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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 실종자 사건의뢰 (1) (64/250)

064. 실종자 사건의뢰 (1)2022.02.02.

남부 검찰청 조사실. “총은…… 제 총이 아니라 송종철이 갖고 있던 총이라니까요.” “그럼, 넌 거기 왜 있었던 거야?” “알다시피 전 얽히고 싶지 않았는데, 전에 환전해 주던 인연 때문에 송 사장한테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뭐 어떻게 해요? 오라고 할 수밖에요…….” “너 수배자를 숨겨주는 게 어떤 죄인지 알아? 범인은닉죄야!” 이은정 검사는 밖에서 수사관이 김용식을 추궁하는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도주해 봤자 차량번호까지 읽힌 김용식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7Bar에서 달아난 지 24시간도 안 되어서 김용식은 공주로 이어지는 한 국도변에서 체포됐다. “박강준 씨, 정말 저 김용식이 송종철의 자금관리인이었다는 말이에요?” 강준은 참고인으로 검찰 조사실에 함께 와 있었다. “네, 그간 YS무역에 입금한 통장들을 역추적하시면 대포 통장의 존재를 파악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대포 통장의 실소유주가 바로 송종철이었다는 거고요?” “네, 그렇죠. 근데, 죽어 버렸으니…….” 강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송종철을 통해 전대성 회장까지 잡으려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었다. “김용식, 너 진짜 누가 송종철을 죽였는지…… 못 봤다는 거야?” “그렇다니까요! 주변에 CCTV 확인해 봐요! 제가 가게에 들어가니까 이미 죽어 있더라니까요!” “근데 총은 왜 들고 나간 거야? 경찰이라도 쏘려고 그랬어?” 수사관의 말을 들은 김용식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건…… 진짜, 본능적인 거였어요. 밖에서 누가 문은 탕탕 두드리는데…… 솔직히 말해서 검찰인지 경찰인지 그게 아니면 나를 죽이러 온 놈인지 어떻게 알아요? 눈앞에는 송 사장이 죽어 있지! 여직원은 벌벌 떨고 있는데…….” “그래서 너 혼자 도망친 거냐? 종업원 두고?” “아니~ 저야 가게 사장이니까…… 문제가 될 거고, 종업원이야 뭐 막말로 문제가 될 게 있나요? 자기가 본 걸 고대로 얘기하면 그뿐이지…….” 유리벽 너머에 있던 이은진 검사가 뭔가 풀리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강준 씨, 곧 범인이 누군지 밝혀질 거예요. 지금 현장에 감식반이 출동했거든요. 송종철의 시신 주변에 혈흔이나 머리카락, 지문 같은 생체흔적을 하나라도 남겼겠죠.” “어쩌면 눈에 보이는 증거가 전부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저보다 더 검사 같군요…….” 뭔가 비꼬는 듯 들리는 말이었지만, 강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감식 결과는 김용식을 가리킬 예정이었다. 강준은 좀 전에 조사실에 들어간 수사관을 통해 그의 기억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저 새끼가 송종철 죽인 범인이니까…… 확실히 조사해라!] [아니…… 차 검사님, 그걸 어떻게 압니까?] 수사관에게 지시를 내린 검사는 이은진 검사의 선배 기수인 차명학 검사였다. [딱 보면 몰라? 송종철이 도박사이트 운영하던 자금을 김용식한테 맡겼고, 그 돈을 김용식이 슈킹한 거지. 뻔한 사건 아냐?] [……어차피 감식 결과가 나올 테니까 그거 보면 알겠죠.] [에헤! 김 수사관! 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나 이제 곧 부장검사 달아. 우리 같이 가야지. 언제까지 저런 철부지 밑에 있을 거야?] 강준은 저들이 감식 결과에까지 손을 댈 수 있다고 믿었다. 왜냐면 감식에 보낼 시료를 김용식의 머리털이나 혈흔으로 바꿔 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박강준 씨 말대로 송종철의 자금이 대포 통장을 통해 국내로 송금됐다면 분명히 대포 통장 인출책이 있을 거예요. 그게 김용식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렇죠. 아마 그걸 일일이 확인해서 역추적하는 건 검찰의 의지라고 봅니다. 가능하겠어요?” 강준이 오히려 되물었다. “대한민국 검찰이 못 하는 일이 어딨겠어요? 죄지은 놈들 잡으라고 우리가 있는 건데…….” 이은진 검사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했다. “아까 김용식이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죠?” “항상 의심해야 하는 게 저나 검사님 같은 사람의 직업정신이죠…… 김용식 하나로 사건을 매듭지으면 좋을 사람들이 누군지 생각해 보시면 그림이 그려지실 수 있을 겁니다.” “전대성 회장이 검찰까지 손을 쓸 거라는 얘기군요.” “네. 이제는 한국보험까지 꿀꺽하려는 거물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강준은 이은진에게 그 말을 남기고는 검찰청을 빠져나왔다. 그가 더 협조해 줘야 할 정보는 남아 있지 않았다. 강준이 짐작하는 진범은 중국 청도에서 활동하는 해결사 우 실장이었다. 전대성의 RS투자를 추적하던 김재관 검사를 죽인 게 송종철이었다. 그리고 그런 송종철이 피살된 채 발견됐다.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는 전대성의 냉혹한 청부살인! 하지만 우 실장이 범인이라면 그는 벌써 한국 땅을 벗어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사건은 다시 미궁 속에 빠질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김용식이 살인죄로 들어가게 되면 사건을 조작한 검찰을 뒤엎을 수도 있을 거다. 그때까지 이은진이 잘 버텨 줄 수 있으려나…….’ 강준은 당분간 억울한 죄를 뒤집어쓴 김용식을 내버려 두기로 했다. 어차피 그가 지금까지 지은 죄들을 합하면 몇 년은 감방에서 썩는다고 해도 그가 억울할 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준은 씁쓸한 미소를 보이며 최은정이 기다리고 있는 차량으로 향했다. * * * 연남시 성원화재 사무실. “강준 씨가 말한 대로 송종철을 찌른 칼날에 김용식의 혈흔이 발견됐다네요.” “검찰 조사실에서 본 김용식의 손에는 분명히 상처가 없었습니다.” “……다른 신체 부위에 상처가 있었을 수도 있겠죠.” “검찰을 믿으시는 겁니까?” 이진철 경감은 말없이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송종철에 대한 사건은 TV나 언론에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저 범죄자들 사이의 돈으로 인한 살인으로 결론 내려졌을 뿐이었다. “함 기자가 실망하겠네요.” “안 그래도 전화가 왔었습니다. 근데 별로 실망한 눈치는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서요.” 함 기자는 사안을 바라보는 특유의 냉소적인 시선이 있었다. 강준은 그런 함 기자의 냉소가 검찰이 의도적으로 덮으려는 이번 사건을 파헤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똑! 똑!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반투명의 유리문 밖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신사가 서 있었다. “어떻게 오셨죠? 여기는 보험 판매하는 곳이 아닌데요?” “혹시 보험조사팀 박강준 대리님 되십니까?” “네? 저를 어떻게 알고?” “마닐라의 한인 회장님께서 여기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강준은 김진아의 시신을 찾으러 갔을 때 만났던 한인회장을 떠올렸다. 그에게 원하는 단서를 얻을 순 없었지만, 당시 한인회장은 자기 일도 아닌데 발 벗고 나서줬었다. “근데 어쩐 일로 절 찾으셨나요?” “제 아들이 실종된 지 2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살해당했습니다.” “필리핀 현지에서 말입니까?” “……네.” 노신사는 아들을 찾아 달라고 온 게 아니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럼 절 찾아온 이유가……?” “아들 시신을 찾고 싶습니다. 시신이 있어야 아들 녀석의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 말만 들어서는 노신사는 죽은 아들의 사망보험금을 노리는 냉정한 부친이었다. 하지만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법원에서 실종자의 사망을 인정하면 보험금이 지급되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저도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보험약관에 실종자는 시신을 부검해 사인을 확인해야만 한다고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망보험금 지급이 거절된 겁니다….” 실종자 사망보험금에 있어서는 보험회사마다 약관에서 분쟁의 소지가 될만한 문구를 집어넣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노신사의 사연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아드님의 사망은 어떻게 아신 겁니까?” “아들을 납치한 조직원 중 한 명이 한국에서 체포됐어요. 그가 그러더군요…… 아들을 죽이는 걸 봤다고요.” “그 조직원의 이름이 혹시 어떻게 됩니까?” “배정원, 그의 사촌 형이 바로 배필립입니다.” 그제야 강준은 노신사가 왜 자신을 찾아오게 된 건지 알았다. “배필립 그 사람 원래 실명은 배기원이죠. 그 사람이 우리 상훈이를 납치한 장본인들입니다.” 노신사의 아들인 김상훈에게는 아내와 한 살배기 어린 아들이 한 명 있었다. 노신사는 아들을 찾기 위해 필리핀의 곳곳을 두 해가 넘도록 헤맸고 그 과정에서 노후를 위해 모아두었던 돈도 다 써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아들의 사망보험금이었다. “중간에 아들 찾아주겠다면서 다가온 사람들도 있었죠…… 다 사기꾼들이었습니다. 선금만 받아 챙기고는 점점 연락이 뜸해지더라고요.” “……쳐죽일 놈들이네요!” 노신사의 말을 듣고 있던 이진철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 “이 분이 필리핀에서 막 돌아오신 경찰 분입니다.” 이진철은 송종철을 잡으러 간 것이지만, 정작 송종철이 한국에서 살해당하자 현지 팀은 급거 철수했다. “민망하지만 얼마 전까지 마닐라에서 현지 조직들을 조사했었습니다. 물론 별다른 성과는 못 냈지만요…….” “배필립 그놈이 아주 잔인한 놈입니다. 저희 아들뿐만 아니라 그놈한테 당한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다시 강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배필립을 직접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못 봤습니다…… 봤으면 이 손으로 직접 결딴냈겠죠…….” 깊은 한숨을 내쉬는 노신사였다. “어차피 아들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남은 손자와 며느리가 있어요…… 그 둘에게 아들 보험금이라도 남겨 주고 싶네요.” “보험사는 어딘가요?” “한국보험입니다…….” “음…… 아드님의 사망을 증명하지 못했다며 사망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죠?” “네, 사망증명서를 가져오라는데…… 시신도 못 찾는데 무슨 사망증명서를 뗄 수가 있겠어요? 흑흑…….” 노신사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강준은 그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강준은 성원화재 소속이었다. 한국보험의 일에 필리핀 현지까지 날아가 일을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아버님…… 저는 성원화재라는 회사 소속이라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드리러 필리핀 현지로 출장을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해합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와 본 겁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으니까요.” 옆에 있던 이진철은 실망한 노신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저희 팀이 철수하긴 했지만, 필리핀에서 일어나는 한인 납치 범죄와 관련해서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관련된 정보가 입수되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명함이나 하나 놔두고 가시죠. 저희가 추후 반드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노신사는 두 장의 명함을 강준과 이진철에게 각각 전했다. ―한일 건축설계사무소 김철희 대표. “아! 건축설계사이신가 봅니다.” “네…… 지금은 휴업 중인데…… 거기 있는 연락처로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지금은 명함을 그저 연락처 드리는 용도로 사용하죠.” 노신사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사무실 문을 나섰다. 그가 나가고 나자 이진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배필립 쪽 사람들과는 저도 솔직히 만나보지를 못했습니다. 파운샵 투자자라며 여기저기 흘렸는데…… 물지를 않더군요.” “이분 아드님 사건…… 광역수사대에서 해 볼 수 있을까요?” “장담은 못 드리겠네요. 저번에는 병원장 출신 의사의 아내 살인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이슈로 언론이 떠들어댔으니까요…….” 강준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이다 말을 이었다. “그럼 이번에도 언론에서 다루게 되면 광역수사대가 나설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지난 파견 때의 연장 수사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한참을 고개를 주억거리던 이진철은 갑자기 강준을 보며 말했다. “근데, 박 대리님은 어떻게 하시게요?” “저야…… 성원화재 일개 대리가 아닙니까? 팀장님께 먼저 허락을 받아야겠죠.” 강준은 그 말을 마치고는 곧바로 최은정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박강준입니다. 새로운 사건이 있어서 보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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