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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가짜 진단서 (2) (17/250)

017. 가짜 진단서 (2)2021.12.17.

“여기는 정형외과잖아요. 그런 건 내과로 가셔야죠.” 이해성 원장은 강준을 빤히 보더니,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진료과를 잘못 짚은 것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봐줄 수 있지 않나요? 의사들은 군대 가면 전공 상관없이 진료 본다고 하던데…….” “하긴 뭐 그렇긴 하죠. 그럼 한번 볼까요?” 건성으로 강준의 등을 살피는 원장이었다. 절대 손으로 등을 만지지는 않는 원장이었다. “이건 대상포진이 아닌 거 같은데…… 그냥 등에 난 여드름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다른 곳에도 났습니다! 여기도요!” 강준은 둥근 회전의자를 홱 돌려 원장의 손을 잡아 자신의 팔뚝을 만지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원장의 기억을 읽으려 모든 신경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그렇게 읽어낸 기억은 무척 뜻밖이었다. 원장은 퇴근 후 자신의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은 연남시의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신축 빌라들이 모여있는 구역이었다. 기억은 끊어졌다 다시 계속됐다. 젊은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이해성 원장보다 훨씬 어려서 부녀지간이 아니라면 밖에서는 단박에 오해를 살 법한 관계의 두 사람이었다. [원장님…… 이제 저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냥 당분간 숨어 있어.] 여자는 걱정이 됐지만, 원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눈치였다. [드세요. 오시는 날이라 차린 거니까…….] 두 사람은 음식을 차려진 식탁을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기억은 여기서 끝났다……. ‘원장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군…….’ 원장은 보험조사관들에게 추궁을 당하면서도 내연의 여자를 떠올리는 인물이었다. 병원 운영은 그에게 1순위가 아닌 듯했다. “아니! 이건 그냥 긁어서 피부가 일어난 거네! 이걸 보고 무슨 대상포진이라는 거예요? 그냥 내과에나 한번 가봐요.” “그런가요?” 뒷머리를 멋쩍게 긁는 강준이었다. “제가 호들갑을 떨었네요. 어쨌든 원장님, 그 진단서가 얼마나 타당성이 있었는지는 다시 한번 검증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지금…… 정당한 진료행위를…… 뭘 또 검증하겠다는 거예요?” “여기서 진단서를 받아 간 사람들이 여기저기 병원에 입원하면서 상해보험금을 많이 타갔거든요. 평균적인 보험청구 비율보다 훨씬 많게요.”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지 않나요? 난 진료만 해주는 의사인데! 그럼 내가 그 사람들하고 짜고 사기라도 쳤다는 겁니까!” 불쑥 화를 내는 이해성 원장이었다. 강준은 화를 내는 원장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관찰했다. 눈가가 떨리고 있었다. 거짓말을 들킬까 떨고 있는 속내가 무의식중에 드러난 증거였다. “그건 확인해보면 알겠죠!” 강준은 벌떡 일어났다. 최은정은 더 물어볼 것이 남아 있었지만, 화를 내는 원장을 더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근데 원장님, 평소에 여자 좋아하십니까?” 강준은 나가면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뭐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신 뭐야!” “지금 원장님 몸에서 여자 화장품 냄새가 나는 거 같아서요…… 아니시라면 할 수 없고요.” 그 말에 원장이 자신의 몸 냄새를 맡았다. 그 모습을 보던 강준을 혀를 끌끌 찼다. “팀장님 보셨죠? 제가 괜한 말을 한 건 아닐 겁니다.” 강준은 원장실을 빠져나오면서 당혹스러워하는 최은정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어쨌든 원장의 기억 속에 등장한 여자가 최혜리인지 확인해봐야 했다. 강준은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김준혁 씨? 최혜리 간호조무사 말이에요. 신분증 찾아서 보내줄 수 있어요?” “네. 가능합니다.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직 사진이 오가는 스마트폰의 시대가 아니었다. 불편하더라도 인터넷을 찾아 근처 PC방이라도 찾아봐야 했다. 김준혁에게 메일이 올 때까지 둘은 최은정의 차 안에서 대기했다. “아까 여자 얘기는 왜 꺼낸 거예요?” “냄새가 나서요…….” “정말 화장품 냄새라도 맡았다는 거예요?” “아뇨, 그냥 한번 떠본 겁니다. 근데 그냥 걸려들더군요. 봤죠? 자기한테서 냄새날까 전전긍긍하는 거요.” “확실히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는 거 같아요. 바람이라도 피나보죠. 근데 그게 우리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그래요?” “왠지 그 바람의 대상이 우리가 찾는 최혜리인 거 같아서요.” “간호조무사와 원장의 바람이라…… 그럼 결국 최혜리가 이용당한 거 아닌가요?” 강준은 갑자기 최혜리가 걱정됐다. 이해성 원장이 사람을 해코지할 인물까지는 아니게 보였지만, 구석에 몰리면 돌변하는 게 인간이다. 뚜르루루! 뚜르루루! “어, 김준혁! 찾았어?” ―네, 지금 선배님 메일로 보냈습니다. “고마워. 수고했어.” 전화를 끊은 강준은 맞은편 건물의 PC방 건물을 가리켰다. “팀장님, 저기서 최혜리 얼굴 좀 확인하고 갑시다.” “주소도 같이 확인해야겠네요. 어쨌든 도박을 하기 위해 사금융에 대출까지 한 건 최혜리니까 우리가 직접 만나보는 게 우선이겠죠?” “그렇죠. 탐문이 보험조사의 기본 아니겠습니까!” 최은정은 최혜리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고무된 듯했다. 김준혁이 보내준 최혜리의 신분증은 라성캐피탈의 직원 메일을 해킹해서 구해낸 것이었다. 그들은 도박사이트와 관련한 대출자 서류를 필리핀 송 사장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준에게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최혜리가 원장과 밀회를 벌였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었다. 예상했던 것이지만 둘이 공모관계라면 최혜리의 신변이 더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이거 최혜리를 빨리 찾아야겠는데요?” “집 주소로 가면 있지 않을까요?” “벌써 경찰에서도 최혜리를 주목하고 있을 겁니다. 집에 그대로 있진 않겠죠.” 강준은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최혜리의 주변인들을 조사하고 그녀가 있을 만한 곳, 그리고 은신하고 있을 만한 곳들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중 가장 확률이 높은 곳은 이해성 원장이 마련해 준 둘만의 밀회 장소일 터였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최혜리 핸드폰 위치추적을 해봐야겠어요.” “경찰에 알리려고요?” “……그래야죠.” 강준은 맘 같아서는 통신사 정보통신망에 직접 접속해 최혜리의 위치를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더 이상 경찰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김준혁을 범법자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연남경찰서 경제수사과 이진철 경위입니다! “저 박강준입니다.” ―아니, 왜 유선전화로 하셨어요? “계속 통화 중이던데요?” ―아! 맞다! 안 그래도 말씀드릴 게 있었습니다. “뭔가요?” ―박강준 씨 차로 치었다는 진범이 박성우라고 했죠?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출입국사무소에서 지금 연락이 왔습니다. 박성우는 송종철 사장의 해결사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한국에 왔다는 건 뭔가 일을 저지르려고 한다는 거였다. “이 경위님! 그 사람 당장 수배해야 합니다. 또 누구를 죽이려고 들어온 건지도 모릅니다. 지난번 창고가 털렸으니 필리핀의 송 사장도 독이 단단히 올랐을 거고요!” ―안 그래도 수배 요청해 놨습니다. 출입국사무소에 미리 요청해 두지 않은 게 뼈아프네요. 수화기 너머 이진철 경위가 호흡을 가다듬는 기침 소리가 들렸다. ―근데, 전화는 왜 하신 겁니까? “해성정형외과라고 아시죠?” ―우리도 한번 방문했었습니다. 양태식 패거리가 진단서를 받은 곳이 거기더라고요. “그 병원 간호조무사 최혜리의 핸드폰 위치추적 부탁합니다.”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자세한 건 만나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준은 운전석에 바꿔 앉아 차를 출발시켰다. “다음 주면 회사에서 차가 나올 거예요. 6인승 밴으로 신청해뒀으니 김준혁 씨까지 함께 현장으로 나올 수 있겠네요.” “잘하셨습니다. 앞으로 운전은 계속 제가 하죠.” “번갈아서 해요. 피곤할 텐데…….” 강준은 최은정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고마웠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액셀을 밟았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최혜리 자택이요. 여기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요?” “아까는 최혜리가 집에 있지 않을 거라면서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일단 가보죠.” 강준은 박성우가 국내에 들어왔다는 말에 최혜리의 자택을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면 박성우도 그곳부터 최혜리를 찾아낼 테니 말이었다. * * * 최혜리의 집은 신축 빌라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연남시 중심부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복잡하지도 않은 곳. 딱 남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예상대로 집은 비어 있었다. 벨을 눌러도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강준은 전력계량기도 살펴봤지만, 사람이 안에 있을 만큼 전기가 사용되고 있지 않았다. 우편함도 뒤졌다. 사채를 쓸 정도의 빚이 있다면 각종 독촉장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연체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여기서 기다릴 거예요?” “흠…… 잠복수사라도 해야겠네요.” “잠복수사요?” “네, 혹시라도 모르니까요…….” “저한테 다 말해주지 않을 건가요?” 최은정은 뽀로통한 얼굴로 강준을 빤히 쳐다봤다. 강준이 속내를 다 털어놓지 않는다는 걸 따지듯이 말이다. “양태식의 사주를 받아서 저를 차로 치어 죽이려고 한 박성우가 필리핀에서 입국했습니다. 이건 제 추측이긴 하지만…… 이번 일에 해성정형외과가 관여됐다면…… 진단서 위조에 대한 책임은 한 사람만 없어지면 끝납니다.” “박성우가 최혜리를 죽일 거라는 얘기네요.”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차 안에서의 대화는 한동안 없었다. 둘은 그저 최혜리의 빌라로 들어가는 입구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을 때, 강준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해성정형외과의 원장 이해성이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지금 덮칠 건가요?” “우린 경찰이 아닙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얘기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빈집에 원장이 왜 왔을까요? 뭘 가져 나오려고 할 겁니다. 일단 지켜보죠.” 흥분한 최은정에 비해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는 강준이었다. ‘이제 뭐가 튀어나오는지 한번 지켜보자고……!’ 최혜리의 집에 불이 켜지고 30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다시 불이 꺼졌고, 원장은 헐레벌떡 빌라에서 빠져나왔다. 강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원장을 응시하고 있을 때, 최은정이 참지 못하고 차 문을 열었다. “어! 팀장님……! 잠깐만요!” 강준이 말리기도 전에 최은정은 이해성 원장을 향해 또박또박 걸어갔다. “원장님이 왜 여기서 나오죠? 직원 간호조무사분의 집까지 직접 살피러 오신 건가요?” 최은정의 등장에 원장의 얼굴은 사색이 된 표정이었다. 그의 겨드랑이에는 여자들이 매는 숄더백이 끼워져 있었다. “……아니, 나는 그냥…….” “그 가방 안에 뭐가 있죠? 딱 봐도 원장님 걸로 보이지는 않는데요?” “이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원장은 가방을 뒤로 숨기며 최은정을 피해 차 문을 열려고 했다. 그때, 강준이 차 문을 다시 닫으며 등장했다. “아이고! 원장님! 안에 뭔가 중요한 게 들어 있는 모양이네요!” “이거…… 왜 이래요? 정말…… 사람 졸졸 따라다니면서…… 이러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말로는 큰소리쳤지만, 식은땀을 흘리는 원장이었다. 강준은 순간 원장의 겨드랑이에서 숄더백을 잡아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강준은 원장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숄더백의 지퍼를 열었다. 지이이익! “아이고! 원장님 현금 부자시네요!” 가방 안에는 만 원짜리 지폐뭉치로 가득했다. @바닥글: 보험사기 관련 교육자료 [병원관계자], 금융감독원 김동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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