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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 사무장 병원 (3) (55/250)

055. 사무장 병원 (3)2022.01.24.

일진병원 앞. “정말 여기에 송종철이 나타난다는 겁니까?” “원장인 이태경이 말한 거니 믿어 봐야죠.” 이진철 경감은 경제수사과의 형사들을 데리고 송종철이 나타난다는 일진병원의 맞은편 길가에서 대기했다. “박 대리님, 제가 알아보니까 송종철에 대한 수배가 이미 풀려 있었더라고요. 송종철도 아마 그걸 알고서는 입국했을 거고요.” 강준에게는 새로운 소식이었다. “네? 경찰에서 수배를 풀었다고요? 송종철이 아니라면 지난번에 발견된 현금 뭉치를 설명할 길이 없을 텐데요?” “그거야…… 이미 감방에 있는 박성우한테 덮어씌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면 필리핀 도박사이트에 대한 송종철의 혐의는 완전히 없어지는 거고요…….”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는 이진철이었다. ‘하긴 전대성이 본격적으로 경찰들을 구워삶기 시작하던 게 이맘때쯤이었으니까…….’ 강준은 빙의 전 형사과의 말단 형사들까지 모조리 전대성의 돈을 먹었던 게 생각났다. 그리고 동시에 몇 년 뒤에 전대성에게 버림받은 송종철이 어떻게 잡혀 들어갔는지도 기억이 났다. 강준은 옆자리에 앉은 이진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제 경찰이 아닌 강준이 송종철을 잡으려면 현직 경찰인 이진철의 손을 빌려야 했다. “경감님, 송 사장 혐의는 입증해낼 수 있을 겁니다.” “네? 어떻게 말인가요?” 눈을 크게 뜨고 되묻는 진철이었다. 진철의 마음속에는 이제 강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송종철의 자금 흐름을 털어 보면 필리핀 도박사이트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포 통장을 이용했다면…… 그것도 흔적을 찾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아뇨. 송 사장은 의심이 많은 놈이라…… 안전한 창구로만 돈을 보냈을 겁니다.” “안전한 창구라면……?” “YS무역! 김용식을 먼저 찾아야겠죠.” 진철은 잊고 있었던 김용식의 존재를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김용식이 그동안, 이 바닥에서 안 보였었네요” “송 사장의 비밀금고를 털렸으니…… 수사를 피해 잠시 숨어든 걸 겁니다.” 이진철은 김용식과 송종철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잠시 생각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이진철은 핸들을 주먹으로 살짝 치면서 입을 열었다. “YS무역에서 필리핀으로 중고차 수출을 하는 거로 서류를 꾸며서 환전을 해 준 거군요!” “네, 맞습니다! 아마도 중고차 가격을 부풀려서 수출실적을 만들고 부풀린 금액만큼 송 사장의 비밀 금고에 돈을 넣어 줬을 겁니다. 그러니 김용식의 계좌를 털어서 역추적해가다 보면 송종철과 관련된 계좌들이 나오겠죠.” “하긴 대포 통장이라고 해도 계속 반복해서 이체한 흔적이 있을 테니까요.” “수출 시기와 맞물려서 송금된 내역들을 살펴보면 범죄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송종철이 윗선에 비호를 받고 있더라도 김용식만 잡으면 되는 거군요.” “문제는 지금 그 김용식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거죠.” 이진철은 답답한 듯 말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김용식은 제가 찾아보죠. 그게 우리 경찰이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경감님.” 그때, 한 고급승용차가 병원의 입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뒷좌석에서 예의 그 하얗게 센 머리를 왁스로 바짝 발라 넘긴 송종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감님! 저기 송종철입니다!” 이진철은 망설이지 않고 길 맞은편에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에게 손짓했다. 수신호가 떨어지자마자 형사들이 단박에 송종철과 그를 따라온 부하 한 명을 둘러쌌다. “뭐야? 니들은?” “송종철 씨, 협박과 공갈 혐의로 긴급체포하겠습니다!” “영장 갖고 왔어?” “긴급체포는 영장이 필요 없습니다! 자! 미란다 원칙 고지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체포를 당하는 내내 태연한 표정으로 진철을 빤히 바라보는 송종철이었다. 마치 위협하듯이 말이었다. “너희 서장도 니들이 이러는 거 아냐?” “송종철 당신은 명백한 범죄행위로 인해 체포되신 겁니다. 신고자가 있었고요.” “신고자? 신고자 누구!” 송종철은 아직 자신이 어떤 혐의로 체포당하는지를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많은 이들에게 협박과 공갈을 일삼아 왔기 때문이었다. “여기 일진병원! 당신이 여기 원장 협박해서 돈 뜯어내려고 했잖아?” “뭐? 협박?” 그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강준이 나섰다. “송종철 씨, 이 병원 원장인 이태경 씨를 보험사기범으로 몰아가려고 했다죠? 허위 교통사고 환자들까지 입원시키고요.” “뭐어……? 이태경 그 자식이 그래?” “네. 일진병원에 대한 보험사기를 조사하던 중 병원장이 협박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경찰에는 제가 대신 신고한 겁니다.” 그제야 모든 일을 알겠다는 듯 송종철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더 말을 보태지 않고는 차에 순순히 올라탔다. 송종철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연남경찰서 경제수사과. 취조실의 송종철은 여유만만한 표정이었다. “양태식을 시켜서 노숙자들의 통장을 관리하고, 거기에 들어온 보험금을 갈취한 거…… 인정 안 하실 겁니까?” “난 전혀 모르는 일인데?” “벌써 김탁수 씨와 오민철 씨가 다 불었어요.” 이진철의 추궁에 송종철은 코웃음을 쳤다. “이 경감…… 정말이야? 그 누군지도 모를 새끼들이 내 이름을 대고 자기 보험금을 갈취했다고?” 송종철은 이진철의 코앞에 대고 눈을 부라렸다. 이미 모든 걸 간파하고 있다는 듯이 말이었다. 이진철의 유도 심문은 송종철에게 먹혀들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다시 몸을 젖힌 송종철은 여유 있게 취조실의 거울을 응시했다. 그 거울 너머에 자기편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벌컥! 송종철의 기대에 부응하듯 취조실의 문이 열렸다. “경감님, 서장님이 찾으십니다…….” 경찰서장 임철호는 이진철 경감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이진철은 이미 각오했던 일이기도 했다. 똑똑! “송종철 긴급체포했다며?” “네. 병원장을 협박한 혐의로 체포한 겁니다.” “취조실에서는 다른 걸 물어봤다며? 양태식이랑 연관 지어 보려고?” 이미 서장은 이진철의 취조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네. 양태식이 노숙자들 명의로 보험 가입을 했더라고요. 자기네들끼리 사고를 내고 병원에 입원한 다음에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받으면 양태식하고 나눠 가지는 거죠.” “그럼, 양태식을 잡았어야지?” “양태식 위에 실질적으로 송종철이 있습니다. 일진병원에 투자를 한 것도 송종철이고요. 결국, 일진병원은 사무장 병원인 거죠.” 인상을 찌푸리는 임 서장이었다. “사무장 병원 그거 불법이잖아! 그럼 병원장부터 조져야지! 엄한 송종철부터 잡아들이면 나보고 어쩌자는 거야?” “병원장이 송종철을 협박과 공갈로 신고했습니다.” “뭐? 병원장이 직접 신고했단 말이야?” “네, 48시간 이내에 혐의 입증하겠습니다!” 긴급체포 시에는 48시간 동안 혐의를 입증해 관할 법원의 판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했다. “풀어줘!” “네? 풀어주다니요? 엄연히 신고자가 있는데…… 그냥 풀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거 병원장의 일방적인 주장이잖아! 네 입으로도 그랬잖아. 사무장 병원이라고! 그럼 둘이 짜고 친 건데 한쪽만 협박범으로 몰고 가면 되겠어?” 서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진철은 송종철을 잡고 싶은 욕심이 과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장님, 전에 박성우 잡힐 때, 야외 창고에서 현금 뭉치 발견된 거 있잖습니까?” “어, 있었지. 그거 네가 전대성 회장 돈이라며 빡빡 우겼었던 거 아니야?” “송종철이 필리핀에서 도박사이트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범죄자금입니다. 이번 기회에 송종철을 잡으면 그것까지 줄줄이 밝혀낼 수 있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밝혀내? 고집부리지 말고 풀어줘!” 이진철은 이번에는 그냥 물러서기 싫었다. “YS무역 운영했던 김용식을 통해서 자금 세탁을 했던 겁니다! 김용식 잡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안 그래도 신경 쓸 일 많아 죽겠는데, 지나간 일까지 신경 써야 해?” 잠시 뜸을 들인 서장이 말을 이었다. “송종철 풀어주고 노숙자들 보험사기 정황 있다니까…… 병원이랑 공모한 거 아닌지 그거나 확인해 봐.” “서장님! 그냥 덮으시려는 겁니까?” “이 경감, 흥분 가라앉혀…….” 서장은 이진철의 낯을 한번 살피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야…… 나라고 뭐 마음 편한 줄 알아? 위에서 누르지 밑에서 안 따라오지, 나도 죽을 맛이다.” “그러니까 제가 이번에 확실하게 지난 사건까지 묶어서 해결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내가 볼 땐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아! 송종철 엮으려는 게 너무 허술하다 이 말이야!” 서장도 막무가내로 이진철을 몰아붙이진 않았다. 더 확실한 뭔가를 가져오라는 거였다. “알겠습니다…… 송종철은 풀어주죠. 그럼, 김용식은 수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불법 외화 세탁! 이거 큰 범죄입니다! 서장님!” 임철호 서장으로서도 거기까지 만류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속으로는 본인도 송종철의 자금 행방을 알아두면 나쁠 게 없겠다 싶었다. * * * 강준은 경찰서를 유유히 빠져나오는 송종철에게 다가갔다. 그는 강준의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강준의 뒤에 서 있는 김준혁의 얼굴은 잘 알고 있었다. “야! 김준혁! 네가 왜 여기서 나오냐?” 김준혁은 송 사장이 운영하는 도박사이트의 개발자였다. “사장님 구경하러 왔죠. 전 사장님이 도박사이트 운영자라는 걸 입증할 증인이기도 하고요.” “하하! 넌 어째 지나간 얘기를 그렇게 구구절절 되씹고 있는 거야? 너랑은 앞으로도 볼 일 없을 거 같은데?” “저 이제 성원화재 보험조사관입니다. 곧 다시 보게 될 일 있을 겁니다.” “아…… 너희들이 나를 일진병원하고 엮었던 보험조사관인지 뭔지 하는 놈들이구나!” 송종철은 자신의 뒷조사를 한 것이 강준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는 강준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야…… 너 월급 얼마 받냐?” “남들 받을 만큼 받습니다.” “하아…… 요즘 세상에 월급 가지고 살 수 있냐? 하루가 멀다고 아파트값은 뛸 테고…….” “꼭 아파트에 살아야만 사람답게 사는 건가요? 죄 안 짓고 남들한테 당당하게 살면 그게 진짜 사람답게 사는 거죠.” 강준은 송종철의 기억을 읽기 위해서 그에게 바짝 다가갔다. “뭐야? 나한테 뭐 볼 일 있어? 경찰서 앞에서 한번 해 보자는 거야 뭐야?” 송종철은 불쾌하다는 듯 강준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강준의 머릿속에는 송 사장의 기억이 들어왔다. 창밖의 화려한 간판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 [요즘 장사는 잘되냐?] [이 장사도 경쟁이 심해서 그저 그렇습니다…….] 김용식의 목소리였다. 실내에는 붉은 조명이 켜져 있었고 한눈에 봐도 주점으로 보이는 복도에는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출신의 접대부들이 보였다. [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합니까?] [좀만 조용히 지내고 있어 봐. 내가 생각하고 있는 동남아 사업이 있으니까…….] 송종철은 탁자 위에 있던 라이터를 집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라이터에는 ‘유성온천’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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