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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9. 가짜 진단서 (4) (19/250)

019. 가짜 진단서 (4)2021.12.19.

파앙! 단발의 총성이 라성캐피탈의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총성에 놀란 덩치들은 일제히 바닥에 몸을 웅크렸고, 박성우는 세모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당장 저 새끼 잡아!” 가스총을 쏜 사람은 강준이 아니라 신입사원 김준혁이었다. 천장에 대고 쏜 가스탄이 터지자 주변에 매캐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꼼…… 꼼짝하지 마! 이 자식들아……! 콜록!” 흥분한 상태로 총구를 두 손으로 거머쥔 김준혁은 박성우를 노려봤다. 박성우는 그제야 총을 쏜 장본인이 누군지를 알아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아휴, 난 또 누군가 했네…… 준혁이 너! 오랜만이다. 근데 그거 뭐냐? 뭐 화생방 하냐?” 마치 친근한 사이였다는 듯 인사를 건네는 박성우였다. “지랄 마! 내가 꼼짝 말라고 했지?” 총구를 겨눈 손이 덜덜 떨리는 김준혁이었다. “뭐? 그걸로 뭐 어쩔 건데? 쏘기라도 할 거냐?” 파앙! 두 번째 가스탄이 박성우 쪽을 향해 격발됐다. 하지만 박성우 너머의 벽에서 터졌다. 박성우는 가스총 따위의 위협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준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강준은 그런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어떻게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몸을 숙인 최은정이 강준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좀 두고 보시죠. 결자해지! 준혁이에게도 본인이 끝을 맺을 수 있게 배려해 줘야죠.” “이게 무슨 배려예요?” “죽기야 하겠습니까……?” 얼굴이 점점 굳어진 최은정이 벌떡 일어났다. 파앙! 파앙! 김준혁의 권총에서 두 발의 가스탄이 더 발사됐다. 놀란 박성우가 움찔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두 발의 가스탄이 박성우의 가슴팍에서 터졌기 때문이었다. “시발…… 일을 시켰으면 돈을 줘야 할 거 아니야! 툭하면 때리기나 하고…… 개새끼……!” “콜록! 콜록! 야, 인마! 콜록! 내가…… 네 가족도……콜록!…… 싹 다 알고 있다는 거 알지…… 콜록!” 가족 얘기가 나오자 준혁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필리핀에서 받았던 박성우의 협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준혁은 박성우에게 달려들어 가스총의 손잡이로 그의 얼굴을 가격했다. “준혁 씨, 그러지 말아요!” 퍼억! 퍼억! 사무실 안은 온통 매캐한 가스로 가득 찼고, 그 와중에 박성우는 준혁의 주먹을 뿌리치고 사무실 문 바깥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덩치 녀석들이 먼저 도망치느라 박성우의 앞을 막았다. “야! 이 새끼들아~! 다들 비켜!” 가스총의 매캐함에 놀란 덩치들은 귀에서 들리는 박성우의 말에 놀라 모세의 바다가 갈라지듯 양쪽으로 비켜서며 길을 내줬다. 하지만 사무실 입구에는 이미 강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박성우, 너는 지금 뺑소니 살인 미수범으로 잡히는 거야, 알겠어?” “너…… 보험회사 직원 아니야?” “양태식이 너한테 부탁해서 작년에 사람 하나 치었지? 기억도 안 나냐?” “……젠장…… 그게 너였냐?” 가해자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강준은 김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준혁, 한 대 더 까라!” 퍽! 김준혁은 가스총으로 박성우의 턱을 날렸다. 곧장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나왔다. “박성우, 이건 정당방위다. 너 아까 부하들 보니까 칼 들고 설치더라? 부인 안 하지?” “시발새끼들……! 너희들 다 죽었어, 이제!” “어 죽여봐! 아까 가족들 정보 알고 있다고 했지? 김준혁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둘 다 솔로다 이 새끼야!” 강준이 박성우의 목을 감아쥐고 힘을 주자 숨이 막힌 박성우가 ‘켁켁’거리며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벽돌 건물의 바깥에는 이미 경찰차들이 와 있었다. 강준의 연락을 받고 온 것이었다. 이진철 경위가 한 경사와 함께 주변을 살피다 강준을 발견했다. “박강준 씨! 어떻게 된 겁니까?” “어찌 되긴요. 박성우 잡았습니다.” “……아! 그럼 최혜리는요?” “저기 오네요.” 최혜리는 원장과 함께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돈 가방은 여전히 강준의 어깨에 들려 있었다. “박성우, 당신을 뺑소니범으로 체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 선임이 가능하고, 변호사가 대신 발언할 수 있어요…… 그리고 돈 없으면 국선변호인 선임 가능합니다. 인지하셨죠?” “……전화 좀 하게 해주쇼. 변호사 좀 부르게.” “네네, 그러시죠…….” 이진철 경위는 이번에도 한 건 올렸다는 듯 강준을 바라보며 씩 미소를 날렸다. 한 경사와는 이제 협조가 잘 되는 듯했다. “그 가방은 뭡니까?” “아, 이거요? 글쎄요. 이해성 원장에게 한번 물어보시겠습니까?” 원장은 목을 움츠리고 눈치를 살폈다. “이해성 원장님도 같이 서에 가주시죠. 조사를 해봤는데 그동안 여기저기 금융권에서 대출을 많이 내셨더라고요. 그리고 그 대출금을 갚기 시작한 게 작년부터인데…… 양태식 일당이 병원에서 드러눕기 시작한 때랑 딱 맞아떨어지고요.” “……아니 대출 좀 낼 수 있지…… 그걸로 날 의심한다는 겁니까?” “정황상 그렇다는 겁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정식으로 체포 영장 가져와요!” 어디서 본 건 있는 이해성 원장이었다. 그런 원장에게 강준이 다가갔다. “원장님, 오늘 불법 무단침입하시고 절도하신 거…… 그거 경찰에 밝혀도 됩니까? 그거는 현행범 체포가 가능한 죄목인데요.” “……우씨! 진짜……!” 한탄을 내뱉으며 원장은 결국 경찰 봉고에 올라탔다. 남은 이는 원장의 내연녀인 최혜리였다. “전 그냥 가면 되는 거죠?” “참고인 조사가 있을 겁니다. 원장이 보험사기에 가담한 걸 알고 있었죠?” “…….” “최혜리 씨도 사기 방조죄로 검거될 겁니다. 초범이면 집행유예로 끝날 수 있으니 괜히 덤탱이 쓰지 마시고, 협조하시는 게 현명할 겁니다.” “……네. 알겠어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최혜리는 원장을 향해 차가운 눈길을 보내더니 홱 뒤를 돌아 가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해성 원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 * * 며칠 뒤, TV에서는 병원장이 참가한 상해보험 사기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인 뉴스가 보도됐다. 구치소로 향하는 이해성 원장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고, 연남시 중심가에 있는 해성정형외과의 간판은 모자이크 처리된 채 방송에 나갔다. “최 팀장 수고했어! 그리고 나머지 둘도 수고했고…… 근데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어.” 김성호 이사는 우선 양태식의 자해 공갈단을 조사하고 보험금 반환 단계까지 가게 된 것을 칭찬했다. 하지만 강준은 김 이사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는지 예상했다. “우린 보험조사만 하면 되는 거야. 굳이 대부업체까지 쫓아가서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전혀 없지. 안 그래? 박강준?” “네, 맞습니다.” 함께 잔소리를 듣고 있던 최은정이 나섰다. “이사님, 그래도 라성캐피탈 덕분에 이해성 원장의 보험사기 물증을 잡은 거잖아요?” “내 말은 그걸 왜 굳이 우리가 나서서 하냐는 거야? 보험조사관은 수사권이 없다는 거 알아 몰라?” “……알죠.” “그 얘기는 뒤집어보면 잘못하다간 크게 책임질 일도 생긴다는 거고!” 김성호 이사는 보험조사 2팀의 성과와는 별개로 강준을 필두로 한 조사 활동이 너무 위험하다고 느꼈다. 최은정은 오너가의 일원이었다. 김 이사는 그녀가 성과에 너무 집착할 이유는 없다고 봤다. 더더군다나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이사님, 라성캐피탈에서 양태식 일당에게만 보험사기를 시킨 게 아니에요! 최근에 라성캐피탈이 연남시를 넘어서 서울의 강남에까지 진출했어요! 걔네는 사채로 벌어들인 돈을 보험사기로 불리고 있다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라성캐피탈을 더 깊이 파 보고 싶어요.” 김 이사는 고민스러웠다. 라성캐피탈에 대한 수사는 이미 경찰에서 진행 중인 사안이었다. 괜히 보험사가 치고 들어갔다간 서로 불편해질 수 있었다. “박강준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라성캐피탈을 문 것도 너잖아?” “김준혁이 문 겁니다.” “어쨌든 그 김준혁을 끌어온 것도 너고!” 강준은 뜸을 한번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보험사기는 금전적 이익을 노린 개인 보험계약자들의 범행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병원이나 차량 정비소, 보험설계자 등과 공모한 조직범행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조직범행을 잡자는 거야?” “라성캐피탈은 보험사기 조직의 자금원입니다. 거기를 치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올 겁니다.” “확신해?” “확인해봐야죠.” 공은 다시 김성호 이사에게 돌아왔다. 라성캐피탈에 대한 조사를 막을 명분이 더는 없었다. “좋아! 그럼 한번 해봐.” “감사합니다.” “경찰한테는 어떻게 협조를 구할 셈이야?” 어느 순간 팀장인 최은정보다는 강준에게 답을 묻는 김 이사였다. “우리가 협조를 구하는 게 아니라 경찰이 우리한테 자료를 요청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자료 얘기가 나오자 최은정이 대신 끼어들었다. “김준혁이 지난 10년간 성원화재 고객들의 보험금 수령 유형을 정리하고 있어요. 지역별로, 그리고 보험금 지급 유형별로요.” “음…… 최 팀장! 그런 일들은 1팀하고 협의해서 진행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에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최 팀장, 회사는 조직이야! 혼자 잘났다고 설치는 놈들 오히려 회사에는 마이너스야!” “주의하겠습니다…….” 김성호 이사는 말을 세게 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보험조사 2팀은 급조된 팀이었고, 최창식 회장이 딸인 최은정을 테스트해보기 위한 팀이었다. 그런데 급조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김 이사는 그것이 오로지 최은정의 능력만은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박강준 저 녀석이 보물이군…… 어찌 생각하면 박강준이 팀으로 들어온 게 최은정의 복인지도 모르지!’ “어쨌든 회장님께서는 만족스러워하고 계셔. 그래서 본사 전체 회식 자리를 마련했으니까 다들 참석하도록 하고!” “회장님께서도 참석하시나요?” “회장님뿐만 아니라 최진태 이사도 참석하는 자리니까 특별히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 수도 있고…….” 자신의 이복 오빠인 최진태가 참석한다는 얘기에 최은정의 표정이 굳었다. “참! 김준혁 너는 어때? 여기서 적응하는 게?” “선배님이랑 팀장님 따라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래, 얘기는 들었다. 필리핀에서 고생을 좀 했다지?” “안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초년생인 김준혁을 보며 김 이사가 흐뭇하게 웃었다. “너 뽑은 건 내가 아니라 여기 최은정 팀장이랑 박강준이야.” “아…… 그런가요?” 김준혁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최창식 회장이 참석하는 본사 회식은 사내 식당에서 이루어지는 소박한 회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회식이 잡힐 때마다 최 회장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는 했었다. 최진태 이사의 친모인 윤미경 감사가 본격적으로 경영에 뛰어들게 된 것도 최 회장의 소박한 회식 자리에서였다. 최은정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당최 알 수 없었지만, 같은 테이블에서 계모인 윤미경 감사와 마주 보고 앉는 건 정말 견딜 수 없는 일일 것 같았다. “뭘 그렇게 생각해요. 회식이라는데 얼른 갑시다! 저 배고파요. 안 그래? 김준혁?” “네! 저도 엄청나게 배고프네요. 전 고기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자신과는 다르게 아무 고민도 없어 보이는 팀원들을 보자 최은정은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메뉴는 갈비탕일 거예요. 매번 똑같았어요. 회장님이 가장 즐기시는 메뉴거든요. 고기라면 고기네요.” 스테이크를 생각했던 김준혁의 표정에 실망감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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