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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 생명보험사 인수전 (2) (70/250)

070. 생명보험사 인수전 (2)2022.02.08.

한국보험 보험조사팀. 서동휘 팀장은 한숨을 푹 쉬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우우…….” 말없이 한동안 연기만 내뿜는 그였다. 강준은 서 팀장이 직접 말하기를 기다렸다. “일부는 사실이 맞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건 성원화재도 마찬가지였을걸요?” “그건 제가 따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서동휘 팀장은 뭔가 억한 구석이 있는지 강준을 바라봤다. “근데 정말 몰라서 이러시는 겁니까?” “저희 쪽 최진태 이사가 고발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아, 그거야 그럴 수 있죠…… 근데! 우리 보험설계사들까지 꼬드겨서 회사를 고발하게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하아…… 진짜 박 대리님…… 아니 이제 박 과장님이시죠. 좌우간 실망입니다!” 강준이 모르는 뭔가가 있었다. 최은정과 김성호 이사도 파악하지 못한 뭔가가 금감원을 움직인 거였다. “자세하게 좀 알려주시죠!” “전 이제 사표 써야 할지도 모르니까 성원화재 쪽에 자리나 한번 알아봐 주시죠…….” 한탄하듯 말하는 서동휘 팀장이었다. “……서 팀장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왜요? 밥이나 사주면서 동태 파악이나 하려고요?” “사표 쓰신다면서요? 같은 직장인끼리 하소연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강준의 말에 피식 웃는 서 팀장이었다. 경계가 풀어졌는지 아니면 자포자기한 건지 서동휘는 재킷을 집어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시다! 요 앞에 두루치기 집이 있는데, 밥 먹으면서 한잔하기 딱 좋거든요.” 서동휘는 그간 강준에게 도움을 받았던 것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한국보험의 내부자고발 사태는 성원화재 쪽에서 터트린 것이 아닌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박강준은 그 음모에 함께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서 팀장은 내심 확신했다. * * * 지글지글! 불 위에 올려진 냄비에서 돼지고기가 자글자글하게 익어 가고 있었다. 강준은 코끝에서 맛있는 냄새를 맡았다. “보험설계사 몇 명이 내부고발을 한 건데…… 이게 참 애매합니다. 분명히 본사에서 고객 중에 보험금을 과다청구한 건수를 찾아서 올리라고 한 건 맞거든요.” “보험설계사의 부당 행위가 문제가 된 거군요.” 서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뭐 공식적인 지시가 내려간 건 아니지만…… 보험금이 많이 나간 고객들을 대상으로 해약을 유도하는 일들이 있었죠. 보험설계사들이야 관행처럼 받아들여서 자기 실적에 흠이 안 가게 움직인 거고요.” 금감원이 움직인 건 단순히 보험사기로 인한 환수금을 빼돌렸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보험소비자들의 이익이 침해당하는 부당 행위가 더 문제였다. 감독기관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보험설계사분들은 만나보셨나요?” “이미 퇴사한 분들이라 저희가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일단…… 식기 전에 드시죠.” 서 팀장은 국자로 적당히 익은 돼지 두루치기를 강준의 앞접시에 담아 줬다. 밥을 몇 숟갈 떠서 입에 넣은 서 팀장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꺼냈다. “근데…… 박 과장, 보험감독국에서 누가 나오는지는 알아요?” “아직 연락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성원화재는 다음 주로 감독 일자가 잡혔으니까요.” “내가 알기로는 박기용 팀장이 나올 겁니다. 근데 이분이 생각보다 깐깐한 분이거든요. 필요 이상으로…….” “……아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네요.” 후루룩! 자작한 국물을 떠먹은 서 팀장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제가 아는 박기용 팀장이라면…… 분명히 우리 한국보험만 걸고넘어지진 않을 겁니다. 다른 보험사들도 비슷한 부당 행위들이 있을 테니까요.” “나쁜 관행이 있다면 뿌리 뽑아야죠…….” 강준의 말에 서 팀장이 비현실적인 얘기라는 듯 피식 웃었다. “관행이 단박에 뿌리 뽑히면 그게 관행이겠어요?” “……그래도 일단 뽑아 봐야죠. 뽑힐지 아니면 버틸지는 직접 뽑아 봐야 아니까요.” “역시 박 과장님은 다른 분들하고는 다르시네! 그러니까 언론에서도 박 과장님을 주목하는 거고요!” “전, 서 팀장님도 앞으로 저와 함께할 일이 있을 것 같은데요.” “뭐요? 그 관행을 뿌리 뽑는데 절 동원하시려고요? 전 사양합니다. 하하!” 서 팀장은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소주를 한 병 시켰다. “반주로 딱 한 잔씩만 먹고 갑시다…….” 강준은 입에만 살짝 댔지만 서 팀장은 원샷으로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실은 우리 신 회장님이 회사를 매각하려고 하던 찰나였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엔 지금 이런 상황이 최진태 이사가 뒤통수를 때린 거 같거든요.” “서 팀장님은 아까부터 저희 쪽에서 일을 꾸민 거로 확신하고 계시네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원화재가 아니라 최진태 이사죠!” 서 팀장도 강준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성원화재 내에서 강준이 최진태 이사의 반대 라인이라는 것 정도는 그도 알고 있었다. 서 팀장은 그런 강준을 한번 이용해 보기로 한 거였다. “내부고발을 했다는 보험설계사들도 결국은 그쪽 사람들한테 설득을 당한 거 같고요.” “네? 그럼 최진태 이사 쪽에서 한국보험 보험설계사들을 포섭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이상하게도 그 보험설계사들이 금감원에 제보하기 직전에 회사를 그만두더라고요.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요……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하네요.” 잠시 망설이던 강준은 서 팀장에게 뭔가를 부탁했다. “금감원에 제보했다던 보험설계사분들…… 제가 한번 만나 봐도 될까요?” “만나서 어쩌시려고요?” “정말 최진태 이사가 꼬드긴 건 아닌지 확인해 봐야겠죠.” “설사 그렇다고 해도 최진태 이사하고 공모한 거라고 실토하겠어요?” 강준이 상대의 기억을 읽는 능력을 가졌다는 걸 서 팀장이 알 턱이 없었다. “그걸 밝혀내는 게 제가 할 역할이죠.” 자신만만하게 답하는 강준을 서 팀장은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강준을 이용해 보기로 한 서 팀장으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럼…… 수첩에 적어 봐요. 내가 알려 줬다는 얘기는 당연히 하면 안 되는 거고요.” “그럼요, 잘 알죠. 펜 좀 꺼내겠습니다!” 강준은 서둘러 가방 속에서 펜을 꺼내고 수첩을 펼쳐다. 맞은편의 서 팀장은 자신의 수첩에 적힌 전직 보험설계사들의 연락처를 찾아냈다. * * * 자양동 주택가 마트. 강준은 서 팀장이 전해준 연락처로 퇴직한 보험설계사들을 접촉했지만, 아무도 강준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모두가 약속한 듯 말이었다. “여기 계산이요.” 동네 마트치고는 신선식품까지 잘 갖춰진 꽤 규모가 있는 마트였다. 강준은 음료수를 하나 골라 들고는 계산대 앞에 내밀었다. 캐셔는 무표정한 얼굴로 강준이 고른 음료수의 바코드를 찍었다. “적립은요?” “……그냥 계산해 주시죠.” 캐셔가 카드 영수증을 내밀 때, 강준은 일부러 카드와 영수증 종이를 놓쳤다. “어머!” 캐셔는 다시 카드와 영수증을 주워 강준에게 내밀었고, 강준은 두 손으로 받아들면서 캐셔의 손에 접촉했다. 그리고 캐셔의 기억을 읽어 들였다. [당분간 숨어 계시다가 몇 개월 뒤에 다시 저희 쪽으로 넘어오시면 됩니다. 문제 될 거 전혀 없잖아요?] [그래도…… 우리 지점장님이 아시면 좀 곤란한데…….] [하하! 언제는 한국보험 지점장이 설계사들 걱정이나 해 줬습니까? 괜히 불완전판매다 뭐다 하며 꼬투리 잡아서 내보낼 생각만 했지.] 캐셔의 기억 속에서 그녀를 만나고 있는 이는 성원화재의 강남 영업본부장인 정승태였다. 그는 전 한국보험 설계사였던 오미희에게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어머! 이게 뭐예요?] [작은 성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오해는 마시고요. 하하!] 오미희를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짓는 정승태였다. “손님! 계산 끝났는데요.” 강준은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눈앞에는 금감원에 민원을 넣은 오미희가 냉랭한 얼굴로 서 있었다. 한때는 보험왕이기도 했던 그녀는 초라한 중년여성의 모습이었다. “금감원에 민원을 넣으셨던 오미희 설계사님 되시죠?” “……네?” 그녀는 강준이 자신을 알아보자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다. “잠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무 ……무슨 얘기요?” “민원 내용을 좀 알고 싶어서요.” “전 할 말 없어요. 보험회사도 벌써 그만뒀고요.” 강준은 쉽사리 그녀가 입을 열 것 같지 않았다. “정승태 본부장한테 봉투 받으신 적 있으시죠? 금감원에서 조만간 보험회사들을 관리 감독하러 내려옵니다. 혹시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뭐예요? 어디서 나오셨죠? 일단 이쪽으로…….” 오미희는 강준은 마트 뒤쪽으로 데려갔다. 새로운 직장에서 빌미가 될 만한 일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감원에서 나오셨어요?” “아닙니다. 성원화재 박강준 과장입니다.” “……아! 그 TV에 나왔었던…….” 보험업계에서 강준이 이미 잘 알려진 사람이 되어 버렸다. 얼굴까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오미희는 강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럼 다 알고 나오셨겠네요. 안 그래도 문제 될 거 없다고 그러더니만…… 한국보험 쪽에서 어찌나 연락해대는지…… 우리를 완전히 의심하고 있더라니까요!” “정승태 본부장에게는 얼마나 받으셨습니까?” “얼마 받긴 뭘 얼마를 받아요? 직접 회사에 물어보면 알 거 아니에요.” 강준이 답하지 않은 채 오미희를 빤히 쳐다보자 침묵을 견디지 못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스카웃 조로 오백씩 줬어요. 나중에 성원화재 입사하게 되면 교육 쪽으로 보직 빼준다고 했고요.” “그건 정승태 본부장의 단독 행동일 가능성이 큽니다…… 보직을 빌미로 경쟁사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게 한 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받은 돈 돌려줘야 하는 거예요?” 생계 걱정이 먼저인 오미희를 보자 강준은 차마 돈을 돌려주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건 금감원에서 판단할 문제입니다.” “……금감원에서 저희한테까지 조사가 들어오는 거예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이미 한국보험에서는 이런 정황들을 눈치채고 있으니까요.” 강준의 말에 오미희의 눈빛이 걱정으로 바뀌었다. 정승태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한국보험의 보험설계사 일을 그만둔 건 돌아갈 다리를 잘라 버린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짜증 나! 왜 가만히 있는 우리를 들쑤셔서 이렇게 만든 거예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금감원 조사에 솔직하게 응하시면 큰 문제 될 건 없을 겁니다. 엄연히 따지면 한국보험 측에서 설계사분들에게 무언의 압박은 넣은 건 사실이니까요.” “보험설계사 자격정지나 뭐 이런 거 받은 거예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보험사기 같은 종류에 연관된 건 아니니 퇴출까지는 아닐 겁니다.” 오미희는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좀 전까지 퇴출을 걱정하던 게 무색한 질문을 던졌다. “성원생명에서 일하는 것도 문제없겠죠? 거기가 상품도 괜찮고 수당도 나쁘지 않아서 그나마 갈 만한 곳인데…….” “그 부분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뭐 이번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가능은 하겠죠.” 강준은 아무래도 정승태가 대가성으로 지급한 돈을 내부 감사를 통해서라도 확실히 회수해야 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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