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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 민사소송 재판 (39/250)

039. 민사소송 재판2022.01.08.

연남 지방법원. 강준은 최은정과 함께 민사재판이 열리는 법원 건물로 들어갔다. 방청석에는 이미 경제지 기자들 몇몇이 앉아 있었다. 최은정은 그중 몇몇과 눈인사를 나눴다. 언론 노출이 부담스러웠던 우영철은 마지막에 심경을 바꾸었다. 언론의 주목이 오히려 판결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원고가 주장한 기대여명은 7년입니다. 하지만 금형 종사자로서의 월평균 소득으로 계산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산업별 종사자들의 임금을 도출한 조사보고서는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들의 근로자 임금을 평균 낸 겁니다.” 해리츠 보험의 변호인단은 꼼꼼한 변론서를 준비해왔다. 우춘배의 기존 병력자료와 연남 중앙병원에서 제출한 신체감정촉탁 자료, 그리고 또 다른 병원에서 작성된 질병 소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우춘배 씨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개인사업자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근로자 임금 평균에 따라 손해배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 피고 측에서는 뭘 근거로 기대여명까지의 일실수입(일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잃게 되는 상실수익)을 산정할 겁니까?” “도시보통인부의 일용 노임을 기준으로 가동기간 60세가 될 때까지로 산정되어야 합니다.” 해리츠 보험 측 변호사의 주장에 민훈 변호사가 벌떡 일어섰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원고 측 변론하세요.” “우춘배 씨의 금형 사업은 연 소득 8천만 원의 회사였습니다. 더군다나 2명의 기술자를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단순노동자의 일용 노임을 기준으로 한다니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민사소송은 검사와 변호사가 싸우는 재판이 아니라 양측의 변호인단이 싸우는 재판이다. 그렇기에 변호인단의 구성이 재판을 좌지우지하게 마련인 실정이었다. 3명으로 구성된 해리츠 보험의 변호인단을 민훈 변호사가 가까스로 홀로 맞서고 있는 형국이었다. “원고! 개인사업자의 일실수입은 책정하기 어렵다는 거 잘 알지 않아요? 그 부분은 원고 측에서 양보하세요.” 대놓고 원고 측에 양보를 제안하는 판사였다. 판사가 그렇게까지 말했으니 민훈 변호사로서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협의안이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뇌출혈을 기왕증으로 판단해 손해배상에서 완전히 제외한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건 이미 질병소견서에서도 나온 것처럼…… 일반적인 뇌내출혈은 교통사고 같은 외상 때문에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나왔잖아요.” 질병소견서는 해리츠 보험이 주주로 참여한 대형병원인 내일병원에서 발급된 것이었다. 민훈 변호사는 판사의 말에 방청석에 앉은 강준을 한 번 바라봤다. “그 부분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원고 측은 관련 증인을 신청하는 바입니다.” “원고 측…… 미리 증인 신청했어요?” “증인이 재판에 설 수 있도록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금일 오전에 증인의 결심이 선 것이고요. 그 부분 판사님께서 참작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자 해리츠 보험의 대표 변호사가 벌떡 일어나 강하게 반발했다. “판사님, 피고 측은 증인을 세운다는 말을 사전에 듣지 못했고, 그에 따른 준비도 전혀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증인심문은 다음 공판일로 미룰 것을 요청드립니다!” “피고 쪽에서 계속 공판일을 연기시키고 있습니다! 증인이 어려운 결정을 했는데 계속 공판을 연기시킨다면 이건 실질적으로 재판을 방해하는 행위입니다!” 양측의 발언에 판사가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입을 뗐다. “……증인. 준비됐으면 나오세요.” “감사합니다! 판사님.” 강준은 법정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연남 중앙병원 간호사였던 송지희였다. “정말 괜찮으세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와야죠.” “법정에서 증언하면 병원에서 일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춘배 씨의 머리에 처음부터 이상이 있었던 건 사실이잖아요. 법정에서는 사실 그대로를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침묵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 걱정은 마세요. 얼른 들어가요.” 송지희는 강준의 질문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준은 그녀의 동창인 우영철 때문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말을 삼켰다. 법정에서는 민훈 변호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증인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원고 우춘배 씨가 처음 입원한 4개월 동안 두통이나 어지러움을 호소한 적은 없었나요?” “네 있었어요. 하지만 분쇄 골절 수술을 받은 직후라 병원에서는 수술 회복기에 일어나는 증세로 판단했어요.” “그럼 그 이후에는 그런 증상에 대해서 어떤 조처를 했나요?” “두부 CT 촬영을 했었어요. 근데 CT상 혈액이 고여 있다거나 뇌압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뇌출혈 진단을 하지 않았던 거예요.” “그럼, 병원 측의 과실은 없다는 거네요?” 잠시 망설이던 송지희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우춘배 씨의 교통사고 후유증을 조기에 진단할 수 없었던 게 책임이라면 책임이겠지만, 그건 다른 병원을 갔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CT 진단 이후에는 어떤 처방을 했나요?” 판사가 송지희에게 직접 질문했다. “정강이와 종아리뼈 수술이 회복되고 나서는 그전에 하지 못했던 허벅지…… 그러니까 대퇴골과 슬개골 쪽 수술을 했었어요.” “총 수술은 몇 차례 했나요?” “고정핀을 제거하는 수술까지 총 4차례요.” 짧게 대답하는 송지희는 해리츠 보험의 변호인단을 한번 쳐다봤다. 예상치 못한 증인의 등장에 그들은 먼저 송지희에 대한 정보부터 파악하는 모습이었다. “수술 후유증일 수도 있지 않나요?” “뇌출혈을 일으키는 요인들은 다양하니까요…….” 그때, 민훈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원고의 뇌출혈이 수술 후유증이라 할지라도 그건 교통사고의 2차 피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원고 측 변호인 잠시만요.” 판사는 민훈을 제지하고 질문을 이어갔다. “손해배상의 측면에서 교통사고의 외상과 뇌출혈의 연관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낮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실은 두 번째 입원 기간에 우춘배 환자가 세면장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어요…….” “흠…… 제출한 의료기록에는 그런 사항은 없었는데요?” 판사는 민훈 변호사가 제출한 자료를 뒤적였다. “그걸 아는 건 당직 간호사들밖에는 없어요. 곧바로 응급 뇌압을 낮추는 전술 시술을 받았던 거로 기억해요.” “그 이후에는 병원을 옮겼네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민훈 변호사가 판사 쪽으로 다가갔다. “그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원고에게 뇌출혈 증세가 오니까 해리츠 보험 쪽에서 내일병원으로 병원을 옮기게 했습니다. 뇌출혈 전문병원이라는 핑계로요.” “그건 합당한 이유인 거 같은데요?” “내일병원이 뇌출혈 전문병원이라는 근거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교통사고와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는 의사소견서를 받아내기 위해 해리츠 보험이 자기 입맛에 맞는 병원으로 가게 한 겁니다!” “반대 측 얘기도 들어봐야 할 것 같군요.” 판사의 말에 해리츠 보험 측 변호인이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 “잠시 정회를 요청합니다. 저희 쪽에서도 질의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해리츠 보험의 변호인단은 방청석에 있던 강상훈과 심각한 얘기를 나눴다. 강준은 그런 강상훈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여기서 또 뵙게 되네요.” “아…… 누구시더라?” 강상훈은 중앙병원에서 잠깐 스쳤던 강준을 기억하지 못했다. “성원화재의 박강준 대리입니다. 우리도 독립 손해사정사분들과 잘 지내보려 합니다.” “아…… 네, 저는 해리츠 보험과만 일하고 있어서요.” “사람 일이라는 건 어찌 될지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강준은 내민 손이 어색하다는 듯 씩 웃어 보였다. 강상훈은 어쩔 수 없이 강준의 손을 맞잡았다. 그때, 강준은 강상훈의 기억을 읽어 들였다. [수간호사님이 와주셔야 할 거 같은데요. 어차피 중환자실 간호사면…… 환자들 제대로 못 봤을 수 있다고 우기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좀 전까지 법정 복도에서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며 전화를 받는 강상훈이었다. [네? 우춘배 아들하고 동창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이것들이 지금 서로 짜고 보험사기를 친다 이 말 아닙니까? ……네, 그럼요! 병원에는 물론 피해가 가지 않게 해드려야죠. 네, 과장님. 그럼 조만간 또 찾아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상훈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의 음흉한 감정이 강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우리 성원화재에서도 손해사정사님들 이력서를 받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지원하시면 됩니다.” “아니…… 근데…….” 불쾌한 표정을 짓는 강상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준은 등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강상훈의 말대로 연남 중앙병원의 수간호사가 법원 주차장에 막 도착해 있었다. “수간호사님 되시죠?” “네, 해리츠 보험 쪽이세요?” “아니요. 성원화재 직원입니다.” “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수간호사였다. 그녀는 그저 병원장의 지시로 무작정 법원으로 달려온 것일 뿐이었다. “우춘배 씨 세면장에서 쓰러진 사실이 없다고 증언하러 오셨죠?” “아니, 그걸…….” 놀라며 순간적으로 입을 닫는 수간호사였다. “해당 사실은 이미 간호기록부를 저희 쪽에서 확보해 둔 상태입니다. 아시죠? 법정에서 위증은 사법적인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이요.” 사실 간호기록부에 대해서 확보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강준은 그저 원무과에서 받았던 우춘배의 의료기록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간호기록부 위조는 의료법 위반이기도 하고요. 간호사 자격이 정지될 수도 있어요.” 공포 마케팅은 언제나 잘 먹히는 법이었다. 수간호사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고, 법정으로 이동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강준의 옆에는 최은정이 나와 있었다. “저 사람이 수간호사인가 봐요.” “네, 아마 원무과장한테 전화하고 있을 겁니다.” “증언할까요?” “아마 못 할 겁니다. 병원이 세상에 한 군데는 아니거든요. 간호사 자격을 걸면서까지 위증하지는 않겠죠.” 재판이 재개되었지만, 수간호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강준 씨는 정말 귀신이네요.” “……돌아가는 정황으로 판단하는 거죠.” “근데 정말 송지희 간호사…… 괜찮겠어요?” “글쎄요. 저도 걱정이 되네요.” 강준과 최은정은 방청석에서 말이 없어졌다. 피고의 반론이 시작됐다. “송지희 씨, 원고인 우춘배 씨와는 무슨 사이죠?” “……아들인 영철이와 고교 동창이에요.” “흠, 그럼 최근에 우영철을 만난 적이 있나요?” “아니요.” 민훈 변호사가 얼굴이 벌게져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피고 측 변호인은 증인에게 불필요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증인과 원고의 관계는 중요한 이해관계가 엮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바꿔 말하면 보험사기를 공모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판사님, 당장 피고 측 질문을 중단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판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재판이 새로운 국면으로 갈 수도 있는 문제였다. “보험사기 공모에 대해서는 별도로 조사가 필요하다고 인정됩니다. 하지만 본 법정은 민사법정입니다…… 피고 측이 제기한 의혹은 정식 기소를 통해 형사 법정에서 다뤄주시기 바랍니다.” 에둘러 말했지만, 판사는 해리츠 보험 측 변호인단의 요구를 일축한 거나 다름없었다. “한시름 놨네요. 이제 판결만 남은 거 같은데요.” “보상액이 얼마나 나올지 그게 관건이겠네요.” “최소한 원래보다는 몇 배로 나올 거예요. 법정에서 기대여명을 퉁쳐버리는 짓 따위는 못 할 테니까요.” 법률전문가인 최은정이 강준을 보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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