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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방화 모의 (3) (35/250)

035. 방화 모의 (3)2022.01.04.

조철민은 뉴월드 상가의 조합원 간부였다. 한때는 한광수 조합장과 함께 상가 재개발에 앞장서기도 했지만, 재개발이 멈춰 서면서 그의 인생도 같이 멈춰 서 버렸다. “조합장님은 안 오시겠죠?” “안 와, 주말에는 시골에 내려가거든.” 조철민은 잔뜩 겁을 집어먹은 고진기를 향해 말을 툭 내뱉었다. 고진기는 아직도 마음의 향배를 완전히 정하지 못한 듯했다. “진기야…… 너 혹시 흑곰 그 새끼한테 붙으려고 머리 굴리는 중이냐?” “정말 괜찮을까요? 그 보험조사관이라는 사람요…….” “뭐, 사채업자보다야 훨씬 믿을 만하겠지. 게다가 경찰 놈들한테도 한 방 먹일 거라며?” “그야, 어떻게 될지 모르죠. 황 반장이 연남경찰서는 꽉 잡은 거 아닌가요? 블랙박스 영상 하나 걸렸다고…… 뭐 어떻게 되겠어요……?” “모르겠다. 나는…… 올라오려면 오고 말라면 말아…….” 조철민은 고진기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는 투로 말하고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한 손에 시너통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소주병을 들고 있었다. 음주 중 실화로 불을 내는 거로 흑곰과 말을 맞춰 놓은 상태였다. 다만 흑곰이 모르는 건 불을 내기 직전에 그가 강준에게 연락한다는 점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같이 가요. 같이!” 고진기는 조철민을 놓치기라도 할까 봐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잠시 후, 그들은 조합원 건물 앞에 섰다. 조합원들이 가끔 고기를 구워 먹는 드럼통 위에 조철민은 가져온 시너를 부었다. 휘발성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정말 불을 붙이실 거예요?” “……전화해 봐야지.” 조철민은 주머니 속의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면서 강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요. 어떻게 할 거요?” ―흑곰과 얘기했던 대로 불을 붙이시죠. “정말…… 당신 목적이 뭐야? 정말 불을 붙이라고?” ―네, 그래야 흑곰이 움직일 겁니다. “흑곰이 움직이다니 무슨 꿍꿍이야?” ―설마 뉴월드 상가의 방화를 두 명한테만 맡겼을까요? 조 사장님과 고진기 씨는 방화죄를 뒤집어쓸 역할일 뿐이었던 거죠. 전화를 끊은 조철민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칫 흑곰의 말만 믿고 방화를 했다면 빚을 탕감받기는커녕 방화범으로 감옥에 갈 뻔했다. “씨발…… 새끼!” 조철민은 욕을 한 마디 내뱉고는 라이터의 불을 켰다. 그리고 불이 옮겨 붙은 종이를 시너로 가득 젖은 드럼통에 던져 넣었다. 화르르륵! 화르르! 거센 불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고진기가 다급하게 물었다. “뭘, 어쩌긴 어째! 여기서 불구경이나 하는 거지. 그 보험사 직원이 경찰한테 알렸다니까 우리가 방화범으로 잡혀갈 일은 없을 거다.” “흑곰은요? 그 새끼들 어떤 새끼들인지 잘 아시잖아요?” 경찰보다 흑곰파를 더 무서워하는 고진기였다. “너…… 보험금 탔다며? 그거 다 어쨌어? 그걸로 빚이나 갚지.” “흑곰한테만 빌린 게 아니었거든요. 여기저기서 빌리다 보니…… 벌써 다 나가고 없죠.” 고진기는 생각보다 더 곪아 있었다. 타들어 가는 불길을 보며 고진기는 여기까지 와 버린 상황이 무척이나 후회됐다. “……에라, 모르겠다. 그 보험사 직원한테 연락한 건 조 사장님이 하신 겁니다.” 고진기에게 남에게 책임을 미루는 건 일종의 버릇 같은 거였다. 조철민은 그런 고진기를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한편 그 시각, 뉴월드 상가의 곳곳에서는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흑곰이 심어놓은 부하들이 전기 배전판에 불을 지르려고 3층 상가의 복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부하들은 방화범으로 몰아갈 조철민과 고진기를 3층에 가둬 버릴 생각으로 출입문 곳곳을 차단하는 중이었다. 강준은 한광수 조합장과 함께 상가 뒤편의 철제 계단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둘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강준의 옆에는 각진 얼굴의 남자와 그를 따르는 대여섯 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상구는 다 열려 있는 거죠?” “잡다한 짐으로 가려 있는 건 내가 다 치워놨어.” 강준은 흑곰파 녀석들이 어디를 노리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가짜 생명보험 계약서를 전달하면서 흑곰의 기억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강준은 옆에 있던 각진 얼굴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장재식 씨,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마쇼, 흑곰 그 개새끼 얼굴 썩는 거 상상만 해도 즐거우니까!” 각진 얼굴을 가진 남자의 이름은 장재식, 그는 회귀 전 강준의 고교 동창이었다. 그는 연남시 외곽의 주류회사 사장이었지만, 한때 건달 생활을 함께했던 흑곰과는 악연을 가진 사내였다. “야! 다들 몸조심하자!” “네, 형님!” 장재식의 말에 형님이라고 대답하는 이들은 회사 직원이자 한때 그를 따르는 후배들이었다. 철제 계단을 우르르 오르는 그들의 뒤를 강준이 뒤따랐다. 그의 손에는 현장을 잡을 수 있는 캠코더가 들려 있었다. 먼저 잡아야 할 곳은 3층이었다. 환풍구를 통해 불길이 번진다면 걷잡을 수 없이 피해가 커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일을 치르기 전에 장재식의 무리는 흑곰 일당을 발견했다. 그들은 배전판을 열어두고 어떻게 불을 지를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야! 거기서 다들 뭐 하고 있냐?” 장재식은 배전판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덩치들을 향해 외쳤다. “무식한 새키들아! 거기에 시너라도 뿌리려고 그랬냐?” “거…… 누군데 시비야! 야, 조져!” 서너 명의 덩치들이 우르르 달려들었지만, 잔근육으로 다져진 장재식의 직원들은 호락호락하게 밀리지만은 않았다. 강준은 그 모습을 캠코더에 모두 담았다. 그리고, 이진철 경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사과 사람들은 출동했습니까?” ―아마, 지금쯤 가고 있을 겁니다. 지난번 강준 씨가 준 영상 때문에 경찰서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거든요. “이번에는 흑곰을 체포하려고 하겠네요?” ―체포 안 하고는 못 배길 겁니다. 기를 쓰고 잡으려고 하겠죠. 지난번 일을 묻으려면 자기네들 손으로 직접 흑곰을 잡았다고 해야 할 테니까요. 강준은 회귀 전 자신이 일했던 형사과가 얼마나 썩어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황재규 반장은 영리하게 범죄조직들과 유착관계를 이어갔던 인물이었다. ‘이걸로 경고는 됐겠지……!’ “박강준 씨, 이 새끼들 어떻게 할까요?” “일단 테이프로 묶어두시죠. 곧 경찰들 온다니까요.” 장재식은 우악스러운 손길로 흑곰의 부하들을 묶었다. “야! 너희 사장 어딨어? 어! 흑곰 그 새끼 어디로 내뺐냐고!” “시발 내가 그걸 말하겠냐?” “하긴, 원래 그 인간은 위험한 건 남들한테 시키고 자기는 뒤에서 구경하는 게 특기지!” 장재식의 무리는 3층의 상황을 정리하고 옥상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장 사장님! 옥상은 제가 맡을 테니, 차라리 근처 뉴월드 상가에 주차된 차량 좀 확인해 주시죠. 흑곰은 분명히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괜찮겠어요?” 언제나처럼 상대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장재식이었다. 강준은 고교 시절 기찻길에서 일어났던 패싸움이 생각났다. 그 싸움으로 장재식은 퇴학당했고, 결국 교도소에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회귀 전 강준은 재식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다. 그가 다시 건달의 세계에 빠지게 되는 걸 방치하고 싶지는 않았다. ‘재식아…… 이번 생에서는 나랑 같이 가자!’ 강준은 속으로 그런 다짐을 하면서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강준의 손에는 계단 복도에서 집어 든 소화기가 있었다. 덜컹! 낡은 옥상 문을 열자 그곳에는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던 조철민과 고진기가 동시에 강준을 돌아봤다. “……정말 왔네!” 조철민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강준은 불길이 타오르는 드럼통을 향해 수화기를 분사했다. * * * 그날 흑곰파는 뉴월드 상가에 대한 방화혐의로 붙잡혔고, 불법 추심에 대한 혐의가 더해졌다. 그와 더불어 채무자들에 대한 폭력도 조사에 들어갔다. 황재규 반장은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했다. 자신의 목숨줄이 달린 일이었다. 그랬기에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해 사건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황 반장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야! 형식아, 네가 책임지고 이 새끼들 자백 다 받아놔! 알겠어?” “알겠습니다!” 김형식 형사는 굵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최근 며칠간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황 반장이 겨우 사채업자에 불과한 흑곰을 왜 그토록 비호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잡은 흑곰을 눈앞에서 놔주려고 한 것도 바로 황 반장의 전화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문을 파고들기에는 너무 피곤한 일들이 눈앞에 산적해 있었다. 김 형사에게는 놓쳐 버린 흑곰보다는 며칠째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간 후배들이 더 눈에 밟혔다. 황 반장은 혼자 있는 휴게실에 들어가서야 흑곰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건방진 양아치놈을 당장에라도 잡아서 감방에 처넣고 싶었다. “야 이 새끼야, 왜 자꾸 전화질이야!” ―아이고, 황 반장님 왜 이리 흥분하시고 그럽니까? 난 차분히 대화 좀 하려고 연락드린 건데. “내가 너보고 이러는 줄 알아! 너 전대성 회장만 아니었으면 내 손에 죽었어! 알아!” ―하아…… 그래서? 뭐 어쩌시려고? 나 감방에 잡아넣게요? 고분고분하지 않은 흑곰의 말투였다. 그 말투에 황 반장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개새끼야! 그러니까 내가 조심해서 움직이라고 했지! 생명보험? 너 그거 전대성 회장이 아냐? 왜 하라는 짓거리는 안 하고 엉뚱한 사고만 쳐!” 문화복합단지 개발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뉴월드 상가의 방화를 지시한 건 전대성이었다. 하지만 방화범이 될 채무자들의 사망보험금까지 가로챌 보험사기를 기획한 건 온전히 흑곰의 머리에서 나온 거였다. ―휴우…… 나 혼자서 안 죽어요. 아시잖아요? 내가 그동안 황 반장님 식구들 먹여 살린 거……. “이 새끼가! 주인을 물어!” ―주인이고 개새끼고…… 그딴 거는 모르겠고, 나 수배나 풀어주쇼. 솔직히 방화는 밑에 놈들이 끌어안고 가기로 했으니까 이제 다 끝난 거 아닙니까! 황 반장은 담뱃불을 붙이면서 인상을 팍 썼다. “너 보험사기에 걸린 거야! 인마! 왜 쓸데없이 보험계약서를 만들어서 네 목을 졸라! 수익자에 네놈 이름이 떡하니 있는데 그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통화음 너머에서 흑곰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보험사기는 흑곰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그거…… 내가 쓴 계약서도 아닌데……. “그럼 누가 썼는데!” 흑곰은 차마 자신이 박강준을 끌어들여 생명보험 계약서를 조작했다고 실토할 수는 없었다. “너 당분간 숨어 지내! 수배는 잠잠해지면 풀어 줄 테니까.” 황 반장은 신경질을 내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수신 벨이 다시 울렸다. 임철호 경찰서장의 전화였다. “와…… 시발! 죽겠네. 나보고 중간에서 뭐 어쩌라는 거야!” 황 반장은 태우다 만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바닥에 비벼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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