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요실금 보험사기 (2)2021.12.23.
강준이 김유정의 손을 만졌을 때, 그녀의 기억 속에 직장 동료였다는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유정아, 이거 30분이면 그냥 끝나. 어차피 보험사에서도 뭐라고 할 거야? 요실금 수술도 수술인데, 안 그래?] [그래도 난 좀 그런데…….] [그렇긴 뭐가 그래? 이제 애도 크고 하면 돈 들어갈 일투성인데…… 눈 딱 감고 수술받으면 500만 원이 그냥 생기는 거야. 왜 이걸 마다해?] [정말 문제없는 거죠? 언니?] [아휴, 걱정도 팔자다. 너만 알고 있어…… 이걸로 내 주변에 2천 땅기는 애들도 있어…….] [네? 2천이요?] [쉿! 조용히 해, 이거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둘만 알고 있는 세상의 비밀은 없다. 김유정이 강준의 손 밑에 깔린 자신의 손을 어색하게 빼냈을 때, 강준은 그녀의 양심이 잠깐 묵인한 비밀을 파악했다. “재수술은 왜 하려는 겁니까?” “그게 말하기가 좀 그런데…….” “괜찮습니다. 전 보험조사원입니다. 저한테 솔직하게 말씀하시고 대책을 같이 강구해 보시죠.” 빈말이었다. 하지만 강준은 그렇게라도 김유정을 꼬드긴 병원과 직장 동료 언니의 패거리들을 찾아내야 했다. “TOT 방식으로 수술을 했는데…… 소변이 시원하게 안 나오고 방광염 증상도 있어요.” “혹시 질 성형도 같이 하셨나요?” “……그걸 어떻게…….” “보통 의사분들이 그렇게 많이 유도를 하시죠. 질 성형을 하면 요실금이 호전된다고들 하니까요. 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시술 행위입니다.” 강준의 말에 김유정이 멈칫했다. “어쨌든 화장실을 가게 되면 찔끔 나오기만 하고 또 소변 누기 시작할 때 따끔거려요…….” “병원에는 뭐라고 했습니까?” “수술할 때 넣었던 테이프를 제거해달라고 했는데…… 아니 글쎄 재수술은 힘들다는 거예요. 다른 병원 가서 하라면서…… 참나! 어이가 없어서!” 김유정은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를 빨대로 쪽 빨면서 화난 마음을 가라앉혔다. “혹시 병원에 약점 잡힌 거라도 있으신가요?” “…….” 김유정은 강준은 바라보고는 되물었다. “제가 여기 나온 거는 재수술도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해서 그런 거였어요…….” “보험적용은 불가능합니다.” “알겠어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김유정은 자기가 얻을 게 없다고 판단되자, 곧장 자리를 뜨려고 했다. “제가 병원장을 설득해서 재수술 요청을 해드릴 순 있죠. 그리고 엄연히 말해서 요실금 수술의 부작용은 해당 병원에서 책임져야 하는 거기도 하고요.” “정말요? 근데 무조건 세게 얘기한다고…… 재수술해주려고 할까요……?” 강준은 슬슬 김유정을 압박해보기로 했다. “일단 부딪혀 봐야죠. 요실금 문제로 힘드신 건 사실이잖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리고 이건 엄연히 연성 보험사기에 해당합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이제까지 조곤조곤 말하던 김유정의 말투가 홱 달라졌다.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보험금 청구서에는 요실금 항목만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속칭 이쁜이 수술을 같이하신 거니까요.” “제가 그렇게 말했었나요?” “네.” “전…… 확답드리지는 않은 거 같은데요.” 뒤늦게 발을 빼는 김유정이었다. “그야 확인해보면 알겠죠. 병원에 기록이 남아 있을 테니까요.” 강준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정식 수사가 들어가지 않는 이상 병원에서 진료 기록을 보험사에 보여줄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김유정은 강준의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변명을 했다. “전 억울해요! 그냥 요실금 쪽만 알아본 건데 병원에서 같이 하라고 한 거라고요!” “알고 있습니다. 유정 씨 같은 경우에는 저희 보험사로서도 보험금 반환 소송을 하고 싶지는 않군요. 하지만 중복가입을 한 경우에는 다릅니다. 명백한 보험사기니까요.” 김유정은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곤란한 듯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 직장 같이 다녔던 언니라는 분! 요실금 명목으로 다른 보험사에도 보험금을 청구했죠?” “저야 모르죠…….” “그런 분들 때문에 병원에서도 수술에 대한 책임을 안 지려는 겁니다. 서로 공모했으니, 환자도 쉽게 병원에 큰소리를 칠 수 없다는 걸 이용하는 거죠.” 강준의 말에 김유정은 손톱 끝을 질근질근 씹었다. “일단 저와 함께 병원에 가보시죠.” “지금요?” “네. 그럼 언제 또 갑니까?” “싫어요. 지금은 회사에도 들어가 봐야 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꼭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 * 김유정은 자신이 일하는 콜센터가 있는 건물로 쏙 들어갔다. 내내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지만, 밀려드는 상담 전화로 이내 보험사 직원을 만난 것은 잊어버렸다. 그리고 퇴근 무렵이 되어서야 자신의 핸드폰에 SD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와 있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김유정은 곧바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통화했다간 병원과 불편한 얘기를 주고받는 게 새어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퇴근 복장을 차려입고 빌딩 밖에 나서자마자 김유정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김유정 환자님 되시죠? 전화번호가 등록되어 있는지 받자마자 산부인과에서는 김유정임을 알고 있었다. “네 맞는데요, 무슨 일로 전화 주신 거죠?” ―지난번 요실금 수술 건 때문에요. 아직도 불편하신가 해서요. “아…… 네…… 지금 재수술할 병원 알아보고 있어요.” 김유정은 지난번 산부인과 병원 원장의 퉁명스러운 반응이 떠올라 말이 이쁘게 나가지 않았다. ―실은 그것 때문에 연락을 드린 건데요. 원장님께서 특별히 김유정 환자분 재수술을 해주시겠다고 하셔서요. 혹시 환자분은 어떠세요? 두 번이나 직접 찾아갔는데도 자기 시술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병원 원장이었다. 그런 원장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었다. ‘혹시 오전의 그 보험사 직원 때문에……?’ 김유정은 뭔가 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정말 다른 병원에서 재수술을 받긴 싫었다. “언제 재수술이 가능한 거죠?” ―이번 주 금요일 어떠세요? “직장이 병원하고 멀어서요. 토요일에는 안 되나요?” ―네 토요일 오전에 가능해요. 이상하리만큼 김유정에 맞춰주는 SD산부인과였다. “그럼 토요일 오전에 갈게요.” ―네, 환자분. 예약 잡아드렸으니 그날 꼭 오셔야 해요. 김유정은 토요일이 돼서야 왜 SD산부인과가 자신에게 태도를 바꿨는지를 알게 됐다. “아시다시피 병원에서는 환자분들 편의를 봐 드리기 위해서 그런 건데 보험사랑 입장이 조금 다르거든요.” 50대를 갓 넘긴 것처럼 보이는 여자 병원장은 전과는 다르게 누그러진 말투로 김유정을 달랬다. “네, 뭐…… 이해해요.” “그리고 수술은 간혹가다가 그런 불편을 겪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긴 하지만, 어쨌든 재수술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다시 인조 테이프를 걸어드릴 수 있을 거 같은데…….” 김유정도 전의 앙금은 가라앉았지만, 애매하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원장의 말투를 알아챘다. “아뇨. 그냥 인조 테이프 제거해 주세요.” “아…… 원하신다면 그렇게 해드릴게요.” 떨떠름한 표정의 원장이었지만, 김유정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는 못했다. 잘못했다간 보험사에 책잡힐 일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조 테이프를 제거하는 수술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칙대로라면 요역동학 검사 및 초음파, 방광 내시경을 통해 진단을 먼저 내려야 했지만, 원장은 불필요한 과정은 생략했다. SD산부인과의 병원장인 이혜숙은 김유정을 바라보며 마음을 졸였다. ‘쟤 때문에 내 인생 망칠 수는 없지…….’ 이혜숙은 며칠 전 찾아온 박강준을 떠올리자 머리가 아파져 왔다. 강준은 SD산부인과에서 요실금 수술을 치료받은 환자들 명단 중에 보장 보험에 중복 가입된 명단을 뽑아왔다. [원장님 병원이 조직적인 보험사기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셔야 할 겁니다.] [그걸 왜 내가 입증해요? 생사람 잡는 당신들이 입증해야지.] [김유정 씨가 다니는 콜센터 직원들이 여기서 치료를 많이 했더군요. 출산하지 않은 환자들도 갑작스럽게 요실금 치료를 받았고요.] [그야, 환자들이 원해서 그런 거였어요.] [요실금 수술 전에 어떤 검사를 했나요? 요누출압이 일정 이하가 되어야지만 요실금 환자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혜숙 원장은 진료기록서를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그가 사전에 요류역학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걸 안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 알고 온 건가?’ 하지만 곧이곧대로 실토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럴 때는 의사의 권한 뒤로 숨는 수밖에는 없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의사가 판단해서 요실금 수술을 할 수 있어요. 그게 문제가 된다면 정식으로 저를 고발하시고요!] 이혜숙은 큰소리는 쳤지만, 환자들이 마음속에서 걸렸다. 그들이 사실대로 증언해 버린다면 빼도 박도 못하는 거짓말을 한 게 돼 버리는 거였다. 김유정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요실금 수술을 한 케이스지만, 다른 환자 같은 경우엔 요실금 수술은 하지 않고 이쁜이 수술을 하고는 서류만 다르게 꾸민 케이스였다. 그게 걸린다면 의사 면허까지 취소되는 아찔한 상황이 될지도 몰랐다. * * * 을지로 보험조사 2팀. “병원에서 협조를 안 해주면 우리가 진료기록서를 확인할 수는 없어요.” “그럼 어디까지 올라가야 강남 대형병원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겁니까?” “……검찰이요.” 최은정은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대형 병원장들이 전에 조사했던 카센터나 자해 공갈단들과는 사이즈가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대형병원은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과 이리저리 얽혀 있었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병원 협회의 여론몰이로 역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검찰이 기소하려면 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해요.” 최은정은 이번에는 라성캐피탈 건 때처럼 흐지부지 넘어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반드시 잡아서 과다 의료행위에 대한 보험사기 관행을 뿌리 뽑고자 했다. “사실 SD산부인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10억 원 이상의 보험금이 지급된 요실금 수술병원이 열 개가 넘어요. 성원화재에서 나간 금액만 300억 원이 넘으니…… 다른 보험사들까지 합치면 엄청난 금액일 거예요.” 전산 자료를 찾았던 김준혁이 최은정의 말에 보충설명을 했다. 강준은 두 눈을 감고는 회전의자를 빙빙 돌렸다. “증거라…….” 강준은 산부인과 의사들과 보험금 받은 환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기억을 읽었지만, 교묘하게 물증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의료기록과 요실금 치료를 받은 부위를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말이었다……. “김준혁, 혹시 의료기기 회사들 매출 현황 확인할 수 있나?” “품목별로 말입니까?” “어, 요실금 인조 테이프 말이야.” “의료기기 회사들 내부 데이터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건강보험 수가가 적용되는 품목이라면 가능합니다.” “보험공단에 자료 요청을 할 수 있겠군!” “네, 공단이 보험사에 자료를 줄 의무는 없지만, 보험사기를 빌미로 요청은 해볼 수 있겠죠.” 강준의 말에 최은정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건 제가 요청해 볼게요. 건강보험공단도 불필요한 수술이 발생한다면 자기네들도 손해인 거잖아요!” 강준도 막막한 벽 사이에서 뭔가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