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5. 실종자 사건의뢰 (2)2022.02.03.
―강준 씨, 그 사안은 분명히 우리 성원화재의 업무 범위를 벗어난 일이네요. “네, 그건 그렇죠…….” 노신사인 김철희 설계사의 아들 실종 문제는 엄연히 따지면 타사인 한국보험의 문제였다. ―근데, 배필립이라는 사람과 관련돼 있으니 강준 씨도 신경이 쓰이시겠죠. “네, 송종철보다 더 악질적인 놈이라…… 가만히 놔두면 더 많은 사람이 납치되고 살해당할 겁니다.” ―우리 보험조사팀에서 움직일 수는 없지만, 강준 씨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거라면 저도 원칙적으로 상관할 수는 없어요. 지난번 사건추적 24시 출연을 통해 유명세를 치른 박강준에게 제대로 된 포상 휴가는 주어지지 않았었다. “이번 기회에 휴가를 다녀오시는 건 어때요? 2주 정도는 회사에서 특별 휴가로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휴가 가서 일하라는 말씀이군요. 하하!” “전, 절대 강요한 적 없어요. 휴가는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거죠. 정말 휴식을 취하거나 아니면 강준 씨처럼 개인적인 일을 보거나.” 최은정의 논리에 강준은 반박할 수 없었다. 만약 김철희의 사건의뢰를 받는다면 그건 강준의 개인 일이 될 터였다. “팀장님, 그럼 저도 한 가지 부탁을 좀 드려도 될까요?” “휴가도 받고 부탁도 하려고요?” “제가 원래 염치가 좀 없지 않습니까?” “일단 말해 보세요.” “휴가 시작일은 제가 정하겠습니다. 휴가를 근사하게 보내려면 국내에서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최은정은 강준의 요구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슬슬 강준은 성원화재 내에서만 머물기에는 힘든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 * * 청주교도소. 다음 날 강준은 실종된 김상훈의 부친이 찾아갔던 배정원을 찾아갔다. 그는 마약 거래 혐의로 수감 중이었다. “아! 그분 아들 보험금 때문에 오셨구나.” “네, 살해당한 김상훈 씨의 아내와 어린 아들이 살아 있거든요.” “뭐, 살 사람은 살아야지…….” 배정원은 짧게 깎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꼬리를 올리며 웃고 있었다. “사촌 형님인 배필립…… 아니 배기원 씨가 김상훈 씨를 살해한 게 맞나요?” “……네, 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그럼, 직접 보신 게 아니란 말인가요?” “……못 봤어요. 그러니까 시신이 어디 있는지 말을 못 했죠.” “김철희 씨는 아들이 죽은 거로 알고 있어요. 왜 그렇게 얘기했어요? 살아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배정원은 그 말을 듣더니 킥킥댔다. “아직 배필립 그 인간을 잘 모르나 보네. 보험사 양반…… 거꾸로 생각해 봐. 납치한 사람을 살려둘 이유가 있어?” “그야 몸값을 받는다던가…….” “몸값은 이미 받았어.” 냉정하게 말하는 배정원이었다. “뭐요? 그럼 몸값을 받았는데 살해했다는 말이야?” “10억 원 받았지. 왜 뭐가 잘못됐어?” “돈을 받았으면 풀어줬어야지, 왜 살해한 거야! 약속을 안 지킨 거잖아!” 낄낄거리던 배정원이 갑자기 안면을 바꿨다. “그러니까 그 새끼가 인간 말종 개새끼지! 배필립! 그 개새끼는 죽어야 해! 날 여기 가둬놓고!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배정원의 퀭한 눈동자에서 증오의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마약중독자였고, 금단 현상으로 인해 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당신 사촌 형을 내가 잡으러 왔잖아! 배필립 내가 잡아줄 테니까 어디 있는지 말해!”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배필립을 잡는다는 거야? 애송이 같은 게!” “나 배필립 만났어. 저번에…… 파운샵 투자자라고 속여서 만났거든.” “뭐……? 만났어?” 갑자기 조용해진 배정원은 고개를 다시 푹 숙였다. 그리고는 뭐가 무서운지 미세하게 어깨를 떨었다. “조심해…… 너도 김상훈처럼 죽을 수가 있어. 사람 죽이는 걸 별일 아니게 생각하거든.” “나! 전직 형사야! 쉽게 안 죽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알고 있는 거 있으면 다 얘기해! 배필립의 은신처 알아? 마닐라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의 3층 저택인데…….” “몰라! 거긴 나도 못 가봤거든.” 배필립은 평소에도 사촌 동생 배정원을 무시했다. 단지 그에게 마약상의 임무를 맡겨 먹고살 정도만 되게 해 주었던 거였다. 그런 배정원이 한국에서 붙잡히자 배필립은 평소 골칫덩이였던 사촌 동생을 그냥 한국의 교도소에 방치해버린 거였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은 배정원이 마약중독으로 인한 조울증을 겪고 있고, 그 분노가 자신을 향한다는 점이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배필립을 찾겠어?” 불안한 눈빛으로 뭔가를 생각하던 배정원은 낯선 이름을 댔다. “김종문…… 김종문! 그 사람이 새로운 물주라고 했어. 다른 놈들처럼 까다롭지 않고 호구 잡기 쉽다고 그랬지! 흐흐! 그래…… 김종문, 그 인간을 찾아봐. 분명히 배필립을 알고 있을 거야.” “김종문? ……어디서 뭐 하는 인간인데?” 강준의 말에 배정원이 유리 칸막이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너 형사였다며? 형사면 그건 네가 찾아봐야지…….” 강준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전직 형사라고 사칭했던 강준에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냥 날로 먹으려고 하지 말고 발로 뛰어! 뛰라고!” 배정원은 소리를 질렀다. 사실 날로 먹지 말고 발로 뛰라는 말은 평소 사촌 형인 배필립이 자신에게 줄곧 하던 말이었다. ‘그래 날로 안 먹는다…… 이 약쟁이 놈아!’ 면회 시간이 끝난 강준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배정원은 그런 강준을 향해 쓴웃음을 날렸다. “다음에 올 때는 꼭 배필립 잡아 와라? 알겠지? 이 안에서 나랑 결딴을 내고 말 테니까 말이야! 흐흐흐!” 면회실에서 강준이 사라질 때까지 배정원의 허망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 * * ―필리핀 현지의 한인 납치 살해사건! 과연 배필립은 누구인가? 함지훈 기자는 시사뉴스닷컴의 심층 기사를 통해 배필립을 정조준했다. 그 기사가 나가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언론들에서도 비슷한 기사를 내보냈고, 자연스럽게 이진철의 광역수사대에서는 필리핀 현지 팀의 연장 수사를 허가받았다. “경감님, 여론이 잘 모여 다행입니다.” “그러니까요…… 함 기자님 기사가 아주 송곳처럼 날카로웠습니다!” “사건추적 24시 같은 공중파 방송이 아니니 나름의 한계도 느끼는 거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렇긴 하죠. 그나저나 박 대리님께서 말씀하신 김종문 말입니다. 알아봤는데 천안에서 유명한 부동산 부자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특별한 직업은 없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건물주가 직업인가 보네요.” “하하! 부럽네요. 저희 같은 경찰들은 사건 한 번 맡으면 집에도 못 들어가는데…….” 이진철은 농담처럼 신세를 타령했다. “그래도 경찰 아니면 살면서 후회했을걸요……?” 강준은 이진철이 얼마나 경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지 잘 알고 있었다. 이진철은 애써 웃으면서 강준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 * * 평택항. 김종문은 자신을 찾아온 강준을 불쑥 평택항으로 데려갔다. “여기 평택항이 개발되면 새로운 서해안 시대가 열릴 겁니다! 물류가 모이는 곳에 비즈니스가 이뤄지고 사람이 모일 겁니다! 그럼, 배후단지에 부동산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뛰겠지요! 하하!” 김종문은 부동산 개발업자답게 온통 관심은 땅값 상승에만 있는 인물이었다. “우리 근처에 가서 회나 먹읍시다! 내가 좋은 데를 한 군데 알고 있으니까.” 김종문은 필리핀 파운샵 투자와 관련해서 만나자고 한 걸 오해한 듯 강준을 같은 투자자라고 여기는 듯했다. “필리핀은 최근에 언제 다녀오신 겁니까?” “지난주에도 갔다 왔어요! 배필립 그 양반이 사업을 아주 크게 하시더라고요. 근데 젊은 친구는 얼마나 투자하시려고?” 그는 강준의 자산이 얼마만큼 있는지 가늠해 보려 했다. “전 성원화재 보험조사관입니다. 지난번 필리핀에서 배필립 씨를 만난 건 보험 사망 사기와 관련해서고요.” 신분을 밝힌 강준의 말에 김종문은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는 강준을 바라봤다. “보험조사관이라고요……? 배필립한테 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현지에서 한인을 청부 살인하고 사체를 유기한 거로 의심됩니다.” 강준은 시사뉴스닷컴의 기사인쇄본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 기사를 읽어 본 김종문은 이미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는 듯 별거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나한테 이거 보여주려고 온 겁니까?” “네, 굳이 이런 사람과 투자하실 이유는 없으니까요.” “근데 그건 아직 의혹이잖아요. 의혹!”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한다. 김종문은 자신이 걸었던 배필립에 대한 기대감을 쉽게 꺾지 않았다. “혹시 선금으로 그쪽에 지불하신 돈이 있으신가요?” “……일단 밥이나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즉답하지 않고 말을 돌리는 그였다. 횟집에 도착해서도 식사 시간 내내 그는 배필립에 대한 얘기보다는 자신이 살아온 걸 일방적으로 늘어놓았다. 적절한 과장과 적절한 포장을 통해 자신이 그간 얼마만큼의 돈을 벌었는지를 설명해댔다. 그리고 말투도 점점 편해졌다. “제가 듣기로는 부친에게서 물려받으신 토지가 재개발되면서 당시로는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으셨다던데…….” “그건 사실이지. 근데 그 땅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되지도 않았어. 평택에도 투자하고 다른 사업도 벌이고 그러면서…… 지금까지 온 거지.” 강준이 보기에 그는 졸부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벌여왔던 사업이라는 건 물려받은 땅을 조금씩 팔아서 써왔던 거나 다름없었다. 결국, 자기 손으로 해 본 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뭔가 사업 놀이가 하고 싶은 거군…….’ “근데 배필립이 사장님을 자기 저택으로 데려갈 때, 포대 자루를 씌웠죠?” “……그건…… 보안을 위해서 그런 거라고…… 서로 입장은 배려해 줘야 하잖아?” “사장님도 짐작하셨겠지만…… 배필립은 떳떳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파운샵 그 사업이 얼마나 오래갈까요?” “필리핀은 그 나라만의 특이한 금융시장이 있더라고…… 일종의 개인금융이라고 해야 할까?” 어디서 들은 건 많은 모양이었다. “사채나 다름없는 건데…… 남의 나라에서 그 사업이 잘 먹힐까요? 그리고 배필립이 현지에서 잘 꾸려나간다 쳐도 사장님은 어떻게 투자금을 회수할 겁니까?” “아! 사업이라는 건 길게 봐야지. 투자했다고 일이 년 있다가 뺄 거면 그게 사업이야? 그냥 돈놀이지!” 되려 역정을 내는 김종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중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벌써 선금으로 투자금도 보내신 거 같으니…….” “선금은 얼마 안 넣었어.” “저랑 같이 필리핀으로 가시죠. 그리고 혹시 문제가 터지면 제게 연락을 주시는 겁니다. 사장님도 보험은 들어놓으셔야죠. 절 그 보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탐탁지 않은 표정인 김종문은 회를 한 점 입에 넣고는 한참을 우물거렸다. “그럽시다! 대신 내 사업에 방해는 절대 안 돼!” 김종문은 오히려 강준이 자신이 추진하는 사업을 어떻게 할까 봐 걱정이었다. 강준은 김종문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그건 제가 약속드리죠!” 악수하는 동안 강준은 김종문이 필리핀으로 20억 원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