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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 송종철의 최후 (1) (61/250)

061. 송종철의 최후 (1)2022.01.30.

“회장님께서 저를 꼭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어차피 박성우가 감옥에 있지 않습니까?” 송종철이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전대성 회장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그곳은 RS투자의 간판을 단 그럴듯한 강남 사무실이 아니라 전 회장의 출발지점이었던 연남시의 작고 음침한 라성캐피탈 사무실이었다. 전대성은 주로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당분간 숨어 있으라니까 왜 기어 나온 거야?” “……제가 언제까지 숨어 있을 수만은 없는 거 아닙니까?” 애써 자존심은 지키려는 대답이었지만, 송종철이 진짜 필리핀으로 들어가길 겁내는 건 더는 자신을 보호해줄 세력이 그곳에 없다는 점이었다. 이미 자신이 하던 사업은 배필립이 장악하고 있었고, 현지에서 자신을 노리는 원한 있는 놈들도 즐비했다. 그들 사이에서는 이미 한국 경찰에 쫓기는 송종철의 처지가 알려져 있었다. 이제 그들의 눈에 송종철이 포착되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청부살인업자인 슈터가 뜰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밑에 믿을 만한 놈들을 좀 키워두는 건데…….’ 자신의 직속 부하였던 박성우가 이미 그를 배신한 상태였다. 뒤늦게 후회해 봤자 그의 곁을 지켜줄 놈들은 아무도 없었다. 송종철은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까지 된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거야?” 담배를 피워 물며 짜증스럽다는 듯 말을 내뱉는 전대성이었다. 전대성은 따지고 보면 송종철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 그가 전혀 제 역할을 못 해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검찰에 인맥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힘 좀 써 주십시오……. 솔직히 말해서 증거도 없는데, 적당히 덮고 넘어가도 될 일이 아닙니까!” “송 사장,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지금 누구 때문에 나도 떨고 있는데! 어! 내가 진즉에 말했지. 성원화재 그놈이랑 이진철인가 뭔가 하는 놈 뭉개 버릴 거 갖고 오라고!” “이진철은 경찰 신분이니 어쩔 수 없지만…… 박강준 그놈은 제가 처리해 보겠습니다.” “됐어! 이미 늦었어…….” 전대성은 이마를 쓰다듬으면서 고민에 잠긴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답답한 건 송종철이었다. 경찰의 수배가 떨어져 있으니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송 사장…… 나랑 인연이 몇 년째지?” “알고 지낸 지는 15년이 넘어가네요…….” “자네가 살 방법이 있긴 한데…… 오해 말고 들어줄 수 있어?” 전대성이 뭔가 부탁을 할 때 나오는 목소리였다. 송종철은 자신이 보호받으려면 무언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전대성과의 관계에서는 언제나처럼 얻는 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먼저 치러야 했다. 그것도 선불로.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야죠.” “검사 한 명 처리해 줘야겠어…….” “네……? 현직 검사를 말입니까?” 그가 조직 생활을 하면서 살해했던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현직 검사를 죽인다는 건, 대한민국의 권력과 정면승부를 한다는 얘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나를 귀찮게 하는 검사가 한 놈 있어서 말이야. 어차피 검찰 조직에서도 왕따인 놈이니 처리해도 뒤탈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알죠. 근데…… 누굽니까? 그 검사라는 사람이요…….” “김재관 검사, 남부 검찰청 소속이고 여기 연남이 관할지야. 여기저기 기획 수사를 할 모양인가 보더라고.” “……전 회장님께서도 검찰 쪽에 인맥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그쪽으로는…… 해결이 힘들어. 왜 싫어?” 망설이는 송종철이었다. “제가 처리해드리면 경찰에서 제 수사는 중단시켜 주시는 겁니까?” “내가 연남경찰서 서장이랑 어떤 관계인지 잘 알잖아? 경찰? 걔들도 너 하나 잡으려고 수사하는 거 귀찮아해. 여론 좀 잠잠해지면…… 수사 종결하려고 하겠지.” 전대성의 말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하긴…… 이태경 원장도 붙잡히지 않았습니까? 벌써 판결도 끝났다던데.” 전대성은 슬쩍 송종철의 표정을 살폈다. ‘등신 같은 새끼…… 네놈도 별수가 없군…….’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부정적인 걸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진짜 대신 믿고 싶은 걸 믿어 버리는 격이었다. 구석에 몰린 송종철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신 확실하게 일 처리는 해야 해. 무슨 얘기인지 잘 알지? 괜히 똥물 여기저기 튀기다가는 될 일도 안 된다고!” “혹시 검찰 쪽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자기네 식구가 당하면 아무래도…….” “송 사장, 왜 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고 그래? 내가 그 정도도 생각 안 하고 있을까 봐 그래? 그 검사…… 조직에서도 골칫덩이야. 다들 못 본 척 조용히 넘어가려고 하겠지.” “아…… 네, 알겠습니다…….” 송종철이 돌아가고 난 후, 전대성은 금고지기 김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김 대표. 김재관 검사한테 사람 좀 붙여.”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전대성은 빈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생명보험사인 한국보험을 RS투자를 통해 인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RS투자의 수장인 전대성에 대해 의혹을 시선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남부 검찰청의 김재관 검사였다. “검사 새끼 한 명 때문에 내 앞길 망칠 순 없지! 후후!” 전대성은 음침한 사무실 안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 * * 유성온천역. 강준이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이는 오랜만에 보는 최은정이었다. 강준은 눈에 띄는 해장국 집으로 들어갔다. 비가 오는 바람에 언제 도착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여기 내장탕 한 그릇이요!” 널찍한 식당에는 드문드문 손님들이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점심 시간대를 훌쩍 넘긴 시간대였기 때문이었다. 강준은 자리에 앉아 습관적으로 CCTV의 위치를 확인했다. 김용식이 이 식당도 방문했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당의 CCTV는 계산 카운터를 비추는 사설 CCTV 단 한 대였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아마 식당 주인이 직접 설치한 것일 터였다. 강준이 식당 안을 살필 때, 50대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그리고는 강준이 그랬던 것처럼 CCTV를 살피고는 사각지대에 골라 앉았다. ‘분명히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어. 혹시 수배자인가……?’ “강준 씨, 오랜만이에요!” 강준이 50대 남자의 행동을 살피고 있을 때, 활짝 웃으며 최은정이 등장했다. “……아! 팀장님, 식사하셨어요?” “아니요.” “내장탕 같은 거 드시나요?” “많이 먹어 보진 않았지만, 괜찮아요.” 강준은 점원을 향해 손을 들고 소리쳤다. “이모님! 여기 내장탕 한 그릇 주시죠!” 50대 남자 역시 평범한 해장국을 시킨 걸 확인한 강준은 시선을 최은정에게 돌렸다. 그녀는 뚝배기에 담긴 내장탕을 맛있게 먹어 치우고 있었다. “어때요? 맛이?” “해장하기 딱 좋네요. 강준 씨는 매일 밥은 잘 먹고 다녀요?” “법인 카드가 있는데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죠.” “내역 보니까 그리 잘 먹고 다니지도 않던데요. 저녁에는 맛있는 거 먹어요. 제가 살게요.” 강준의 법인 카드 사용 내역까지 확인하고 온 최은정이었다. 강준은 그런 최은정을 향해 씩 웃었다. “이태경의 판결이 끝나기는 했지만, 노숙자들 데리고 조직적으로 사기를 친 양태식은 아직 안 잡혔습니다. 실질적으로 이태경의 약점을 잡고 보험사기를 기획한 송종철도 오리무중이고요.” “그 송종철을 잡으러 여기까지 온 거예요?” “아마 여기 근방에 있을 겁니다. 김용식이 이 근방에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거든요.” 최은정은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강준과 눈을 마주쳤다. “……강준 씨가 잘해 주리라 믿어요. 그래야 이렇게 외근으로 고생하지 않죠!” 최은정은 강준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나저나 최진태 이사님 쪽은 어떻게 돼 가고 있습니까?” “저도 모르겠어요. 한국보험을 인수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걸 두고 전대성 쪽과 힘을 합치려는 건지 아니면 그걸 놓고 서로 경쟁하는 건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어요.” 최은정은 규모가 큰 생명보험사인 한국보험이 독이 든 성배라고 생각했다. 강준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식당 한구석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강준이 관찰하던 50대가 넘은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거! 돌 아니야? 돌? 아이 시발! 이것 때문에 내 어금니가 부서졌잖아! 어떻게 할 거야!” 남자는 한눈에 보아도 우악스러운 눈초리로 당장에 난동이라도 피울 기세였다. “손님…… 저희는 재료를 미리 다 씻어서 이물질이 들어갈 리가 없는데…….” 사장인 듯한 여자가 두 손을 모으고 굽신거리며 해명했다. “지금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돌을 어디에 뱉으셨어요?” “자! 봐봐! 이게 돌이 아니고 뭐야?” 남자가 내민 휴지에는 음식과 뒤엉킨 날카로운 쇠붙이 조각이 있었다. “어? 이거 돌이 아니라 쇠붙이네. 쇠붙이! 이거 나 가만 안 넘어가? 이거 그대로 삼켰으면 나 죽을 뻔했네! 죽을 뻔했어!”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으면 어쩔 건데? 엉? 어떻게 보상해 줄 거야!” 강준은 남자에게 다가가 그가 손에 쥐고 있던 휴지를 확 빼앗았다. “어! 너 뭐야?” “보험회사 직원입니다. 이 쇠붙이 여기 주방에서 나온 거 같지 않은데요?” “뭐?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지금 내가 먹다가 나온 거라니까!” 강준은 남자를 차갑게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만약 외부에서 이물질을 넣으셨을 경우, 보험배상이 안 됩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근데, 이 새끼가! 아까부터 나를 이상하게 모네?” 남자는 강준에게 다가와 몸을 밀쳤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의 기억이 강준의 눈앞에 떠올랐다. 기억 속의 남자는 몰래 주머니에 있던 휴지에 쌓인 작은 쇠붙이를 해장국 그릇에 넣었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휘휘 젖고는 주변을 눈치를 살피다 쇠붙이와 함께 음식을 입에 넣고는 우물거렸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남자의 다른 기억도 계속 이어졌다. 남자는 다른 식당에서도 행주 조각을 일부러 음식에 넣고는 이물질이 나왔다며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이거 인터넷에 확 터트려 버려? 장사 더 못 하게 해 줘?” 기억에서 빠져나온 강준의 앞에 남자는 은근히 주인을 협박하는 말을 내던지고 있었다. “아이고 손님! 일단 죄송합니다. 저희가 보상은 해 드릴 테니까 화 좀 가라앉히시고 말씀하시죠…….” 식당 여주인은 소란이 나는 것보다 적당히 무마하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이었을 터였다. “강준 씨, 블랙 컨슈머가 분명한데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옆에 있던 최은정 팀장이 속삭였다. “어떻게 하긴요.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죠. 분명히 오늘 처음 저런 건 아닐 겁니다. 조사해 보면 이력이 나오겠죠.” 강준은 핸드폰을 꺼내 112 버튼을 눌렀다. 잘하면 보험사기 신고포상금까지 받아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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