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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9. 생명보험사 인수전 (1) (69/250)

069. 생명보험사 인수전 (1)2022.02.07.

을지로 성원화재 본사. 강준의 출근길에는 못 보던 사람들이 강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필립 청부살인사건을 파헤친 강준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몇몇 기자들이었다. “박강준 씨, 김상훈 씨의 부친과는 어떤 관계였나요?” “필리핀 현지 경찰과는 사전 공조가 있었던 건가요?” “배필립은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강준은 무시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 했지만, 기자들의 질문이 그를 돌아 세웠다. “전 김상훈 씨의 사망보험금 확보를 위해서 일한 것뿐입니다. 시신을 찾아야 유가족분들이 사망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배필립에 대한 모든 정보와 수사는 현지에 파견된 한국 경찰팀의 몫이었습니다.” 땡! 스르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강준은 기자들의 추가 질문에 답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려 했다.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배필립이 RS투자 전대성 회장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요!” 강준은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강단 있어 보이는 여기자가 엘리베이터가 닫히는 걸 손으로 막고 있었다. ‘잠깐만…… 누구지? 내가 아는 사람인가?’ 잠시 생각하던 강준은 뭔가를 떠올리고는 깜짝 놀랐다. 기시감이 들었던 여기자는 회귀 전 경찰인 강준을 인터뷰했던 대한뉴스의 이유린 기자였다. 그녀와 인터뷰한 직후에 강준은 폐차장으로 납치됐었다. 어쩌면 그 인터뷰 때문에 자신이 살해당했던 건지도 몰랐다. ‘TV 뉴스로 보도되면 파장이 크게 일 테니 미리 내 입을 막으려 했던 거였었지…….’ “명함이 있으시면 주시겠습니까? 저도 출근하는 길이라서요.” 이유린 기자는 얼른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강준에게 건넸다. “혹시 추가적인 말씀을 해 주실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연락하세요! 박강준 씨 연락이라면 언제든 환영이거든요!” 강준은 적극적인 이유린 기자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때, 뒤늦게 회사에 도착한 송지희가 가까스로 함께 올라탔다. “와! 이제는 스타가 되셨네요.” “남들 주목받아 봤자 좋을 게 없어. 괜히 조사 업무 하는 데 방해만 될 뿐이지.”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본사 11층에 다다랐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최은정 팀장과 김준혁이 반갑게 휴가에서 돌아온 강준과 송지희를 맞아들였다. “두 분 살아서 돌아온 걸 축하해요.” 팔짱을 낀 채 둘을 바라보는 최은정은 뭔가 잔소리를 하고 싶은 듯했다. “휴가는 잘 다녀왔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먹는 망고주스가 맛있더군요. 안 그래요? 지희 씨?” 강준은 머쓱하게 송지희를 돌아봤다. “그럼요! 그 바다가 해변이 아니라 마닐라 시내 한복판에 있는 마닐라 베이였지만요.” 송지희는 휴가를 제대로 즐기고 오지 못한 걸 귀여운 불만으로 표출했다. “강준 씨, 벌써 다 전해 들었어요. 납치까지 당했다면서요?” “그건…… 작전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놈들의 근거지를 알기 위한 일종의 유도작전이었죠.” “지희 씨 정말 괜찮았어요?” 송지희는 강준의 눈치를 한번 살피더니 웃으며 답했다. “현장의 조사 업무가 얼마나 버라이어티한지 직접 체감한 기회가 됐어요. 보험조사관으로서의 뿌듯함도 느낀 계기가 됐고요.” “어쨌든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자! 이렇게 모인 것도 오랜만인데…… 회의하시죠!” 보험조사팀의 회의는 보험사기 사례를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사례 가운데 사기 혐의가 높은 사건을 가려내고 그 해당 사건에 대한 자료를 검토하고 그날 현장에 나가 조사해야 할 사항들을 정리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최은정은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금융감독원에서 관리 감독이 온다는 거였다. “팀장님, 혹시 우리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다른 보험사의 보험조사팀에서 환수된 보험금을 꿀꺽 한 모양이더라고요.” “환수 보험금을요?” “네, 환수된 보험금이 그 회사의 비자금으로 쓰였다는 제보가 들어왔대요.” “아…… 그건 정말 문제가 되겠네요.” “그렇죠. 사실 보험조사팀에도 문제가 있어요. 무조건 보험금 지급요청이 들어오면 요즘에는 소송부터 하려고 하니까요.” “해리츠 보험이 보통 그러죠…….” 강준은 강상훈 손해사정사가 떠올랐다. 해리츠 보험은 강상훈에게 사건을 맡겨 우춘배의 보험금 지급을 깎으려 했었다. 만약 강준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우춘배를 보험사기범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논외의 얘기이긴 하지만 일부 세력이 한국보험을 인수하려고 해요. 물론 한국보험에서는 그걸 부인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래서 한국보험 쪽의 문제가 더 불거지는 거 같아요.” 환수 보험금을 비자금으로 돌려썼다는 보험사는 바로 서동휘 팀장이 있는 한국보험이었다. 그리고 그걸 제보한 사람은 바로 한국보험의 인수를 추진하는 최진태 이사였다. “어쨌든 금감원 감독관이 내려오니까 그간 우리가 다뤘던 사건기록들 준비 부탁드려요. 준혁 씨는 환수된 보험금 입금 기록들 출력해 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시원하게 답한 김준혁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근데, 재무구조가 불안정한 한국보험을 왜 인수하려는 겁니까?” “한국보험 내부에서는 한창 몸값이 올랐을 때 팔려고 한대요. 전에는 생명보험사 상장이 불가능했는데 이제는 가능해졌거든요. 그러니 외부에서는 재무구조가 부실하긴 해도 한국보험을 인수해 우회 상장하려는 거고요.” 김준혁은 최은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이해했다. 하지만 최은정은 한국보험을 인수하려는 세력이 바로 자신의 이복 오빠 최진태 이사라는 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박 대리님은 회장님께서 잠시 부르셨어요.” “네? 저를요?” “네. 회장님도 TV 뉴스에 나온 배필립 청부살인사건을 보셨나 보더라고요.” 최은정 팀장은 최창식 회장이 왜 그를 부르는지를 알고 있었다. 이미 박강준은 과장으로의 진급이 결정되어 있었다. ‘강준 씨가 성원화재 최연소 과장이 되겠네…….’ 최은정은 그런 강준이 자랑스러웠다. “그럼 올라갔다 오겠습니다!” “네, 좋은 말씀 많이 듣고 오세요.” 최창식 회장이 있는 건물의 꼭대기 층에는 김성호 이사가 벌써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고생이 많아.” 짧고 굵게 환영 인사를 하는 김성호 이사였다. 허리를 숙여 인사한 강준은 그를 따라 최창식 회장에게 다가갔다. 최 회장은 예전과는 다르게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박강준, 넌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 거야?” 최 회장은 여전히 생생한 눈빛으로 강준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간 일이 좀 많았습니다. 전대성 회장의 팔다리가 되어 주는 놈들도 잡았고요.” “송종철 그놈 말이야?” “네, 그간 전대성이 실소유주인 온라인 카지노의 운영을 담당했던 놈입니다. 병원장 아내의 청부살인을 저지르기도 했고요.” 최 회장은 자기 앞에서 송종철의 범죄혐의를 읊는 강준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근데 그놈이 죽어 버리면서 전대성을 잡을 증거도 다 날려 버린 거 아니야?” 핵심을 찌르는 최창식 회장이었다. “맞습니다. 그건 저도 아쉽게 생각합니다.” 강준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최 회장의 말에 수긍했다. “고개 들어! 잘했어…… 그 정도면 어쨌든 전대성 그놈이 식겁했을 거 아니야?” “이번에 필리핀 사업을 담당하던 배필립까지 잡혔으니 자금줄 하나가 끊긴 거나 다름없습니다.” 잠시 뚫어지라 강준을 쏘아보던 최 회장이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박강준 너 과장해라.” “네?” “못 들었어? 너 이제부터 과장이야.” 강준은 놀란 눈으로 김성호 이사를 돌아봤다. 그는 괜찮다는 듯 눈을 찡긋했다. 직급은 강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 회장이 직접 승진을 시켜준다는 건 또 다른 의미였다. 뭔가 강준에게 원하는 역할이 있다는 거였다. “내가 이제 힘이 떨어져서 내 맘대로 안 되는 일이 많아. 진태 그놈이 무슨 돈을 끌어다 온 건지 우리 성원생명의 주식을 야금야금 사 모으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말이야…….” 강준이 모르던 내용이었다. “게다가 누구랑 무슨 짝짜꿍이 되었는지…… 우리보다 덩치가 큰 한국보험을 집어삼킨다고 난리를 쳐대고 있는 꼴이란!” 어느새 최 회장의 목에는 핏대가 서 있었다. “제가 한국보험 쪽 사정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강준을 한 번 쓱 쳐다본 최 회장은 다시 말을 툭 내뱉었다. “눈치는 한번 빠르네…… 이번 금감원에서 사람이 나온다는데 슬쩍 한번 알아봐. 당최 무슨 일을 꾸미는지…….” “네, 알겠습니다.” 최 회장은 무슨 말을 하려다 다시 삼켰다. 그리고는 예의 그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내 얘기 끝났어. 나가 봐!” “저도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회장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강준이었다. “뭔데? 무슨 쓸데없는 얘기를 하려고 그래?” “금감원에서 저희도 관리 감독 대상이라던데…… 저희 성원화재에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곪은 데가 있으면 도려내야지!” “네, 알겠습니다. 나가보겠습니다!” 강준은 그제야 몸을 돌려 회장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집무실에 남은 최창식 회장은 김성호 이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김 이사…… 나 이제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자꾸 그런 말씀 마십시오. 항암치료만 받으시면 회장님은 건강하게 오래 사실 겁니다.” “예끼! 이 사람아! 자꾸 나한테 헛된 희망 심어주고 그러지 마. 갈 사람은 가야지! 나도 때가 된 거고…….” 이미 최창식 회장의 췌장에서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주치의는 수술보다는 항암치료를 권했지만, 최 회장은 조용히 죽는 걸 선택했다. “그나저나…… 진호는 아직도 돌아올 마음이 없대?” “병원 일에만 매진하겠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차라리 회장님이 직접 한번 얘기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나보고 이제 죽어가니까 아들놈 발목이라도 억지로 잡으라는 건가?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성원그룹의 미래! 그걸 책임질 놈이 필요한 거라고!” 김성호 이사는 최 회장의 장남인 최진호가 그룹으로 돌아오지 않는 건 바로 지금과 같은 최 회장의 태도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최진호는 자신을 아들이 아니라 단지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사람으로만 바라보는 최창식 회장에게 질려 있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제가 최진호 과장을 다시 만나보겠습니다.” “그래 진호 그놈이 진국이긴 하지. 진태 그놈은 벌써 뒷구멍으로 주주들 설득하고 다닌다며? 쯧쯧…… 이대로 놔뒀다간 정말 돈만 아는 투자자 놈들한테 우리 성원그룹이 넘어가 버리겠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김성호 이사는 그렇게 장담했지만, 내심 불안했다. 한국보험의 신 회장이 최진태와 만났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정말 둘이 결탁한다면 한국보험을 인수한 성원그룹은 오히려 신 회장을 비롯한 주주단에 거꾸로 먹혀 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최진태 이사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 최창식 회장은 휠체어에 앉은 채 TV 화면을 켰다. 화면에서는 마침 대한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오늘 한국보험의 신성재 사장이 대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했습니다. 이번 전환사채는 그간 우려돼왔던 한국보험의 재무구조를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아나운서는 단조로운 말투로 뉴스를 읊었지만, 김성호 이사는 그 뉴스에서 숨겨진 행간을 읽었다. 그건 바로 전환사채를 누군가 사들이기로 되어 있을 테고, 그 누군가는 바로 최진태 이사일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아직 감각이 녹슬지 않은 최창식 회장도 그걸 바로 눈치챘다. “김 이사, 저거 미경이 작품 아닌지 확인해 봐!” “네, 알겠습니다…….” 한국보험의 재무구조를 개선할 정도의 전환사채 규모라면 필시 최진태의 모친 윤미경이 관여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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