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 사무장 병원 (1)2022.01.22.
연남 기차역 앞. 계절이 바뀌는 찬 새벽 공기가 역사 앞 광장을 뒤덮고 있었다. 그 적막한 광장의 주변에서 하나둘씩 허름한 행색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노숙자들이었다. 그들은 어느 봉고차에 올라탔다. 낡은 봉고차는 터덜터덜 디젤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김 씨, 오늘 몇 명 데리고 왔어?” “내가 다 데리고 올 수도 있었는디…… 뭐, 일단 두 명이여.” 차에 올라타기 전 새파랗게 젊은 남자가 예순도 넘어 보이는 남자를 향해 반말로 물었다. 김 씨라 불리는 남자의 얼굴은 제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했다. 게다가 얼굴 대부분이 듬성듬성 난 허연 수염으로 가려져 있었다. “일단 올라타!” 노인에 가까운 김 씨를 향해 반말을 지껄이는 남자는 싸구려 광택이 나는 긴 팔 셔츠를 입고 목에는 번쩍이는 금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다음! 오 씨!” “나여, 헤헤! 오늘은 밥 뭐 주는가?” “에이…… 짜장면인 거 알면서 왜 물어봐.” “탕수육도 시켜 주는가?” “몰라. 그건! 입원만 하면 병원에서 알아서 잘 주겠지! 안 그래?” “나도 알지. 근데 지난번에는 내 잘못이 아니여! 미리 알려 줬어야지!” 인상을 찌푸린 젊은 남자는 귀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오늘은 가지고 온 거야?” “요기! 헤헤! 이거면 될랑가?” 오 씨가 내민 걸 확 낚아채는 젊은 남자는 자신의 눈앞에 대고 자세히 살폈다. 그가 살피는 건 바로 오 씨의 신분증이었다. “오 씨! 이거 동사무소에서 받은 거 맞지?” “아따! 맞다니까 그러네! 내가 일부러 가서 받아온 거여! 못 믿겠으면 도로 내놔!” “알겠어, 성질머리하고는! 얼른 타기나 해!” 젊은 남자는 손을 홱홱 저으며 오 씨를 올려보냈다. 그는 얼마 전 출소한 양태식이었다. 1심에서 살인 청부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이상하게도 2심에서는 살인 청부가 아니라 폭행 사주로 죄명이 뒤바뀌었고, 초범이었던 양태식은 징역 1년이라는 기적 같은 2심 결과를 만들어냈다. 물론 그 뒤에는 양태식을 조직원으로 쓰려는 라성캐피탈의 법률지원이 있었다. 양태식은 구치소로 면회했었던 김우진에게 자신이 출소 후 전 회장의 조직원으로 헌신하겠다는 의사를 전했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가 감방이 아니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노숙자를 상대할 거라곤 그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봉고는 십여 명의 노숙자들을 꽉꽉 채우고 나서야 출발했다. 첫 번째 장소는 목욕탕이었다. “자, 아래위로 하나씩 골라!”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모를 구제 의류를 뒷좌석으로 전달하는 양태식이었다. “들어가서 한 시간 안에 때 빼고 광내서 그 옷으로 바꿔 입고 나오는 거야. 늦는 사람은 빼고 갈 거니까 각자 알아서 하고!” “아이고! 급하기든…… 다들 어여 가자고!” 일행을 데리고 온 김 씨가 한마디를 거들며 봉고에서 내렸다. 노숙자들이 다 내리고 나자 양태식은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곧장 입에 물었다. “시발…… 냄새 존나 역하네…….” 얼굴에 짜증이 가득한 양태식이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벨소리가 조용한 봉고 안에서 갑자기 울렸다. 양태식은 왼손에 담배를 옮겨 쥐고는 폴더폰을 한 손으로 열었다. “네, 사장님! 네…… 네. 지금 씻기고 있습니다! 이거 끝나면 바로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전화를 건 상대는 양태식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송종철 사장이었다. 전화를 끊은 양태식은 창문 밖으로 담뱃재를 탁탁 털었다. “하! 내가 다 알아서 한다니까…… 이 양반도…… 사람 참 못 믿어!” 전화를 끊은 양태식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불평했다. * * * 중앙시장 사거리. 통행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었다. 아직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었고, 교차로에 신호등은 없었다. 서로 조심하며 오가야 하는 곳이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우측 차 우선 원칙에 따라 과실 비율이 7:3으로 나뉘는 곳이었다. “자, 김 씨! 출발해.” “아따! 오 씨 저 양반은 왜 저렇게 느릿느릿 오는 거여…….” 시속 30km도 안 될 것 같은 속도로 오 씨의 렌트 차량이 꾸물꾸물 기어 오고 있었다. “아! 시발! 저 노친네가! 쯧!” 운전석을 잡은 김 씨가 욕설을 내뱉는 양태식의 눈치를 한번 보더니, 과감하게 가속 페달을 쭉 밟았다. 차가 ‘붕’하는 소리를 내며 오 씨의 렌트 차량 우측을 들이받았다. 곧이어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우측 휀다가 찌그러지며 타이어가 끼어 버렸다. 능숙하게 목을 잡고 내린 양태식은 뒷좌석의 동승자들을 내리라고 손짓했다. “김 씨! 내가 몇 번을 말해! 적당히 박으라고! 휀다 먹으면 안 된다고 했지! 쓸데없이 견인차 오고 그러면 우리 돈만 나가는 거야!” 신경질적으로 그 말을 남긴 양태식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보험사가 아닌 병원이었다. “나 양 부장인데…… 입원실 6명 비워놔!” 어느새 오 씨도 차량에서 내려서 타이어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사고 시 오 씨의 차량에는 2명, 김 씨의 차량에는 양태식을 제외하고 4명이 탑승해 있었다. “아이고, 이거 안 되것는디? 타이어가 다 찢겼어.” “뭐야! 타이어가 찢겼다고?” 양태식은 휀다가 찌그러지면서 타이어에 깊은 상처를 일으킨 걸 확인하고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태식이, 내가 이러려고 그런 게 아녀…….” “이런 씨!” 태식은 자신보다 서른 살은 많아 보이는 김 씨를 향해 때리려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김 씨는 그런 양태식의 손짓에 본능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내가 하여튼…… 쯧! 병원 가서 똑바로 안 하면 다들 죽을 줄 알아! 알겠어!” “아……알지. 우리가 잘 할겨…….” 모인 노숙자들은 자신에게 맞지 않은 구제 옷을 입은 채 그 광경을 묵묵히 바라만 봤다. 아무도 양태식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신문지를 덮고 차가운 역사 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잠시의 모욕을 참고 안락한 병원 생활을 하는 게 백배는 더 나았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자기 몫의 보험금까지 주어질 예정이었다. 물론 양태식이 그중 절반을 가로채 갈 테지만 말이었다. 잠시 후, 견인차가 도착했고 오 씨의 차에 탔던 두 명은 비좁은 김 씨의 차에 한꺼번에 타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반면, 양태식은 견인차를 타고는 차량 수리소로 유유히 향했다. 그런 양태식의 행각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는 멀어져가는 견인차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강준이었다. “……여전하네 ……좀 더 거칠어진 거 빼고는.” 새벽부터 강준은 양태식이 노숙자를 태우고 가는 장면부터 사고가 일어난 이후의 모든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했다. 보험사기를 입증하기 위한 채증 작업의 일환이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강준은 전화를 받았다. 강준이 연남시로 내려오면서 함께 지원을 자청한 김준혁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일진병원 ……조사해 보니 사무장 병원으로 의심됩니다. “거기 대표가 누구로 되어 있고?” ―정형외과 전문의인 이태경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곳에서 페이 닥터를 하던 사람입니다. 갑자기 지금처럼 건물 4개 층을 쓰는 병원을 개업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말이 안 되지! 하지만 실질적인 병원 경영을 본인이 하고 있다고 우긴다면 할 말은 없어.” ―자금 출처를 조사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흠 ……한번 조사해 봐.” 사무장 병원은 현행법을 어기고 의사가 아닌 자가 의사를 고용해 차린 병원을 일컫는 용어였다. 물론 대형병원 같은 법인은 제외하고서 말이었다. 얼마 전에 연남시에 개업한 일진병원은 보험사기로 한탕 해 먹고 날라 버리기 딱 좋은 사이즈의 사무장 병원이었다. “김준혁, 어쨌든 지금 그리로 한 무더기의 나이롱 환자들이 갈 거다. 잘 지켜보고 채증 잘하고.” ―걱정 마십쇼! 근데 박 대리님은 여기로 안 오십니까? “어, 난 이진철 경감을 만나보러 가야겠다. 너도 채증 끝나고 나면 그쪽으로 와라.” ―알겠습니다. 그럼 좀 있다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준은 견인차가 향한 반대 방향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거하게 한턱내기로 한 이진철 경감과 약속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포차는 여전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공간. 강준은 마치 그곳이 빙의 전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이어주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박 대리님! 여기 선물 가져왔습니다!” 만나자마자 대뜸 뭔가를 건네는 이진철이었다. “이게 뭔가요?” “부탁했던 이태경 ……전과기록이요.” 강준은 노랑 종이봉투에 든 사건기록을 살폈다. 그건 법원의 재판기록이었다. “내부자료 기대했다면 실망이겠지만, 이걸로도 충분히 파악하실 수 있을 겁니다.”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진철이 경찰 내부자료를 통으로 넘길 리는 없었다. 그로서는 최선의 배려를 한 거였다. “경감님, 불법시술에 의료사고 ……그리고 음주에 폭행이라 ……너무 버라이어티한 거 아닙니까?” “주변 소문에 의하면 이태경이 사기를 한번 맞았다네요. 그것도 아주 크게요 ……그 이후로 무리를 하다가 그런 건지 점점 망가진 거죠.” 벌금형과 의사면허 취소에 이어 마지막의 폭행 건은 6개월의 집행유예로 판결이 나 있었다. “나쁜 짓 많이 했는데 ……감방에는 안 갔군요.” “아마 이번 일로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전과가 소소하지만 화려하니 보험사기까지 걸리면 실형이 불가피할 겁니다.” 벌겋게 버무려진 꼼장어를 입 안 가득 넣은 이진철이 잠시 맛을 음미하며 씹더니 강준의 술잔에 소주를 따랐다. “그나저나 송종철의 행적이 안 보이네요.” “조심하는 거 아닐까요? 지난번 일도 있으니까.” “사실 그 점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필리핀 도박 사이트도 라성캐피탈의 입장에서는 돈줄일 텐데…… 왜 그걸 포기하고 나온 걸까요? 혹시 정말…… 전대성이 자기 조직들을 전부 손 털게 하려는 걸까요?” 강준은 아직 이진철이 전대성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절대 손을 턴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지금까지 전 회장의 뒤치다꺼리를 누가 해 줬습니까?” “그야 금고지기인 김우진이 해 주는 거 아니었나요?” “김우진은…… 흙탕물에 손을 담글 만한 위인이 못됩니다. 원래 이 바닥 사람도 아니고요.” 강준은 젓가락으로 꼼장어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한참을 우물거리다 말을 이었다. “결국, 그간 흑곰이 더러운 일은 다 맡아서 한 거죠.” “성병철 말입니까?” “네…… 지금 구속된 지 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자기 뒤치다꺼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송종철을 불러들인 거군요.” 강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이진철은 아직 완전히 수긍되지 않은 듯했다. “그렇긴 해도 의문이 남네요. 왜 하필이면 경찰에서 주시하고 있는 송종철을 불러들인 거죠? 다른 사람들도 많을 텐데…….” “그거야, 아무한테나 일을 시킬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리고 제 생각엔 경찰 정도는 무마할 수 있는 작업은 미리 해두지 않았을까요?” “사전 작업이라…….” 포차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천막 아래로 비가 조금씩 떨어졌다. “아! 오늘은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제가 김준혁 씨도 불렀거든요. 2차는 한우집으로 예약해 뒀습니다!” 화제를 돌린 이진철은 처음으로 포차가 아닌 곳으로 강준을 안내하려 했다. 강준은 속으로 김준혁이 확실히 먹을 복이 있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