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연쇄 살인마 (3)2022.01.19.
김형식 형사는 수많은 사건에 매일같이 파묻혀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사람이었다. 위에서는 자기네들끼리 승진을 위한 줄타기와 친목질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현장에 있는 형사들은 하루하루 사건을 처리하는 것만 해도 벅찼다. 김 형사는 강준이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한 걸 두고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김철영이 정말 얼마 전까지 추소희를 만나고 있었다면…… 김철영도 공범이라는 거 아닌가요?” 강준은 김 형사가 사건 해결을 서두르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김철영은 단순 보험설계사일 뿐입니다. 다년간의 보험사기로 추소희는 김철영이 GA대리점을 내면서 실적이 아쉬운 걸 알고 있었던 거죠.” “그럼, 김철영은 왜 찾아가는 겁니까?” 김 형사는 김철영의 사무실로 운전하며 가면서도 김철영을 왜 찾아가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14곳에 가입한 보험의 보험계약자를 확인하러 가는 겁니다.” “그거야…… 모두 한광수 이름으로 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걸 확인해 보러 가는 겁니다.” 김 형사는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김철영의 사무실은 최근에 지어진 주상복합 빌딩에 있었다. 그럴듯한 인테리어에 확 트인 전망, 하지만 설계사들이 모두 영업을 나가고 사무실에는 김철영과 전화를 받는 여직원 한 명만 남아 있었다. “강준 씨, 내가 경찰에 얼마나 협조했는지 잘 알지? 그리고 그 보험…… 전부 다 해지 요청해놨어. 보험사기는 보험사에서 일방적으로 계약 취소 가능한 거 알지?” 김철영은 자신이 대납한 보험계약들이 문제가 될까 봐 보험 해지부터 해놓으려는 것이었다. “김 설계사님…… 경찰 수사에 협조하신다고 하셨죠?” “아! 물론이지! 그런 악독한 보험 사기범들은 꼭 감방에 처넣어야 한다고! 이 보험사기라는 게 결국은 다 무고한 일반 계약자들 돈을 훔치는 격이거든!” 애써 목소리를 높이는 김철영이었다. “여기 대리점에서 계약한 추소희의 보험계약 서류를 살펴봐야겠습니다.” “그거…… 다 계약 취소한다니까?” “보험계약자가 누군지만 확인하려는 겁니다.” “아…… 알겠어.” 김철영은 보험계약서 한 다발을 들고 왔다. 강준은 그 계약서들을 김 형사와 함께 하나하나 살폈다. “어! 박강준 씨! 여기 한 번 봐주세요. 어린이보험인데 계약자는 추소희지만 보험대상자는 김승현이라는 아이네요.” “아마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일 겁니다.” “호적등본 떼보니까 아이는 없던데요” “그야…… 친양자입양을 보냈으니 법적인 부모 자식 관계는 완전히 끊어진 거죠.” “아……!” 김 형사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근데 그걸 박강준 씨는 어떻게 알고 있었죠?” 형사의 날카로운 눈빛이 강준을 훑었다. 강준은 자신이 빙의하기 전 뉴스에서 접한 거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추소희 씨의 첫 남편 주변인들을 탐문했습니다. 그녀에게 아들이 있었다고 얘기해 주더군요…….” “부지런히도 다니셨네요.” 경찰이 해야 할 일을 강준이 대신한 격이었기에 김 형사는 얼른 말을 끊어 냈다. “어디 보자…… 김승현의 주소가…… 주소가 나와 있지를 않네요?” “어린이보험의 계약자는 친부모인 추소희니까요.” “입양을 보내서 법적인 관계가 끊어졌다고 하지 않았나요?” 강준은 옆에 있던 김철영을 바라봤다. “아…… 그게…… 나도 친양자입양을 보낸 줄은 몰랐지…… 형사님, 저 진짜 몰랐습니다. 서류상으로 추소희가 호적등본을 떼 왔으니까 난 그것만 믿은 거죠” “서류 발급 일자를 확인했을 텐데요……?” “뭐 그런 것까지 꼼꼼히 살피지는 않으니까…….” 김철영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허술한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김 형사님, 이제는 형사님이 알아봐 주셔야 할 차례입니다. 여기 김승현이라는 아이가 어디 살고 있는지 조회 부탁드립니다.” “박 대리님은 그러니까 추소희가 자신의 숨겨둔 아들에게 가 있을 거라는 말이네요?” “아마도요.” 빙의 전 뉴스에서 접했던 추소희의 검거는 대전 인근에서 이뤄졌었다. 그리고 그곳은 추소희의 아들이 입양된 곳 인근이기도 했었다. “자! 그럼 움직여봅시다!” 김형식 형사는 강준과 같이 움직이기를 원하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공조수사였다. “저랑 같이 움직이면 황재규 반장이 싫어하지 않겠습니까?” “범인만 잡아 온다면 싫어할 것도 없죠.” 분명 황 반장이 옆에 있었으면 하지 못했을 소리였다. “예전보다 더 과감해지신 것 같네요.” “그런가요? 원래 제가 소심하지는 않았었습니다.” 강준의 말을 가볍게 받아치는 김 형사였다. 하지만 강준은 연남경찰서 형사과에서 함께 근무했던 시절 그가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잊을 수 없었다. 그는 황재규 반장에게 누구보다도 충성을 다하던 자였다. 물론 어린 자녀가 아프기 전까지는 황재규 반장의 부하이기보다는 형사로서의 직분에 충실했었지만 말이었다. * * * 대전 보문산 입구. 그곳은 점집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주소지에는 목화당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고, 지붕 위에는 점집임을 알리는 희고 빨간 깃발이 펄럭였다. “경찰에서 나왔습니다. 여기 승현이라는 아이가 있죠?” “뭐요? 경찰이라고요……?” 놀라는 중년 부인은 목화당을 운영하는 주인이었다. 굵은 눈매의 그녀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 승현이는 있는데, 그 어미는 여기 없소!” 소리를 크게 지르는데 안쪽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났다. 김 형사는 직감적으로 안에서 추소희가 도주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야! 얼른 뒷문 막아! 넌 밖으로 나가보고!” 같이 온 형사 둘에게 소리치는 김 형사였다. 한바탕 난리가 난 후, 추소희는 바깥으로 나갔던 형사의 손에 팔짱이 끼워진 채 잡혀 왔다. 하얀 피부에 눈에 띄는 외모, 가냘픈 몸매. 그녀는 경찰이 수배를 내린 추소희였다. “엄마……!” 안에서 아들로 보이는 아이가 달려 나왔다. 추소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방에 들어가!’라는 말을 던졌다. 아이는 그런 추소희의 말에 우물쭈물하며 방으로 되돌아갔지만, 눈에서는 두려움이 가득해 보였다. “김 형사님, 어차피 도망가지 못할 테니 수갑은 채우지 마시죠.” “……알겠습니다. 너희 둘은 입구 쪽에서 대기해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준의 사건 개입에 대놓고 불쾌감을 표했던 김 형사였다. 하지만 수배 중인 추소희에 대한 정보를 넘겨준 걸 계기로 김 형사는 강준에게 무척 협조적으로 바뀌었다. “추소희 씨, 여러 말 하지 않겠습니다. 보험금 노리고 한광수 씨에게 제초제를 먹였죠?” “다 알고 오신 거 아니에요? 잡아가세요. 얼른.” 추소희의 당당함에 할 말을 잃은 김 형사는 강준을 돌아봤다. “최근에 가입한 보험계약은 모두 계약 해지가 될 겁니다. 그리고 한광수의 시어머니를 비롯해 전남편과 전남편 여동생의 사망과 상해로 받은 보험금은 모두 반환하셔야 할 겁니다.” “돈은 벌써 다 써버렸어요. 조사해 보면 아시겠지만 제 통장에 돈은 한 푼도 없어요.” “그건 조사하면 나오겠죠. 계좌도 추적하고 매입한 부동산이 있는지도 모두 조사하게 될 겁니다.” “얼마든지 해 봐요. 난 아무것도 없으니까!” 추소희는 모든 걸 포기한 듯 보였지만, 그녀가 숨기고 있는 건 보험금으로 지급받은 재산이었을 터였다. 김 형사가 압박하듯 말을 이었다. “들어가면 당신 사형이야! 알아? 보험금을 노린 계획 살인에 연쇄 살인!” “…….” 입을 꾹 다무는 추소희였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자기 아들이 있는 닫힌 방 쪽을 향했다. 강준은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김 형사님 일단 체포하시죠. 전 이분과 좀 더 얘기를 나누고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간을 드리죠.” 집안에 남은 중년 부인은 자신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는 강준의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다. “추소희가 돈을 맡겼죠?” “난 돈 한 푼 받은 적 없어! 나는 애 맡아준 죄밖에 없다고!” 발뺌하는 중년 부인이었다. “수사가 좁혀오는 걸 눈치채고 보험금으로 받은 재산을 정리했을 겁니다. 최근에 지내고 있던 오피스텔의 보증금까지 싹싹 다 털어서 정리했더군요.” “그거야 나도 모르는 일이지…….” “아이를 왜 맡아준 겁니까? 호적에까지 올리면서 말이죠?” “……애가 불쌍해서 그랬지. 제 엄마가 사주에 살(殺)이 많아서 아들이랑 같이 살면 안 돼. 그러니 누군가 맡아줘야 했을 수밖에…….” 턱에 살이 오른 중년 부인은 그럴듯한 사주 핑계를 대며 둘러댔지만, 강준의 의심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여자는 기억을 읽을 필요도 없겠군!’ “추소희의 돈 때문에 애를 맡은 거 아닙니까?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를 입양하게 된 건 추소희의 부탁 때문이었겠죠. 추소희는 자신과 아이의 법적 관계를 끊으면서 보험 범죄로 벌어들인 돈을 아이에게 준 거고요!” 보험사기로 인한 수익금을 환수당하지 않으려는 추소희의 꼼수였다. 그녀는 이미 자신이 위험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난 모르겠고! 자세한 건 변호사한테 물어 보슈!” “벌써 변호사까지 알아둔 겁니까?” “저 여자가 알아서 한 거니까 나는 잘 몰라!” 추소희는 이미 변호사까지 섭외해 둔 상태였다. 그녀는 치밀한 사람이었다. “범죄수익을 은닉한 죄도 있지만, 그 돈을 받은 사람도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러시는 거 범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겁니다!” “형사 양반, 여기서 계속 이럴 거야? 조사를…… 하고 싶으면 추소희 쟤를 경찰서로 데려가서 하든지! 왜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내 집에서 이래?” 추소희에게 받은 돈은 끝까지 함구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경찰서에서 다시 또 뵙겠습니다.” 강준을 형사로 착각하고 있는 중년 부인이었다. 강준은 경찰서에서 보자는 자신의 말에 중년 부인의 눈빛이 흔들렸음을 눈치챘다. 강준이 바깥으로 나갔을 때, 추소희는 무력하게 양쪽에서 팔짱이 끼워진 채 형사들이 타고 온 봉고차에 올라타 있었다. 그 모습을 언제 방 밖으로 나왔는지 모를 어린 아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엉! 엉! 우리 엄마…… 잡아가지 말아요!” 울음을 터트리는 추소희의 아들 김승현이었다. 추소희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지 않은 채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녀의 냉정한 성격이 드러나는 광경이었다. “그래도 아들 손은 한번 잡아줘야 하는 거 아니오?” 김 형사의 말에 추소희의 옆에 앉은 형사들이 그녀를 차에서 내리게 하려고 했지만, 뒷좌석에 홀로 앉은 추소희는 미동도 없었다. “어차피 이제 내 아들도 아니에요.” 다음 날 언론에서는 추소희가 잡혔다는 뉴스가 속보로 전해졌다. 연남경찰서의 임 서장은 정복을 입은 채 기자들 앞에서 사건 경위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공개적으로 열었다. 황재규 반장은 마치 자신이 범인을 잡은 양 늠름하게 서장의 뒤편에 서 있었다. 하지만 기자회견장 어디에도 김형식 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