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생명보험사 인수전 (5)2022.02.11.
뉴스에서 한국보험 매각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환사채 인수를 통해 한국보험은 결국 RS투자의 품에 안겼습니다. RS투자는 홍콩계 사모펀드의 지원을 받는 국내 투자사로 2년 전 나진패션의 인수와 재매각을 통해 M&A 시장의 기린아로 껑충 뛰어오른……. 언론은 국내 첫 생명보험사의 인수합병 사례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강준은 회귀 전 2000년대 후반부터 벌어졌던 생보사들의 인수합병과 중국계 자본의 유입이 떠올랐다. 엄청난 현금 유동성이 가진 보험사는 외국계 자본의 달콤한 먹잇감이었다. ‘전대성이 홍콩에서 자금을 끌어온 거라면…… 흐름을 잘 타긴 했군.’ 하지만 이상한 건 어느 언론에서도 RS투자의 소유주인 전대성 회장을 다루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마 전대성 측에서 기자들에게 미리 약을 쳐 놓은 게 분명했다. “인수합병의 귀재네요.” TV 화면을 보고 있는 함지훈 기자가 강준에게 비꼬듯이 말을 건넸다. 함지훈 기자는 대한뉴스의 이유린 기자에게 미리 정보를 받았었다. 한국보험의 홍승표 전무와 전대성 회장이 만났다는 사진과 함께 말이었다. 강준은 이유린 기자가 자신과 그렇게 연결고리가 생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역시…… 내가 죽기 전 인터뷰했던 이유린 기자도 전대성의 실체를 추적하고 있었던 거였어…….’ “함 기자님, 이유린 기자는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어떻게 알았는지 제가 전대성 회장을 취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더라고요. 정보를 교환하자며 연락해 오더라고요.” “그래서 서로 협력하기로 하신 겁니까?” “먼저 저에게 정보를 줬으니 믿지 못할 이유도 딱히 없죠.” 하지만 함 기자는 이유린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업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정보 협력 딱 그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했다. “근데 박 과장님, 어쨌든 여태 성원그룹과의 연결고리를 파고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닭 쫓던 개가 된 기분입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함 기자였다. 그가 준비하던 건 전대성이 한승일 시장과의 유착을 통해 연남시의 여러 이권을 챙겨왔다는 폭로였다. 하지만 한국보험 인수 건으로 전대성의 RS투자와 한승일의 관계가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한승일 시장 쪽에서 전대성 회장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나올 겁니다. 손절해 버리는 거죠!” 목소리가 높아지는 함 기자였다. 그는 자신의 기획 취재가 아무 성과도 없이 묻힐까 봐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강준은 곰곰이 회귀 전 라성캐피탈을 수사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래도 한때는 한승일 시장의 후원회장까지 하려던 전대성입니다. 오고 간 돈이 없을 리 없죠.” “물증이 없잖습니까……?” 강준은 자신이 살해당하기 전 찾으려고 했던 전대성의 장부가 떠올랐다.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 그였다. 그런 그가 돈을 쓸 때는 보험을 들어두지 않을 리 없었다. ‘그건 회귀한 지금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다!’ “어딘가는 있을 겁니다! 장부!” “장부요? 무슨 장부요? 뭐 짐작 가는 데라도 있으십니까?” “김우진 부장에게 한번 접근해보겠습니다.” “박 대리님, 왜 갑자기 김우진 부장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혹시 뭐 알고 계신 거라도 있으신가요?” 기자의 촉을 세우며 물어오는 함지훈 기자였다. “제가 조사해 보니 전대성 회장이 측근 관리는 별로라고 하더라고요. 상황이 어려워지면 분명 측근들부터 움직이려고 할 겁니다…….” 강준의 예상에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함 기자였다. 하지만 그런 강준의 예상은 의외로 빨리 현실화되고 있었다. * * * 강남 RS투자 사무실. “검찰입니다. 지금부터 압수수색 집행하겠습니다! 다들 본인 컴퓨터에서 손 떼시고 협조 부탁드립니다!” 남부지점의 차명학 검사는 경찰에 맡기지 않고, 본인이 직접 압수수색을 집행했다. RS투자의 직원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다들 컴퓨터에서 손 떼세요. 하드 디스크 증거 물품으로 압수합니다. 거기 여자분! 핸드폰에서 손 떼요! 핸드폰까지 압수할 수 있으니까요!” 검찰 수사관들은 한 시간이 넘도록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차명학 검사는 직접 꼼꼼히 압수 물품들을 체크했다. “금고문은 업자 불러서 열고! 책상 서랍 잠긴 것들은 강제 개방해! 서류 하나도 빠뜨리지 마!” 차 검사의 말에 검찰 수사관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얼추 마무리되어 가자 차 검사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검장님 지금 압수수색 끝마쳤습니다! 네, 들러붙은 기자들은 아직 없습니다.” 전화를 끊은 차 검사는 조금 전과는 180도 바뀐 말투로 수사관들에게 지시했다. “자자! 얼른 끝마치고 퇴근해야지! 서두르자고요!”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 물품을 밖으로 꺼내 나갈 때쯤, 차 검사에게 다가온 RS투자의 김우진 부장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검사님, 정말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요. 법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되는 거죠. 죄가 있으면 벌 받으면 되고, 죄가 없으면 기소 중지되고 그런 거죠.” “아니…… 검사님은 제가 무슨 말씀 드리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검장님께 정말 전 회장님을 버리신 겁니까……?” 김우진 부장의 눈빛은 절박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차명학 검사와 지검장은 전대성 회장의 접대를 받았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만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압수수색을 들어온 것이다. 김우진 부장은 잘못돼도 뭔가 한참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러게…… 왜 먹지 말라는 걸 먹어서는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들었어요…… 네? 이렇게 서로 불편한 얼굴 지으면 좋아요? 네?” 비릿한 웃음을 흘리는 차 검사는 김우진에게 자기 쪽으로 손을 까딱까딱했다. 김우진이 귀를 갖다 대자 낮은 목소리로 차 검사가 속삭였다. “전대성 회장 이제 끝났어요…… 김 부장은 어떻게 할 거예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김우진이었다. 진즉에 전대성을 배신하고 도망치자던 내연녀 박영미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얼어 있는 김우진을 향해 차 검사가 쐐기를 박듯 다시 소곤거렸다. “괜히 의리 찾겠다고 깝죽대지 말고 김 부장, 당신 살길부터 찾으세요…….” 차명학 검사는 손가락으로 김우진의 어깨를 콕콕 찌르고는 현장 철수를 지시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난 자리엔 적막만이 가득했다. 사무실 자리를 채우고 있던 직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불안해하며 김우진에게 다가왔다. “저기…… 부장님, 이게 무슨 일인지…….” 김우진은 직원들에게 뭐라 설명해줄 길이 없었다. RS투자의 진짜 정체를 아는 이는 전 회장 말고는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별일 아니야…… 원래 큰 회사 인수하면 이런 일은 종종 있으니까 다들 평소처럼 업무하면 돼. 김 대리는 해외 부동산 관련 분석 리포트 계속 작성하고…….” “네, 알겠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직원들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들 하드 디스크가 빠져 있는 컴퓨터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보였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김우진 부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대성 회장의 번호였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머릿속을 정리한 김우진이 수신 버튼을 눌렀다. 옆에 있는 직원에게 들릴 정도로 전대성 회장의 고함이 새어 나왔다. 한 손으로 휴대전화를 막은 김우진이 황급히 사무실 테라스로 나왔다. “회장님, 아무래도 차명학 검사가 우릴 배신한 것 같습니다.” ―뭐, 뭐 가져갔어? “직원들 하드 디스크랑 몇 가지 계약 서류 챙겨간 거 같은데 별로 문제가 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한승일 시장님과 해결을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이 새끼야! 그걸 지금 와서 말이라고 해? 최진태 제치고 한국보험 먹었는데! 인제 와서 다시 뱉으라고? 다시 악다구니를 쓰는 전대성이었다. ―내가 지검장 만나서 해결 볼 테니까…… 한국보험, 이 자식들 딴생각 못 하게 신 회장 주변 철저하게 감시해!” “……네, 알겠습니다.” 아직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전대성이었다. 김우진은 지검장이 전 회장을 버렸다는 차 검사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다 끝났어 ……전 회장, 정말 이제 끝장났다고!’ 김우진은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차량을 끌고 연남시로 향했다. 라성캐피탈 사무실! 그곳의 비밀금고에 전대성의 장부가 있었다. 김우진은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골드의 사장이자 내연녀인 박영미의 번호였다. * * * 남부지검 지검장실. 압수수색을 끝마친 차명학 검사는 허종필 지검장의 호출을 받고 지검장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최근에 어색해졌던 한승일 연남 시장이 와 있었다. “아이고! 차 검사! 수고가 많아.” “선배님 오셨습니까?” 허리를 푹 숙여 인사하는 차 검사였다. 지금은 연남 시장이었지만, 차 검사에게는 몇 기수 위의 선배 검사이기도 했다. “RS투자 털고 오는 참이라며?” “네, 요즘엔 야간 압수수색은 힘드니까요…….” “그럼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야간에 쥐새끼처럼 그러겠어. 우리 검찰이 뭐 어디 가서 꿀릴 만한 짓거리를 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대성 회장 쪽으로 기울었던 허종필 지검장은 그 말이 짐짓 불편했는지 헛기침을 하며 티를 냈다. 고개를 허 지검장 쪽으로 돌린 한승일이 비릿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게…… 내가 뭐라 그랬어? 괜히 근본도 없는 장사꾼 편에 서시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한 시장님, 우리야 원칙대로 한 것뿐입니다. 증거도 없이 무조건 기소하는 것도 말이 안 됐고요!” 얼굴을 붉히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허 지검장이었다. “말이 안 되는데 오늘은 왜 압수수색 한 거야?” “그야 저도 총장님 지시사항이니깐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자의적인 판단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해보세요. 괜히 기업 탄압한다고 언론에서 물고 늘어졌을 텐데…… 그 뒷감당을…… 우리가 어찌하라고요……!” 한승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검장의 말에 수긍했다. “하긴 최진태 이사 모친이 박상도 의원과 친분이 있을지 누가 알았겠어……?” “……누가 알면 제가 외압 때문에 수사하는 줄 알겠네요…….” 민망한 듯 시선을 외면하는 허 지검장이었다. RS투자의 압수수색에는 윤미경 감사의 입김이 작용했다. 그녀는 대한당 대선주자인 박상도 의원을 움직여 한국보험을 인수한 RS투자를 쳐낸 것이었다. “……어찌 됐든 이제 한국보험은 선배님 사위 품으로 갔으니 더할 나위 없는 거 아닙니까?” 한때나마 전대성의 편을 들었던 자신의 과오는 적당히 묻어달라는 말이었다. “앞으로가 문제지. 앞으로가! 우리 허 지검장님이 잘 좀 봐줘야 해! 무슨 말인지 알지?” “제가 잘 봐 드릴 게 뭐가 있나요…… 기업이야 기업인들이 알아서 하는 거죠. 하하!” 지검장실의 어색했던 분위기가 다시 풀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