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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요실금 보험사기 (1) (22/250)

022. 요실금 보험사기 (1)2021.12.22.

김성호 이사는 보험조사 2팀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대신 라성캐피탈에 대한 조사는 중단한다는 타협안을 내밀었다. “은정아, 앞으로도 사건은 많아. 굳이 라성캐피탈에 집착할 이유가 있겠냐?” “조직적인 보험사기를 잡아내는 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닌가요?” “그래, 맞다. 하지만 뭐든지 때라는 게 있어. 지금 이 부장이 태클을 걸고 오는 것도 네가 극복해야 할 과정이야. 어떤 조직이 전부 네 맘대로 흘러가겠어?” “알겠어요…… 하지만 약속해주시는 거예요?” “이정훈 그놈도 내가 중간에서 이렇게까지 했는데…… 약속은 지킬 거다.” 김 이사와의 면담을 마치고 나온 최은정은 그날 저녁 강준과 함께 을지로 뒤편의 포차를 찾았다. 술로 쓰린 마음을 달래려 하는 최은정이었다. “오늘은 집에 들어갈 생각하지 말아요.” “……외박은 안 됩니다. 일찍 들어가야죠.” “하! 오해하시는 거 같은데 그런 의미 아니에요! 혹시 이상하게 착각하시는 건 아니죠?” 최은정은 얼굴이 빨개지며 강준에게 해명했다. 강준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면담은 잘 끝났나요?” “결론은 너무 개기지 말라는 거죠……. 뭐, 저라고 눈치가 없겠어요?” “급할 거 뭐가 있습니까? 사건이야 널리고 널렸습니다. 전대성은 나중에 잡죠. 최진태 이사가 저렇게 감싸는 걸 보면 뭔가가 있긴 한데……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술잔의 술을 목구멍에 털어 넣은 최은정이 ‘캬’하는 소리를 내고는 강준을 응시했다. “저도 들었어요. 둘째 오빠가 만들려는 홍콩법인 그게 뭐죠?” “아마, 해외투자를 위한 계열사 정도로 사람들은 생각하는 거 같더라고요.” “그럼, 또 뭐가 있나요?” “투자회사예요. 한방에 성원그룹을 먹을 수도 있다는 얘기죠.” 강준의 말에 최은정이 피식 웃었다. “강준 씨가 아직 우리 그룹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은 거 같은데요, 그렇게 쉽게 무너질 회사 아니에요.” “투자 명목으로 알짜배기 자산만 그쪽으로 빼내 간다면? 빈 껍데기만 남은 보험과 증권이 버틸 수 있을까요?” 최창식 회장이 그 어려웠던 IMF를 버텨올 수 있었던 건 재무가 건전했기 때문이었다. 그 원동력으로 불황의 와중에서 우량한 보험사들을 인수 합병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보험이나 증권업은 고객들의 돈을 미리 맡아두고 있는 개념이나 다름없었다. 그 보증금을 써버린다면 재무 건전성이 곤두박질치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최진태는 바로 그런 성원그룹의 보증금 격인 자산들을 해외로 빼돌리려는 것이었다. “제가 그렇게 내버려 둘 거 같아요?” “그룹의 주요 자리가 벌써 최진태 이사 라인으로 채워지고 있죠. 김성호 이사도 겨우 버티고 있는 걸 겁니다.” “젠장…… 둘째 오빠는 어려서부터 집요한 구석이 있었어요. 자기 맘대로 안 되면 판을 뒤엎어서라도 자기 욕심대로 해야 했죠.” “성원그룹도 마찬가지겠죠.” 강준의 말에 최은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첫째 오빠와는 친남매 사이죠?”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보험조사관이잖아요, 이리저리 캐고 다니는 건 제 전공이죠.” 강준은 비어 있는 최은정의 소주잔에 술을 부었다. “사실 큰 오빠는 경영자 스타일은 아니에요. 의대를 나왔으니 지금 의사를 하는 게 본인한테는 더 행복할 거고요.” “나중에는 큰오빠가 가진 지분이 결국 큰 역할을 할 겁니다.” “아직은 저 혼자서 버틸만해요.” 최은정은 자신의 소주잔을 강준의 소주잔에 짠하고 부딪혔다. “어쨌든 강준 씨, 이제 우리 뭘 하죠?” “조직적인 보험사기를 뒤져보기로 했었잖아요?” “맞아요. 그런 건이 또 있을까요?” “실손보험의 원칙이라고 알죠?” “그럼요. 한마디로 실제 발생한 손해만큼 보상해주는 걸 말하는 거잖아요.” 강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소액의 보험료로 그걸 넘어서는 고액 보험금을 받게 된다면 보험계약자들이 딴생각을 할 수가 있겠죠?” “강준 씨, 생각하고 있는 거라도 있어요?” “최근에 다시 요실금 보험으로 병원에서 보험사기를 유도하고 있어요. 일명 이쁜이 수술을 하고는 요실금 수술을 했다고 보험사에 보험금 요청을 하는 거죠. 병원은 병원비 늘려서 좋고, 환자들은 보험금 받아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죠.” 최은정은 몇 년 전에 강준이 언급한 요실금 보상에 대한 문제가 대대적으로 불거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요실금 보상항목이 있는 여성보험은 전부 보상한도를 낮추거나 폐지하지 않았나요?” “네, 예전처럼 500만 원을 일괄 지급하지는 않죠. 하지만 아직 1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상품은 여전히 팔리고 있습니다. 그걸 새로 강남 영업팀으로 온 정승태 팀장이 앞장서서 팔고 다니더군요.” “근데 그게 왜 문제가 되죠? 보상한도도 낮췄으니…… 예전처럼 그런 문제는 안 벌어질 거 같은데요?” 최은정은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강준의 말에 집중했다. 강준은 사실 요실금 보험사기에 대해서 회귀하기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강준은 최근의 병원 동향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내년부터 요실금이 건강보험의 급여지급항목에 들어갑니다.” “네? 정말이에요……?” 특정 치료가 급여지급항목에 들어가면 환자부담금 외에 건강보험공단에서 병원에 일정 금액의 돈을 지급하게 된다. “환자부담액이 20만 원으로 줄어드는 거죠. 그럼 80만 원과 수술비, 그리고 입원비가 지급되죠.” “병원하고 또 짜고 치는 고스톱이 벌어지겠네요.” 몇 개월 후면 닥쳐올 일이었다. 당장이라도 요실금 보상항목이 있는 보험상품의 판매를 중지시켜야 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두고 최은정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일단 먹고 합시다! 배고프면 생각도 잘 안 나요!” “……잠깐, 박강준 씨…… 건강보험 급여지급항목은 매년 연말에 발표되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내년도 변동항목을 알아낸 거죠?” 한껏 의심의 눈초리로 강준을 바라보는 최은정이었다. “의심하는 겁니까?” “확인하는 거예요.” 강준은 태연히 익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입에 넣었다. “탑니다. 얼른 먹어요.” “제 질문에 먼저 답해주시죠?” “거, 왜 이리 사람이 빡빡해요? 알려줄 테니 일단 먹어요.” 강준은 쌈에 싼 고기를 최은정의 입에 직접 넣어줬다. “어! 이게…… 우물우물…….” 정작 입에 고기가 들어가자 야무지게 씹어대는 최은정을 보며 강준은 피식 웃었다. “병원협회에서 줄기차게 로비를 하고 있어요. 요실금은 빈도가 높은 질병이니 건강보험에서 재정을 부담해야 한다고요…… 뭐, 속내는 시커멓지만, 정부로서는 국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거고요. 결국, 적자를 떠안더라도 건강보험공단에서 안고 가겠죠.” “이거 확정은 아닌 거죠?” “확정될 확률이 아주 높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정말 통과되면 큰일인데…….” 강준은 배가 고팠는지 점원을 불렀다. “불판 갈아서 양념갈비 2인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냉면은…… 최 팀장님, 물냉 드시겠어요? 비냉드시겠어요?” “비빔냉면으로 시킬게요.” 점원이 주문을 받고 가자 최은정이 뽀로통한 표정으로 강준을 바라봤다. “뭐 대책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대책은 우선 성원화재 영업팀부터 막아야죠. 그리고 그다음은 자료를 살피고, 그런 다음 병원을 털러 가야죠.” “근데 그 정승태 팀장은 연남지점에서는 어땠나요?” “위에 무조건 잘 보이려는 사람이죠.” 강준은 막 나온 냉면의 면발을 가위로 툭툭 잘랐다. “드세요. 뭐든 먹어야 힘을 냅니다!” * * * 강준은 며칠 뒤, 차가워지는 새벽 공기를 느끼며 지하철에 올라탔다. 어렵게 약속을 잡은 사람은 요실금 보험금을 청구한 30대 후반의 여자였다. 그녀는 출산 후, 요실금 증세가 왔다며 강남의 대형 산부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말이 수술이지 회음부를 통해 절개 후 인조 테이프를 넣어 요도 아랫부분을 받치는 시술 수준이었다. 만남의 명분은 지난 보험금 지급에 대한 추가 서류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그녀가 몇 년 전에 들었던 보장성 보험에서 요실금 항목이 있다는 걸 알고 그런 건지 아니면 병원의 부추김을 받은 것인지……. 그도 아니면 정말 요실금을 앓고 있었던 건지, 강준은 확인해봐야 했다. 강남의 번화가에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약속장소는 대형 서점이 있는 빌딩의 맞은편 카페였다. 또각또각 걸어오는 여자는 강준이 추가 서류를 요청한 김유정이라는 이름의 보험계약자였다. 출산한 지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높은 굽을 신고 꽤 꾸미고 나온 모습이었다. “김유정 씨?” “아, 보험사에서 나오셨죠?” 그녀는 꽤 긴장한 표정으로 강준이 자리 잡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핸드백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여기 요청한 서류요. 지난주에 받은 병원 진단서랑 보험금 받았던 통장 사본이에요.”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보험사에서 요실금 이슈가 커져서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네, 뭐…… 저야. 보험금 받았으니 됐죠.” 까다로운 고객이었다면 왜 자신을 의심하냐면서 당장에라도 따져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유정은 그러지 않고 순순히 강준이 요청한 바에 응해줬다. ‘혹시 본인이 보험사기로 의심받을 수 있어서 그런 건가?’ 김유정이 가지고 있던 보험은 몇 년 전 가입한 상품이라 요실금 수술에 대해 이미 500만 원의 보험금이 나간 상태였다. “이 근처가 직장이신가 봐요?” “네, 결혼하기 전부터 다니던 직장이라서요. 집에서 좀 멀어도 감안하고 다니는 거예요.” “하긴 이 근처에 회사들이 많죠. 근데, 병원 수술은 좀 먼 곳에서 받으셨더라고요? 자택에서도 그리 가깝지 않은 곳인데…….” 강준은 슬슬 원하는 질문을 꺼내 던졌다. “거긴 아는 언니가 소개해줘서 간 거예요.” “아는 언니라면……?” 발끝을 살짝 꼰 김유정은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고는 고개를 들어 답했다. “직장 같이 다녔던 언니요. 지금은 그만뒀고요.” 가장 연결고리가 약한 지인, 전 직장 동료라는 관계는 애매한 관계였다. 쉽게 연결되는 핑계가 될 수도, 쉽게 끊어낼 수도 있는 관계가 바로 직장 동료 사이였다. “그 직장 언니라는 분도…… 전에 요실금 수술을 받은 겁니까?” “원래 여자들 출산하고 나면 거기가 좀 약해져요…… 잘 모르시겠지만.” “언니분도 출산하고 요실금 수술을 받은 거군요.” “네, 잘한다고 해서 갔는데…… 솔직히 지금은 좀 후회해요.”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의외의 반응이었다. 강준은 자신이 연락했던 수십 명의 보험 지급 대상자 중에서 왜 김유정만 만남에 응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의 상황에 불만스러운 뭔가가 있었다. “병원에서 재수술을 안 해준대요…… 그게 말이나 돼요? 불만 있으면 다른 병원 가보라는데, 수술한 의사가 책임져야지, 누가 책임지겠어요!” 강준은 이제 김유정의 기억을 읽어봐야 했다. @바닥글: 민간보험사와 정부의 수상한 관계 삼성생명과 ‘요실금 사건’, 미래한국,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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