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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 송지희 간호사 (40/250)

040. 송지희 간호사2022.01.09.

여느 때처럼 송지희는 연남 중앙병원으로 출근했다. 간호복으로 갈아입고 근무표에 나온 대로 중환자실로 향하려고 했다. 하지만 눈을 씻고 다시 봐도 근무표에 본인의 이름은 없었다. 그때 동료 간호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혹시 스케줄 변동됐나요?” “못 들었어? 당분간 송 선생은 스케줄에서 제외하라고 하던데.” “네? ……누가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송지희를 아래위로 훑은 동료 간호사는 비꼬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야 잘난 송 선생이 알아봐야지. 힘없는 내가 뭘 알겠어?” “원무과장님 지시죠?” “난 모른다니까……!” 통로를 막으며 한 걸음 다가선 송지희를 동료 간호사는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그러게…… 사람이 뒤통수치는 거 아니야…… 몇 년을 동고동락했는데 본인만 잘났다고 진실이니 뭐니 그런 분란을 만들어?” 송지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강준의 말이 떠올랐다. [너무 감정 이입하지 않으셔야 할 겁니다. 원래 내부고발자들이 다 겪는 일이니까요. 만약 못 견디시겠으면 저희에게로 오시죠. 보험조사팀에 간호사 출신도 필요합니다.] 선택지가 있는 사람은 부당한 일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법이다. 강준은 송지희에게 그런 선택지를 만들어준 셈이었다. “수간호사 선생님은 어디 계시죠?” “지금 지희 씨가 병원을 다 뒤집어 놓고 누굴 찾아? 너무 뻔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어느새 다른 간호사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모여들고 있었다. 뒤늦게 수간호사가 도착했다. 수간호사는 송지희의 얼굴을 보자마자 미간을 좁히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송지희…… 너 도대체 어떻게 된 애야!” “뭘 말이에요?” “매사 네 멋대로 하느냐고? 그런 중요한 일이면 먼저 나하고 상의했어야지. 왜? 한번 주목받아보려고 법정에 간 거야?” 송지희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긴 했지만, 정작 눈앞에 닥치니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때로는 제3자 관찰자적 시점으로 상황을 지켜볼 필요도 있습니다. 어차피 직장에서의 상하 관계들은 그만두면 끝이거든요. 직장 내의 병정놀이에 너무 심취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강준의 말이 떠오른 송지희는 한번 굳게 마음을 먹어보기로 했다. 간호사가 되어서 한 번도 항명하지 않던 그녀였다. “우춘배 씨가 병원에서 쓰러졌던 거! 그거 사실이잖아요. 분명 저랑 같이 보셨고요. 왜 거짓말을 하시는 거죠? 위에서 그렇게 하면 예뻐해 주기라도 한대요?” “송지희! 너 이제 막가자는 거야?” 송지희는 수간호사의 옆에서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동료 간호사를 향해서도 일갈했다. “김 선생도 같이 보지 않았나? 이제는 다 짜고서 나 따돌리면 본인은 좀 마음이 편해져? 내가 나가고 나면 그다음 차례는 누굴까?” 송지희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김 선생으로 불리는 간호사의 얼굴이 빨개졌다. 모여든 다른 간호사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그 얘기는 송 선생은 그만두겠다는 말이에요?” “내가? 내가 왜? 나 안 그만둬요. 마음이 불편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죠. 자기 편하겠다고 환자 배신한 사람들이니까요.” “배신……?” “그렇잖아요. 환자가 아파서 보험금을 타는 게 뭐가 문제죠? 오히려 대형 보험사의 압박에 못 이겨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환자를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게 환자에 대한 배신이고, 의료인의 직업윤리를 배신한 거 아닌가요?” 모인 간호사들이 저마다 쑥덕거리는 소리에 귀에 들려왔지만, 송지희는 아랑곳하지 않은 모습으로 병원 바깥으로 확 나가 버렸다. 말을 안 했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간호사로서의 자신의 커리어가 끝났다는 걸 말이었다. 송지희는 유니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성원화재 박강준 대리님이시죠?” ―네, 송 간호사님, 생각이 바뀌셨나요? “……제가 보험조사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물론이죠. 보험사기의 많은 부분은 병원치료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번 우춘배 씨 사건만 봐도 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의료 행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죠. “그럼, 이제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야, 먼저 병원에 사직서를 내는 겁니다! 송지희가 법원에 증언할 수밖에 없었던 건 우영철과 보험사기를 공모해서가 아니었다. [나 때문에 괜히 무리하지 말어. 괜찮으니까…….]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아저씨 요즘에 거동도 힘드시다며? 그것 때문에 너 일도 그만둔 거잖아.] [좋아지시것지…… 일은 재식이 형님이 언제든지 다시 나와도 된다고 했어.] 영철은 학창 시절부터 송지희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던 그녀이기에 영철에게 닥친 불행에 더 마음이 쓰였던 것이었다. 게다가 학창 시절 영철은 자신 때문에 다른 학교 학생들과 기찻길에서 패싸움에 휘말렸다. 그 싸움에서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은 영철을 구해준 건 그의 선배인 장재식이었지만 말이었다. ‘왜 좋은 사람들에게는 항상 불운이 따르지…….’ 영철을 구해주려고 뛰어든 싸움에서 장재식은 상대를 잘못 때리는 바람에 과실치사로 사망에 이르게 했고, 그 죄의 대가로 3년을 소년원과 구치소에서 보냈다. 자연스럽게 영철은 출소한 장재식을 따라 한때 지역 건달이라는 나쁜 길로 빠져들었었다. 송지희는 그런 영철에게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송지희는 이번 손해배상 소송에서 증인으로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낸 느낌이었다. 그렇게 홀가분해진 마음이 들자 그녀는 박강준에게로 생각이 옮겨갔다. 한동안 자신의 환자였던 박강준. 그는 항상 식물인간의 상태에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는 뭔가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었다. ‘설마…… 착각이었겠지…….’ 어쩌면 송지희는 식물인간이었던 박강준과 연을 맺어온 것이 결국 자신을 보험조사관으로 이끈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사직서를 쓰러 병원 건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좀 전과는 달리 마음 한구석이 벅차오르고 있었다. * * * “선배, 죄송합니다.” “야, 됐고, 일단 먹어!” 해리츠 보험의 박성태 부장은 강상훈 사정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해장국을 떴다. 우춘배의 손해배상 소송은 ‘화해권고결정’으로 판결이 났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해리츠 보험의 패소나 다름없었다. 위자료 2,400만 원을 포함해 뇌출혈로 인한 노동력 상실의 피해보상액이 1억 5천만 원이었다. 게다가 간병비에 해당하는 개호비는 뇌출혈이 발생한 시점까지 소급해 적용됐다. 총 2억 3천만 원에 해당하는 손해배상액이었다. 단돈 3천만 원에 해결하려고 했던 원래의 계획에서 한참 벗어난 결과였다. “이번 일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저도 갑자기 그렇게 상대편 측에서 엉뚱한 증인이 튀어나올지 누가 알았나요?” “알아.” 슬쩍 박 부장의 눈치를 보며 숟가락을 드는 강상훈이었다. 그렇게 한 숟갈 뜨려던 순간 박 부장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뭐 이런 사건 하나로 끝나는 사이여서 되겠냐?” “내 말이요! 손해사정 일이라는 게 솔직히 큰 사건 터지면 집에도 못 들어가고 고생하고 그러는 거 선배도 잘 알지 않습니까?” “알지. 그러니까 이렇게 너랑 얼굴도 맞대고 밥도 먹고 그러는 거 아니냐!” “혹시 회사에서는 무슨 말 없습니까?” “아무래도 이 건으로 영향이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 기대와는 다르게 냉정하게 말하는 박 부장을 바라보며 강상훈은 아쉬운 듯 고개를 떨궜다. “이번에 위에서 너를 한번 보자고 하네.” “네? 위에서…… 저를 말입니까?” 강상훈은 순간 머리를 굴리며 박 부장이 말하는 윗선이 어디인지를 생각했다. 그는 궁금했지만 대놓고 물어볼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 너 시간 좀 내야겠다. 요즘 무슨 사고만 났다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보상부터 해달라고 떼부터 쓰니 말이야…… 쯧!” 강상훈은 그제야 며칠 전에 일어났다던 가스 폭발 사고와 관련이 있는 거라 짐작했다. “아…… 저도 들은 거 같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그런 거 아니야? 손해 난 사람 찾아가서 제대로 평가하고 그에 합당한 피해액 보상해 주고…….” “네, 맞습니다.” “근데, 시발……!” 박 부장은 갑자기 숟가락을 ‘탕’하고 내리쳤다. 순간, 강상훈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었다. “개돼지 같은 새끼들이 정직하게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어떻게든 돈 나올 구멍이 있으면 피켓 들고 설치기부터 하거든! 그러니 나라 꼴이 이 모양이지!” 강상훈은 박 부장이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자신에게 뭘 원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매번 하는 대로 피해자들을 구슬러 적당히 합의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강상훈이 해야 할 일이었다. 박 부장은 TV 화면을 켰다. 저녁 시간이라 마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젯밤 연남시에 위치한 한 상가 건물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불은 1층의 한 식당에서 시작됐지만, 지난해 보수 공사한 우레탄 단열재를 타고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습니다. 이 사고로 5명이 크게 다치고 3명이 사망했습니다.] 인명피해가 난 사건이었다. 박 부장은 인상을 쓰며 TV를 다시 꺼 버렸다. “저 사건인가요?” “어.” “화재보험을 해리츠 쪽으로 들었나요?” “그것도 그거지만…… 한승일 시장이 화가 많이 나셨어.” “왜요?” “재선이 코앞이잖아. 괜히 선거 앞두고 저런 사고가 불거지면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겠어?” 순간 강상훈은 아까 말한 윗선이 한승일 시장이리라 짐작했다. “그럼…… 이번 피해 보상 절차는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야겠네요.” “그렇지. 언론에서 냄새를 맡은 모양이야. 괜히 이슈 거리를 빌미로 줬다간 기자들이 계속 부풀릴 거라고.” “아까 말씀하신 위에서 저를 보자고 한다는 건…….” “내일 시간 되지?” “안 돼도 되게 해야죠.” 야무지게 대답하는 강상훈을 보며 박 부장이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시장님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어. 아마 법원 뒤편의 한정식집이 될 거다.” “혹시 선거 캠프에 들어가시는 겁니까?” “내가? 내가 그렇게까지 오버할 이유가 있냐?” 뚝배기를 두 손으로 들어서 남은 국물을 마저 마신 박 부장은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 강상훈을 향해 말을 이었다. “너 연남시 공공기관들이 헬기를 몇 대나 보유하고 있을 거 같냐?” “글쎄요…… 한 10대는 되지 않겠습니까?” “산림청, 경찰청, 소방방재청…… 다 합쳐서 23대다. 한 대당 보험료는 9억! 그거 공공 입찰로 하는 거야. 실제로는 낙찰자가 다 정해져 있지만…….” “아…… 그렇군요…….” 대형 보험사인 해리츠 보험이 현직 시장과 친해져야 할 이유는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였다. 보험설계사들의 노동 처우개선 문제, 불완전 상품 판매 문제, 그리고 의료비 보험수가 조정 문제…… 모든 게 정치권에 대한 로비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안에 적극적인 우군이 되어줄 수 있는 한승일 시장의 재선을 돕는 건 해리츠 보험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한승일이 떨어지면 그 공공입찰 한국보험으로 넘어간다……. 재선에서 한승일이 떨어지면 나나 너나 지금까지 쌓아온 거 한순간에 끝장날 수 있어!” 박성태 부장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두 손을 꾹 말아 쥐고는 강상훈을 바라봤다. “할 수 있지?” “그…… 그럼요……! 당연하죠.” 애써 호언장담하는 강상훈이었지만, 왠지 모를 부담감을 표정에서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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