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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자살보험 (3) (32/250)

032. 자살보험 (3)2022.01.01.

“매번 장사하는 데 와서 이러면 어쩌자는 거요?” “아니, 돈 꿔준 사람이 돈 받으러 왔는데…… 내가 뭐 잘못한 거야? 내가 죄지었어?” 흑곰은 명목상 합법적인 선에서 추심활동을 해나간다고 했지만, 덩치들을 데리고 채무자들을 만나는 건 명백한 협박에 가까웠다. 김철영은 흑곰 일행과 마주칠까 봐 강준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괜히 엮여서 좋을 게 없는 놈들이야. 저놈들이 강준 씨가 묻는다고 제대로 답해 줄 거 같아? 그냥 가자~ 내가 새사랑 생명보험 가입했던 사람들 내역을 대충 알려줄 테니까 그걸로 적당히 보고서 만들어…….” “적당히는 안 됩니다. 왔으니 확인하고 가야죠.” 강준은 흑곰 일행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어! 강준 씨! 도대체 오늘 왜 이래? 강준 씨답지 않게……!” 흑곰은 강준이 가까이 다가와서야 인기척을 느꼈다. “왜요? 뭐 문제 있어요? 형씨 가던 길 가요!” 눈을 치켜뜬 흑곰이 강준에게 시비조로 말을 걸었다. 일단 상대를 기세로 제압하려는 그였다. “박성우 부장 잘 있죠?” “어? 너 누군데, 박 부장 얘기를 꺼내냐?” 한발 다가온 흑곰은 큰 키에 기골이 장대했다. 하지만 코맹맹이 소리는 그가 축농증을 앓고 있다는 걸 알게 했다. “우리 직원이 박 부장 밑에서 일을 좀 했었거든.” “어? 누구 말하는 거야?” “김준혁! 필리핀에서 도박사이트 운영을 담당했었지. 물론, 그 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지금은 갱생했지만 말이야.” “……그니까 형씨 소속이 어디요? 그리고 왜 자꾸 말이 짧지? 어!” “성원화재 보험조사 2팀! 당신한테 돈 빌린 사람들이 자꾸 자살하더라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이렇게 조사를 나온 거고!” 흑곰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는지 눈을 부라리며 주먹으로 강준의 가슴팍을 툭툭 밀었다. “그 인간들이 자살로 뒤지든 교통사고로 뒤지든 난 상관 안 해. 내가 관심 있는 건 오로지 그 인간들이 내 돈 갚고 죽느냐지!” 강준은 경찰 시절 흑곰과 같은 덩치 놈들을 제압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손목을 잡고 비틀어 한 바퀴 돌린 후, 뒤를 보이는 상대의 무릎 뒤를 발로 가격하면……! 강준은 그때를 떠올리며 흑곰의 팔목을 비틀었지만, 순간 잡힌 팔목을 확 잡아 빼는 흑곰이었다. 그리고는 오히려 멱살이 잡혀 강준이 땅바닥에 나뒹굴 때까지는 채 3초가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멱살을 잡힌 순간, 강준은 흑곰의 기억을 읽었다. [어이, 박 사장 돈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안 그래? 그리고 얼마나 좋아? 그냥 불장난 한번 하고 빚이 몽땅 탕감되는 건데 안 그래?] [야, 병철아…… 이거 너무한 거 아녀? 니가 나한테 어찌 이러냐! 어!] [참나… 내가 박 사장을 대우해 주니까 이런 얘기도 하는 거지. 솔직히 불난 거 걸리면 실화라고 하면 그만 아니야? 게다가 설혹 걸리더라도 감방 한번 다녀오면 1억이 넘는 돈이 탕감되는데, 계속 빚쟁이로 살 거야?] [아니……그래두 사람도 다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안댜…….] [새벽에 하면 되잖아. 새벽에 그 유령상가에 누가 있다고 그래? 어! 이제 애들 생각도 해야 하지 않아? 애들한테 빚만 남겨 줄 거야?] 흑곰이 설득하고 있는 남자는 의자에 앉아 고민스러운 듯 담배 연기만 내뿜고 있었다. 말투로 보아 친밀한 관계임이 분명했다. 그때, 기억이 끊어졌고, 강준은 바닥에 뒹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흑! 아아! 이거 왜 이래? 지금 폭력 쓴 거야? 병철아?” 갑자기 자신의 실명을 부르는 강준에게 흑곰이 놀란 눈을 크게 떴다. “놀랬냐?” “어, 놀랬지! 너 누구냐?” 흑곰은 강준을 밟으려고 치켜든 발을 조용히 내려놨다. 그는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실명을 알고 있다는 거에 놀랐다. 흑곰은 한동안 연남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실명을 알고 있다는 건 연남 토박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고병훈이랑 양태식이 친구! 너도 알지?” “……어, 그러니까 네가 연남고 나왔다 이거지? 어… 그럼 내가 네 선배인데? 너 선배를 보고 인사도 안 하냐?”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하는 흑곰이었다. 강준은 자신이 26세의 청년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리고 흑곰이 회귀한 박강준보다 세 살 선배였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기도 했다. 잠시 멍하니 있던 강준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선배인 줄 몰라봤습니다!” 옆에 있던 김철영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상가에서 큰 소동이 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흑곰은 보험회사에서 나왔다는 강준을 자신의 사무실로 데려갔다. 김철영은 그 틈을 이용해 강준에게 생명보험 가입자의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겠다는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내가 병훈이는 잘 모르지만, 태식이는 잘 아는데…… 걔 지금 구치소에 있지 않냐?” “네, 일부러 차에 부딪히는 짓거리를 하다 지금 감방에 가 있습니다.” “그러길래, 그런 짜친 짓거리를 하고 그래! 쯧!” “근데, 선배께서는 그럼 사채업을 하고 계신 겁니까?” “어, 내가 사고치고 큰 집 들어갔을 때, 만났던 사람이 박성우 부장님이거든. 그때 인연으로 어찌 어찌해서 시작하게 된 거지…….” 적당히 부풀릴 것은 부풀리고 숨길 것은 숨기는 흑곰이었다. “전대성 회장님이 전주가 되어 준 겁니까?” “어? 너 보험사 다닌다며? 그거 누구한테 들은 거야?” “양태식한테 들었습니다.” “그래? 새끼가 별 얘기를 다 하고 다니네…….” 양태식을 들먹인 건 강준의 임기응변이었지만, 양아치들끼리의 커넥션이 있는 건지 흑곰에게는 잘 먹혀들었다. “그나저나, 너 보험사 다닌다니까 내가 궁금한 게 좀 있어서 그러는데…….” “뭐든 말씀하십시오. 선후배 간에 어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흑곰은 슬쩍 강준을 바라보며 눈을 치켜뜨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 흑곰의 얼굴색은 별명처럼 흙빛이었다. “거…… 생명보험 말이야…… 보험금 받는 사람을 변경할 수가 있나?” “보험금 수익자 변경 말씀이시군요.” “어…… 맞아. 그거 변경할 수 있어?” “기존 계약자 같은 경우에 수익자를 변경하려면 자필서명이 포함된 수익자 변경계약서가 필요합니다. 보험계약자의 동의가 필요한 거죠.”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할 거고…… 그거 말고 다른 문제는 없어?” “여러 건의 생명보험에 중복되어 가입되어 있다면 보험사에서는 의심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보험사기로 경찰 조사까지 갈 수 있죠.” “아오! 시발! 뭐 그렇게 까다로워!” 강준의 말에 흑곰의 입이 거칠어졌다. 그는 돈 앞에서는 거리낄 게 없었다. 돈만 된다면 보험사기건 살인이건 뭐든 할 태세였다. “왜 그러시는데요?” “너 혹시 나 좀 도와서 일 하나 해 볼래?”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선배님인데 도와드려야죠.” “그 수익자 변경 말이야…… 그거 네가 좀 어떻게 안 되겠냐?” 흑곰이 부탁하는 건 보험사기에 공범으로 가담하라는 얘기였다. 일이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었다. “선배님은 절 믿으십니까?” “왜? 내 뒤통수라도 치게? 크하하! 야! 얘가 또 나를 웃기게 만드네!” 흑곰은 뒤편에 도열해 있는 덩치들을 향해 웃었다. “네가 나를 잘 모르나 본데? 내 돈 떼먹고 간 놈들 어떻게 되는지 알려줄까?” “생명보험 가입하고 자살 처리라도 되는 겁니까?” 흑곰의 표정이 굳었다. “너 태식이랑 친한 거 맞아?” “그럼요, 그 자식이랑은 볼꼴, 못 볼 꼴 다 본 사이입니다.” “그래?” “저한테 얼마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기브앤테이크는 확실한 사람이거든요.” “나도 후배라고 입 싹 닦을 생각은 없었다. 내 스타일이 원래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스타일이거든. 사망보험금 받으면 10% 줄게. 우리도 실비라는 게 있어서 그 이상은 힘들고.” “콜! 해드리죠. 그깟 서류 몇 장 해드리는 게 그리 어렵겠습니까?” 흑곰은 그제야 말이 통한다는 듯 강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 강준은 흑곰의 또 다른 기억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읽어 냈다. 그건 전대성 회장의 모습이었다. [병철아, 이제는 내가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다. 박 부장은 큰집에 갔고, 김우진 그 새끼는 도통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지.] [저도 얘기는 들었습니다. 김 대표가 박영미랑 딴 살림 차릴 생각 한다면서요?] [대표는 무슨! 나 아니었으면 그 새끼 그거! 어디 가서 빌어먹을 새끼가!] [이 기회에 그냥 내치시죠?] [물론 그래야지…… 근데 좌우간 지금은 안 돼! 탑스퀘어 건도 있고. 그러니까 이럴 땔수록 병철이 네가 잘해야지, 안 그러냐?] 잠시 바닥을 응시하던 흑곰은 다시 전대성을 응시하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제가 누굽니까? 조합원 새끼들 불내게 하고 제가 뒤에서 크게 터트리면…… 그걸로 끝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제가 일 처리 하나는 깔끔하게 하는 거.] 그런 흑곰의 대답을 비릿하게 웃으며 바라보는 전대성이었다.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어이, 후배! 정신 차려!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있어?” “아뇨, 생각을 좀 했습니다. 서류 만들 게 몇 명 겁니까?” “어…… 그러니까…… 야! 다 해서 몇 명이냐?” 흑곰은 뒤에 있던 덩치에게 물었다. “박 사장이 비협조적이라 일단 세 명 될 것 같습니다.” “세 명…… 그 정도면 됐지 뭐! 후배야, 세 명이란다. 세 명.” “그 사람들 인적 사항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회사에 돌아가서 보험 가입 여부부터 확인하려고요.” “어, 그래…… 야! 그 인간들 서류 가져와 봐.” 강준은 그들이 가져온 대출계약서의 이름들을 살폈다. 김승구, 신재호, 조철민. 나이는 대략 40대에서 50대였다. 그리고 익숙한 이름의 대출자 계약서가 하나 더 있었다. 고진기. 뉴월드 상가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한 고민기의 친형이었다. “이 사람들 혹시 뉴월드 상가 조합원들인가요?” “너 진짜 뭐 알고 왔냐?” “아까 일수 걷으러 상가에 오셨잖습니까?” “아, 맞다! 그랬지. 맞아! 그 새끼들이야. 남의 돈 떼어먹는 아주 개새끼들이지!” “이 사람들 생명보험은 가입된 겁니까?” “아니. 이제 가입시켜야지. 물론 사망보험금 수령자는 나로 바꾸고.” 뻔뻔한 흑곰이었다. 그는 강준에게 보험금 수익자 변경이 아니라 애초에 보험부터 가입시킬 생각이었다. ‘보험가입자들이 스스로 방화를 저지르게 한 후, 화재를 틈타 죽여 버린다. 그리고 사망보험금은 자신이 홀랑 먹겠다…… 계획은 제법 그럴싸한데!’ *** 연남시 외곽 번암주류. 강준은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친구를 찾았다. 자신과 함께 학창 시절 철도 길에서의 싸움에 휘말렸던 친구였다. 그랬기에 강준은 그를 찾는 마음이 무거웠다. “장재식…… 잘 지냈냐?” 회귀하기 전 강준의 친구이자 전직 조폭. 남다른 덩치를 가진 그였다. “누구……?” “누구긴 네 친구 박강준…… 의 아는 사람입니다.” “뭐요? 강준요? 난 모르는 사람인데…….” 15년 전으로 회귀하면서 원래의 강준은 사라진 상태였다. 자신이 알던 세계와 똑같았지만, 원래 박강준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좌우간 싸움 좀 하죠?” “아니 누군데 갑자기 와서 이러는 겁니까!” 장재식은 학창 시절 강준과 함께 휩쓸렸던 인근 학교와의 싸움 때문에 인생이 꼬였었다. 주먹을 날린 상대가 과실치사로 죽어 버렸던 것이었다. 덕분에 장재식은 소년원에 3년을 다녀와야 했고, 돌아온 후에는 지역 조직 선배들에게 휘둘리며 그도 조직 생활에 뛰어들었었다. 강준은 그런 장재식에게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다. ‘좌우간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다…….’ “부탁 하나만 하러 왔습니다.” “누구신데요?” “성원화재 보험조사관 박강준입니다.” 강준은 장재식에게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흑곰 성병철이라고 아시죠?” 흑곰은 장재식이 출소 후 건달 세계로 이끌었던 선배였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면서 장재식은 흑곰을 경멸하게 됐고, 결국 그 세계에서 손을 털고 나온 것이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흑곰이 고의로 화재를 일으켜 사람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저랑 같이 그 인간이 하는 짓 막읍시다!” 장재식은 강준의 말에 다시 받아든 명함을 확인했다. 누군지 확인하려는 거였다. 하지만 강준은 장재식이 분명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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