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송종철의 최후 (2)2022.01.31.
해장국 식당에 경찰이 도착했을 때, 남자는 더 흥분해서 날뛰는 상황이었다. “경찰입니다! 여기 소란이 있다고 해서 나왔습니다.” “어! 뭐야? 경찰 불렀어? 잘됐네. 여기 식당에서 쇠붙이가 나왔는데 아니라고 발뺌하네요.” 얼굴이 벌게져서 씩씩대는 남자였다. “신고자가 누군가요?” “접니다.” 강준이 나섰다. “여기서 쇠붙이가 나왔다는데 음식 조리 과정에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분이 스스로 쇠붙이를 넣었을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닙니까?” 출동한 경찰관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상황을 보니 남자가 의심스럽긴 했지만, 일부러 그랬다는 걸 입증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분 조사를 한번 해 보시면 분명히 다른 식당에서도 이런 식으로 보상을 받은 적이 있을 겁니다.” 상습범이라는 얘기였다. 경찰은 그제야 남자에게 동행을 요구했다. “나한테 받은 세금으로 일하는 놈들이 누굴 건드려! 내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어쨌든 식당 측의 과실이라도 경찰서에 가서 사건경위서를 좀 써 주셔야겠습니다.” “내가 피해자인데! 무슨 경위서?” “피해 사실을 입증하셔야 하니까요. 사건경위서는 필요하죠.” 경찰의 말에 남자는 낭패라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이내 입장을 바꿨다. “에잇! 내가 더러워서 넘어가는 줄 알아! 당신 장사 똑바로 해!” “죄…… 죄송합니다…….” 상황이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가려 할 때, 강준이 다시 불을 지폈다. “사장님, 여기 음식물 배상책임보험에 가입됐나요?” “음식물 배상요……? 아니요. 저희는 화재보험밖에 가입을 안 했는데…….” “아마 화재보험을 가입할 시에 같이 가입을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보험사가 어딘가요?” “……아 ……한국보험이요…….” 강준이 한국보험 서동휘 팀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이내 해장국 식당에서 든 화재보험에 음식물 배상책임보험이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해 줬다. “사장님, 만약 이물질이 들어간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보험사에서 피해자에게 보상한 금액만큼 보험금으로 나올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휴…… 그래도…… 이게 주변에 소문이라도 나면…….” 식당 평판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여 사장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준의 말에 안심한 듯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경찰은 당사자들을 보챘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여기서 없던 일로 하고 끝내실 거예요. 아니면 경찰서 가셔서 사건경위서 작성하실 거예요?” “내가 진짜…… 사람이 좋아서 그러지…… 딴 사람 같았으면 여기 식당 바로 소송이야!” “그럼, 여기서 마무리를 하는 거로 하시죠…… 사장님도 이견 없으시죠?” “……네. 저야 뭐…….” 경찰관은 상황을 종료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때 강준이 경찰관을 막아섰다. “신고자는 접니다. 전 저 남자를 상습적인 손해배상 보험사기범으로 신고합니다!” “네? 갑자기 보험사기요?” 경찰관은 당황한 듯 강준을 바라봤다. “아니…… 이건 말이 좀 안 되잖아요…… 혹시 뭐 다른 관할서 경찰이세요?” “전, 성원화재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저 남자분 아마 상습범일 겁니다. 오늘이 처음이 아닐 테니까요.” 강준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경찰도 남자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저기…… 선생님, 오늘 처음 보시고 어떻게 보험사기범으로 몰 수가 있어요? 지금 말이 안 되잖아요?”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제가 내일 저분의 보험금 수령 내역을 뽑아서 보내드리죠.” “아…… 그래 주시면 저희야 감사합니다만…….” 경찰관은 자리를 피하려는 남자를 붙들었다. “경찰서까지 같이 좀 가주셔야겠습니다.” “뭐야! 이거 불법 체포야!” “신고가 들어와 저희도 어쩔 수 없는 절차입니다. 일단 신분증부터 보여주시죠.” 경찰관 두 명은 남자를 에워쌌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자 식당 여주인이 강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러 강준에게 다가왔다. “손님, 고마워요. 근데 어떻게 저 사람이 상습범인지 안 거예요?” “아…… 아까 슬쩍 봤습니다. 휴지에 쌓인 뭔가를 만지작거리더라고요. 매장에 CCTV를 하나 더 설치하셔야겠습니다. 요즘 들어 이런 악의적인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거든요.” “그러게요. 별일이 다 있네요. 뭐 장사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다음에 가게로 와요. 뭐라도 대접해 드릴게요.” 강준은 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뒤적였다. “혹시 이런 사람 본 일 있습니까?” 강준이 내민 건 도피 중인 김용식의 사진이었다. “아…… 모르겠네, 왜요? 이 사람도 보험사기꾼이에요?” “네. 저희가 찾는 보험사기꾼이 이 근처에 은신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거든요. 이 근방에서 주점을 운영하고 있을 거라네요.” 강준과 최은정이 만난 해장국 집은 유성온천의 중심지역이었다. 그 인근의 주점 중 한 곳이 김용식의 근거지임이 분명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네. 혹시 우리 바깥양반이 알지도 모르니까 사진 놓고 가 봐요.” “바깥 어르신이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주점 같은 데다 술을 납품하니까, 알 수도 있잖아요.” “혹시 바깥 어르신 제가 직접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아…… 지금은 자고 있고, 그럼, 내일 낮에 배달 끝나고 여기 식당으로 오라고 할게요.” 강준은 식당 여주인 남편의 기억을 읽을 셈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꼭 좀 부탁드립니다.” “아니요. 뭘요. 나야 오늘 일이 더 고맙지.”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최은정이 식당을 나가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강준 씨, 정말 그 남자가 뭘 넣는 걸 지켜본 거예요?” “아니요. 그냥 좀 수상해 보여서요. 해장국에 쇠붙이가 들어간다는 자체가 이상하잖아요?” “혹시 모를 가능성도 있는 거잖아요.” “그러기에는 저 남자의 행동도 수상했죠. 눈에 단박에 보일만 한 쇠붙이를 그대로 입에 넣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걸로 어금니가 한방에 부러졌다는 것도요.” “하긴 생각해 보니 좀 지나친 면이 있었네요.” 삐빅! 차에 시동을 거는 최은정이었다. “가요! 어차피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려봐야 하는 거잖아요. 식당 주인 남편도 그렇고 경찰 조사 결과도 그렇고요.” “아, 그야 그렇죠.” “오늘은 강준 씨에게 제가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요.” “그게 누구죠?” “제 사법연수원 동기예요. 지금은 남부 검찰청에서 일하고 있죠.” 잠시 후, 카페에서 만난 사람은 최은정의 사법연수원 동기라던 이은진 검사였다. 그녀는 다부진 미소로 강준에게 인사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사건추적 24시에서도 출연하셨죠?” “아…… 그걸 보셨군요. 민망합니다.”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김진아의 시신을 찾은 건 박강준 씨라고 하더군요.” “아닙니다. 이런저런 도움을 주변에서 좀 받았을 뿐입니다.” “어쨌든 강준 씨 덕분에 성원화재 보험조사팀이 이 바닥에서 아주 유명해졌어요. 해외까지 날아가서 강력 보험 범죄도 직접 잡는다면서요. 호호!” 강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커피잔을 입에 갖다 댔다. 오랜만에 만난 최은정과 이은진 검사는 서로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강준은 그저 옆에서 둘의 대화를 한동안 듣기만 할 뿐이었다. 부르르르! 부르르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이은진 검사의 핸드폰이 울려댔다. “은정아, 잠깐만!” “괜찮아, 얼른 받아.” “네, 이은진입니다. 네…… 네?” 급격히 표정이 어두워지는 이은진이었다. “거기가 어디예요? 병원이요? 주소 문자로 보내주세요. 지금 바로 거기로 갈게요.” 전화를 끊은 이은진은 최은정을 바라보며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김재관 검사가 피습을 당했어…….” “뭐? 김재관 검사가?” 강준은 회귀 전 김재관 검사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지 기억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들어본 기억은 없었다. 오히려 회귀 전 강준이 기억하고 있는 검사는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은진 검사였다. 그녀는 유일하게 검찰 조직에서 전대성의 정체를 수사하려고 했던 검사였다. ‘그런 이은진이 최은정의 사법연수원 동기였다니…… 이렇게 이어지는군!’ “강준 씨, 우리도 병원으로 가요! 우리 성원그룹 하고도 연관이 있는 분이거든요!” 최은정은 자리를 정리하러 서둘렀고, 강준은 군말 없이 그녀를 따라나섰다.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이 지역 지리는 제가 잘 알거든요.” * * * 피습을 당한 김재관 검사는 흉부에서 대규모 출혈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잠깐 나와 주세요! 환자분 인공호흡기 설치해야 합니다!” 응급실의 간호사는 김재관 검사의 기도에 인공호흡기에 연결된 산소 관을 삽관했고, 응급 수혈을 했다. 삽시간에 그의 몸에는 이런저런 튜브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곧 수술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 보호자 있어요?” 간호사가 주변을 둘러봤을 때, 모인 사람들은 모두 검찰청 관계자들뿐이었다. “제가 직장 후배입니다.” 이은진 검사가 나섰다. “일단 시간 없으니까 수술 동의서 써주시고요. 가족분들에게 연락해 주세요.” “혹시…… 많이 심각한가요?” “그건 수술을 해 봐야 알겠지만…… 폐가 찔렸어요. 그 주변을 지나가는 큰 혈관들도 다쳤고요. 의사 선생님께서 최선을 다하시겠지만, 장담할 수 없어요…….” 강준은 의식을 잃은 김재관 검사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의식이 없는 사람의 기억은 읽어본 적이 없는 강준이었다. 하지만 희미한 화면이 깜빡이듯 강준의 눈앞으로 김재관 검사의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곳은 한 호텔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는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그의 전화벨이 울렸고, 그는 휴대폰을 받았다. “송종철 씨?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신변에 대한 부분은 저희가 지켜드릴 겁니다.” 그가 만나려 한 사람은 필리핀에 있다던 송종철 사장이었다. 휴대폰을 다시 바지 주머니에 넣은 김재관 검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꼭대기 층인 18층의 버튼을 눌렀다. 우우우웅!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갔고, 그러다 천천히 멈췄다. 5층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타려는 것이었다. 문이 열리자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남자가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김재관 검사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남자는 긴 칼을 꺼내 들고는 김재관 검사의 복부를 찔렀다. 능숙한 솜씨의 남자는 정확히 세 번을 찌르고는 앞으로 고꾸라지는 김재관 검사를 버려둔 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남자가 내렸지만,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비상 정지 버튼을 눌러놨기 때문이었다. 강준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바로 김재관 검사가 만나려고 했던 송종철 사장이었다. 기억은 거기에서 멈춰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기억의 장면이 흐려지고 있었다. 김재관의 맥박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띠띠띠띠! 띠띠띠! “CPR 준비하세요! CPR!” 어느새 달려온 응급실의 한 레지던트가 급박하게 외쳤다. 수술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위기에 빠진 거였다. 그렇게 김재관 검사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