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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 아내 살인사건 (4) (60/250)

060. 아내 살인사건 (4)2022.01.29.

TV 화면에서는 필리핀에서 벌어진 한인 간 청부살인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시신이 3구나 발견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중 1구의 시신은 국내 모 병원장의 실종된 아내로 밝혀져 경찰이 본격 조사에 나섰습니다! 파라냐케의 한 주택에서 발견된 시신이 이태경의 실종된 부인으로 알려지자 국내 방송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건추적 24시에서는 ‘엘리트 의사의 아내 살인사건’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이태경 원장의 보험사기 행각을 다뤘다. 이제는 일개 보험사기 사건이 아니라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강준과 이진철 경감, 그리고 시사뉴스닷컴의 함지훈 기자가 다시 연남경찰서 뒤편의 포차에 모였다. “박 대리님, 이게 생각보다 일이 커졌네요. 송종철이 그간 한두 명을 죽인 게 아니었던 것 같더라고요. 이건 청부 살인조직단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이진철 경감은 이번 일로 인해 광역수사대로 차출되어 필리핀 한인 조직에 대한 수사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그건 강준이 내심 바랬던 바이기도 했다. 광역수사대는 관할 지역을 넘어서 수사할 수 있는 부서였다. 그런 부서에 이진철이 있다는 건 강준으로서도 공조를 이어나가기 훨씬 수월해진다는 의미였다. “앞으로 광역수사대에서 말뚝을 박으시죠!”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물론 또 다른 쪼임이 있긴 하겠지만, 적어도 지역 카르텔들에 압력을 받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강준의 덕담에 화답하는 이진철이었다. 그로서도 임철호 서장을 비롯한 윗선의 압박에 꽤 진력이 나 있는 모양이었다. “근데 경감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만약에 송종철이 감방에 있는 박성우가 모든 범행을 저지른 거라고 우기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뉴스를 지켜보고 있던 함 기자가 국물을 한 숟갈 뜨면서 이진철에게 물었다. 방송국 뉴스보도국과 사건추적 24시에 기초 자료를 제공한 이는 바로 함 기자였다. 그는 보험 살인사건이라는 지금의 이슈를 필리핀 살인 청부 조직이라는 더 큰 이슈의 판으로 키워볼 요량이었다. “둘 중에 범인이 있는 건 분명하니, 공모 혐의로 검찰이 수사 방향을 짜지 않을까 합니다.” “조직범죄 쪽은 어떻습니까?” “자기네들도 그렇게 되면 불리하다는 걸 아니 그것만은 피하려고 하겠죠. 아마…… 둘 다 서로 간의 관계를 부정하려고 할 겁니다.” “흠…… 사건추적 24시에서도 PD가 직접 필리핀에서 갔었다고 하더라고요. 시체 처리를 직접 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하던데…… 그건 어떻게 됐나요?” “말단 조직원들이 원래의 은거지에서는 도주했는데 아직 필리핀 내부에 있는 거로 파악됩니다.” 강준은 배필립의 3층 저택이 생각났지만, 정확한 정보가 아니기에 입을 열지 않았다. 수사에 혼동만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감님도 이번에 현지 수사에 참여하시나요?” “아마, 그럴듯합니다. 현지에 파견할 수사팀을 구성하고 있거든요.” 필리핀 현지 경찰과의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았다. 한국 경찰이 직접 파견되어 의지를 갖고 수사에 착수해야지만 관련자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 “어쨌든 함 기자님의 공이 큽니다. 아마 언론 보도가 아니었으면 이 사건도 그냥 묻혔을 겁니다. 근데, 정말 시사뉴스닷컴에서는 언제 기사를 내실 생각입니까?” “송종철을 잡게 되면 제일 먼저 알려주시죠. 저도 특종 한번 잡게요.” “물론이죠. 제가 국제전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경찰에서는 주범으로 특정된 송종철이 다시 필리핀으로 출국을 한 상태라고 발표했다. 이진철도 그가 필리핀의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는 외딴 섬으로 도주한 거로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강준이 회귀 전 기억하는 송종철은 분명 국내에서 붙잡혔었다. “이 경감님, 송종철이 혹시 국내에 있지 않을까요?” “이미, 출국 기록이 확인됐습니다. 근데…… 왜 한국에 있을 거라고 보시는 건가요?” “아……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하하! 가끔 박 대리님은 싱거운 소리를 하시네요.” 그 말을 들은 이진철은 강준이 농담을 하는 줄 알고 웃어넘겼다. “참! 김용식의 행방은 어떻게 됐나요?” “유성 쪽에서 샅샅이 뒤졌는데……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물론 의지의 문제지만요.” “경감님이 필리핀에 가 계시는 동안 김용식은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아? 정말요? 저희가 해야 할 일을 매번 박 대리님께서 하시네요. 근데 이태경 원장을 검거하면서 박 대리님도 성원화재에서는 크게 성과를 올리신 거 아닌가요?” 옆에 있던 함지훈 기자가 거들었다. “그러게요. 성원화재에서 보너스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보험업계에서는 이제 성원화재 보험조사팀에 걸리면 절대 못 빠져나간다는 얘기가 돌더라고요.” “저야, 일개 직장인일 뿐이죠. 자! 다들 한잔 마시죠.” 강준은 오랜만에 웃었다. 빙의한 이후 편안하게 살아갈 방법은 많았다. 연남시가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엔 재개발이 추진되고 아파트값이 오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아니면 2008년에 다가올 리만브라더스의 사태를 예견하고 폭락장에 투자할 뭔가를 찾아볼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어차피 덤으로 사는 인생! 돈에 연연하며 살지 말자! 돈은 언제든 다시 벌면 되지!’ 강준은 오늘따라 보험조사관으로서의 사는 자신의 두 번째 인생이 꽤 마음에 들었다. “박 대리님, 그 소식 들으셨어요? 이태경 원장이 대형 로펌에 변호를 맡겼다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계획적인 살인죄로 들어가게 되면 장기수가 될 게 뻔하지 않습니까? 받아둔 보험금으로 마지막 발악을 해 보는 거겠죠.” 함 기자는 소주를 한 모금 마신 뒤 중얼거리듯 한마디를 던졌다. “진짜 악마 같은 새끼예요…… 어떻게 제 마누라를 그 먼 나라에 버려두고 올 수가 있는 거예요?” “범죄학에서는 요즘 그런 놈들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더군요…… 이태경은 분명히 사이코패스 기질이 높은 놈일 겁니다.” 강준은 갑자기 이태경의 법정 공방이 궁금해졌다. * * * 석 달 뒤. 연남 지방법원. 피고 이태경 1심 선고일. 강준은 법원 출입구에서 한국보험의 서동휘 팀장을 만났다. 한국보험은 이미 이태경에게 지급한 15억 원의 보험금 반환에 대한 민사소송까지 제기한 상태였다. “박강준 대리님! 그간 잘 지내셨죠? 이번 사건에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닙니다. 저번 추소희 사건 때, 서 팀장님이 형사과를 움직여주셨잖습니까?” “하하! 그거야 당연히 보험사끼리 협조해야 하는 일이었죠. 그나저나 피해자 부모가 참 안됐습니다.” “네? 피해자 부모요……?” 강준은 그간 이태경에게 살해당한 김진아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이태경의 혐의 입증에 대해서만 신경 썼을 뿐이었다. 서동휘 팀장이 가리키는 곳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구부정한 모습으로 누군가를 부축하며 법정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숨진 김진아의 친정 부모였다. “두 분이 김진아 씨가 실종된 이후에 계속 필리핀에 계셨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든 딸을 찾겠다고 강남에 있는 아파트까지 다 팔고 사방팔방 뛰셨다네요…….” “사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답니까?” “그게…… 참, 아이러니한 게 장인에게는 그렇게 잘하는 사위였다고 하네요. 보험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돈도 일부 필리핀으로 보내줬고요…….” “의심을 피하려는 수작이었겠죠.” “그렇죠. 하여간 치밀한 놈입니다.” 노인은 서동휘 팀장을 발견하고는 눈인사를 건넸다. “두 분이 안면이 있으시군요.” “네, 이번 사건이 불거지고 저를 찾아오셨더라고요. 보험증서도 확인하고…… 보험금 수령 내역도 확인해 가셨죠. 그때 아버님 표정이 잊히지 않네요. 배신감에 부들부들 떠셨으니까요…….” “그렇겠죠.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을 당했으니…….” 서동휘 팀장은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아버님, 많은 사람이 이 사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사형 선고가 날 겁니다.” “……그래야지요. 애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그리고 이분이 김진아 씨 사건을 결정적으로 다시 파헤쳐 주신 분입니다. 필리핀에서 따님 시신을 직접 찾아주신 분이시기도 하고요.” 노인은 강준을 바라보더니 울컥하는지 두 손으로 강준을 붙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맙소…… 선생이 아니었다면 우리 진아…… 시신도 못 찾을 뻔했소…… 흑흑!” “기운 내십시오. 이태경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을 겁니다.” “그놈…… 내가…….” 말을 잇지 못하는 김진아의 친부였다. 그 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강준에게 예상치 못하게 상대의 기억이 읽혔다. 아무런 말도 없이 칼을 품에 숨기는 모습이었다. 좁은 공간. 그곳은 법원 건물의 화장실이었다. 엑스레이 검문대를 피하려고 미리 건물 내부에 숨겨놓은 칼이었다. ‘막아야 한다……!’ 강준은 노인의 눈을 바라봤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은 그의 절절한 심경을 대변하고 있었다. 당장 그의 몸을 수색하고 칼을 빼앗고 싶었지만, 강준은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버님 힘내십시오. 이제 어머님을 챙길 분은 아버님 밖에는 없습니다…….” “흐흐……흐흑…….” 서동휘 팀장의 위로에 김진아의 친부는 더 울음소리가 커졌다. 죽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 버린 딱한 노인의 모습이었다. “서 팀장님, 오늘 재판에서 아버님은 제가 챙기겠습니다.” 강준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칼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김진아의 친부 곁에 있어 주는 것뿐이었다. ‘왜 피해자가 더 아파야 하나…… 제길!’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중대 형사사건이기에 3명의 판사가 심리를 위해 법정에 들어섰다. 피고석에는 수형복을 입은 이태경과 그의 호화 변호인단이 함께 서 있었다. 이태경은 방청석을 한번 쓱 훑었고, 강준의 옆에 있던 김진아의 친부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외면해 버렸다. “저런…… 죽일…… 놈.” 강준은 그의 어깨를 붙잡아주며 진정시켜줄 수밖에 없었다. “피고 이태경 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판사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재판장이 선고문을 읽기 시작했다. 치열한 법정 공방이었던 만큼 선고문은 길었다. 이태경의 변호인단은 주범인 송종철이 잡히지 않았다는 걸 빌미로 살인 청부에 대한 물증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태경의 통화 내역과 박성우의 진술, 그리고 필리핀에서의 미심쩍은 행적을 토대로 그의 살해 혐의를 추궁하고 있었다. “본 사건은 피고 이태경이 가족으로서 신의를 보여야 할 배우자를 금전적인 이익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살해한 정황이 매우 농후하다. 따라서 본 재판부는 피고 이태경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땅! 땅! 땅! 사형 판결이 내려질 줄 알았던 방청객들이 웅성거렸다. 그리고 강준의 옆에 있던 김진아의 친부가 품 안에 있던 칼을 빼려고 했다. 그 순간, 강준은 그의 팔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아버님! 저놈은 사이코패스입니다. 그들에게 제일 고통스러운 건 자기 맘대로 하지 못하는 감방에서의 무기징역일 겁니다!” “…그래도 내 손으로…크흑……흐흐흑!” 김진아의 친부는 눈물을 쏟아냈다. “평생 희망도 없이 감방에서 썩는 이태경의 모습을 지켜보시죠. 그게 저놈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복수가 될 겁니다.” 옆에 있던 김진아의 모친도 함께 울먹이며 그를 설득했다. “영감……이제 다 끝났어요…… 우리 진아도 이제는 한을 풀었을 겁니다.” 방청석에 앉은 두 노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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