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 사무장 병원 (4)2022.01.25.
강준은 송종철의 기억 속에서 읽어낸 단서를 이진철에게 전했다. “유성온천 쪽에 김용식이 있다네요.” 강준은 이진철에게 힘을 실어 주고 싶었다. 서장이 김용식에 대한 수사를 허락하긴 했지만, 그건 이진철이 제대로 파헤치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말씀드렸잖습니까? 제가 여기 연남 출신이라는 거요. 주변에 정보원들이 좀 있습니다.” “아…… 정보원이라…….” 미심쩍은 눈초리의 이진철이었다. 하지만 그로서도 그간의 일들을 돌이켜보건대 강준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 저도 김용식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모릅니다. 제 추측인데…… 아마 김용식이 전에 하던 사업이 동남아 중고차 수출이었으니 그쪽 국가의 인맥을 이용해서 접대부로 일할 여자들을 밀입국시킨 모양입니다.” “그럼 불법체류자들이겠네요?” “그렇죠. 김용식의 거처를 알게 되면 불법체류자 고용으로 확실히 잡아넣을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에도 오히려 제가 강준 씨의 도움을 받네요…….” 경찰 신분으로서 민망해하는 이진철이었다. “아닙니다. 만약 잡게 되면 저도 김용식하고도 대면할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물어볼 게 많거든요.” “그럼요. 제일 먼저 알려드려야죠!” 강준의 뒤에 있던 김준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경감님, 그럼 앞으로 일진병원 수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태경 원장은 어쨌거나 보험사기에 연루가 된 인물입니다. 건강보험 공단에 과도한 비용을 청구한 것도 사실이고요…… 과다진료와 허위 입원…… 더 조사해 봐야죠.” “송종철 사장은 보험사기에서 빠지는 건가요?” “공범으로 엮어 넣으려면 돈이 오고 간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찾기가 쉽지 않아요. 정식 수사를 통해 계좌를 뒤져봐야 하는데…….” 이진철은 윗선에서 송종철을 비호하고 있으니 거기까지 수사할 자신이 없었다. “제가 이태경 원장은 먼저 만나보겠습니다. 어차피 불구속 수사로 가실 거 아닌가요?” “네. 연성보험사기 정도로 구속수사를 하지는 않으니까요…… .” “그럼 또 연락드리죠.” 일진병원 수사에 관한 질문에 곤란해하는 이진철이었다. 강준은 뭔가를 더 물으려는 김준혁을 끌고 연남경찰서를 빠져나왔다. * * * 지글지글 익고 있는 삼겹살. 네모나게 각진 냉동 삼겹살이 불판에서 보기 좋게 오그라들고 있었다. “많이 답답하지?” “차라리 이럴 거면 경찰이 될 걸 그랬습니다.” ‘경찰이 되면 달라질 거 같냐? 답답한 건 매일반이다.’ “그래도 넌 전산 쪽에 특기가 있잖아? 형사들은 매일같이 현장에서 고생해야 하는데 그거 견딜 수 있겠어?” “……매번 잠복만 하라면…… 그건 정말 힘들겠네요…….” “그래, 넌 지금의 보험조사관이 딱이야!” “그래도 필리핀에서 갇혀 지낸 것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집니다. 눈앞에서 범죄단체 두목을 보고도 어쩔 수가 없는 건 너무 억울하다고요!” 김준혁은 필리핀에서 감금되었던 8개월의 시간을 생각하면서 울분을 표출했다. “이진철 경감을 한번 믿고 기다려 보자고. 대한민국 경찰 안 믿으면 누굴 믿겠냐?” 가재는 게 편이라고 빙의 전 경찰이었던 강준은 권력과 돈에 물든 조직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왠지 그 순간만큼은 경찰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이제는 내가 그렇게 물드는 꼴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을 거다!’ “자, 한잔 마시고 다시 일하자! 짠!” 강준은 소주잔의 술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 * * 다음 날 출근한 김준혁은 새로운 정보를 들고 왔다. “박 대리님, 이태경 말입니다…… 이혼 경력이 있었습니다.” “뭐? 결혼을 한 번 했었다는 거야?” “전 부인 명의로 가입된 보험이 있었는데…… 사망보험금을 무려 15억 원이나 타갔습니다.” “아니, 그럼 전 부인이 사망했다는 거야?” “네…… 이태경은 금전적으로 어렵지 않았었나요?” 이태경에 대한 근본적인 전제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강준은 그가 사기를 맞고 어려워진 재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무리수를 두는 과정에서 범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 부인의 사망보험금을 15억 원이나 받았다면 얘기는 달라지는 거였다. “처음부터 우리가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죄송합니다. 대리님…… 제가 서류만 보고 너무 단정해 버렸네요.” “아니야. 누가 보더라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이태경은 머리가 좋은 놈인지도 모르겠다.” 강준은 일진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태경은 그곳에 없었다. 이번에는 연남서의 형사과에서 움직인 것이었다. 강준은 유성온천으로 출장을 간 이진철 경감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감님, 형사과에서 이태경을 데려갔답니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네? 일진병원 건은 우리 경제수사팀에서 맡은 사건인데…… 지금 그게 정말입니까? “혹시 임철호 서장이 지시한 거 아닙니까? 황 반장을 통해서 벌써 움직인 거 같은데요.” 통화음 너머의 이진철은 잠시 아무런 말도 없었다. ―제가 다시 알아보고 연락드리죠. 강준은 다시 김형식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 추소희 사건을 계기로 둘은 약간의 신뢰를 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김 형사님, 저 박강준입니다. 혹시 일진병원 사건 맡으셨습니까?” ―원래 경제수사팀 사건이었는데 갑자기 우리 쪽으로 넘어왔어요. 왜요?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겁니까? 눈치 빠른 김형식 형사였다. “사무장 병원에서 보험사기를 공모한 건인데…… 그게 이태경 한 명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혹시 양태식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시고 계셨습니까?” ―양태식…… 지금 저희가 데리고 있습니다. 이태경 원장하고 같이 소환했거든요. “아…… 혹시 제가 이태경 원장을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조사 중이긴 한데…… 유치장 면회를 하실 수 있게 해 놓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 형사님.” 전화를 끊은 강준은 김준혁을 바라보며 지시사항을 말했다. “김준혁, 너는 이태경의 전부인 사망과 관련된 자료를 좀 뽑아줘. 그리고 보험금 지급시 작성된 조사보고서도!” “네. 알겠습니다. 15억 원이 지급됐는데 보고서가 없을 리가 없을 겁니다!” 강준은 그 길로 연남경찰서로 다시 달려갔다. * * * 유치장의 이태경은 철저히 양태식과 분리되어 있었다. 둘은 입을 맞췄는지 서로 만난 적도 그렇다고 돈이 오간 적도 없다고 했다. 김형식 형사에게도 둘의 관계를 입증하는 건 난항이었다. “박 대리님이 채증한 동영상이 결정적인 거죠. 사실 이제 양태식은 끝났다고 봐야 합니다. 이번에는 초범이 아니라 재범이니까요. 아마 검사한테 몇 년은 구형받을 겁니다.” 이진철에게만 제공했던 노숙자들의 채증 영상은 어떻게 된 일인지 형사과로 넘어가 있었다. “근데 이 동영상은 어떻게 입수하신 겁니까? 전 경제수사팀에 줬는데…….” “에이 같은 경찰 내부에서 그 정도는 공유가 되죠…… 한 경사가 준 겁니다. 서장님 지시사항이었거든요.” 연남경찰서에서 이진철은 여전히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어쩌면 임철호 서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이진철의 조직 내에서의 입지는 변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김탁수 씨와 오민철 씨 같은 노숙자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들 보험사기에 주도적으로 가담했다고 봐야죠. 그간 받은 보험금도 다 써 버렸다고 우겨서 선처받기도 힘들 거 같네요.” 보험사기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그들은 당장 거처도 없는 약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양태식의 제안은 뿌리칠 수 없는 선택이었을 터였다. “그래도 법정 구속은 좀 심한 것 같군요. 어찌 보면 배고픈 사람이 음식 훔쳐먹은 거나 똑같지 않나요?” “박 대리님이 그렇게 인정이 있는 분인지 미처 몰랐네요. 하지만 우리는 범죄를 입증하는 것까지가 저희 일입니다. 무슨 벌을 내릴지는 판사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죠.” 김형식 형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어쩌면 그의 그런 태도는 각종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대하는 경찰공무원의 가장 적절한 태도인지도 몰랐다. ‘난 너무 몰입했었지…… 그래서 불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더 날뛰었던 거고!’ 강준은 새삼 자신이 전대성의 부하에게 살해당했던 폐차장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몸서리를 쳤다. “자! 그럼 면회하러 가실까요?” 유치장 면회에 같이 입회할 형사는 김형식 본인이었다. 이태경은 깔끔한 옷을 차려입은 그대로 유치장에 갇혀 있었던 듯했다. 강준의 얼굴을 보더니, 냉소적인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대한민국 경찰이 범죄자를 옹호하는 조직인 줄은 미처 몰랐네요.” 자신이 고발한 송종철이 잡혀 오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보험사기범으로 몰린 상황을 에둘러 따지는 것이었다. “조사가 끝나면 곧 나가실 수 있을 겁니다.” “보험조사관이 날 만나러 온 이유가 있을 텐데…… 벌써 나를 벌써 보험사기범으로 단정하고 있다는 건가요?” “노숙자들이 벌써 실토를 했습니다. 양태식과 원장님의 공모를 밝히는 건 시간문제일 겁니다. 근데……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요.” 이태경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강준을 바라봤다. 겨우 자신을 잡아넣는 거로 끝낼 것이냐는 의미였다. “결혼을 한 번 하신 적이 있으시더라고요?” 강준의 말에 차가운 얼굴이 더 굳은 이태경이었다. “근데…… 전 부인께서는 사망하셨고 당시 한국보험에서 15억 원의 사망보험금을 받으셨고요.” “그래서요?” 팔짱을 낀 이태경은 계속해 보라는 태도였다. “송종철이 원장님을 협박하고 압박한 건 병원 투자금으로 빌려준 돈 때문이라고 제게 설명하셨죠…… 근데, 현금 15억 원에다…… 의사면허까지 있으시면 충분히 은행에서 대출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태연하던 이태경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뭔가 제가 모르는 사연이 있는 것 같군요. 이태경 원장님의 전 아내께서는…… 어떻게 돌아가신 거죠?” “제가 그걸 왜 박강준 씨에게 말해야 하나요?” 강준은 테이블 맞은편 이태경의 손을 덥석 잡았다. “뭡니까? 이게!” 결벽증이 있는 이태경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그의 기억은 강준에게 읽히고 있었다. 기억 속의 이태경이 바라보고 있는 건 주사기와 베카론이라고 적힌 약물통이었다. [자기야, 이제 우리 그만 마무리해 볼까……?] 이태경은 주사기에 베카론 약물을 주입하고는 침대에 널브러진 아내의 팔뚝에 주사했다. 마치 환자를 다루듯 능숙하게 약물을 주입한 이태경은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태경입니다. 네…… 지금 마카티에 있는 호텔 15층에 있네요. 선금은 보냈으니 사람들 보내시죠.” 전화를 끊고는 1인용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이태경이었다. 그는 리모컨을 집어 들고는 버튼을 틀었다. 어디에선가 잔잔한 피아노곡이 흘러나왔고, 이태경의 기억은 거기에서 끊겨 있었다. 기억을 다 읽은 강준의 눈앞에는 흥분한 표정의 이태경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냐고요…… 당신!” “송종철 사장한테 크게 부탁한 게 있었군요. 협박을 받을 만했어요. 이태경 원장님!” 눈을 부릅뜬 강준의 앞에 앉은 이태경은 처음으로 당혹감을 느낀 듯 겁을 집어먹은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