 명대에 만들어진 도자기에 그 이후의 시기인 청대의 문양이 들어가 있다는 얘기는 물건이 위조품이라는 얘기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험사기로 변 선생과 같이 경찰 조사를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번 사건에 보험사기범을 잡는 거에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변 선생 지금 어디 있나요? 경매가 청도 어디서 열리는지 말해 주시죠.” 이동식 회장으로서는 굳이 자신이 방패막이가 될 이유는 없었다. 문제가 불거진 거라면 이해당사자인 변 선생과 보험조사관이 직접 맞붙는 게 나을 거라 싶었다. “청도에 크라운 호텔이라고 있는데 거기서 대명갤러리 교류전이 열려요. 뭐 한국 사람들 많이 가는 데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변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안부 전해 드리죠.” 강준은 원하는 답을 얻어내고야 대한 고미술품협의회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 * 강준은 한 가지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변 선생과 함께 청도의 대명갤러리 교류전에 참가한 이는 천안의 부동산 부자 김종문이었다. “뭔가 냄새가 나는데요?” “그러니까요. 저도 왜 하필 여기서 김종문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청도에 직접 가보실 거예요?” “그랬으면 하는데…… 팀장님 허락이 필요하네요.” 강준은 김다혜에 대한 고미술품 보험금 지급 건을 최은정 팀장에게 보고했다. 서동휘 팀장의 공식적인 협력 요청이 있었지만, 한국보험의 윗선에서 커트를 당했다. 새로운 경영진이 된 최진태 이사는 한국보험을 철저히 성원그룹과 별개의 보험사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한국보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강준이 중국 청도까지 갈 이유는 없는 상황이었다. “글쎄…… 일단은 좀 지켜보도록 해요. 한국보험보다 우리가 더 나서는 건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을 거 같아서요.” “그럼 변 선생 한국에 들어오면 제가 한번 만나보는 거로 하겠습니다.” “네, 그게 적절할 것 같네요.” 회의하는 최은정의 낯빛이 어두워 보였다. “최 회장님 병세는 좀 어떠십니까?” “항암치료는 들어갔는데…… 그걸 잘 버텨 내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최창식 회장은 자신의 병세를 알리려 하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분간 아버님 곁을 지켜드리는 건 어떠세요? 보험조사팀은 이제 웬만큼 돌아가는 거 같은데…….” “글쎄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아버지가 그걸 원하지 않아 하세요. 어쩌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시길 원하시는 건지도요…….” 복잡해 보이는 표정의 최은정이었다. 그녀는 최 회장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최진태 이사의 인수합병 때문에 더 속이 상하신 거 아닙니까?”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아무리 성원건설을 담보로 차입을 했다지만…… 한국보험 인수대금으로 천억 원이 넘는 돈을 끌어다 쓴 건 성원그룹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어차피 벌어진 일 아닙니까? 이왕 한국보험도 끌어가면 되는 거겠죠.” “그래서 아버지께서 큰오빠를 다시 불러들였어요.” “네? 최진호 교수님 말입니까?” “네. 아버지는 성원그룹의 핵심인 성원생명, 성원화재를 큰오빠한테 맡기려고 해요. 이번에 인수한 한국보험도 마찬가지고요.” 회귀 전 강준이 알던 성원그룹에서 최진호 교수는 대학병원에 근무하며 일선 경영에는 나서지 않았었다. 물론 그게 최진태 이사의 견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었다. ‘이제 전개가 완전히 달라진 건가……?’ 그때, 밖에서 현장 조사를 나갔던 김준혁이 회의실 문을 벌컥 열었다. “회의 중에 죄송합니다! 급하게 말씀드려야 할 게 있어서요.” “뭔데 그래?” “고미술품으로 보험사기를 치려 한다는 김다혜요…… 알고 보니 채원이었어요! 최기동과 내연관계였던 채원이요!” “김종문하고 같이 배필립의 사업에 관여했었던 그 채원?” “네, 맞아요. 채원은 골드에서 쓰는 가명이었어요. 진짜 이름이 바로 김다혜였고요.” 강준의 머릿속에선 모든 일이 조각 맞춰지듯 맞춰지고 있었다. 왜 김다혜의 사건에서 뜬금없이 김종문이 등장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필리핀에서 이어져 왔던 둘 간의 관계는 함께 보험사기를 공모할 만큼 더 밀착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팀장님, 청도로 출장 허가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꼭 둘을 보험사기 혐의로 반드시 잡아넣고 싶네요!” 사기극인 줄 알면서도 배필립의 파운샵 사업에 가담하려고 했던 둘이었다. 강준은 그 둘을 잡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좋아요! 다녀오세요. 준혁 씨는 김다혜 씨 정보에 대해 좀 더 조사해 주시고요.” 또다시 보험조사 2팀이 분주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