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 아내 살인사건 (2)2022.01.27.
청주교도소. 박성우는 한동안 강준의 얼굴을 빤히 노려보기만 했다. 그렇게 면회 시간의 절반이 지나갈 무렵 그는 입을 열었다. “왜 온 거야?” 강준도 바로 답해 주고 싶지 않았다. 정보의 비대칭성! 아쉬운 건 감방에 갇힌 박성우였지, 강준이 아니었다. “그냥 어떻게 지내나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거든. 내가 너 때문에 몇 개월 동안 식물인간으로 살았었잖아.” “그 얘기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냐?” “네 친구 들어간 거 알아?” “뭐? ……친구?” “어, 너 예전 감방 동기. 흑곰!” 순간 한쪽 뺨이 씰룩거리는 박성우였다. 그의 반응으로 봐선 흑곰이 뉴월드 상가의 가스 폭발범으로 교도소에 들어왔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뉴스에 크게 보도된 사건이지만, 흑곰의 본명인 성병철은 직접적으로 보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엄연히 따지면 박성우는 필리핀 사업을 담당하던 송 사장의 부하였다. 원래부터 전대성 회장이 연남시에서 벌이는 사업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던 그였다. 하지만 그를 이 바닥으로 끌어들인 흑곰이 붙잡혔다는 건 박성우로서도 큰 충격이었다. ‘몸을 접촉할 수 없으니 기억도 읽을 수가 없군…….’ 강준은 박성우의 기억을 직접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럼, 다시 보자…….” 강준은 그 말을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성우가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다음날 면회실. 다시 면회실로 나온 박성우는 전날보다는 좀 더 편안해진 표정이었다. 중키에 날렵한 체형, 그리고 감정을 알 수 없는 찢어진 눈. 예전의 그의 특징은 그대로였지만, 전보다 몸은 조금 말라 있었다. “여기 들어와 있으니까 뭐가 제일 좆같은지 알아?” 먼저 말을 거는 박성우였다. “글쎄…… 뭐가 제일 좆같은데?” “의심! 한번 의심하게 되면 계속 의심하게 되거든. 근데 문제는 여기 감방에서는 그게 한없이 커져! 끝도 없이!” 강준은 박성우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소외된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박성우는 슬슬 의심이 생겨나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보스인 송종철 사장이 뭘 약속했든, 그 약속은 이제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2003년에 한국에서 온 부부가 있었지? 이태경이라고? 본인이 의사인데 마취제로 아내를 살해하고 시체 뒤처리는 현지의 누군가에게 부탁했지. 그 부탁받은 사람이 누군지…… 박성우 넌 알지?” 갑자기 훅 들어오는 강준의 말에 그는 눈썹을 치켜뜨며 노려봤다. 말은 안 했지만,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처음 들어보는 얘긴데……?” “송종철 사장이 벌써 불었는데? 경찰 조사에서 이태경 아내 시체 처리를 도와준 게 바로 너라고 말이야!” “뭐? 너 나하고 장난치냐? 지금!” 수형자 신세지만 박성우가 마음만 먹는다면 전화 통화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도 있는 사항이었다. 하지만 박성우가 더 크게 흥분한 것은 그런 확인이 힘든 상황이라는 거였다. “송 사장이 널 버린 거야! 어차피 감방에 있는 네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테니 얼마나 좋아!” “……시발새끼……!” 박성우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근데 말이지…… 송 사장이 시체를 어디다 버렸는지 모른다는데, 뭐 아는 거 없나?” “……난 모른다니까!” 박성우는 버럭 소리를 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쉽게 입을 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모른다고? 그럼 나는 가볼게. 그거 알아보러 온 거였거든.” 강준은 미련 없이 면회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강준은 접견을 신청했다. 면회실에 나타난 박성우의 표정은 또 달라져 있었다. 그는 송종철 쪽으로부터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지 못한 듯했다. “이건 내가 엄연히 들은 거야…… 지금 와서 왜 얘기를 하냐면 나도 가만히 있다가 엉뚱한 죄를 몽땅 뒤집어쓸 수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박성우 당신이 하지 않은 일이라는 거죠?” 강준은 이전 두 번의 접견과는 달리 갑자기 존칭을 써줬다. “거기서 한국 사람 죽이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몇백이면 돼. 대상이 필리핀 현지인이면 단돈 몇십만 원에도 가능하다고.” 필리핀 현지에서 청부살인업자인 슈터들은 대부분 마약 중독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약을 구하려는 절박한 상황 때문에 단돈 5만 페소에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이태경의 아내 김진아 시신은 어떻게 처리한 겁니까?” “아……그거?” 박성우는 강준의 눈치를 살폈다. 그게 바로 자신이 가진 핵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 넌 일개 보험사 직원일 뿐이잖아. 정말 이 사건이 정말 커진 거라면 형사가 나를 찾아와야 하는 거잖아. 안 그래?” “시신 처리를 의뢰한 이태경이 아내 앞으로 보험을 들고 있었어. 자그마치 15억 원이라는 큰 사망보험금이었지. 이걸로 이유가 됐나?”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 박성우였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점점 그가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 송종철 사장은 경찰과 합의 중이거든. 너도 알다시피 내가 경찰에 라인이 하나 있어. 그래서 널 잡은 거기도 하고.” 망설이던 박성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도 들은 건데, 송종철이 마닐라 외곽에 지은 빌라에 시체를 유기했다고 들었어. 시체를 유기한 장소에 시멘트를 바르고 작은 창고를 지은 거지. 아무도 못 파보게 말이야.” “거기가 어딘데……?” “하하! 그건 네가 알아봐야지. 말했잖아. 나도 들은 것뿐이라고.” 강준은 당장이라도 그의 기억을 읽어내 그가 한 말의 진위 여부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단단한 유리벽이 강준과 박성우를 가로막고 있었다. * * * 필리핀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강준은 직접 마닐라를 찾았다. 박성우가 말한 마닐라 외곽의 빌라를 김준혁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아요. 제가 감금되어 있을 때 땅을 파헤치거나 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잔디밭 한쪽에 작은 창고가 있는 건 확실해요. 뭘 넣어두는 곳인지는 저도 모르고요.] 김준혁의 증언만으로 박성우의 진술을 믿을 수는 없었다. 단지 창고였던 곳을 허위로 짜 맞춰서 진술한 것일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강준은 이진철 경감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만약 시신이 발견된다면 현지 경찰에 공조를 정식으로 요청하겠습니다.] 거기까지가 이진철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이태경에 대한 살인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는 경찰 조직을 본인 혼자서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강준은 출국장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각종 환영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 중 강준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1층 출국장 앞에 있는 코스타 커피에서 기다리죠. 마지막으로 강준이 박성우를 찾아갔을 때, 그는 자기 대신 배필립을 지목했다. 자기 대신 송종철 사장의 일을 처리하는 해결사로 말이었다. ‘배필립…… 그놈 때문에 송 사장이 붙잡혔었지.’ 강준은 자신이 회귀하기 전 송종철 사장이 입국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들어본 이름이 바로 배필립이었다. 흉악한 범죄자. 캄보디아에서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운영하고 그 노하우를 송종철에게 전해준 자가 바로 그였다. 경찰은 그가 저지른 일들을 추적하다가 송종철까지 수사망에 포착한 것이었다. 하지만 회귀한 세계는 조금 바뀌어 있었다. 송종철은 이미 경찰의 비호를 받는 상태에서 국내로 귀국했고, 이태경의 병원과 관련된 조직적 보험사기 사건에서도 수사 선상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아마 송종철이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자기 사업들을 배필립에게 맡겼을 거다. 제일 노하우가 많은 놈이니…….’ 코스타 커피. 낯선 이국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만, 한국인으로 보이는 자는 없었다. 강준은 차가운 커피를 한 잔 시키고는 자리에 앉았다. 기억을 읽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건 총구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런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강준에게 다가왔다. 그는 현지인이었다. “미스터 박……?” “누구죠? 필립 씨?” “예스.” 그는 강준을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단박에 납치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준은 투자자로 배필립을 만나러 온 격이었다. 다른 투자자까지 끌어들이려면 강준을 해치지는 못할 터였다. 드르륵! 검정색 고급 밴의 문이 열리자 선글라스를 낀 현지인이 강준을 거칠게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안에는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었고, 그 한쪽 편에는 한눈에 봐도 양아치임을 알 수 있는 한국인이 강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박 다니엘이냐?” “네. 당신이 필립 씨?” “어, 내가 배필립이야. 내 얘기 많이 들어봤지?” “여기서 성공했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투자자를 찾으신다고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네? 흐흐! 뭐가 그렇게 급해! 일단 가서 얘기하자고.” 밴이 천천히 출발했고, 이내 차량은 마닐라 외곽으로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가보면 알아!” 배필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준의 머리에는 검은 포대가 씌워졌다. “억!” “괜찮아! 괜찮아~ 이게 우리 방식이니까 이해해. 서로 안전한 게 좋잖아. 안 그래?” 그렇게 두 시간을 달렸을 때 강준의 머리에 있던 검정 포대가 벗겨졌다. 눈앞에는 화려한 대리석으로 치장된 3층 주택이 보였다. “여기가 우리 아지트여. 아지트!” “전 이렇게 갑작스러운 거 별로 안 좋아합니다.” “하! 까탈스럽기는…… 일단 배도 고프니까 먹고 얘기하자고!” 정원의 커다란 수영장을 지나쳐 손님을 맞이하는 커다란 응접실에 다다랐다. 강준은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무선신호가 사라진 상태였다. “에이 여기 전화 안 돼! 워낙 산속이라 말이지.” 능청스럽게 말하는 배필립이었다. 그는 박성우가 얘기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만만한 사람이 아닌 거로 보였다. 그저 송종철의 부하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대여섯 명은 넘어 보이는 현지인들이 음식을 날랐고, 배필립은 그런 상황을 즐기는 듯 연신 히죽거리고 있었다. 상대를 압도하려는 태도였다. “그래,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작은 전당포 운영했습니다.” “뭐? 전당포? 시계 같은 거 맡아주고 그런 데 말이야? 하하!” 배필립이 웃자 다른 부하들도 따라 웃었다. 그 부하들은 라성캐피탈에서 봤던 덩치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날렵한 인상과 단단한 체구의 그들은 언제라도 실전에 투입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여기서 사업한다는 게 뭐…… 쉬운 일이 아니거든.” 초반에 기를 죽이는 배필립이었다. “여기서 전당포 체인을 만드시겠다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한국이나 필리핀이나 전당포가 굴러가는 건 매일반이겠죠.” “에이…… 전당포가 아니라 파운샵(pawnshop)이라니까! 파운샵!” 배필립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현지의 전당포 격인 파운샵이었다. 그는 그 파운샵 체인을 키우겠다면서 한국에서 투자금을 유치하고 있었다. ‘박성우가 얘기해 준 정보가 얼추 들어맞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