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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 자살보험 (2) (31/250)

031. 자살보험 (2)2021.12.31.

김철영은 2년 전 연남지점의 보험 판매왕이었다. 강준이 막 입사했을 때 그는 한창 지점에서 유명인사였고, 다들 그의 판매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했다. 강준은 그런 김철영과 2년 만에 마주 앉았다. “이야~ 강준 씨 얘기는 우리 지점에서 엄청 유명하잖아. 그때 차대번호 위조한 애들 잡아낸 거 말이야! 덕분에 그때 이후로 우리 지점 손해율이 많이 잡혔어!” “요즘은 좀 어떤가요? 아직도 보험왕 타이틀 갖고 있으세요?” “아! 보험왕? 그거 다 신기루 같은 거야. 알잖아? 이 업계 잠깐만 아차 해도 실적순위 확확 바뀐다는 거.” 강준은 김철영의 미묘한 뉘앙스를 눈치챘다. 그는 더 이상 지점의 판매왕도 아니었고 보험왕도 아니었다. 그는 힘겹게 기존 계약자들의 보험을 새로운 보험으로 교체해 주며 판매 건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김철영이 몇 년간 판매왕이 될 수 있게 해 준 그의 인맥은 서서히 고갈되어 버렸다. 그와 더불어 지점에서의 대우도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에 밀려 예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고민기 씨한테 2년 전에 판매하셨던 생명보험 말입니다…….” “어? 그거 왜?” 긴장한 빛이 역력한 김철영이었다. 고민기의 사인이 자살이라면 본인의 판매손해율이 올라가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 죽었더군요.” “아…… 그거 술 먹고 실수로 추락사한 거야. 안타까운 일이지…….” “본사에서는 자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친구 잘 아는데 자살할 친구는 아냐. 왜 자살을 해? 멀쩡하던 친구가?” 김철영은 강준의 눈치를 한번 보더니 슬쩍 말을 보탰다. “그리고…… 그거 면책 기간 지났어. 알잖아? 2년 지나면 자살이라도 사망보험금 지급해야 한다는 거?” “물론 약관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본사에서는 일단 보험사기로 소송부터 진행하려고 하더군요…….” “소송? 정말이야?” 소송이라는 말에 김철영이 움찔한 듯 되물었다. “최근에 그 상품에 가입하고 자살한 사람이 네 명이나 되니까요.” “……어? 그렇게 많았나……?” 시치미를 뚝 떼는 김철영이었다. “연남지점에서만 네 명입니다. 모두 2년 전에 김 설계사님이 판매하셨던 새사랑 생명보험에 가입했던 보험계약자들이죠.” 자살로 의심되는 네 건의 사망 건은 모두 김철영과 연관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뉴월드 상가의 조합원들이었다는 거였다. 김철영은 강준이 이미 사전 조사를 하고 왔음을 눈치채고는 무슨 변명을 늘어놓을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나도 실은 소식은…… 대충 듣고 있었는데…….” “사전에 자살해도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면책 기간에 대해 알려주셨습니까?” “아니! 강준 씨! 지금 내가 그 사람들 자살을 도왔다는 거야?” “적극적으로 돕진 않았더라도…… 면책 기간을 알려줬다면 방조에는 해당할 수 있습니다.” 원래의 박강준은 남들에게 싫은 소리 못 하고 휘둘리며 살아왔던 인물이었다. 그런 강준을 기억하는 김철영은 그의 변모에 꽤 당황한 모습이었다. “진짜 강준 씨, 왜 이래? 강준 씨도 다 알 만한 사람들이야. 한 다리 건너면…….” “네, 다들 서로 친분이 있더군요. 그래서 김 설계사님이 새사랑 생명보험을 같이 가입시킨 거고요.” “참나! 사람 이렇게 몰아가면 안 되는 거야! 강준 씨! 내가 강준 씨 아플 때 강준 씨 어머니 일자리도 내가 알아봐 준 거라고!” 구차한 생색내기였다. 하지만 강준은 비록 진짜 친모는 아니었지만, 몸의 주인인 박강준의 친모를 언급하는 것에 마음이 흔들렸다. 순간 강준은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김철영의 페이스에 휘말리는 일이기도 했다. “설계사님, 저도 고향 사람들을 고의자살이라는 식으로 몰고 가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아시잖습니까? 성원화재 같은 큰 회사들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걸요…….” “그렇긴 하지…….” 그제야 슬쩍 누그러든 김철영이었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온 이상 저도 해명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지금 상황이 굉장히 당황스럽다고…… 만약에 고의자살로 확정이라도 되면 그간의 내 실적을 왕창 깎이는 거거든.” “김 설계사님이야 연봉에 문제가 생기는 정도지만, 아마 죽은 사람들은…… 죽을 정도로 힘들었을 겁니다.” 김철영이 강준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잠시 후, 그가 강준을 데리고 간 곳은 뉴월드 상가의 조합원 사무실이었다. 김철영도 보험설계사가 되기 전 뉴월드 상가에서 의류 장사를 하던 상인이었다. 조합원 사무실은 오래되어 균열이 여기저기 간 3층 상가의 옥상 한쪽에 있었다. 조립식 컨테이너로 지어진 가건물에는 세로로 ‘뉴월드 상인조합’이라는 명패가 걸려 있었다. “아이고! 잘 지내셨습니까? 한 사장님!” “어! 이게 누구여? 철영이 아니여? 진기가 너를 음청 찾던데…… 연락 못 받은 겨?” “아…… 제가 나중에 연락해 보겠습니다. 헤헤!” 웃음으로 무마하는 김철영은 뭔가를 숨기려 했다. 하지만 강준은 한 사장이라는 사람이 말한 진기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났던 고민기의 친형, 고진기! ‘보험금 지급 때문에 만나자고 한 거겠지…… 사망보험금 지급이 빨리 안 되니까 안달이 났겠지.’ “안녕하십니까? 성원화재 박강준 대리입니다.” 강준의 인사에 한 사장은 누구냐는 표정으로 김철영을 돌아봤다. “거…… 있잖습니까? 이번에 민기 그렇게 된 거…… 얘기를 좀 들어보신다고 오셨어요.” “뭐? 민기? 걔 자살한 거 아녀? 을매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한 겨! 나가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그 생각만 하믄!” “아휴! 그게 아니잖아요! 술 먹고 만취해서 실수로 실족한 거잖아요. 조합장님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하시면 안 돼요!” “안 되긴 뭐가 안 댜? 다들 죽어가는 판인디!” 예순도 훨씬 넘어 보이는 한 사장은 뉴월드 상인조합의 조합장이었다. “어려움이 있으셨다는 거 압니다.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강준은 덥석 조합장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의 기억에서 읽은 건 끊임없이 조합원들끼리 다투는 말싸움의 장면뿐이었다. “여기는 이제는 끝난 겨…… 우리는 푼돈만 받고 쫓겨나게 생겼다고!” “그게 무슨 말인가요? 1층에는 아직 장사하는 가게들이 많지 않습니까?” 낡은 3층 상가의 2, 3층은 이미 가게보다는 창고로 쓰이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사람이 돌아다니는 1층은 의류 상가였던 원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런저런 잡화점들로 일부 채워져 있었다. “지주들 몇몇이 우리 조합도 모르게 동의서를 써준 겨! 30년을 여기서 장사로 먹고살았는디 당장 다음 달이면 쫓겨나게 생겼다니께!” “고민기 씨도 동의서를 써줬었나요?” “민기? 고 사장? 아니! 그 친구는 안 써줬어……!” 강준은 고민기가 조합원으로서 어디까지 활동했는지가 궁금했다. 어쩌면 고민기는 뉴월드 상가를 재개발하려는 세력들에게 걸림돌이었는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조합장님, 아까 고민기 씨가 자살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럴만한 근거가 있는 겁니까?” “뭐 별다른 이유가 있겄어? 장사는 안 되고 돈에 쪼들리니까 그런 거 아녀…….” “그래도 그런 결심을 했을 정도면 뭔가가 있지 않았을까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철영이 강준을 막아서려고 할 때, 조합장이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러게…… 돈은 빌리지 말았어야 하는디!” “혹시 사채를 썼습니까?” 조합장은 자신도 괴롭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람이 괜히 자살해? 다 돈 문제가 껴 있는 겨…….” “누굽니까? 돈을 빌려준 사채업자가요?” “거…… 있어! 여기 시장에서 유명한 놈이니께, 흑곰이라고…… 한 2년 전부터 돈놀이를 했었지? 젊은 놈이 아주 지독혀!” 흑곰! 회귀 전 경찰 시절, 강준이 라성캐피탈을 수사하면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이름이었다. “본명은요?” “글쎄…… 그건 나도 몰러. 돈 빌린 사람들이 알것지…… 계약서는 써야 하니까 말여…….” “혹시 흑곰이라는 사람 사무실이 어딘지는 아십니까?” “사무실은 나도 모르지, 아! 맞다! 찌라시를 돌리니께 아래 시장 상인들한테 한번 물어봐.” 김철영이 주장했던 것처럼 고민기의 사망이 사고사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정황이 오히려 자살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럼, 다시 오겠습니다!” “보험사 직원이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만…….” “혹시 이 상가에 불나면 어떻게 댜?” “기본적으로 화재보험은 실손 보상의 원칙입니다. 피해액 이상으로 보상해 주진 않죠…….” “그게 아니라 여기가 싹 다 불타면…… 바로 재개발이 되는 거여……?” 강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가 회귀하긴 전 봤던 뉴월드 상가의 대형 참사는 방화로 인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조합원들의 방화를 의심했었지만, 관련자들이 사망하는 바람에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조합장님, 혹시 주변에서 방화하자는 얘기가 있습니까?” “아니! 그런 건 아녀! 그냥…… 그냥 물어본 겨!” “……싹 다 불타서 전부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재개발을 하려는 사람들은 좋겠죠. 조합원들이 여기서 더는 버티지 못할 테니까요.” “하긴, 그렇것지…… 하여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니께.” 강준은 조합장이 뭔가를 다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흑곰에게 돈을 빌린 사람이 더 있는지였다. 뉴월드 상가의 1층은 연남역 바로 앞에 있으면서도 사람이 많이 오가지 않는 시장이었다. 그 이유는 드문드문 이가 빠진 듯이 가게의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제 의류를 파는 옷가게 몇 개, 그리고 수선집, 건너편에 작게 형성된 음식점들만이 그곳이 30년을 근근이 이어온 연남 시장이라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진짜 여기도 이제는 싹 갈아엎어야 하는데…….” 김철영은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여기 사람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그렇지. 시(市)에서는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데…… 여기 있는 상인들이 도통 움직이지를 않으니…….” “보상금이 얼마인데 그렇죠?” “솔직히 말해서 여기에 장사도 안 되는데…… 가게 하나당 억이 넘어가는 보상금을 부르면 그게 사업성이 있나?” “그래서 조합에서는 얼마를 요구한 겁니까?” “1억 2천인가 그래…… 자기네들 권리금이라도 달라는 거지. 근데, 여기 월세가 얼마인지 알아?” 오래 전에 시장에서 떠나와 보험설계사로 살아온 김철영이었다. 그런 그가 그렇게 조합 사정을 잘 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겨우 월세 30만 원에 관리비만 내고 다들 있는 거야.” “굉장히 자세히 알고 계시네요?” “……나도 예전엔 시장 사람이었는데, 소식은 듣고 있었지.” 그때, 시장 맞은편에서 부리부리한 눈에 얼굴이 검은 남자가 껄렁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딱 봐도 한눈에 건달로 보이는 덩치 두 명이 함께 있었다. “찌라시고 뭐고 찾을 것도 없네…… 저 사람이 흑곰이라는 놈이야. 오늘도 일수 찍으러 왔나 보네…….” 김철영은 자연스럽게 흑곰 패거리들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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