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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7. 실종자 사건의뢰 (4) (67/250)

067. 실종자 사건의뢰 (4)2022.02.05.

송지희가 탄 리무진은 배필립의 대저택이 아니라 카비테 외곽의 휑한 공장지대로 들어섰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김 부장의 태도는 조금씩 싸늘해져 갔다. 그렇게 삼십여 분을 더 갔을 때, 리무진은 어느 낡은 창고 앞에 도착했다. 송지희도 강준을 따라 출국할 때, 각오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상황이 닥치니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내리시죠.”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녀는 더 항의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하얘졌다. “얼른 내리시라고요!” 은근슬쩍 강압적인 말투로 변하는 김 부장이었다. “저 여기 오는 거 남자친구가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여기로 모신 겁니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시게 될 겁니다. 그 잘난 남자친구가 돈 보내기 전까지!” 김 부장이 본색을 드러내고 송지희의 팔목을 잡고는 창고 안으로 거칠게 잡아끌었다. 김 부장이 창고 안에 모습을 드러내자 2층의 철제 계단 위에서 현지인들이 내려와 그녀의 양팔을 붙들었다. “투자 안 받을 거예요? 이런 식으로 하면 내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요?”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가까이 다가와 얼굴을 맞댄 김 부장은 처음으로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러자 처음으로 김 부장의 한쪽 눈에 그어진 칼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넌 벌써 나가리야…… 이제 몸값이나 받는 용도라고! 알아? 여기서 몸 성히 살아서 나가려면 조용히 입 다물고 찌그러져 있어!” 송지희는 분노에 찬 눈으로 그를 쏘아봤지만, 본능적으로 온몸이 굳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현지인들은 항상 해 왔던 일이라는 듯 능숙하게 그녀를 끌고는 창고 2층에 설치된 철창 사설 감옥에 가뒀다. 철컹! 철컹! 감히 소리를 치진 못했지만, 송지희는 두 손으로 철창을 쥐고 흔들었다. 고요한 창고에서 그 소리는 더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쾅! 어느새 나타난 현지인들이 험악한 얼굴로 쇠 파이프를 휘둘러 철창을 내리쳤다. 한 번만 더 소란을 치우면 다음 번엔 머리통을 부숴 버리겠다는 무언의 위협이었다. * * * 그 시각, 김종문은 매번 그렇듯 킹스호텔 VIP룸에서 카지노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채원이 앉아 있었다. “채원아! 나 오늘 끗발 좀 받는 거 같지 않냐?” “그러게…… 오빠 벌써 오십만 페소나 땄어.” “오늘 끝까지 한번 가보자! 으하하!” 김종문은 배필립과의 사업이나 목에 걸고 있는 위치추적기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칩이 쌓여 갈수록 김종문은 흥분상태에 빠져들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오빠, 잠깐만.” “누군데?” “저번에 말했잖아, 나 좋게 봐주시는 회장님 있다고.” “아…… 그 금융계에 종사하신다는 분?” “어, 맞아. 나를 자꾸 찾으시네.” 채원은 눈웃음을 치면서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잠시 후, 자리를 비웠던 김 부장과 함께 VIP룸으로 들어왔다. “김 대표님, 많이 즐기셨습니까?” “어! 김 부장 왔어? 어딜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배 대표는?” “네, 지금 모셔 오라는 지시를 받고 오는 길입니다. 여기는 저희가 정리할 테니 같이 나가시죠.” “잠깐…… 잠깐만! 내가 지금 아주 끗발이 잘 섰거든! 원래 게임은 끗발 섰을 때 해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김 부장은 딜러에게 눈짓으로 판을 정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딜러는 눈치 빠르게 신호를 알아차리고는 김종문의 칩을 계산해 천 페소짜리 지폐 뭉치로 바꿔 내밀었다. “하! 이거 오늘 여기서 끝내라는 얘긴가 보네. 채원아 가자! 배 대표한테.” “그래 오빠, 오늘은 배 대표랑 사업 얘기 좀 해야지. 언제까지 질질 끌 거야?” “하긴 그건 그래! 하하! 내가 20억을 박았잖냐! 이제 슬슬 움직여 봐야지.” 채원은 한심한 눈으로 김종문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눈빛을 김종문은 눈치채지 못했다. 차는 두 대였다. 한 대의 리무진에는 김종문이 태워졌고, 그의 옆을 경호하듯 김 부장이 함께 탔다. 그리고 채원은 다른 차로 움직였다. 리무진이 마닐라 시내를 벗어나자 김 부장이 예의 그랬듯 검은 포대 자루를 꺼내 김종문의 얼굴에 씌우려 했다. “아오! 답답하네! 김 부장,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죄송합니다. 배 대표님을 노리는 놈들이 많아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김종문은 포대 자루를 쓰기 전 창문을 열어 목에 걸린 금목걸이를 빼내 밖으로 던져 버렸다. “시발 나도 이제 모르겠다! 줘, 내가 직접 쓸 테니까.” 김종문은 저녁에 배필립과 만나지 못할 거라는 강준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정말 강준의 말대로 배필립이 자신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면 위치추적기를 계속 목에 걸고 있었을 터였다. ‘괜히 엄한 놈한테 엮여서 사업에 방해되지 말자고!’ * * * 그 시각 강준은 현지에서 고용한 가드 몇 명과 함께 송지희가 있는 카비테의 창고로 향했다. 그녀의 목에도 역시 위치추적기가 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진철의 광역수사대는 함께하지 않았다. 아직 필리핀 현지 경찰을 설득하는 중이었다. 이진철은 오늘 밤 배필립의 대저택에 대한 급습을 계획하고 있었다. ―강준 씨, 김 사장이 전화를 안 받네요. 위치추적기도 길 한복판으로만 계속 나오고요. “아마 배필립한테 갔을 겁니다. 자기 사업에 방해가 될까 봐 위치추적기를 버린 거겠죠.” ―어떻게 할까요? “제가 김 부장을 유인해 보겠습니다. 김 부장만 잡으면 배필립이 있는 곳도 파악이 될 겁니다.” ―국내 인원들 그쪽으로 지원 보낼까요? “아직요. 송지희의 납치가 확인되면 그때 보내시죠. 그럼 필리핀 경찰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필리핀 경찰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배필립은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은 건드리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그러다 보니 필리핀 경찰이 배필립에 적극적이지 않은 건 당연했다. 우둑! 우두둑! 강준은 목과 손가락을 꺾었다. 송지희가 감금된 곳에 홀로 현지 가드들만 데리고 간 강준은 도착하기 전 몸을 풀었다. “현장 급습은 정말 오랜만이네……!” 회귀 전 강준의 경찰 본능이 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강준은 자신의 주먹에 흰 헝겊을 감았다. 인원은 네 명. 총을 든 가드 세 명과 강준이었다. 위치추적기가 가리키는 곳에 다다르자 그곳에는 밖에서는 내부를 알아볼 수 없는 창고 건물이 서 있었다. 강준은 본능적으로 그곳이 송지희가 감금된 곳임을 알아챘다. 차에서 내린 강준은 망설이지 않고 창고 건물에 연막탄을 투하했다. “미스터 박! 어떻게 합니까?” “여기서 기다리면 놈들이 알아서 나올 겁니다. 나오는 놈들 족족 체포만 해 주시면 됩니다.” “오케이!” 강준이 고용한 가드들은 기관총을 입구 쪽으로 겨누고는 상대를 제압할 준비를 마쳤다. “그럼 좀 있다. 보죠.” 강준은 그들에게 얻은 방독면을 쓴 채 안으로 들어갔다. 감금된 송지희를 위해 최대한 유독하지 않은 연막탄을 골랐지만, 매캐한 연기는 시야를 방해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안에는 연기로 허둥대고 있는 놈들이 총을 들고는 허둥대고 있었다. 일부는 2층으로 향하는 철제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고, 일부는 강준이 있는 입구 쪽으로 다가왔다. 퍽! 퍼퍽! 강준은 미리 준비한 삼단봉으로 놈들의 머리를 정확히 가격했다. 퍽! 퍼퍽! 퍼퍼퍽! “한 놈! 두 놈! 세 놈! 나머지 놈들은 어디 있냐?” “아흑!” “끄억!”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그들을 강준은 입구 밖으로 질질 끌었고, 입구 밖에 대기하고 있던 가드들은 납치범들에게 수갑을 채웠다. “2층이로군!” 강준은 연막탄을 꺼내 철제 계단 위로 던졌다. 연기가 다시 창고 안을 뒤덮을 때쯤, 강준은 위로 뛰어 올라갔다. 탕! 타탕! 탕탕! 총소리가 빗발쳤고, 방탄조끼를 입은 강준은 총알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 “이 새끼들이 어디서 총을 쏘고 지랄이야! 지랄이!” 퍽! 퍼퍽! 퍽퍽! “뚝배기 하나!” 퍽퍽! “뚝배기 둘!” 두 놈은 머리를 감싸 쥔 채 웅크리고 있었고, 나머지 한 놈은 권총을 들고 강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탕! 탕탕! 상대의 총알은 강준의 가슴팍에 꽂혔다. 정확히는 방탄조끼에 말이었다. 연기가 아직 상대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을 때, 강준은 허리춤에 있던 총을 꺼내 그에게 발사했다. 탕! “으아아악!” 총알은 놈의 손을 겨냥했고, 그의 검지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강준은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머리통을 쥐고 무릎으로 결정타를 가격했다. 뻑! 짧은 충격음과 함께 그의 몸이 고꾸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본 나머지 둘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날 때쯤 아래에서 가드들이 놈들을 역으로 밀고 올라왔다. “미스터 박! 상황 종결! 슬슬 잔금 주셔야겠는데요?” “수고했어요! 미안하지만 이놈들 핸드폰 뒤져서 수거해 줄래요?” “오케이!” 강준은 그사이 철창에 갇힌 송지희를 빼냈다. “괜찮아?” “콜록……! 콜록……! 눈이 아파요.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어요…… 콜록!” “눈 비비지 말아. 비비면 더 아프니까.” 강준은 그녀를 등에 업고는 철제 계단을 내려왔다. “이 경감님, 지금 여기 상황 종결됐습니다. 한국인에 대한 불법 납치와 감금 사건이네요. 영사관에 연락하시고 필리핀 경찰들과 함께 이곳으로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준 씨!” 이진철의 흥분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콜록! 박 대리님은 이렇게 될 거라는 거 알고 있었어요?” 정신을 차린 송지희가 물었다. “뭐가?” “제가 여기에 감금당할 거라는 거요.” “그랬으면 내가 널 보냈겠어? 난 배필립한테 갈 줄 알았지. 어쨌든 위험에 빠트려 미안하다.” “아녜요. 이것도 일의 한 과정이잖아요.”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강준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웃으며 엉망이 된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강준은 송지희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어떻게 하긴 여기서 기다려야지. 김 부장이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여기로 달려올 테니까.” 강준의 예상대로였다. 이진철의 광역수사대와 필리핀 경찰이 오기 전에 먼저 도착한 이는 김 부장이었다. “뭐야? 너는?” 한 손에 기관총을 든 김 부장은 예의 그 선글라스를 쓴 채 강준을 바라봤다. 가드들이 함께 총을 겨누고 있었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이었다.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보험조사관이라…… 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실까? 남의 일에 괜히 간섭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강준이 가드들에게 눈짓으로 응사를 명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고용인인 강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는 듯했지만, 강준은 당황하지 않았다. ‘예상대로군…….’ 강준은 가드들을 고용하면서부터 그들의 기억을 읽고 있었다. 이진철이 알아봐 준 가드들은 애초부터 배필립과의 연관성이 의심되던 인물들이었다. “당황스럽지? 여기 필리핀이야. 여기는 여기만의 룰이 있거든, 크크!” 김 부장은 선글라스를 벗고는 강준이 고용한 가드들에게 눈짓으로 강준을 가리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가드들은 총구를 거꾸로 강준에게로 겨눴다. 강준은 송지희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가려줬다. 그리고는 손을 뒤로 돌려 송지희의 떨리는 손을 잡아줬다. “……괜찮아. 겁먹지 마.” “대리님…….” 김 부장은 의기양양해진 목소리로 가드들에게 명령했다. “이 새끼들 둘 다 차량에 태워!” 상황은 그렇게 완전히 역전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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