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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 스모킹 건 (51/250)

051. 스모킹 건2022.01.20.

시장 선거 3일 전. 전대성 회장은 한 시간 전부터 한식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한 이는 선거로 한창 바쁜 한승일 시장이었다. 장 보좌관을 통해 어렵게 마련된 자리였다. 선거기간 내내 문화복합단지의 변경안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한승일을 보며 전대성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리고 옛날 버릇들이 다시 튀어나왔다. RS투자라는 그럴듯한 외형의 투자회사를 차려놨지만, 전대성은 여전히 사채를 굴리던 라성캐피탈 시절의 전대성일 뿐이었다. 상대를 겁박하고 압박해 원하는 것을 얻어낼 것! 전대성은 부를 쌓으려면 남의 것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세상의 이치에서 한 치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드르르륵! 격자무늬의 미닫이문을 열고 한승일이 등장했다. “아이고! 전 회장님! 후원회 주축 멤버이신데, 제가 잘 찾아뵙지도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거 선거가 코앞이라 눈코 뜰 새 없군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분명 한승일은 자신을 불러낸 것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저도 그래서 이렇게 급하게 뵙자고 한 것입니다. 시장님을 음해하려는 놈들이 있는 걸…… 제가 알고 손을 좀 썼습니다.” “음해라면……?” 한 시장의 옆에 있던 장 보좌관이 예상하지 못했던 이슈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떤 놈들이 시장님 뒷조사를 좀 한 모양이더라고요.” “못된 짓 하는 도둑고양이 같은 놈들은 항상 있게 마련이죠…….” 탁! 전대성은 USB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한승일에게 건넸다. “이…… 이게 뭡니까?” “선거 때 제일 많이 공격하는 게 성(性) 스캔들이죠. 제가 볼 때는 별것 아닌 일인데…… 룸에서 접대하는 걸 누가 찍었나 봅니다.” 은근슬쩍 약을 올리는 전대성이었다. “웨이터 한 놈이 이 짓거리를 한 걸 붙잡아서 제가 아주 곤죽을 만들어 놨습니다. 아 참! 이건 원본입니다. 제가 그놈 집까지 싹 다 뒤져서 잡아낸 거니까…… 다른 사본은 없을 겁니다.” 한승일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대놓고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전대성이 자신을 위한다며 내놓은 동영상 파일이 실제로는 협박과 다름없음을 그도 모를 리 없었다. “중대한 순간에 전 회장님이 아주 큰 일을 하셨습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제 어디 남입니까?” “전 회장님 얘기는 제가 전해 들었습니다. 수영동을 문화복합단지에 포함해 달라고 요청하셨다고요?” 본론은 먼저 꺼내는 한승일이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시에서 하는 큰 프로젝트에 저도 작게나마 참여해 힘을 보태고 싶은 생각입니다. 수영동도 오래된 도심이라 재개발이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도 수정된 개발안을 만들어 두긴 했습니다. 하지만 개발안 수정이라는 게 시 의회의 협의도 거쳐야 하고, 지역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의도 필요한 부분입니다. 법안의 검토도 거쳐야 하는 부분이고요…….” 탕! 전대성은 마시던 물잔은 테이블에 탕하고 내려놓았다. 순간 내실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저도 그 부분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라는 게 의지가 있으면 어떻게든 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또 세상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저 새끼가 감히 나한테 협박을 해!’ 이를 꽉 다문 한 시장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한번 힘을 써 보죠.” “감사합니다. 전 지금까지처럼 쭉 시장님 뒤에만 있겠습니다. 하하! 자~ 드시죠. 음식 다 식겠습니다.” 태연히 수저를 들고 국을 뜨는 전대성이었다. 하지만 한승일의 얼굴은 불쾌한 듯 일그러졌다. “전 회장님, 선거 막바지라 오늘은 함께 식사하지 못하겠네요. 조만간 다시 식사 자리 마련하겠습니다!” 음식을 남겨둔 채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승일이었다. * * * 결국, 선거에서는 대한당의 한승일이 민한당의 경쟁 후보를 3% 내의 접전 끝에 승리했다. “와! 축하드립니다! 장인어른!” “아빠 재선 축하해!” 한승일은 혹시나 있을 패배를 대비해 가족들끼리 모여 선거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패배하는 선거 방송을 참모들과 함께 지켜보는 모습이 언론에 나가서 좋을 건 하등 없었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던 장 보좌관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재선 축하드립니다. 시장님!” “고맙네. 다 장 보좌관 덕분이야! 허허!” 사람 좋게 웃어 보이는 한승일이었지만, 자신을 골탕 먹였던 전대성만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선거 이틀 전. 한승일 시장은 문화복합단지 수정안을 시(市)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언론은 인기에 영합한 졸속 정책이라고 공격해댔고, 한 시장은 졸지에 지지율이 5%나 빠지는 롤러코스터를 경험했던 것이었다. “수영동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쯧!” 수정안을 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반면, 선거를 코앞에 두고 공격의 빌미만 크게 줬기 때문이었다. “시장님, 후원자들을 초대한 행사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음, 그래야지…….” 옆에 있던 사위 최진태가 끼어들었다. “장인어른! 행사는 저희 성원호텔에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아빠. 우리 그이도 역할을 좀 줘. 너무 내치지만 말고.” “흠…… 알겠다. 최 서방, 그럼 좀 부탁하네.” 한승일은 딸이 그렇게 나오자 그 앞에서 별다른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전대성을 후원자랍시고 끌어온 최진태를 생각하면 미덥지 못한 그가 무척 실망스러웠다. “아, 유진아 넌 잠깐 자리 좀 비켜줘라.” “왜?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래? 우리 그이 혼내려고?” 한승일은 대답 대신 딸인 유진을 짧게 노려봤다. 군소리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알겠어. 어쨌든 아빠 재선 축하해! 앞으로 우리 가족한테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세상 편하게 생각하는 한유진이었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고 나자 한승일의 표정이 뒤바뀌었다. “이번에 후원회 행사에 전대성은 빼!” “네? 아…… 당연히 그래야죠…… 어디 감히 뒤에서 칼을 꽂을 생각을 하다니! 이제 그쪽이랑은 싹 연 끊겠습니다!” 긴장한 표정의 최진태가 장인의 말에 장단을 맞췄다. * * * “송종철이 입국했다고요?” 강준은 을지로 본사에서 이진철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네, 방금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근데…… 전에 뺑소니 사건은 이미 박성우가 단독으로 범행한 거로 돼 있어서…… 당장은 집어넣을 게 없겠는데요? “제가 여기 일이 정리되면 곧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참. 그리고 저 이번에 진급했습니다. 경감으로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회귀 전 남들보다 진급이 뒤처졌던 강준과 이진철이었다. ―위에서 어쩐 일인지 지난번에 성병철을 잡은 건 때문인지…… 승급대상자에 저를 올렸더라고요. “아무래도 언론에 대서특필된 사건이었으니까요. 자기들도 무시할 수는 없었겠죠. 성병철을 잡은 건 거의 이 경위님…… 아니 경감님의 단독 성과나 다름없었으니까요.” ―하하! 그게 어디 저 혼자 한 일인가요? 박 대리님과 함 기자님과 같이 만들어낸 거죠. 전화를 끊은 강준은 혼자 씩 웃었다. “혼자 웃고. 뭐 좋은 일 있어요?” 어느새 다가온 최은정 팀장이 강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진철 경위가 승진했답니다.” “오! 축하할 일이네요. 저희 쪽에서 선물이라도 보낼까요?” “네. 그것도 좋죠. 근데 그것보다 제가 한번 내려갔다 와야겠습니다.” “아예 그쪽에 지사를 하나 차려야겠는데요?” “아무래도 한승일 시장을 잡으려면 그쪽에 신경을 쓸 수밖에요…….” 최은정은 자신의 후계자 구도에 휘말린 강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강준 씨, 안 바쁘시면 잠깐 티 타임 같이 가질까요?” “……그러시죠.” 강준은 어색하게 일어나 최은정을 따라 나갔다. 사내 카페에서 커피를 두 잔 시킨 최은정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전과는 달리 이미 사내에는 그녀가 최창식 회장의 딸이라는 소문이 쫙 퍼져 있었다. “보는 눈이 많아서 신경이 쓰이시나 보네요?” “아무래도요. 여기저기 윤미경 감사의 끄나풀들이 절 지켜보고 있거든요.” “아직 생명보험사 상장 문제는 논의 중이지 않나요?” “곧 결론이 날 거예요. 상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구체적으로 누구죠? 윤미경 감사? 최진태 이사?” “그보다 주주들이죠. 그 사람들은 주식이 상장돼야 수익을 실현할 수 있으니까요.” 강준은 그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은 가진 자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강준이 회귀하기 전이나 회귀한 15년 전의 현재나 똑같이 말이었다. “좌우간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강준 씨가 너무 제 일에 얽히는 게 부담스러우시면 다른 일을 맡으셔도 된다는 거예요. 보험사기와 관련해서라면 서울에도 일은 차고 넘치니까요.” “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뭘 말이죠?” “같은 편 해 드린다는 말요. 그 생각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최은정은 옥상 아래로 시선을 돌려 강준에게서 몸을 돌렸지만, 입꼬리는 벌써 올라가 있었다. “그럼 부담 안 느끼고 말씀드릴게요. 연남시 쪽에서 관용차 보험 입찰에 우리 성원화재를 참여시키려고 하고 있어요.” “그건 좋은 일 아닌가요?” “하지만 밀실에서 이뤄지는 담합으로 보험계약을 따낸다면 그건 반칙이죠!” 최은정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강준의 표정을 한번 살피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건 둘째 오빠의 장인인 한 시장이 몰아주기를 하는 거죠. 아마 그 공공 입찰을 따내게 되면 둘째 오빠는 그룹 내에서 더 탄탄하게 입지를 다질 거예요.” “최 팀장님이 보험조사팀에 있으면 운신의 폭에 한계가 있는 거 아닙니까?” “글쎄요. 전 아직은 보험조사팀이 좋은데요?” 강준은 최은정과 마주 보며 쓴웃음을 웃었다. 어렵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은 곳에 자진해서 뛰어드는 모습이 빙의 전 자신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좌우간 내려가서 최진태 이사가 얼마나 한 시장과 담합하는지를 지켜보고 오겠습니다.” “참, 그리고 전대성 회장이 본색을 드러내고 연남시 이권에 여기저기 개입하는 모양이더라고요. 한승일 시장과 선거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졌다는 얘기도 들리고요.” “그것도 함께 알아보고 보고드리겠습니다.” 강준은 그렇게 얘기했지만,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됐다. 빙의 전 그가 접했던 전대성은 항상 파트너를 의심하고 협박해서 나쁜 결말을 맞이하곤 했었다. 이번에도 다를 것 같진 않았다. “팀장님, 그건 그렇고 송종철 사장이 입국했답니다.” “네? 송종철이요? 그 사람이라면……?” “전대성 회장의 해외사업을 맡은 사람이죠. 지난번에 현금 뭉치가 발견된 비밀창고, 그 돈도 실질적으로는 송종철이 관리하고 있던 자금으로 봐야 하는 거고요.” “경찰은 어떻게 하고 있대요?” “지난번에 수배를 내린 거로 아는데…… 어떻게 무사히 입국할 수 있었는지는 알아봐야 할 거 같네요.” “박강준 대리님…… 이번에는 그냥 경찰에게 맡겨두는 게 어떨까요? 우리가 보험조사관이지 경찰은 아니니까요.” 최은정은 송종철이라는 위험한 인물에 강준이 다칠까 봐 걱정됐던 거였다. “네. 너무 깊이는 안 들어가겠습니다.” “전 보험조사 2팀의 팀장이에요. 강준 씨를 비롯해 준혁 씨, 지희 씨 그 어떤 분도 업무 중에 다치는 걸 원하지 않아요.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할 책임도 있는 거고요.” “알고 있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말을 마치던 강준은 뜻밖의 누군가가 옥상에 나타난 걸 목격했다. 그는 최은정의 이복 오빠 최진태 이사였다. “여! 이게 누구야! 연남시의 수사반장! 우리 성원화재의 보배! 박강준 대리가 아니신가?” 다분히 시비조의 비꼬는 말투로 다가오는 최진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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