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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8. 연쇄 살인마 (1) (48/250)

048. 연쇄 살인마 (1)2022.01.17.

강준은 김준혁과 함께 몇 시간째 병원 앞에서 잠복 중이었다. “박 대리님,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왜 힘드냐?” “아뇨…… 그냥 막막해서요.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다고 뭔가 일이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아서요.” “수사권이 없는 보험조사관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가 않아. 주변 탐문과 잠복! 이 두 가지가 기본이지.” 둘이 잠복하고 있는 곳은 연남 중앙병원의 정문 출입구 쪽이었다. 김준혁은 말로는 불평을 터트리고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연남에 내려온 지 이틀간 꼬박 여자에 대한 자료를 취합하고 있었다. “여자의 이름은 추소희, 6개월 전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때 사망보험금을 2억 원 받았고요. 지금 남편도 폐부종과 신부전증이 나타나는 거로 봐서는 약물 중독이 의심됩니다.” 강준이 농약사 사장을 통해 알아낸 여자는 남들이 볼 때는 입원한 남편을 성실히 간병하는 헌신적인 아내였다. 하지만 그녀의 행보에는 조금 이상한 면모가 있었다. 강준이 며칠간 지켜본 바에 따르면 그녀가 병원을 나와서 가는 곳은 원래의 자기 집이 아니라 인근의 고급 오피스텔이었다. “서류상 이상한 점이 또 있었습니다.” “뭐가?” “……결혼을 3번이나 했다는 겁니다.” “뭐? 이번이 3번째 결혼이라는 거야?” “네…… 첫 번째 결혼생활이 좀 길었는데 남편이 남겨놓은 사업체를 이어받아 운영했더라고요.” “무슨 사업이었는데?” “식자재를 납품하는 사업이었는데…… 생각보다 잘 안 됐는지 2년 뒤에 폐업했고요.” “결국은 돈이 필요해서 보험사기에 빠져든 거군.” “타 보험사들의 자료 요청을 해 뒀습니다. 보험사 통합시스템에는 최 팀장님만 보안 접속이 가능해서요.” 민간 보험사들의 보험 이력을 조사하는 통합시스템에는 권한을 가진 책임자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성원화재 보험조사 2팀에서는 최은정이 유일했다. “근데, 박 대리님은 저 여자가 보험사기범이라고 확신하세요?” “뭐든 확인해 봐야 하는 거겠지만 이번엔 좀 다르네…….” “왜요?” “추소희 세 번째 남편이 한광수 조합장이거든. 저번 가스 폭발 사건 때문에 입원했었고, 시에서 주는 보상금도 받았지.” “아…… 뉴월드 상가 말인가요?” 강준이 추소희의 주변을 탐문하면서 놀랬던 건 그녀의 남편이 얼마 전에 만난 적이 있었던 뉴월드 상가의 조합장 한광수라는 점이었다. 나이 차이가 족히 20년은 넘어 보이는 커플이었다. 한광수 역시도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한 지 오래됐지만, 제삼자가 봤을 때 추소희가 한광수에게 접근한 건 다른 목적이 있어 보였다. “뉴월드 상가 재개발이 이번에만 추진된 게 아니었거든. 몇 년 전에 확정된 것처럼 들뜨기도 했었는데, 그때쯤 해서 추소희와 한광수가 혼인신고를 올렸더라고…….” “하지만 그건 정황 증거잖습니까?” “음…… 그렇긴 하지. 그러니 이제 물증을 잡으러 이렇게 잠복하는 거 아니겠냐?” 강준은 김준혁이 대견한 듯 그의 어깨를 한번 두드리고는 편의점에서 사 온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때 병원 입구에서 추소희가 걸어 나왔다. 강준 일행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발걸음이었다. “병원 쪽으로 들어가 보실 겁니까?” “아니, 여자 쪽을 따라 가보자고.” 강준은 시동을 걸고는 추소희가 잡아탄 택시의 뒤를 쫓았다. 여지없이 그녀가 도착한 곳은 고급 오피스텔 앞이었다. “한광수 씨가 알면 정말 놀라 자빠지겠네요. 혹시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는 겁니까?” 김준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성원화재 연남지점의 보험설계사 김철영이었다. 놀란 표정을 짓는 강준을 보고는 김준혁이 물었다. “왜요? 박 대리님이 아는 사람입니까?” “우리 성원화재 사람이야…….” “성원화재요? 아니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추소희를 만난다는 겁니까?” 저녁 9시도 넘은 밤늦은 시각이었다. “왜 한광수 조합장이 추소희를 만나게 됐는지 알 것 같네. 김철영이 소개해 준 거야. 한광수 조합장에게…… 둘은 친분이 있었거든.” 전후 관계가 어떤지는 몰랐지만, 야심한 밤에 만난 두 사람은 오피스텔에 붙어 있는 1층 카페로 향했다. 강준은 김철영 때문에라도 차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한참을 얘기하던 두 사람은 한 시간이 돼서야 헤어졌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추소희는 아직 우리의 존재를 몰라…… 일단, 김철영을 쫓아가 보자.” 강준은 결국 김철영의 집 앞까지 가서야 그와 마주했다. “어…… 이게 누구야?” “안녕하셨어요? 보험조사 2팀의 박강준입니다.” “알지, 그건…… 근데, 이 야심한 시각에 여기엔 웬일이냐는 거지. 혹시 나 만나려고 왔나? 그도 아니면…….” ‘따라온 거냐고? 굳이 그걸 말할 이유는 없지.’ 강준은 김철영이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서류철을 발견했다. “그거는 계약서인가 보죠? 누구와 보험계약을 했길래 이 밤중에 만나고 온 겁니까?” 도둑이 제 발에 저린다고 했던가? 김철영은 뭔가를 들킨 듯 화들짝 놀라며 서류철은 감췄다. “강준 씨, 나 이제 성원화재에서 퇴사했어. GA대리점이라고 들어봤지? General Agency!” GA대리점은 특정 보험사에 소속되지 않고, 다양한 보험사의 상품을 팔 수 있는 독립판매처를 말하는 거였다. “잘됐네요. 그럼 방금 만나고 온 추소희 씨의 보험도 김 설계사님이 포트폴리오를 짜주신 건가요?” “도대체 왜 이래? 강준 씨가 나한테 이럴 권한이 있어?” 같은 성원화재 소속이 아니었기에 그에게 강제로 답변을 얻어낼 수는 없었다. “한광수 조합장님이 병원에 누워 있는데, 추소희 씨가 보험을 더 들어달라고 하던가요?” “에이! 그럼 역선택(기존 질병을 보험사에 고지하지 않고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지! ……그리고 조합장님은 이미 새사랑 생명보험에 가입되어 있기도 하고.” 강준은 무작정 그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기억을 읽었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온통 요즘 그가 신경 쓰고 있는 GA대리점에 관한 것뿐이었다. 김철영은 분기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지인들을 설득해 보험에 가입시키고 그 보험료를 자신이 대납해 주고 있었다. “보험료 대납! 그거 엄연한 위법행위입니다. 성원화재뿐만 아니라 다른 보험사들까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GA대리점의 자격뿐만 아니라 그간의 인센티브까지 몽땅 토해 내야 할 겁니다!” 강준은 할 수 있는 선에서 김철영을 최대한 압박했다. “강준 씨 왜 이래…… 정말…….” 그는 옆에 있는 김준혁까지 듣고 있는데 신경 쓰이는 듯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지 말고 우리 요 앞에 호프집에 가서 얘기 좀 하자고…… 어때? 괜찮지?” 호프집에서 맥주가 나오자 김철영은 그제야 자신의 애로 사항부터 털어놨다. “보험료 대납이 불법이라는 건 알지…… 근데, 우리도 신생 GA대리점이라 실적 압박이 있거든. 아무리 잘나가는 설계사들 모아놨다고 해도…… 유지하는 게 만만치가 않아.” “보험료대납 같은 특별이익제공 행위는 불완전판매(충분히 고객에게 상품을 인지시키지 않고 판매하는 것)에 따른 민원 발생을 막기 위한 겁니다. 잘 아실 만한 분이 그러십니까?” 눈치 빠른 김철영은 정보가 될 만한 걸 줘야만 강준이 물러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추소희 고객은 지난번에 조합장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사망보험금을 좀 탔었지.” “그것도 설계사님이 들어주신 생명보험 아니었습니까?” “맞아, 뉴월드 상가 쪽 사람들은 거의 나한테 들었다고 보면 돼. 좌우간 그때 좀 고마웠는지 이번에 내가 보험대리점 낸 거 알고 도와주려고 하더라고.” “그래서 얼마나 들은 겁니까?” 껄끄러운 표정을 한번 지은 김철영은 손을 입에 갖다 댄 채 조심스럽게 말했다. “박 대리…… 나 신고하고 그러는 거 아니지?” “솔직하게 말씀하시면 수습하실 수 있는 시간은 드리겠습니다.” “거참! 빡빡하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첫 달에 보험료 대신 내주는 관행도 모조리 잡아야 하는데…… 그건 어떻게 할 거야?” 강준은 보험사들에 널리 퍼져 있는 관행을 뿌리 뽑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불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잇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었다. “좌우간 강준 씨…… 아까 강준 씨가 말한 게 맞아.” “뭐가 말입니까?” 슬며시 웃으며 능구렁이처럼 넘어가려는 김철영이었다. “조합장님 말이야…… 지금 입원한 상태이긴 하지만 암이나 고혈압, 당뇨 같은 중대 질환은 아니거든.” “혹시 입원도 지금 일부로 보험처리를 안 하는 거 아닙니까?” “어…… 뭐 대충 그렇지…….” 어물쩍 넘어가려는 김철영이었다. 입원 중이었지만, 건강보험공단 내역에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보험처리를 일절 하지 않고 현금으로 입원비를 지불하고 있었다. “좌우간 그럼 입원 중인 한광수 조합장님 이름으로 보험이 몇 개나 가입된 겁니까?” “한…… 14개 정도 되나…… 근데 그거 내가 몇 개월만 유지하다가 다 해지를 할 거라…….” 가입된 보험의 수에 놀란 건 강준의 옆에 있던 김준혁이었다. 그는 순간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김 설계사님…… 어쩌면 복잡한 일에 얽히신 건지도 모르겠는데요?” “에이, 다들 그렇게 해. 실적 채워야 대리점 자격도 유지되고 인센티브로 나오니까…… 우리만 그러는 거 아니다!” “그게 아니라 지금 보험사기에 얽히신 거라고요.” “보험사기라니? 무슨 소리야?” 그제야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걸 눈치챈 김철영이었다. “추소희 시어머니 사망 원인이 뭐였는지 아십니까?” “그야…… 급성 폐렴인가…… 그렇댔는데…….” “네, 맞습니다. 폐의 조직이 섬유화가 진행돼서 폐렴 증세로 이어진 거죠. 그럼, 지금 한광수 조합장님은 왜 입원해 있는 거 같습니까?” “난 신장에 이상이 있다고 들었는데…….” 강준을 한차례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자신의 친모와 동일한 급성 폐렴 증세입니다. 이게 과연 우연히 일어난 일일까요?” “강준 씨 말은…… 지금! 추소희 고객이 살인이라도 저질렀다는 거야?” “농약사에서 희석된 제초제를 사 갔습니다. 당장 병원에서는 발견하지 못하겠지만, 서서히 사람을 죽일 수 있죠.” “그럴 리가 없는데…… 착해 보였는데…… 남편한테도 잘하고?” 인간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쉽게 속는다. 김철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 제일 위험한 건 한광수 조합장님입니다. 추소희가 제초제를 계속 먹이려고 들 테니까요.” “무섭네…… 무서워. 그렇게 싹싹하던 사람이…….” 옆자리의 김준혁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박 대리님, 그럼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한광수 조합장이 또 제초제를 먹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강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김철영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듯 말했다. “아직 추소희는 저희가 조사하고 있는 줄 모르고 있을 겁니다. 당분간 비밀로 해 주시겠습니까?” “그…… 그럼, 나한테도 시간을 좀 줘. 꼼수로 판매했던 것들 다 정리할 테니까.” 원래 같았으면 김철영은 자신이 성과로 가져온 보험계약을 절대 해지시키겠다고 말할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보험사기와 살인에 직접적으로 관여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김철영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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