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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사무장 병원 (2) (54/250)

054. 사무장 병원 (2)2022.01.23.

일진병원 입원실. “어이! 간호사 선상! 나 잠깐만 요 밑에 내려갔다가 와도 될런가?” “제가 함부로 외출하면 안 된다고 했죠! 그렇게 맘대로 행동하실 거면 보호자 데리고 오시던지요! 보호자요!” 간호사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김 씨의 막무가내 행동을 제지했다. 하지만 실제로 보호자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입원비나 수술비를 못 내는 등의 경우를 대비해 보증인으로 입원 시에 보호자가 필요한 병원이 간혹 있지만, 일진병원은 아니었다. 이미 보험사에서 입원비와 치료비와 약값이 모두 나오기 때문이었다. 병동을 담당하는 간호사가 정말 힘든 건 나이롱 환자인 노숙인들이 도무지 통제가 안 된다는 거였다. 밤이 되면 술판을 벌이기 일쑤였고, 고성방가를 외치거나 서로 싸움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일진병원에 입원한 다른 정상 환자들은 거의 없었다. 자연스럽게 일진병원은 나이롱 환자 전문병원이 된 거였다. 간호사는 답답한 마음에 원장실로 향했다. “원장님! 정말 이대로 보고만 있으실 거예요?” “서 선생, 왜 그러시죠? 또 무슨 일입니까?” 원장인 이태경은 차분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서 간호사가 볼 때 엉망진창인 병원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사람은 원장이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벌써 자기 소유의 병원을 개업하고 여기저기의 보험 손해사정사들을 통해 교통사고 환자를 끌어들이는 능력도 보여주고 있었다. 적어도 서 간호사의 시선에서는 말이었다. “이번에 입원한 김탁수 씨요…… 통제가 안 되는 거 같아서요…… 차라리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음…… 우리 병원에 온 환자를 내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군요. 제가 김탁수 씨한테는 회진할 때 주의를 시킬 테니까 서 선생님이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이태경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직접 원장실의 문까지 열어주며 서 간호사를 내보내려 했다. 하지만 눈치 없는 서 간호사는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원장님! 회식은 언제 시켜 주실 거예요?” “제가 이번 주에는 조금 바빠서…… 다음 주 금요일은 어떠세요?” “다음 주면…… 전, 괜찮을 거 같아요!” “다른 선생님들도 괜찮을까요?” 잠시 멈칫하던 서 간호사는 이내 말을 이었다. “아마…… 다들 괜찮을 거예요! 원장님, 그럼 다음 주 금요일 저녁은 회식으로 정해진 거예요!” “네, 스케줄 비워두겠습니다.” 원장실을 빠져나온 서 간호사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완벽하냐…… 잘 생겼지, 돈 많지, 능력 좋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네! 게다가 결정적으로 솔로라는 거!” 서 간호사의 흐뭇한 웃음과는 달리 원장실에 혼자 남은 이태경의 표정은 싸늘해졌다. “월급 주고 사람 썼더니만…… 월급 값도 못 하고 쪼르르 달려와서 내 시간을 방해해?” 이태경은 겉으로 남들한테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서 간호사가 보인 선을 넘는 오지랖은 그가 딱 혐오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벌컥! “아이고! 이 원장, 뭐 하고 있어? 지난번엔 내가 보내준 환자들 잘 받았지?” 이태경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하얗게 센 짧은 머리의 사내는 필리핀에서 입국한 송종철이었다. 악연! 둘은 벼랑 끝에서 만난 악연이었다. “뭐하러 여기까지 나오셨어요?” “에이~ 원래 사업이라는 게 자주 들여다보고 그래야 하는 거거든. 헤헤!” 이태경은 송종철의 손가락이 그의 콧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그가 앉아 있는 가죽 소파를 쓰다듬는 걸 목격했다. ‘더럽고 지저분한 새끼……!’ 하지만 이태경은 내색하지 않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건 그가 어릴 때부터 늘 잘해왔던 일이기도 했다. “참…… 보험공단에서 돈 들어온 거 있지?” 어떻게 된 일인지 송종철은 병원에 나오지 않아도 건강보험공단에서 들어오는 입원환자들의 의료비 청구 지급 건에 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네. 지난달 청구 건에 대해서는 지급이 됐습니다.” “미안한데 그거…… 나랑도 좀 나눠야겠어.” “네? 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신지…….” 이태경은 무서운 눈빛으로 송종철을 노려봤다. 병원을 차릴 때의 약속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협조해 주는 대신…… 병원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요?” 이태경은 서랍 속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냈다. 그건 송종철의 병원 투자금을 받으면서 그와 써뒀던 간이계약서였다. 불법적인 사무장 병원이었기에 제대로 된 계약서를 쓸 수는 없었지만, 이태경은 송종철의 말이 달라질까 봐 미리 둘 사이의 약속을 문서화시켜둔 것이었다. “그깟 종이 쪼가리가 무슨 의미라고……쳇! 왜 그걸 자꾸만 들여다봐?” 이번에는 송종철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이태경을 쏘아봤다. “나랑 뭐…… 법대로 하자는 거야? 지금!”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오호라! 나랑 갈 데까지 가보자 이거지? 근데, 이 원장. 당신은 머리 좋은 사람이니까 잘 계산해 봐. 난 그래 봐야 몇 년 살고 나오면 그만이지만, 이 원장 당신은 과연 어떨지 말이야. 크흐흐!” 송종철은 이를 드러내며 ‘큭큭’댔다. 그 모습이 마치 상대에게 달라붙어서 끝까지 단물을 빨아먹겠다는 거머리처럼 보였다. 반면 이태경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얼마를 원하는 겁니까? 병원이 적자여서 문을 닫으면 송 사장님도 그 사업을 계속 못 할 텐데요…….” “에이!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한 곳에서 계속하면 그게 더 위험해. 나랑 같이 시작한 놈들이 왜 다 고꾸라진지 알아? 그게 다 길게 해 먹으려다 꼬리가 잡혀서 그렇게 된 거거든.” 잠시 입술을 달싹이며 고개를 좌우로 꺾던 송종철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내뱉었다. 상대가 어떻게 되든 자기 단물만 빨아먹으면 그만이라는 태도였다. “한 장! 한 장만 준비해 줘. 알다시피 나도 이번에 새로 사업도 해야 하고…… 돈 들어갈 곳이 많거든. 크크!” 송종철이 병원장인 이태경에게 요구한 건 1억 원이었다. 아무리 4개 층을 쓰는 중급병원이었지만, 현금 1억 원을 마련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 드리죠.” “뭐? 가능하겠어? 언제까지 돼?” “저도 돈을 마련하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최대한 노력해 보죠.” 안면을 싹 바꾼 송종철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난 이 원장의 이런 면이 좋아! 공과 사가 아주 명확하거든! 일에 관해서는 아주 프로답고 말이야!” 밑도 끝도 없는 칭찬이었다. 결국, 송종철은 상대의 약점을 잡아놓고 돈 내놓으라고 협박하러 온 거였다. “그럼 또 보자고~! 나 앞으로 자주 올 거야. 그러니까 다음에는 밥이나 같이 먹자고 어때?” “네, 그러시죠.” 송종철이 나간 원장실에 홀로 우두커니 앉은 이태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그러고 있던 그는 책상 서랍을 드륵 열었다. 그 속에는 이태경이 가짜 처방전을 통해 빼돌린 전신마취제인 베카론의 약물통이 있었다. 겉에는 ‘정맥 내 주입 금지’라는 경고 문구가 버젓이 적혀 있었다. “이걸 국소마취제인 나로핀까지 섞어서 사용하면 호흡 정지에 이어 심장이 멎어 버리겠지…… 큭큭!” 이태경은 좀 전까지 자기 앞에서 송종철이 웃던 웃음소리를 일부러 흉내 냈다. 하지만 어색하다는 걸 이내 깨달았는지 원래의 차가운 표정으로 금세 돌아섰다. “그냥 뭐…… 죽여 버리자. 깔끔하게!” * * * 강준은 김준혁과 함께 이태경에 대한 파일을 손에 들고 일진병원으로 들어섰다. “병원장이 순순히 인정할까요?” “정상적인 진료행위였다고 하겠지. 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으니까. 그 서류 뒤에 숨겨진 걸 찾는 게 우리 몫이고.” 본사에서 보험사기에 대한 보고서를 주로 작성해 왔던 김준혁으로서는 이번에야말로 정말 보험사기의 현장을 잡게 되는 것이라 흥분했다. “준혁아, 너는 올라가게 되면 되든 안 되든 여기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 진료기록 좀 달라고 해라.” “간호사들한테 말이죠?” “어, 물론 안 주려고 하겠지. 하지만 그러면서 그들도 뭔가 정보를 흘릴 거야. 사소한 거라도 놓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강준은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원장실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김준혁이 간호사들에게 진료기록을 요구하는 사이에 홀로 원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똑! 똑! “네! 들어오세요.” 한참 진료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의사인 이태경은 원장실에 있었다. “성원화재에서 나왔습니다.” “아…… 보험사에서 나오셨군요. 무슨 용무인지는 모르지만, 아래 원무과에다 말씀하시죠.” 이태경은 태연한 척했지만, 낯선 강준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최근 교통사고 환자가 일진병원에 집중되더군요. 그래서…… 저희가 조사를 좀 해 봤습니다.” “보험사기를 의심하는군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상한 얘기도 좀 들었습니다.” “뭘 말이죠?” “이태경 원장님이 전에 불법시술로 의사면허 자격이 정지되셨더라고요?” 강준의 말에 이태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은 면허정지 기간이 지난 상태입니다. 게다가 지금 당신 얘기는 보험사기와는 전혀 다른 얘기고요.” 예상대로 수비적인 자세로 발뺌하는 이태경이었다. 강준은 그의 기억을 읽고 싶어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서려 했다. “잠깐! 잠깐만요! 스탑!” 자신에게 다가오는 강준을 저지하는 이태경이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저를 압박하시는 거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당장 나가주시죠!” 이태경은 만만치 않았다. 강준이 억지로 기억을 읽어내려 접촉했다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지도 몰랐다. ‘그래, 어차피 기억을 읽어도 그게 단서가 될지 100% 확신할 수는 없으니까…….’ “이 병원 차릴 때 당신 돈으로 세운 거 아니죠? 누구 돈으로 세운 겁니까? 양태식? 송종철? 전대성?” 이태경은 양태식은 알고 있었지만, 전대성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다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전대성? 전대성이 누군가요?” “라성캐피탈 사장, 지금은 RS투자로 연남시 개발사업에 개입하고 있죠. 이 병원도 그 돈이 들어간 거 아니었습니까?” 이태경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의 가시인 송종철을 없애더라도 문제가 단순히 사라지지 않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순간 송종철을 독살하려던 생각을 바꿔먹었다. 차도살인(借刀殺人)! 굳이 자신의 손을 더럽힐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 “송종철 사장한테 병원을 세울 때 돈을 좀 빌리긴 했었습니다.” 순순히 송종철의 이름을 대는 이태경이었다. “정말입니까?” “네, 아까 당신 입으로도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원장님, 양태식도 알고 있죠?” “아뇨. 그 사람은 모릅니다. 전 단지 돈을 좀 빌렸을 뿐이죠. 근데, 솔직히 그 사람 때문에 저도 골치가 좀 아프네요.” “골치가 아프다면……?” “돈을 갚으라고 계속 협박을 해서요. 혹시 그 사람이 데리고 오는 환자들이 보험사기와 연루된 건 아닌가요? 솔직히 말해서 의사인 저도 환자들이 통증을 호소하는데 그걸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거거든요.” 보험사기의 혐의로부터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이태경이었다. 강준은 그걸 눈치채면서도 뭔가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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