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 자살보험 (1)2021.12.30.
보험조사 1팀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정훈 팀장이 보험조사팀의 전체 회의를 소집했다. 보험조사 2팀 역시 독립적인 조사 권한을 부여받긴 했지만, 전체 회의에 빠질 명분은 없었다. “최 팀장이 요즘 성과가 대단하다고 하던데?”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갑자기…… 이렇게 모이라고 한 거예요?” “자해 공갈단에 이어 병원들 털고, 이번에는 의류회사 방화까지! 아주 전방위로 활동을 하시더군?”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이정훈이 이끄는 보험조사 1팀의 직원은 15명이었다. 그렇게 인원이 많은 이유는 그만큼 개인들의 허위, 과다사고 등의 연성 보험사기가 많기 때문이었다. 보험조사 1팀의 직원들도 알고 보면 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최은정 너는 너만 고생한다고 생각하지? 너희 2팀만 중요한 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적…… 없습니다!” 입을 꽉 다문 최은정이 한 글자씩 씹으면서 말했다. “우리도 주목받고 싶어. 남들한테 잘했다! 대단하다! 뭐 이런 칭찬도 듣고 말이야.” “그러시면 되지. 왜 이렇게 다 모인 자리에서 그런 투정을 저한테 부리시는 거죠? 가서 최진태 이사한테나 말해보세요!” 최진태 얘기가 나오자 이 팀장은 얼굴이 벌게져서 더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힘을 합해서 일하자는데 왜 최 이사님 얘기가 나와? 가만 보면 최 팀장도 참 독단적이야……. 나중에 임원이라도 되면 아주 무슨 횡포를 부릴지 모르겠네!” 오너의 딸이라는 게 오히려 최은정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었다. “좌우간 본론부터 말씀해 보시죠. 이렇게 모인 이유가 뭔가요?” “보험계약자들이 나날이 교묘해져서 말이지…… 일일이 우리도 들여다보고 대응하느라 힘들거든. 그래서 내가 추진하려는 게 바로 법무팀의 보강이야! 의심 사례 있으면 일단 소송부터 걸고 이면에서 합의 유도하는 거지. 일명 투트랙 작전!” 그때 1팀의 과장 한 명이 이정훈 팀장의 말에 덧붙였다. “최근 다른 보험사들에서도 변호사들과 손해사정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원화재는 그에 비하면 삼 분의 일 수준의 법무 전담인력만 있을 뿐이고요” “그거 너무 치사한 방식 아니에요?” 강준은 최은정이 날을 세우는 게 아슬아슬했다. “아니 도대체 뭐가 치사하다는 거야……? 법적으로 한다는데?” “그거 법률지원도 못 받는 돈 없는 사람들 일단 소송해서 겁주고 대응 못 하게 만들고 그렇게 보험료 지급률 낮추려는 거잖아요?” 일순간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전체 회의에 모인 보험조사 1팀의 분위기는 목소리를 높인 최은정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이정훈 팀장의 제안이 더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업무를 덜어줄 거라 기대하는 눈치였다. “야! 최 팀장!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 매번 채증하느라 잠복하고 참고인들 조사하겠다고 여기저기 굽신거리고…… 그래야 하겠냐?” “소송부터 걸면…… 보험조사관은 도대체 왜 있는 건데요?” “일을 효율적으로 하자는 거잖아! 소송만으로도 웬만한 보험 사기꾼들은 제풀에 떨어져 나간다고!” 강준은 반박하려는 최은정을 만류하며 대신 질문했다. “그럼 보험조사팀 내에 법무팀이 새로 만들어지는 겁니까?” “그건 미정인 사항이야. 그룹 내 법무팀에 지원인력을 만들지, 아니면 보험조사팀 내에 법무 인력을 둘지 말이야.” “혹시 소송을 생각하시고 있는 사안이라도 있으신가요?” “있지. 아마 박강준 너한테 익숙한 곳일 거다.” 이정훈 팀장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연남지점에서 팔았던 생명보험을 가지고 자살한 사람이 여럿 나왔다. 이거 왠지 냄새가 나지 않아? 면책 기간 2년이 지났다고 해도 같은 지역에서 그런 일이 반복되는 거…… 충분히 의심해볼 정황이라고.” “보험사기로 소송하실 겁니까?” “난 그걸 박강준 대리가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찌 보면 지금까지 연남시 쪽에서 일어난 보험사기를 박 대리가 해온 거잖아. 최 팀장, 괜찮지?” 이정훈 팀장의 용건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용건은 결국 전체 회의를 빙자한 업무량 떠넘기기였다. 그리고 그걸 자기 팀원들이 지켜보게 함으로써 자신은 팀원을 위하는 리더, 그리고 최은정은 팀원을 힘들게 하는 리더로 대비되게 한 것이었다. 최은정이 망설이고 있자 강준이 대신 대답했다. “최 팀장님, 어차피 연남시에 조사 건이 있었습니다. 가는 김에 제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아…… 그래요 그럼.” 마지못해 승낙하는 최은정이었지만 속으로는 강준이 고마웠다. 강준 때문에 이정훈 팀장이 의도했던 팀원을 고생시키는 최은정의 이미지가 팀원이 자진해서 따르는 리더의 이미지로 180도로 바뀐 것이었다. “박강준, 자살자가 4명이야. 평소에 같은 지인이었는지 보험 가입날짜가 같아. 이건 보나 마나 일부러 의도한 거니까 명백한 보험사기라고! 채증(採證)할 만한 거 채증해서 고소부터 해.” “채증은 하겠지만 일단 사실관계부터 파악해 보겠습니다. 뭐든 확인해봐야 아는 거니까요.” 이 팀장은 강준의 말에 체면을 구겼지만, 대놓고 반박하지는 않았다. 전체 회의는 싱겁게 끝났지만, 조사 1팀의 사무실에는 전략기획팀의 김성호 이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김 이사님 우리 사무실엔 웬일이세요? 혹시…… 무슨 일 있어요?” “지난번 나진패션 방화 건 말이다.” “네, 아직 재판 중이잖아요.” 김성호 이사는 보험조사팀을 떠났기 때문에 직접 조사 1팀의 사무실을 찾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뭔가 용건이 있어 보였다. “그 재판이 어떻게 될 거 같냐?” “지금으로선 이석진 전 대표가 지시한 거고 최기동이 방화를 실행한 거로 종결될 거 같은데요.” “흠……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거 같냐? 박강준 너도 같이 생각해봐.” 강준은 김 이사가 직접 물어볼 정도면 나진패션에 관여한 김우진의 배경까지 알고 왔으리라 짐작했다. “혹시 사법부를 움직일만한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게 우리 내부에 있다면?” “나진패션을 인수한 RS투자의 전대성 대표가 최진태 이사의 홍콩법인에도 투자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박강준! 네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었어?” “지난 나진패션 방화사건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됐습니다.” 강준은 속으로 아차 싶었지만, 적당히 둘러댔다. 정작 진짜 놀란 것은 옆에 있던 최은정이었다. 아직 최진태 이사와 전대성의 연결고리까지는 공유하지 않았던 강준이었기 때문이었다. “박 대리…… 확실한 거예요?” “죄송합니다. 확실해지면 보고드리려고 했습니다.” 강준은 최은정의 체면을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다들 잘 들어. 회장님께서는 이 일을 내부적으로 해결하고 싶어 하신다. 특히나 최진태 이사의 장인하고도 연관이 된 모양이야…….” “그럼 한승일 시장까지 얽혀 있다는 거예요?” “아마 그래서 전대성 밑에 있는 김우진을 그렇게 비호하려는 거겠지…….” “최진태 그 인간은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건지…….” 김성호 이사는 한 차례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은 내가 이 팀장한테 연남시 자살사건 일부러 너희한테 주라고 한 거다.” “아…… 어쩐지 자신만만하게 나오더라니…….” “그 사건 조사한다는 핑계로 최 팀장 너는 박강준이랑 연남시에 내려가서 전대성 주변 좀 조사해 봐. 조사해서 최진태 이사랑 조금이라도 얽혀 있는 게 있으면 샅샅이 가져와!” 최은정은 며칠 전 강준이 얘기했던 뉴월드 상가에 관한 얘기를 떠올렸다. 30년이 넘은 상가 건물이 연남 기차역 앞에 방치되어 있다는 얘기를 말이었다. ‘거기가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하더니만…… 정말 뭐가 있는 건가……?’ 최은정은 자신이 모르는 뭔가를 강준이 어떻게 더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상한 건 공교롭게도 강준이 매번 RS투자의 전대성과 얽힌다는 거였다. 하지만 최은정은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게 뭔지…… 그리고 강준이 쫓는 게 뭔지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알겠어요. 김 이사님 생각에는 내부에 부조리가 있다는 거잖아요?” “부조리? 글쎄…… 미래에 닥칠 리스크를 미리 예방하는 차원이라고 해두지.” “네, 그럼 저희 조사 2팀은 당분간 연남시에 내려가 있을게요. 다른 건으로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그래, 다만 한 가지. 너무 소란스럽게 일하지는 마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강준은 김성호 이사가 말하는 바를 알 것 같았다. * * * 연남시 장례식장. 성원화재 생명보험에 가입한 채 자살한 사람은 40대 가장이었다. 두 아이는 아직 초등학생이었고, 미망인은 과부로 늙기엔 젊었다. 강준을 붙잡고 하소연을 늘어놓는 건 자살자의 친형이었다. “아니, 우리도 얘가 자살인지 아닌지는 몰라요. 누가 밀었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고층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나요? 특별히 의심되는 거라도 있으셨나요?” 친형이라는 사람은 술이 올라 벌게진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걔가 뉴월드 상인조합원이었거든요…… 보상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걔가 죽긴 왜 죽어요! 좀만 더 버티면 보상받는데!” “미망인분의 보험금 수령액이 15억입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보험사로서는 충분히 의심해볼 만한 정황이긴 합니다.” 냉정한 강준의 말에 남자의 얼굴이 더욱 시뻘게졌다. “시발! 보자 보자 하니까……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야! 사람이 죽었는데! 보험금 타 먹으려고 죽었다고 의심부터 하는 거 아냐, 지금!” “저희 일이 이런 걸 조사하는 겁니다…….” “사람 목숨을 돈으로 따지냐! 이 새끼야!” 남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와서 뜯어말렸다. 하지만 강준은 자신의 멱살을 잡았던 남자의 기억을 읽었다. [아주버님, 우리 그이…… 어떻게 해요……흑흑!] [제수씨, 이럴 때일수록 정신 차려야 합니다. 기석이가 언제 그랬어요?] [……간밤에 술 먹고 그랬나 봐요…… 저 이제 그이 없이 어떻게 살아요…… 애들은 또 어떻게 하고요!] [보험 든 거 있죠?] [네? 보험이요?] [아마 생명보험 들어놨을 거예요. 철영이 자식이 보험설계사였잖아요. 그때 주변 친구들이 다 들어줬을 거라고요.] “이 새끼야! 당장 꺼져! 지금 유가족들 앞에 두고 할 말이야! 그게!” 강준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미망인과 눈이 마주쳤다. 미망인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자기 감정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거겠지…….’ 강준은 일단 자리에서 물러났다. 더 이상 거기 있다가는 김성호 이사가 당부한 것처럼 시끄러운 일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강준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익숙하게 버튼을 눌렀다. “이 경위님, 저 박강준입니다. 오랜만에 포차에서 술 한잔하시죠.” ―야근하고 있는 줄 어떻게 아셨대요? 귀신이네, 귀신! “그래서 나올 겁니까?” ―아휴, 나가야죠! 당연히! 평소에 술을 좋아했던 이진철과 강준이었다. ‘어쩌면 정말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 강준은 미리 결론부터 내고 유가족들을 만났다는 생각에 자책했다. 어쩌면 타인의 기억을 읽는 능력을 얻게 된 다음부터 ‘확인할 때까지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라는 대원칙을 스스로 어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래…… 난 경찰이었지.’ 강준은 원래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련했다. 그리고 왠지 그런 마음은 뜨거운 소주로 달래야만 할 것 같았다. @바닥글: 《참고자료》 영화, 보험을 찍다. ‘자살과 생명보험’ 편, 김재현, 도서출판 새빛,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