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42. 가스 폭발 (2) (42/250)

042. 가스 폭발 (2)2022.01.11.

가스 폭발 현장인 뉴월드 상가는 끔찍한 화마가 지나간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검은 그을음이 복도와 외관을 완전히 뒤덮었고, 폭발에 휘어 버린 철근과 깨진 유리창이 바닥에 즐비했다. 하지만 발화점 주변으로의 접근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었다. 강준의 회귀 전 뉴월드 상가에서 참사가 일어난다는 걸 알고는 흑곰의 고의방화 사건을 막았었다. 하지만 전 회장이 한승일 시장의 심기를 건드리면서까지 끝끝내 뉴월드 상가의 가스 폭발을 일으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제 보험조사관으로서 강준이 할 수 있는 일은 가스 폭발 사고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를 세상에 명명백백히 밝혀내는 일이었다. “대리님, 이제 어떻게 하죠?” 새로 팀원으로 합류한 송지희가 어색한 정장을 입고는 강준의 옆에 서 있었다. 정식으로 보험조사 2팀의 사원으로 입사한 그녀는 사뭇 긴장된 표정이었다. “지희 씨, 보험조사관은 독립된 수사권이 없는 게 제일 문제예요. 이럴 때 할 수 있는 거라곤 주변 탐문 수사와 서류 확인뿐입니다.” “아…… 그럼, 전 입원한 환자들을 좀 살펴보고 올까요?” 송지희는 다행스럽게도 먼저 자신의 할 일을 찾는 사람이었다. “네, 지희 씨 전공이니 좀 부탁드립니다!” 송지희는 수첩에 몇 가지 사항들을 받아 적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뭐든 하나씩 배워 가면 됩니다. 대신 작은 거 하나라도 잘 살피시고요.” 격려와 잔소리를 한 번에 담은 강준의 말에 송지희는 작게 웃었다. “네, 고맙습니다. 대리님!” “운전할 줄 알죠?” “아뇨, 아직…….” “그럼, 운전면허부터 따세요. 이제 여기저기 돌아다닐 데가 많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오늘은 택시로 이동하시고, 이걸로 계산하시면 됩니다.” 강준은 송지희에게 자신의 법인카드를 넘겼다. 송지희를 보내고 난 강준은 다시 현장 주변으로 돌아갔다. 발화점은 건물의 중앙이었다. 강준은 건물 측면 통로를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려 했다. 측면 비상구 계단에는 오래된 광고지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한참을 계단 위로 오르던 강준은 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혹시 형사님 되십니까?” 남자는 사고 현장을 향해 올라가는 강준을 형사로 착각한 것이었다. “성원화재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그쪽은 어떻게 되시나요?” “반갑습니다. 전 시사뉴스닷컴의 함지훈 기자입니다.” 남자는 현장을 찾은 또 다른 누군가가 반가운지 지갑에서 급하게 명함을 꺼내 강준에게 건넸다. “그쪽은 뭐, 알아낸 거라도 있으세요?” “경찰에서 현장을 아예 막아 버렸는데 알아낼 수 있는 게 있어야죠.” “어? 보험사 측에서는 당연히 조사권리가 있는 거 아닙니까? 인명피해까지 나서 보상금 액수가 꽤 클 거 같은데…….” “화재 현장 감식이 완료될 때까지는 현장 진입을 불허하네요. 그나저나 기자님께서는 뭐 좀 알아보신 게 있나요?” 강준은 함 기자와 이해관계를 같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님, 담배나 같이 태우시겠습니까?” “좋죠.” 둘은 다시 옥상으로 향했다. 조합사무실이 있는 곳이었다. 가스 폭발 당시, 한광수 조합원과 조합원들은 바로 그곳에 모여서 술을 마시다가 유독가스를 들이마시는 부상을 당했었다. 강준은 기자에게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 눈길을 한번 준 함 기자는 강준에게 말을 이어갔다. “박 대리님, 자살했다는 부부 말입니다…….” “네, LP가스 밸브를 자르고 직접 불을 붙였다죠? 뭐 좀 이상한 게 있습니까?” “떡집을 했는데…… 이곳에서는 꽤 장사가 된 모양이더라고요. 그날도 다음 날 물량을 만들기 위해서 늦게까지 있었던 모양이고요.” “다음 날 물량이라…… 그건 기자님 추측 아닙니까?” 강준은 경찰의 예리한 감각으로 함 기자가 확인한 사실과 추측을 구분해냈다. “그건 인정이요!” 손가락으로 강준을 가리키며 추켜세웠다. 상대를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그만의 방식인 듯했다. “근데 그 부부가 최근에 새로 아파트를 장만했더라고요.” “아파트를 말입니까?” “네, 연남 신시가지에 들어선 신축 아파트죠. 그걸 보면 재정 문제로 자살한 건 아니고, 주변 탐문을 해 봤더니 부부관계도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강준도 이번 가스 폭발 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전대성은 흑곰을 이용해 채무자들을 방화범으로 이용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제는 대놓고 가스를 터트린 건가……? 누군가를 죽이면서까지!’ 강준은 회귀하기 전 자신이 겪었던 뉴월드 상가의 대참사를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도 가스 폭발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보다도 15년이나 더 낡은 상가는 폭발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 사고로 수십 명이 죽고 다쳤다. “기자님의 생각은 그 부부가 자살한 게 아니라 오히려 화재 피해자라는 겁니까?” “뭐, 이것도 추측입니다. 그냥 기자의 촉이라고 해두죠!” ‘촉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기자군…….’ 강준은 고개를 주억거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발화점은 그 부부의 점포라고 들었는데요?” “저도 직접 현장 확인은 못 해봤지만, 경찰들 말로는 그렇다네요…….” “자살한 게 아니라면 이미 죽어 있는 사람을 그곳에 두고 폭발을 일으켰다…….” “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시체를 부검해 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 함지훈 기자는 강준의 말에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현장 접근도 막았는데, 우리가 의혹을 제기했다고 해서 부검을 할까요?” “유가족들이 있잖습니까?” “그래요. 한 번 만나 볼 필요가 있겠네요. 원래 저 같은 보험조사관들은 주변인 탐문이 전문이거든요.” 강준은 휴대폰을 꺼내 함지훈 기자의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그럼, 또 봅시다! 오늘 정보를 하나 받았으니 다음에는 저도 하나 드리죠.” “아! 박강준 대리님. 그리고 한 가지 더요.” 내려가려는 강준을 붙잡는 함 기자였다. “가스가 폭발했는데 3층까지 불길이 번졌습니다. 원래 가스 폭발은 유리창이 터지듯이 폭발력은 있지만, 불길을 번지게 할 수는 없거든요.” “환풍구 같은 곳을 타고 번지지 않았을까요?” “소방관한테 물어보니 우레탄 단열재가 범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러네요. 뉴스에서도 작년에 보수 공사한 우레탄 단열재가 문제였다고 하더군요.” 함지훈은 목소리를 낮추며 의심스러운 걸 털어놓았다. “작년에 보수 공사를 한 건 맞는데, 그 공사를 사고가 나기 2주 전에도 했던 거 아세요?” “언제 거기까지 알아봤던 겁니까?” “하하! 기자로 먹고살려면 이 정도는 해야죠.” 강준은 함 기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박 대리님, 우리 이번 사건에서는 같은 배를 타는 거로 하죠. 어때요?” 강준이 읽어 들인 함 기자의 기억은 그의 사무실에서의 장면에서 시작됐다. [편집장님, 뭔가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또, 뭐가?] [이번 가스 폭발 사고가 난 상가 말입니다. 문화복합단지 만든다고 설쳐대는 곳의 한복판에 있지 않습니까? 30년도 넘은 상가…… 근데, 조합원들 때문에 재건축에 난항을 겪고 있고…….] [그래서? 누가 일부러 사고라도 냈다는 거야?]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정황이 있다고 봅니다.] [야! 괜히 들쑤셔서 곤란하게 만들지 말아…… 우리도 남들처럼 이제 포털사이트에 정식 언론으로 등록도 되고 했잖냐! 그냥 연남시 내려가서 선거 기사나 좀 잘 써!] 작달막한 키의 편집장은 연신 안경테를 끌어 올리며 함 기자를 설득하고 있었다. [선거하고도 관련이 있습니다! 한승일 시장이 선거 공약으로 추진하려는 게 문화복합단지거든요.] [너 또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러는 거면…… 저번에도 허위사실 유포로 소송당한 거 알지? 지훈아…… 우리 아직 쬐그마한 독립 언론사야. 이제 겨우 앞이 보이는데 네가 그 날개를 확 꺾어야 쓰겠냐?] 죽상을 한 편집장의 하소연에 마음이 약해진 함지훈은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다. 강준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강준은 적어도 함 기자가 불의에 호락호락 타협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좋습니다. 서로 도움이 되면 좋겠죠,”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박 대리님!” 함지훈은 계단을 내려가는 강준을 향해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상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습관적인 미소였다. 강준은 옥상에서 내려와 차에 올라탔다. ‘경찰이 막는다면 확인해 볼 곳이 한 군데 있긴 하지…….’ 연남소방서! 소방서가 있는 곳은 구도심인 기차역과 조금 떨어진 곳인 신시가지였다. 연남시에 아파트가 처음 들어설 무렵 함께 세워진 시청과 소방서, 경찰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연남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더 큰 행정도시가 건설되고 있었다. 한승일은 그런 상대적 위기를 문화복합단지 건설이라는 이슈로 맞서고 있었고, 그런 한승일의 전략은 가뜩이나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던 연남 시민에게 꽤 잘 먹혀들었다. 강준은 로터리를 돌아 신시가지의 초입에 들어섰다. 곳곳에 지방 선거를 알리는 현수막과 플래카드들이 걸려 있었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었다. “지성민 소방장님을 찾아왔습니다.” 대뜸 이름부터 대는 강준을 보며 소방대원들은 꽤 놀란 눈치였다. “어떤 용건으로 찾아오셨는지…….” “뉴월드 상가의 가스 폭발 건으로 왔습니다. 저는 화재보험사인 성원화재의 직원이고요.” “아…… 그럼, 보험조사관?” “네, 현장 출동을 하셨던 분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저희야, 불을 끄는 데만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라…… 경찰에서 현장 감식 결과서가 나오면 자세한 걸 확인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때, 사무실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는 구급대원을 거쳐 10년 차 소방관으로 일하고 있는 지성민 소방장이었다. “저를 찾는다고요?” 벌써 누군가 강준이 찾아온 걸 전한 듯했다. “네, 뉴월드 상가 가스 폭발 현장에 출동하셨죠?” “보험사라면…… 화재증명원 떼러 오신 거죠?” 지성민 소방장은 강준의 말에 다른 말로 대꾸했다. 마치 적당한 선에서 잘라내듯이 말이다. “경찰이 현장 진입을 막고 있더군요. 그래서 다른 화재 사건과는 다른 특이한 점이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하하! 뭐 별다른 점이 있었겠습니까? 가스 밸브가 잘려져 있고, 발화점도 명확한데요.” 강준이 회귀하기 전의 지성민 소방서장의 모습과 똑같았다. 우유부단하고 표리부동한 모습. ‘사람 쉽게 안 변한다니까…….’ “혹시 신고 전화는 언제 받으신 겁니까?” “일요일 새벽 2시경이었을 겁니다. 출동했을 때는…… 이미 가스 폭발이 벌어진 뒤였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강준은 추가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런 강준에게 오히려 더 궁금증을 가진 건 지성민 소방장이었다. “이게 다인가요? 절 보자고 한 이유가요?” 강준은 빤히 지성민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한테 말씀하시지 않은 게 남아 있는 거 같은데요?” “네? 뭐가 남아 있다는 겁니까?” “소방장님이 말씀하신 새벽 2시 전에도 가스 누출이 의심된다는 신고 전화가 있었을 텐데요…….” 지성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었다.

16555205657214.png

16555205657222.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