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 연쇄 살인마 (2)2022.01.18.
본사에서 날아온 추소희에 대한 보험 이력은 충격적이었다. 첫 번째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지급받은 걸 시작으로 두 번째 남편의 상해보험금과 사망보험금, 그리고 함께 살던 시누이의 상해보험금까지 추소희가 받아 챙긴 것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뜸했던 추소희의 이력은 세 번째 남편인 한광수의 어머니, 그러니까 추소희의 시어머니의 사망보험금의 수령자로 다시 등장했다. “이건 누가 봐도 보험금을 노린 살인이네요.” “사전 작업은 이제 마무리되어 가는 것 같으니 슬슬 우리도 움직여봐야겠다.” 김준혁은 전날 본사에서 넘어온 자료를 토대로 연남시의 임시 사무실에서 오전 내내 추소희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강준은 이번 추소희의 보험사기 건을 직접 금감원에 보고할 생각이었다. 추소희의 보험 가입이 성원화재뿐만 아니라 국내 보험사 대부분에 걸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준은 김준혁이 작성한 보고서 초안을 살펴보며 그를 격려했다. “네가 고생이 많다.” “별말씀을요. 제가 늘 하던 일인데요.” 강준은 밖에서 사온 음료수를 김준혁의 책상 위에 올려줬다. 김준혁의 본사에서의 업무 대부분은 이와 같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자잘한 연성보험사기 건이 많기에 보험조사관의 내근업무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박 대리님, 경찰에 직접 수사를 의뢰하면 되는데…… 왜 굳이 금감원을 거치려고 하세요?” “우리만 나서서 여기 경찰한테 부담을 주는 모양새를 보일 필요는 없잖아.” “아…… 그럼 다른 보험사들과 연합해서 사건을 수사하겠다는 거네요?” “그렇지! 다른 보험사들에서도 SIU(보험사기특별조사팀,Special Investigation Unit)가 있을 테니까 우리가 정보를 주면 그쪽에서도 분명 추소희 사건을 인지하고 움직이려고 할 거다.” “혹시 박 대리님은 다른 보험사 SIU팀에 아는 사람이 있으세요?” 김준혁의 질문에 강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고병훈이 외제차 차대번호를 위조한 건으로 한번 찾아간 적은 있었지.” 강준은 식물인간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국보험의 보험조사관을 찾아갔던 일을 떠올렸다. 어쩌면 연남시에 지점을 가진 한국보험을 움직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김준혁! 오늘 중으로 보고서 마무리되지?” “네, 충분합니다.” “그럼, 나갔다 올 테니 오늘 사무실 좀 지켜줘.” “어디 가시나요?” “네 말대로 다른 보험사 보험조사관도 만나봐야겠다!” 김준혁은 나갈 채비를 하는 강준을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만 서류작업이고 내일부터는 다시 외근이다. 밖에서 여기저기 쫓아다닐 일이 잔뜩일 테니 체력 비축해 두고!” 강준은 김준혁에게 덤덤하게 말하며 사무실 문을 나섰다. 사무실에 홀로 남은 김준혁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모니터 화면에 집중했다. * * * 한국보험 연남지사. “아! 저번에 오셨던 그분!” “성원화재 박강준 대리입니다.” “이번에는 또 무슨 건을 갖고 오셨나요? 하하!” 셔츠를 팔뚝까지 걷어 올린 남자는 한국보험의 보험조사관 서동휘였다. 그는 혹시나 강준이 또 귀찮은 일을 가져온 건 아닌지 묻는 것이었다. “전에 보험사끼리 협력하자고 했던 게 생각이 나서요.” “음,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군요.” 서동휘는 강준을 별도의 회의실로 데려갔다. 유리벽 너머로 바쁘게 일하는 직원들이 보였지만, 회의실 내에는 강준과 서동휘 둘뿐이었다. “아마 한국보험에서도 가입이 되어 있는 보험계약자분일 겁니다.” 강준이 내민 서류는 간밤에 김준혁이 정리해 준 추소희에 대한 간략한 사건보고서였다. “어디 보자…….” 사건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던 서동휘의 얼굴이 점점 굳었다. 그리고는 어떤 부분에서는 입을 벌리고는 경악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러니까 두 번째 남편과 세 번째 남편 모두…… 죽이고, 또 그 시집 식구들까지 죽여서 보험금을 챙기려 했다는 거네요?” “아직 보험금을 노린 살인이라는 건 추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보험가입과 보험금 수령 여부는 확실한 정황 증거가 되겠죠. 이 중에 한국보험에서 이미 나간 보험금도 꽤 될 겁니다.”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지며 골똘히 생각하는 서동휘였다. 그는 뭔가를 망설이는 듯했다. 아마, 보험금을 얼마만큼 환수할 수 있을지와 자신의 성과에 얼마나 득이 될지를 계산하고 있을 터였다. “좋습니다! 저희도 한번 조사를 해 보도록 하죠.” 마치 인심을 쓴다는 투로 말하는 그였다. “제가 여기까지 와서 이런 보고서를 드리는 건 실은 부탁이 있어서입니다.” “물론 그렇겠죠. 저번에도 저한테 자료를 요구했잖습니까? 하하!” “염치가 없어 죄송합니다.” “말씀해 보시죠. 들어나 봅시다.” 의자에 기대앉은 서동휘는 팔짱을 끼고는 강준의 말을 기다렸다. “조사관님께서도 아시다시피 경찰에서 이 건을 인지 수사해야 하는데, 연남경찰서의 형사들은 저를 꽤 불편해합니다.” “혹시…… 상가 가스 폭발 사건 때, 유력한 제보를 해 주셨다고 들었는데…… 그게 혹시 박 대리님입니까?” “그 전부터 성병철과 연관된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거든요. 마침 제보가 온 것이 있어 성병철의 위치를 경찰에 알려준 것뿐입니다.” “아, 그러셨구나. 경찰들은 보통 우리 보험조사관들이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죠. 자잘한 연성 보험사기들만 가지고 경찰 협조를 구하니…… 경찰이 싫어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하!” “그래서 이번에는 서 조사관님께서 형사과를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흘렀지만, 서동휘는 예의 그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형사과를 움직일 더 좋은 방법이 제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아마, 박 대리님도 지난번에 한 번 써먹은 내용 같습니다만…… 언론을 이용하는 겁니다. 공무원 조직이 제일 겁내는 게 바로 민원과 여론이거든요.” 강준도 그 방법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사뉴스닷컴의 함지훈은 살인사건 같은 단편적인 범죄 뉴스를 다루는 매체가 아니었다. “방법은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경찰에서 수사에 착수할 수만 있다면요…….” “그럼 이 보고서는 제가 활용해도 될까요?” 강준이 건넨 보고서를 흔들어 보이는 서동휘였다. 그는 머릿속으로 추소희의 보험 살인사건을 자신의 실적으로 만들 구상을 끝낸 듯했다. * * * 며칠 뒤, 보험 전문 프리랜서 기자가 쓴 ‘보험금을 노린 연쇄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붙은 기사가 전 언론 매체에 뿌려졌다. 그리고 받아쓰기를 한 것처럼 비슷비슷한 기사들이 연이어 포털에 쏟아졌다. 대중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한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김준혁! 추소희는 병원에 나타났어?” “아니요. 며칠째 안 보입니다. 아마 방송국에서 취재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겁을 먹은 거 같은데요?” “음…… 오피스텔에는 분명히 한 번은 나타날 거다. 일단 거기에서 잠복하고 있자고.” 김준혁은 뭔가 할 말이 남은 듯 머뭇거렸다. “……근데, 조합장님이 박 대리님을 뵙고 싶어 하는 눈치더라고요.” “직접 말한 건 아니고? 네 짐작이야?” “네. 본인도 지금은 정신을 못 차릴 텐데, 그 와중에도 저한테 박 대리님 얘기를 물어보더라고요.” “그럼 김준혁 네가 내 차 가지고 잠복하고 있어라. 난 병원에 다녀오마!” “제 외근은 항상 잠복이네요…… 하하…….” “추소희를 잡게 되면 네가 이 사건 해결하는 거나 다름없어!” 강준은 중요한 임무를 맡긴다는 듯 김준혁의 등을 두들겨주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 * * 연남 중앙병원. “내가 속이 참담해서…… 말로 다 못 혀!” “이해합니다.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한 건 가장 아픈 법이죠.”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도 안 믿겨…….” 조합장은 병상 위에 앉아서 고개를 떨궜다. 강준은 그를 어떠한 말로도 위로할 수 없었다. “경찰이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초록색 결정이 담긴 제초제 병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초록색……? 글쎄, 기억이 안 나는디…….” “희석액을 사용했더라도 냄새가 나서 분명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아! 맞다…… 흑염소 진액을 해왔다고 해서 한동안 마셨는디…… 고것이었나 보네. 냄새가 고약했거든. 먹고 나면 속도 울렁거리고!” 노환이 온 시어머니는 사망 원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힘드니 먼저 그라목손 제초제를 다량으로 탄 한약을 먹인 것이었고, 남편인 한광수에게는 천천히 죽일 목적으로 흑염소 진액에 조금씩 그라목손을 탔던 거였다. “돈이 문제여…… 돈이! 상가도 그렇고! 마누라도 그렇고!” “조합장님 탓이 아닙니다…….” “아녀…… 팔자에도 없는 늦장가 간다고 좋아한 내가 바보지. 바보천치여!” 그때 병실 안으로 익숙한 인물이 나타났다. 연남경찰서 형사과의 김형식 형사였다. “어! 여기서 또 뵙네요.” “네, 수고가 많으십니다.” “수고야 항상 그쪽에서 먼저 만들어주시니까…… 저희야 따라가기 급급하죠, 뭐.” 뼈가 있는 농담이었다. “한국보험에서 수사 요청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네네. 전국에서 보험 연쇄 살인이 일어났다며 야단법석을 떠는데 위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김 형사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여기 한 조합장님 집에서 쓰다 남은 그라목손 제초제가 발견됐다고 들었습니다. 추소희 씨가 구매한 농약사도 찾았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면 정리되어 가는 거 아닙니까?” 김 형사는 손에 든 수첩으로 이마를 긁으며 답답하다는 듯 강준을 바라봤다. “증거 있고 물증 있으면 뭐 합니까? 범인이 사라졌는데!” “뭐여? 소희가 실종됐다는 말이여?” 김 형사의 말을 듣고 있던 한광수 조합장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되물었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여자를 걱정하는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아직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혼란스럽겠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건지 한광수는 이내 자책하는 말을 덧붙이며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 “내가 지금 누굴 걱정하는 겨…… 천하의 죽일 년인데…… 쯧!” “조합장님, 자책 마십시오…….” 강준은 김 형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추소희 수배는 내려진 겁니까?” “벌써 내렸죠. 근데, 행방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전화 통화 내역에서도 별다른 점을 발견 못 했고요…….” 그때 강준은 빙의하기 전 자신이 접했던 추소희의 연쇄 살인에서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김 형사님. 제가 이번에는 형사님을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네? 박강준 씨가요……?” “매번 수사 요청만 하고 고생만 시켜드렸잖습니까? 가끔은 저희 같은 보험조사관들도 경찰을 도와드려야죠.” 강준의 말에 김 형사의 입이 벌어지며 얼굴이 화색으로 돋았다. “뭐…… 도와주신다면야…… 마다하지는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