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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가스 폭발 (1) (41/250)

041. 가스 폭발 (1)2022.01.10.

한승일 시장은 정책 보좌관이 쓴 성명서를 훑었다. 적절한 유감 표명과 향후 대책안,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주목할 화재 원인에 대한 언급까지……. 흠잡을 곳 없는 성명서였지만 한승일은 마음 한구석에서 솟구치는 짜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양아치 같은 새끼들…….’ 그는 왁스를 발라 바짝 뒤로 넘긴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차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확인했다. “시장님, 도착했습니다.” “어, 그래.” 옆좌석의 보좌관이 먼저 내려 차 문을 열었다. 펑! 퍼펑! 찰칵! 찰칵! 시청에는 벌써 기자들이 한승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한 시장을 향해 무차별적인 플래시 세례를 퍼부었다. “시장님, 화재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문화복합단지 개발을 앞에 둔 모종의 음모라는 설도 있습니다! 해명 부탁드립니다!” “유가족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보좌관은 기자들을 팔꿈치로 밀면서 한 시장의 동선을 확보했다. “일단 조사가 들어갔으니까 결과가 나오면 입장표명 하겠습니다!” 그 순간, 한승일은 기자들을 막는 보좌관을 제지했다. 얼핏 보기에 돌발상황으로 보이는 장면은 보좌관과 사전에 철저히 합의된 것이었다. “아…… 먼저, 불의의 사고를 당하신 유가족들에게 머리 숙여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이번 사고의 모든 경위와 원인에 대해서는 경찰과 소방공무원들이 합심하여 조사하고 있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시민 여러분께 제일 먼저 보고드리겠습니다!” “문화복합단지 개발 와중에 벌어진 일입니다! 시 당국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질문을 던진 기자는 목에 시사뉴스닷컴이라는 기자증을 걸고 있었다. 메이저 언론이 아닌 걸 확인한 한승일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대꾸했다. “문화복합단지와 이번 사건을 엮는 건 너무 나간 억측 같군요. 뭐, 요즘 하도 음모론이 판을 치기는 하지만…….” “사고가 난 뉴월드 상가의 점포들이 기존 개발사업안을 반대하며 보상금 요구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건 사실입니다. 시 당국과 10차례가 넘는 공청회를 통해 개발사업안에 합의했는데 상가 조합 측에서 재협상을 요구한 상태입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보상금에 욕심이 먼 조합을 돌려 까는 화법이었다. “이번 사건이 재선 가도에 영향이 있지 않겠습니까?” 또 다른 기자가 물었다. 한승일은 예상했다는 듯 엄숙한 표정으로 답했다. “사람이 죽은 사고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선거 얘기를 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능숙하게 기자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한승일이었다. 시장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한승일은 소파에 앉은 사람을 향해 레이저 같은 눈빛을 쏘았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난감한 표정을 짓는 이는 막 서울에서 내려온 최진태 이사였다. 그의 옆에는 지난 인사이동에서 성원건설 대표이사직에 오른 이종도 이사도 함께 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그랬잖아! 양아치 새끼들하고는 어울리는 거 아니라고!” “그래도 덕분에 밑 작업은 거의 끝나가긴 합니다…….” “일을 처리하더라도 조용히 했어야지. 이렇게 시끄럽게 인명피해까지 일으키면 나 엿 먹으라는 거지. 그게 일하는 거야?” 냉정하게 일갈하는 한승일이었다. “전대성 회장 말이야…… 자네랑 한다는 거 그것만 마무리되면 관계 정리해.” 한승일의 말에 최진태가 곤란한 표정으로 이종도를 바라봤다. 이종도는 명목상 대표이사이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인사팀장인 이희성과 함께 최진태의 손발이 되어주는 사람이었다. “시장님, 문화복합단지의 사업에 RS투자의 지분이 꽤 많이 투자되고 있습니다.” “그거 컨소시엄 구성해서 하는 거잖아. RS투자가 없으면 컨소시엄이 안 돌아가나? 성원건설이 전면에 나서면 되잖아, 안 그래?” RS투자의 전대성을 끌어들인 장본인인 최진태가 책임을 지라는 얘기였다. 최진태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지만, 눈치 빠른 이종도가 나섰다. “일단은 후원회 명단에서 전대성 회장을 비롯한 RS투자 쪽 사람들은 전부 빼겠습니다. 그리고 컨소시엄은…… 이미 쓴 계약서도 있으니 더는 개입시키지 않는 거로 정리하는 게 어떨까요?” 이종도는 한승일이 자신의 정치 인생에 흠집이 나는 걸 극도로 꺼린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후원회의 탄탄한 선거 지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결국, 한승일은 문제가 될 만한 건 성원건설에 떠넘기려는 속셈이었다. “내가 임 서장에게 전화는 해 뒀어.” “면목이 없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답하는 최진태였다. “식당 부부가 가스 호스 자르고 자살한 거로 처리할 거야. 나머지 부상자들은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술 마시다가 그런 거고.” “경찰 조사는 그럼 끝난 겁니까?” “왜, 뭐가 더 남았어……?” “그…… 그게…… 보험사에서 조사를 나온다고 하네요.” 한승일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최진태를 바라봤다. “최 이사…… 경찰 조사까지 막아줬으면 그 정도는 자네가 알아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언제까지 입에다 떠줘야 하나?”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자네 보험사지? 성원화재?” “네, 그게 아시다시피…….” “알아, 이복동생이 말썽을 피운다며?” 최진태는 면목 없음에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한승일은 그의 장인이었다. 성원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같은 배를 탄 사람이었다. “그럼 차라리 이번 기회에 자네가 확실히 눈도장을 받는 게 어때?” “어떻게 말입니까……?” “내가 자네 그룹에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공공입찰 건 정도는 문제없잖아? 안 그래?” “혹시 헬기 건 말입니까?” “그래! 그거 원래 해리츠 쪽에 주려고 했던 건데, 내가 이번에는 신경 좀 써보지.” 최진태는 그제야 머리가 굴러갔다. 최은정을 필두로 한 보험조사 2팀이 아무리 이번 사건을 파헤친다고 해도 그건 수십억이 걸린 성원화재의 이권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최 회장님은 아직 아무 말씀이 없으시나?” 한승일은 사돈인 최창식 회장을 언급했다. 아직 후원금 규모를 못 정한 최 회장을 공공입찰 건을 빌미로 대신 압박해 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최진태는 부친인 최창식 회장이 어떻게 나올지 짐작할 수 없었다. 허례허식을 싫어하고 실리를 추구하는 최 회장이었지만, 정치권과의 관계도 외면하지 않았던 그였다. “제가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당연히 후원회장 자리를 맡으시는 게 맞긴 한데…… 모양새 때문에 고민하시는 거 같으시더라고요.” “뭐, 어차피 사돈 관계라는 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뭘 그리 고민하시나…….” 한승일은 짐짓 불편한 기색을 일부러 내비치고는 다리를 꼬았다. 그때 밖에서 보좌관이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들어왔다. “시장님, 전화 받아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누군데……?” 주위를 살피는 보좌관을 보며 한승일은 눈치를 채고는 전화를 받았다. “네…… 제가 요즘 선거철이라 조금 다사다난합니다. 하하……! 어차피 그런 일이라면 성원건설 쪽과 얘기를 나눠보시지요.” 성원건설의 얘기가 나오자 잔뜩 긴장한 최진태였다. 옆에 있던 이종도는 전화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며칠 전부터 계속 한승일 시장과의 면담을 졸라대던 전대성 회장이었다. 자신의 선에서 끊어내야 했지만, 이제는 직접 최진태 이사를 건너뛰고 전화를 한 거였다. ‘최 이사가 사위인 걸 알았을 텐데도 이렇게 다이렉트로 연락을 했다는 건…… 대놓고 무시하겠다는 건가?’ 이종도는 슬쩍 옆자리의 최진태 이사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는 초조해하고 있었다.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걸 느끼는 중이었다. 전화를 끊은 한승일은 보좌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새끼 뭐야 이거! 장 보좌관! 이제 이 인간 전화 나한테 가져오지 마! 알았어?” “뉴월드 상가 사고와 관련된 일이라면서…… 워낙 급하다고 말하는 바람에…….” “뭐? 당신한테 사고 얘기까지 했단 말이지?” “네. 아까 나간 뉴스를 보고 전화를 한 거 같습니다.” 한승일은 손가락으로 눈썹 끝을 매만지면서 이종도 이사를 바라봤다. 최진태보다는 그를 더 신뢰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대표가 볼 때는 어때? 전대성이 왜 자꾸 나를 보자고 하는 거 같아?” “실은 저한테도 계속 요청을 한 사안인데…… 문화복합단지로 지정된 구역을 자기 쪽으로 변경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뭐? 자기 쪽?” “네, 현재 문화복합단지로 지정된 곳은 중앙 1동과 2동, 그리고 3동까지입니다. 근데…… 2동의 남쪽에 붙은 수영동을 포함해 달라는 겁니다.” 최진태는 화살이 자기에게로 돌아올까 봐 먼저 선수를 쳤다. “그 인간 말은 절대 들어줄 필요가 없습니다. 근처에 땅을 매집해 놓고 이제 와 우기는 겁니다!” “이번에 뉴월드 상가에 관리단 새로 만든 거…… 그거 전대성 쪽에서 한 거잖아? 맞지?” 옆에 있던 이종도가 대신 대답했다. “뉴월드 상가 쪽의 보상금이 결국 그쪽에 쏠리게 되니 전대성 회장에게는 충분히 보상된 겁니다. 이번 건은 좀 무리해서 욕심을 내는 거로 보이네요.” “하아…… 이 새끼 봐라…….”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톡 치는 한승일이었다. 그러더니 아직 시장실에서 나가고 있지 않은 보좌관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장 보좌관, 아무래도 이거 협박이지?” “재선 전에 얻어내려는 거 같습니다…….” “오냐오냐해줬더니…… 이제는 기어오르려고 그러네. 하여간에 개새끼들은 너무 이뻐해 주면 안 돼…… 버릇이 나빠지거든.” 최진태는 재빨리 한승일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장인어른, 이번 일은 저한테 맡겨주시죠. 제가 확실히 눌러놓겠습니다.” “아냐…… 장 보좌관! 임철호 서장하고 점심 약속 잡아!” 보좌관은 확인하듯 되물었다. “오늘 말입니까?” “그럼, 묵혀둘 게 뭐가 있어?” “알겠습니다! 지금 연락하겠습니다.” 핸드폰을 받아든 보좌관이 밖으로 나가자 한승일이 최진태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RS투자가 자네 계열사에 투자를 얼마나 해줬어?” “백억 정도입니다.” “흐음…… 백억이라…… 내가 이번 선거에서만 이기면 그깟 백억 필요 없어! 그러니까 이번 선거 끝날 때까지만 살살 달래서 데리고 가야 해.”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하는 한승일을 보며 최진태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최 이사, 목줄 만들어 놨다고 바로 조여 버리면 개를 잡은 이유가 없지 않겠어? 활용할 때까지 활용하다 버려야지.” “아…… 그렇죠. 장인어른…… 제가 잘 달래 보겠습니다.” 한승일은 뭐든 한 박자 늦은 사위 옆에 있는 이종도 이사를 바라봤다. “이 대표도 무슨 뜻인지 알겠지?” “문화복합단지 구역 수정안…… 만들어 두겠습니다. 일단 만들어 두고 결정적인 순간에 공청회를 통해 떨어뜨리면 전 회장도 별말 못 할 겁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한승일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지고 있을 무렵, 보좌관이 다시 시장실로 들어왔다. “경찰서장과 약속 잡혔습니다. 한일관에서 1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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