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송종철의 최후 (3)2022.02.01.
“검사님, 김재관 검사님이 발견된 곳이 어딘가요?” “해리츠 호텔요.” “알겠습니다. 일단 그리로 같이 가시죠.” “박강준 씨, 수사는 저희 검찰에서 하겠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거절하시겠습니까?” 순간, 이은진은 망설였다. 강준은 이은진 검사가 융통성이 그리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고 기억했다. 사건보다 자기 조직 지키기가 우선인 다른 검사들과는 달리 그녀는 실리적이었다. “알겠어요. 혹시 또 모르죠. 이번에도 보험조사관 박강준 씨가 범인을 밝혀낼지도 모르니까요.” 비꼬듯 들릴 수도 있는 말을 내뱉은 이은진이었다. 하지만 내심 그녀는 강준이 사건추척 24시에 나왔던 것처럼 또다시 활약해 주기를 기대했다. 해리츠 호텔에 도착한 강준은 CCTV부터 확인하려 했다. 호텔 매니저는 CCTV가 모니터링되는 중앙통제실로 데려갔다. “저희도 그렇게 된 줄은 몰랐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이상하게 멈춰 있더라고요.” “그럼 김재관 검사를 발견한 건 언제입니까?” “그게…… 경찰에서 출동하고 나서 발견했습니다…….” 책임을 추궁받을 것이 뒤늦게 걱정된 호텔 매니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럼, 그때까지 의식이 또렷했다는 거네요…….” “네, 구급차가 왔을 때까지 정신이 있었어요. 계속 누군가와 통화하기를 원하더라고요.” 이은진 검사가 팔짱을 낀 채 안타까운 심정을 내뱉었다. “아마 저에게 통화하려고 했던 건지 몰라요……. 검찰 내부에서 김재관 검사가 하려고 했던 일을 저만 알고 있었거든요.” “그게 혹시 전대성 회장의 RS투자를 조사하려는 일이었나요?” 강준의 훅 치고 들어온 말에 이은진 검사는 최은정을 돌아보며 물었다. “은정아, 너 벌써 얘기를 한 거야?” “아니. 난 안 했는데? 박강준 씨,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둘은 강준을 동시에 바라봤다. “그야, 왠지 그럴 것 같아서요. 현직 검사를 죽일 만큼 막 나가는 인물이 많지는 않죠. 양아치에다…… 대담하기도 해야 하니까요.” “하긴 우린 계속 전대성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었으니 강준 씨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겠네요.” 쉽게 수긍해 주는 최은정이었다. 하지만 강준은 죽어가는 김재관 검사의 기억에서 송종철의 모습을 봤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CCTV에는 어떻게 찍혔나요?” “그게…… 모자를 쓰고 있어서…… 신원 확인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호텔 매니저는 재빨리 CCTV 녹화분을 보여줬다. 그의 말처럼 엘리베이터에서 찍은 영상에는 송종철임을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은 없었다. “다른 위치의 CCTV에 찍힌 건 없나요? 호텔 출입구나 로비 쪽이요.” “여기 찍혔습니다.” 주차장 출구를 통해 호텔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송종철의 모습이었다. 강준은 더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우리가 찾던 송종철 사장이네요!” “네? 강준 씨, 넘겨짚지 말아요.” “걸음걸이! 걸음걸이도 사람마다 특징이 있습니다. 아마 저번에 연남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때 송종철의 영상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 둘을 비교해 보면 신원이 확인되겠죠!” 강준의 말에 이은진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수사관님! 지금 전대성 주변 인물인 송종철 아시죠? 그에 대한 기록 확인하셔서 이동통신사 쪽에 송종철 통화 내역, 그리고 현재 위치 뽑아주세요!” 망설이지 않고 움직인 이은진 검사였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는 강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도 한 번 믿어 보죠. 이태경 원장 부인 사건을 해결한 게 우연인지 아니면 정말 실력이었는지 확인이 되겠네요.” 최은정은 동기였던 이은진의 말에 불안한 듯 강준에게 확인하려는 질문을 던졌다. “강준 씨가 걸음걸이를 어떻게 그렇게 잘 판별한다고 그래요?” “이래 봬도 제가 눈썰미는 좀 있는 편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보험조사관으로 버텨온 거 아니겠습니까?” 너스레를 떠는 강준을 보며 최은정은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웃을 수 없었다. 김재관 검사의 상황이 위태로웠기 때문이었다. “박강준 씨, 이거 제 명함이에요. 혹시 뭐 또 알게 되면 연락해요. 전 검찰청으로 들어가 봐야겠어요. 은정아, 다시 연락할게.” “그래, 다시 연락하자.” “그럼 또 뵙겠습니다!” 이은진 검사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날이 어둑해져 오고 있었다. 둘도 헤어져야 할 때였다. “팀장님, 오늘 올라가실 겁니까?” “아니요.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거예요.” “그럼 내일 오전에 뵙겠습니다!” “데려다줄게요. 강준 씨, 오늘 차 안 가지고 나왔잖아요.” 최은정은 뭔가 아쉬움이 남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강준 또한 마찬가지였다. * * * 다음 날 오전. 해장국집 “아마 그 주점이 봉명동 쪽 거기인 거 같은디…….” 다행히 해장국집 주인의 남편은 김용식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확신까지는 하지 못했다. “거기는 몇 시에 문을 여나요?” “아마 대략 저녁 7시는 돼야지……?”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송종철이 정말 김재관 검사를 살해했다면 그가 대전을 벗어나려고 할 터였기 때문이었다. “강준 씨, 지금 당장 가보죠. 송종철이 거기 은신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강준은 해장국집 남편을 보고 물었다. “혹시 저희와 같이 가 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은 문을 닫았을 텐데…… 뭐 갑시다! 못 갈 건 또 없지.” 그곳은 숙박업소와 주점이 밀집된 곳이었다. 김용식이 있다는 주점은 지하 1층으로 7bar라는 간판이 내걸린 곳이었다. 지하의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쾅! 쾅! “안에 누구 없습니까?”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에이, 아직 아무도 출근 안 했을 거야. 보통 밤 장사하는 사람들은 저녁이나 되어야 출근하지.” “제가 전력기를 보고 올게요.” 최은정이 먼저 일어나 움직였다. 전에 박순애 질식사건으로 함께 현장에 있어 본 최은정이 그때의 노하우를 잊지 않은 듯했다. 잠시 후 돌아온 최은정은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안에 분명 누가 있어요. 다른 곳보다 더 빨리 전력기가 돌아가고 있었거든요.” “그럼, 우리가 온 걸 알고 있겠네요.” “아마도요…….” 강준은 어제 받아둔 이은진 검사의 명함을 꺼내 들었다. “강준 씨, 설마 여기를 강제로 수색하려고요?” “어제 보니까 두 분이 꽤 친한 거 같던데,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카드를 지금 한번 쓰시는 게 어떻습니까?” “지금요……?” 계단에서 엉거주춤 서 있는 최은정은 고민하는 듯했다. 괜히 일을 키웠다가 알맹이가 없으면 서로 무척 민망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이제 나는… 가 봐도 되지? 그리고…… 말하긴 좀 민망한데…… 내가 여기 알려줬다는 건 비밀이고, 알지?” “당연하죠. 사장님. 그 부분은 꼭 지켜드리겠습니다.” 본인의 일에 지장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한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아녀…… 그럼 난 가볼게. 나쁜 놈들 꼭 잡고! “당연히 그래야죠!” 뒤에 있던 해장국집 남편은 일이 바쁜지 머쓱한 미소를 보이고는 자리를 떴다. 그렇게 해장국집 남편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이은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내가 직접 연락할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가끔은 얼굴에 철판을 깔 필요도 있는 겁니다. 남들한테 신세 지기도 하고요.” 평생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살아왔던 최은정이었다. 강준의 말은 최은정이 고민하는 정곡을 찔렀다. 그렇게 그곳에서 한 시간을 대기했을 때, 검찰 조사관들이 들이닥쳤다. 이은진 검사와 함께 말이었다. “여기 송종철과 관련된 자들이 있다고요?” “네, 필리핀에서 송종철이 범죄로 벌어들인 자금을 국내에서 세탁해 주던 인물이죠. 김용식이라고 YS무역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던 놈입니다.” 이은진은 수사관들에게 강제로 문을 열라고 지시한 후, 강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남경찰서에서 넘어온 영상 확인했어요. 강준 씨가 말한 대로 아까 김재관 검사를 찔렀던 사람…… 송종철이 맞는 거 같아요. 더 자세한 건 전문가의 감정을 받아봐야겠지만…….” 입술을 꽉 깨무는 이은진 검사였다. “범인이 송종철이 맞으면 여기에 김용식과 함께 있을 확률이 높겠네요. 지하는 반드시 출입구가 두 개일 겁니다. 전 혹시나 모를 도주를 차단하러 뒷문을 확인하러 가겠습니다. 팀장님은 검사님과 함께 여기 계시죠.” 최은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무전기 가져가요. 혹시 도주하는 걸 확인하면 무전 보내시고요!” 이은진 검사는 강준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무전기를 건넸다. 옆에 있던 최은정이 속삭이듯 물었다. “안에 들어가도 김용식은 없는 거 아니에요?” “서둘러 달아났으니 뭔가 흔적이라도 남겼을 겁니다. 그걸 놓치지 말고 확인해 봐야죠.” 그 순간 형사의 본능이 강준을 지배하고 있었다. 최은정은 그런 강준이 새삼 낯설었다. “그럼 좀 있다 뵙겠습니다!” 탕! 탕! 탕! 강준이 뒷문을 찾으러 간 사이에 검찰 수사관들은 문을 두드리며 한동안 소리쳤다. “안에 있는 분들은 자진해서 문 여세요!” 그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 열쇠 수리공이 도착했다. 도착한 열쇠 수리공은 능숙하게 연장을 꺼내며 이은진에게 물었다. “이거 열면 문 파손되는데 괜찮아요?” “네, 상관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열어주시죠!” “그럼, 전 책임 안 집니다!” 열쇠 수리공은 5분 만에 커다란 철제문의 잠금장치를 떼어내 버렸다. 그렇게 문을 따는 소란이 커지자 출입구 반대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준은 누군가가 튀어나오는 걸 확인했다. 강준의 예상대로 김용식으로 보이는 남자가 차에 올라타려 하고 있었다. “야! 김용식!” “어?” 남자는 예상대로 김용식이었다. 김용식은 강준을 쳐다보더니 놀란 눈빛으로 손을 내저었다. “다가오지 마! 이 새끼야!” 그의 손에는 국내에서 볼 수 없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불법 총기였다. “김용식! 말로 하자! 말로…… 무슨 일이야 도대체?” “시발! 난…… 모르는 일이야! 내가 그런 게 절대 아니라고!” 강준은 총구 앞에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뭐? 자세히 좀 말해봐. 네가 모르는 일이라는 게 뭔데?” “에잇! 몰라 시발!” 김용식은 총구를 겨눈 채 차에 올라타고는 시동을 걸었다. 강준이 뒤늦게 창문을 두드리며 쫓아갔지만, 차는 사이드미러를 잡은 강준을 떨구고는 맹렬한 속도로 사라졌다. 치칙! “이은진 검사님, 방금 뒷문으로 김용식이 도주했습니다. 차량번호는 59사84XX. 차량 수배 부탁드립니다!” 잠시 후, 무전기에서 이은진의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치칙! 치칙! “강준 씨, 문 열렸는데요…… 안으로 좀 들어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인데요?” “그건 들어와서 직접 확인하시죠.” 치칙! 그렇게 무전이 끊겼다. 7Bar의 내부는 작은 홀과 벽면의 내실로 나뉘어 있었다. 누군가가 은신하기에 딱 적당한 구조였다. 안에는 한 명의 여종업원만이 덜덜 떨고 있었다. 그 직원도 자신이 알지 못했던 걸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내실에 놓인 시신 한 구 때문이었다. 하얗게 센 짧은 머리, 테이블 위에 피를 흘리며 엎어져 있는 중년의 남자. 강준은 한눈에 그가 누군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필리핀으로 출국했다던 송종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