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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 방화 모의 (2) (34/250)

034. 방화 모의 (2)2022.01.03.

형사과의 황재규 반장은 갑작스러운 경찰서장의 호출에 뭔가 평소와는 다른 낌새를 느꼈다. 그건 아무런 근거 없는 촉이었지만, 황 반장은 그런 자신의 촉을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촉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맞아떨어졌다. “야, 황 반장,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야?” “네? 뭘 말입니까?” “뭐긴 뭐야 인마! 성병철 그 자식 말이야!” “흑곰파 말입니까?” “그래!” 임철호 서장은 짜증이 난다는 듯 회전의자를 황 반장 쪽으로 홱 돌렸다. “제가 시끄럽게 하지 말라고 몇 번 경고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걔네 우리 코앞에 하우스 열었단다! 이게 뭐냐? 쪽팔리게……. 신고 들어왔단다. 나가서 단도리 하고 와!” “혹시 누가 신고를…….” “그건 네가 가서 알아봐야 할 거 아니야! 참나…… 전 회장은 하필이면 왜 그런 근본 없는 녀석을 쓰고 지랄인 거야!” 황재규는 서장의 일갈에 몸을 움츠리고 서 있었다. “그리고 재규야…… 지금 중요한 때인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서장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건 은밀히 뭔가를 공모하려고 할 때였다. “너 뉴월드 주변에 땅 좀 샀냐?” “아뇨. 제가 그런 거 살 돈이 어딨다고 그러십니까……?” “재규야, 우리끼리인데 뭐 어떠냐? 그냥 말해. 나중에 나 어이없게 하지 말고!” 황재규는 얼마 전 아내의 이름으로 뉴월드 상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주택을 사들인 걸 말해야 하나 망설였다. “실은…… 근처에 마누라 명의로 집 하나 샀습니다…….” 하지만 황 반장은 임철호 서장과 한배를 탄 거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그래…… 잘했다. 같이 고생하는데 너도 먹어야지…… 좌우간 너 그 집값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겠냐? 문화복합단지…… 그거 만들어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 “네, 맞습니다!” “시장님 재선이 코앞이다. 뉴월드 상가 건으로 잡음 나면 재선 가도에도 빨간 불이야. 알지?” “그럼요.” “그러니까! 문제 안 생기게 당장 가서 흑곰파 애들 잡아 와!” “네, 알겠습니다!” 임철호 서장은 여러 가지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보수파인 한승일이 연남시에서 시장으로 재선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더 신경을 바짝 쓰고 있는 것이었다. 서장실을 빠져나온 황 반장은 형사과의 형사들이 모조리 출동할 준비를 마치고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야! 뭐야? 너희들 누구한테 소식 들었어?” “경제수사과 이진철 경위가 제보를 받은 거라는데요.” 굵은 목소리의 김 형사가 대답했다. 나머지는 총기와 범인제압봉을 허리에 찬 채, 황 반장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제수사과에서……?” “아무래도 도박 관련이다 보니까 그쪽으로 신고를 한 모양입니다.” 황 반장은 머릿속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우스를 신고할 만한 인물이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경쟁 하우스거나 아니면 돈을 왕창 잃은 인물이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일단 가자. 보이는 돈 다 압수하고, 관련자들 다 현장 체포하고.” “반장님, 인원은 보강하고 가야 할 것 같은데요……. 도박꾼들 다 잡아 오려면 차량도 더 필요하고요.” “기동대에 인력지원 좀 요청해!” “반장님, 수사과에다 요청 안 하고요?” “야! 하우스 하나 잡는데 무슨 요란을 그렇게 떨어!” 김 형사는 괜히 일거리를 떠맡긴 이진철 경위가 원망스러웠다. 게다가 그런 수사과에서 인력지원도 못 받는다고 생각하니 더 짜증이 올라왔다. “나도 따라갈 테니까 먼저 도착했다고 먼저 털지 말고 기다려.”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연남경찰서에서는 봉고 3대가 차례로 출발했다. 맨 뒤에 따라가고 있던 황 반장은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보낸 문자의 주인공은 바로 흑곰이었다. 황 반장이 하우스가 있다는 모텔에 도착하자 이미 도박꾼들은 날라 버린 상태였고, 흑곰의 부하들 몇몇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경찰을 맞이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잠시 후 모텔 주인이 잡혀 왔다. 김 형사가 그에게 수갑을 채우며 말했다. “도박장 제공 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 변호인 선임할 권리가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어요…… CCTV 제공하는데 협조해 주시고요.” “전 몰랐다니까요…… 그리고 우리 CCTV 작동을 안 하는데요…….” 뻔한 거짓말이었다. 주변에서 제일 낡아 보이는 모텔이었다. 도박장으로 활용할 걸 알면서도 매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꼭대기 객실 한 층을 빌려줬을 터였다. “조사하면 다 나와요. 경찰 단속 나오면 미리 알려주는 역할까지 하셨나?” “난 몰랐다니까!” “그 많은 노름꾼이 들락거리고 꽁짓돈 빌려주는 인간들이랑 박카스 팔며 심부름하는 인간들까지 오가는데…… 그걸 못 보셨다? 말이 된다고 봐요?” 모텔 주인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난 아니라고요…….” “알겠으니까 일단 갑시다. 경찰서에 가서 조사하면 되니까…… 그리고 너희들!” 김 형사는 흑곰의 부하들에게 다가갔다. “새끼들아! 내가 사고 치지 말라 그랬지? 아주 우리 코앞에서 지랄들이네…… 우리 좆돼봐라 이거지?” “형사님, 진짜 우리는 다 말씀드리고 한 거라니까요.” “뭘 말씀을 드려? 누구한테?” “……있어요…….” 흑곰의 부하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새꺄! 장난쳐! 누구?” “형사님 윗선이요! 윗선!” “그니까 윗선 누구?” “서장님이요! 아시잖아요. 우리가 어디 그냥 막 설치고 다닙니까?” 김 형사는 순간 놀랐지만, 애써 내색하지는 못했다. 형사 생활 10년이 넘은 짬밥이 있었기에 그는 눈치껏 모른 척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때 황 반장이 김 형사에게 다가왔다. “여기 얘네들 조사하고, 판돈은 압수해.” “도박꾼들이 미리 다 도망을 가서요. 그건 어떻게 할까요?” “야, 도박꾼들이라고 해 봐야 어차피 이 동네 사람들이야. 적당히 몇 명 불라고 해.” “……알겠습니다!” “잘 정리하고 와.” 황 반장은 김 형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를 떴다. 김 형사는 적당히 마무리되는 거에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었다. ‘근데 도대체 신고는 누가 한 거지……?’ 김 형사가 현장을 정리하고 있을 때, 신고가 들어온 모텔의 맞은편 또 다른 모텔 주차장에는 블랙박스를 켜놓고 그 광경들을 모조리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보험조사관 박강준과 도박장에서 담배심부름을 하던 고진기였다. “봐봐요. 경찰이 저렇게 짜고 치니 수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러네요. 뭐, 여기 경찰들이 다 그렇죠.” 맥없는 소리로 답하는 고진기는 두 시간 전만 해도 모텔 꼭대기 층에서 벌어진 하우스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경찰도 흑곰을 그냥 두진 못할 거 같은데요?” 고진기는 토요일 밤 방화를 하기로 했던 또 한 명의 채무자였다. 그는 흑곰의 뒤통수를 치는 일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더군다나 보험사 직원일 뿐인 강준을 믿을 수는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강준은 블랙박스 영상이라는 무기를 보여줌으로써 고진기를 안심시킨 셈이었다. “이제 동생분 얘기를 좀 해보죠. 정말 실족사였습니까?” “휴…… 걔가 진짜 어릴 때부터 한눈 안 팔고 성실하게 일만 했었던 애거든요. 근데 몇 년 전에 뉴월드 상가 개발된다고 한창 들떴을 때, 가진 돈 다 털어서 들어갔었죠…….” “개발 이슈가 묻히고 오히려 돈이 묶여 버린 거였군요.” 고진기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는데…… 얼마 전에 새로 상가관리단이 만들어진다고 들썩이더라고요. 뭐, 이미 물밑에서는 다 작업을 마쳤다고 하는데…….” “그걸 흑곰이 주도적으로 한 거군요.” “네, 상인들한테 돈 빌려주고 이렇게 하더니만 결국은 그걸 빌미로 똥값이 돼 버린 점포들을 하나둘씩 인수하더라고요.” “그 뒤에는 고진기 당신도 한몫했군요.” “네? 제가 하긴 뭘 해요? 저도 빚쟁이인데!” 고진기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하지만 강준은 이미 그의 기억을 읽었다. 그는 빚 때문에 그런 거였는지 적극적으로 상가 상인들을 설득해 흑곰에게 점포를 넘기는 역할을 해왔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친동생인 고민기의 점포까지 몰래 팔아치웠던 것이었다. “고민기 씨의 점포는 이미 라성캐피탈…… 그러니까 흑곰의 윗선으로 팔려나갔더라고요?” “그…… 그건 저도 몰랐어요…….” 끝까지 변명과 회피로 일관하는 고진기였다. “고민기 씨 사망보험금 8억 원, 그중에 얼마나 챙기셨어요?” “……제가 챙기긴 뭘 챙겨요…….”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고진기에게 강준은 쐐기를 박는 말을 던졌다. “그중 절반은 미망인한테,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고진기 씨한테 갔더군요. 그래도 양심은 있네요. 남은 조카들을 위한 마음이었나요?” 강준은 사망한 고민기의 명의로 가입된 생명보험이 총 5개가 있었다는 걸 조사했었다. 그 조사에 따르면 생명보험 중 2개는 친형인 고진기가 수익자로, 나머지 3개는 미망인이 수익자로 되어 있었다. “……흐…… 흐흑…… 진짜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울먹이는 고진기에게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죽기보다도 더 괴로운 일이었다. 어쩌면 친동생이 희생되는 걸 방치하면서도 자신은 지극히 유약한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고진기 씨, 당신은 동생이 자살하리라는 걸 예상했어요! 그렇죠?” “……아니 ……아닙니다 ……흐흑…….” “그렇게 울먹인다고 죽은 동생이 돌아옵니까?” 강준이 차갑게 말을 잇자 고진기는 울음소리를 멈췄다. “지금 고진기 씨가 할 수 있는 건……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흑곰파의 방화 모의를 막아 내는 겁니다. 상가가 불타게 되면 점포값은 더 떨어질 겁니다. 화재보험에 가입되어 있더라도 보상금은 미미할 거고요.” “제안은 받았지만…… 원래 안 하려고 했었습니다.” 거짓말이었다. 고진기는 이미 방화의 대가로 빚을 탕감받을 계획을 다 세워놨었다. “잘됐네요. 그럼 토요일 밤에 협조해 주시는 거로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죠. 근데,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뉴월드 상가 조합사무실에서 조철민 씨를 만나서 불을 내려고 하셨죠?” “그…… 그걸 어떻게?” “흑곰이 원하는 대로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에게 문자로 이동상황을 공유해 주시면 됩니다.” 고진기는 강준의 눈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정말, 제가 그것만 하면 된다는 말씀인가요?” “네, 또 다른 게 있나요?” “아…… 아뇨. 그리고 보험 건은…….” “그건 걱정 마시죠. 어찌 되었건 고민기 씨의 사망이 자살이라고 해도 보험사기는 아니니까요……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남은 보험금은 꼭 미망인에게 돌려주십시오. 그게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무…… 물론이죠. 도박 빚만 아니라면…… 흐흑…… 제가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강준은 고진기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럼, 또 연락드리죠.” 고진기가 어찌 나올지 예상할 수 없었다. 어쩌면 강준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흑곰에게 전말을 털어놓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난 마지막 회생 기회를 준 거다.’ 강준은 고진기가 어떤 선택을 하든 뉴월드 상가에서 일어날 참사는 반드시 막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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