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가스 폭발 (3)2022.01.12.
지성민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강준을 이끌고 소방서 안쪽의 텅 빈 식당으로 향했다. 주변에 어떤 다른 눈길도 없는 곳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그 전에 해명하실 사안이 있지 않습니까?” “하아~!” 지 소방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한번 치고는 강준을 바라봤다. 그는 보험조사관인 강준이 어떻게 소방서에 접수된 내부정보를 알게 됐는지가 궁금했다. “누가 알려준 겁니까?” “그게 중요한 건가요?” 사실 강준은 이진철로부터 경찰의 내부정보를 이미 접한 상태였다. 경찰 측에서 소방서가 사고 전에 가스 누출 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수사 발표 자료에서 빼주기로 이미 얘기가 서로 끝난다는 거였다. “사실 11시 정도에 신고 전화가 왔었던 거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출동했었죠. 근데, 가서 보니까 크게 이상이 없더라고요. 가스 냄새가 난다는 신고였는데…… 가스 새는 데가 없었어요.” “신고자는 누구였습니까?” “……그게…… 지금 부상자 중 한 명입니다.” “그래서 혹시 문제가 될까 봐 저한테는 최초 신고를 말하지 않은 거군요.” 강준의 말에 지성민은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그게 아니라! 최초 신고는 엄연히 얘기하면 폭발이 일어난 다음인 2시경의 신고가 맞죠. 이게 자살자가 LP 가스통에 연결된 호스 잘라서 그렇게 된 건데, 그 전의 상황은 실제 사고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왜 숨겼던 겁니까?” “그야~! 아시잖습니까? 우리 소방관 일이라는 게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든데…… 괜한 시비에 휘말릴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언뜻 수긍이 되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는 함정이 있었다. “전 보험조사관으로서 현장과 그 주변을 조사할 의무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해합니다.” “제가 원하는 건 보고서에 올릴 현장 사진입니다. 소방장님께서 화재 진압이 이뤄진 후에 수습된 현장 사진을 찍어 두신 거로 압니다만…….” “그건 경찰에 벌써 제출했는데요?” “남아 있는 사진 파일을 제게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강준의 요청에 지성민 소방장은 망설였다. 그로서는 민간 보험사에 자료를 넘겨주는 것이 괜찮을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정식으로 요청은 하겠습니다. 화재 보상을 해야 하는 보험사에 자료 제공을 한 것이니 별다른 문제가 되진 않겠죠.” 그제야 고개를 주억거리는 지성민이었다. “근데, 이 사건이 보험금이 많이 걸려 있습니까?” “30억 원 정도의 보험액에 가입돼 있습니다. 물론 조사가 다 끝나야 그만큼의 보험금이 지급되는 것이긴 하지만요.” “아무래도 조사를 서두르려고 하겠네요.” “네. 소방장님께서 협조해 주시면 빨리 끝낼 수 있을 겁니다.” 지성민 소방장은 강준이 회귀하기 전 일어났던 뉴월드 상가의 대참사에서 방화 증거를 못 본 척했던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그럴 게 분명했지만, 그는 아직 사건의 실체를 알아차리지는 못한 듯했다. 사무실로 돌아간 지성민은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현장 사진을 보여줬다. “이게 다예요. 여기 라이터 보이죠? 이걸로 불을 붙인 겁니다.” “그렇군요. 어쨌든 참고자료로 써야 하니…… 제 메일입니다. 이쪽으로 사진 보내주시면 됩니다.” 강준은 지성민에게 자신의 메일 주소가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모니터 화면에 옮겨진 현장 사진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강준이 찾는 건 향초였다. 회귀 전 발생했던 대참사. 그때 강준은 화재 현장에서 발견됐던 향초를 지목했지만, 재수사는 이뤄지지 않았었다. 이번처럼 누군가의 자살로 끝났다. ‘여기 있군……!’ 강준은 벽면 선반에 놓인 향초를 발견했다. 공기보다 무거운 LP가스의 특성상 밀폐된 점포 가득히 가스가 채워진 후, 선반에 올려져 있던 향초 불꽃과 반응해 폭발했을 터였다. “자, 이렇게 보내드렸습니다! 그럼 된 거죠.” “협조 감사드립니다. 근데…… 한 가지만 더 묻죠.” “네, 또 뭡니까? 이제 교육 들어가 봐야 하는데…….” “화재가 뉴월드 상가 전체로 퍼진 건 가스 폭발 때문만은 아니었죠? 최근에 공사한 우레탄 단열재 때문에 그렇다고 하던데…….” “맞아요. 근데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단열재가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복잡한 배선과 창고에 여기저기 쌓아놓은 의류들도 불길이 확산하는 데 한몫했죠.” 지성민의 발언은 언뜻 보기엔 객관적인 듯했지만,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강준은 그의 기억을 읽으려 손을 내밀었다. 지성민은 강준이 그만 돌아가려는 줄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괜히 기자들 찾아오고 그러면 아무 대답도 하지 마세요. 그냥, 저희 쪽으로 넘기시면 됩니다.] [경사님. 근데, 어떤 기자 한 명이 저희 찾아와서 우레탄 단열재 얘기를 하던데요? 그건 어떻게 된 겁니까?][우레탄 단열재요……? 일단은 함구하고 계시죠. 저희도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럼 살펴 가시죠.” 강준은 지성민의 인사말에 그의 기억으로부터 깨어났다. 경찰도 우레탄 단열재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소방장님, 조만간 또 뵐 일이 있을 거 같네요. 그럼 담에 뵙죠.” 강준의 말에 지성민 소방장은 불편한 눈빛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소방서를 나온 강준은 송지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회복한 환자 중 한 명이 자기가 가스 냄새를 맡고 신고를 했다고 하네요! “어, 알아.” ―네? 벌써 알고 계세요? “그건 그렇고, 사망자들 시신 지금 어디 있는지 확인해줘. 절대 부검하기 전에 화장하면 안 돼! 유가족들 있으면 만나서 그렇게 설득하고.” ―알겠습니다! 팀장님! 강준은 병원 일을 송지희에게 맡기고 어디론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시사뉴스닷컴의 함지훈 기자를 만나봐야 했다. * * * 연남경찰서 뒤편 포차. TV에서 한창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며칠 전 일어났던 연남시 뉴월드 상가의 가스 폭발 사고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당초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떡집을 운영하는 김 씨 부부가 경제적인 문제를 비관하여……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 씨 부부의 자살 동기는 찾을 수 없으며…… 일대 재건축을 노린 방화에 무게를 두고 재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습니다.] “두 분 서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쪽은 경제수사과의 이진철 경위님, 그리고 이쪽은 시사뉴스닷컴의 함지훈 기자님.” 강준은 함 기자를 이진철과 항상 오던 포차로 데려왔다. 권력형 게이트로 커질 수 있는 사건이었다. 언론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헤쳐가기 힘들 수도 있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주요 방송사들에서도 함 기자님의 보도를 내보내고 있네요.” “재선이 한 달밖에 안 남았으니까요.” 이진철은 강준을 돌아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박 대리님, 정말 재개발을 위해서 한승일이 그런 짓까지 했다는 말인가요?” “아직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의혹이 있을 뿐이죠.” 함 기자가 끼어들었다. “그러니 저도 이번 화재 사건과 관련해서 한승일 시장을 직접 언급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한 시장에게 경고하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자기네들도 가스 폭발까지 일으킨 전대성 쪽 사람들을 더는 가까이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김 씨 부부를 죽이고 방화를 한 당사자들은 잡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박 대리님 말에 따르면 한승일은 전대성과 RS투자를 연결고리로 묶여 있다는 건데…… 이번 일에 전대성이 정말 직접 개입했다고 보시는 겁니까?” 강준의 말에 함 기자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흑곰…… 그러니까 지난번 채무자들을 상대로 고의방화를 사주했던 성병철이 이번에도 개입되어 있을 겁니다.” 이번에는 소주잔을 비운 이진철 경위가 입을 열었다. “저도 여러 가지 방면으로 수사 중인데 아직 성병철이 관련된 건 못 찾겠더군요.” “이번 화재의 보상금은 새로 구성된 뉴월드 상가의 관리 법인입니다. 그 법인의 대주주가 누구인 줄 아십니까?” “누군데요?” “RS투자입니다…… 사채업자 시절 버릇을 못 버린 겁니다. 본인들이 개입되면 모양새가 안 좋아지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직접적인 개발 이익을 포기 못 한 거죠.” 곱창을 한 조각 입에 문 함 기자가 강준의 말을 이어받았다. “어쩌면 전대성도 한승일을 못 믿은 거 아닐까요? 최진태 이사야…… 장인과 사위로 묶여 있으니 멀리 바라볼 수 있었지만, 전대성은 본인이 언제 내쳐질지 모르니 그전에 한 시장 득을 빨리 보려 한 거고요.” 함지훈 기자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회귀 전 살해당했던 강준도 거기까지는 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 조급증이 빈틈이 될 수도 있겠군요…… 그나저나 경위님, 부검은 어떻게 됐습니까?” “유가족들이 이상하게 부검에 반대하고 있어서요…… 참나!” “그건 제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유가족들로서는 보상금 문제가 있으니 빨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수도 있는 거고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알겠습니다. 전 흑곰과의 연결고리를 찾는데 전력을 다해 보죠.” 옆에 있던 함지훈이 이진철을 향해 소주잔을 내밀었다. “경위님, 새로운 소식 있으면 제일 먼저 저한테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이번일 제가 의혹 제기를 했으니 어떻게든 건져야 하거든요!” “건수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다른 언론사보다는 기자님께 먼저 연락드리죠.” “그거면 됐습니다! 하하! 다들 고생이신데 한잔 씩 드시죠!” 무거워진 분위기를 띄우는 함지훈이었다. 그때 강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성원화재 박강준 대리입니다.” ―제보를 하나 할까 해서요……. 여자 목소리였다. 강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용한 바깥으로 나갔다. “네! 제보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뉴월드 상가 화재 사건과 관련한 제보인가요?” ―네……. 상대방의 목소리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듣고 있습니다. 계속 말씀하시죠.” ―가스 폭발을 일으킨 주범들이 누군지 알아요. “혹시 그 주범이 성병철…… 1층 상인들을 대상으로 사채놀이를 하던 흑곰인가요?” ―네, 맞아요…… 그날 상가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자살로 몰고 간 거죠. 강준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제보를 주시는 이유는 뭔가요……?”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거잖아요? 게다가 가스 폭발로 희생자들이 늘어났죠. “옳은 일을 하신 겁니다. 근데, 혹시 직접 경찰이 아니라 저에게 전화를 주신 이유가 있나요?” ―경찰은 믿을 수 없어서요. 사건을 덮어버릴지도 모르거든요. 제보자는 흑곰을 잘 아는 내부자였다. 어쩌면 강준을 움직임으로써 지금의 판을 완전히 흔들어놓으려는지도 몰랐다. “성병철 지금 어디 있습니까?” ―번암동 385번지 오피스텔…… 아마 거기를 전전하고 있을 거예요. 여자는 그 말을 남기고는 전화를 끊었다. 강준은 번지수를 잊지 않기 위해서 입으로 반복해서 385번지를 되뇌었다. 그리고는 빠른 걸음으로 이진철 경위가 있는 포차를 향해 걸어갔다. 이제는 흑곰을 잡아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