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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가짜 진단서 (1) (16/250)

016. 가짜 진단서 (1)2021.12.16.

며칠 후, 김준혁은 보험조사 2팀으로 출근했다. “준혁 씨, 책상은 여깁니다.” 최신식 컴퓨터와 대형 모니터 몇 개는 강준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말고 잘하자. 내가 살아보니까 열심히 한다고 남들이 알아주는 건 아니더라…….” 강준은 그 말을 하고는 멈칫했다. 자신은 15년 전으로 회귀한 20대 청년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새로 합류한 김준혁과도 불과 두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민망하게도 김준혁은 군기 들린 말투로 강준의 말에 대답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은정이 우스운지 입을 가리며 킥킥댔다. “자, 모여봐요! 아침 회의해요.” “우리 팀장님은 원래 회의를 좋아하시지.” 강준은 김준혁에게 농담했다. 의자를 끌고 온 두 명이 회의 테이블에 앉아 최은정이 준비한 자료를 벽면에 띄웠다. “양태식이 구속되긴 했지만,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자해 공갈단 놈들이 다 잡혔지 않습니까? 그중 일부는 경찰에서 불구속 수사로 계속 이어갈 거고요.” “물론 그들은 보험사기로 처벌받을 거예요. 사기 죄목으로 말이죠.” 강준은 아메리카노를 한번 쪽 빨고는 쓴맛에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된 거 아닌가요? 보험조사팀으로서의 우리 역할은요.” “그게 그렇지 않아요. 그들에게 보험급 지급이 어떻게 이뤄졌겠어요?” “그야…… 보험사에 오기 전에 이미 운전자들과 합의를 노린 거 아닌가요?” “맞아요. 하지만 그 합의까지 가기 위해서 병원에 입원하고 각종 상해 진단서를 받아냈죠. 그걸로 보험사에도 보험금 청구를 한 거고요.” 강준은 회귀하기 전 경찰일 뿐이었다. 보험사의 입장에서는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자해 공갈단에 끊어준 진단서는 분명 허위 진단서였어요. 그걸 발급해준 병원들은 공범이고요! 어쩌면 이제부터 진정한 시작인지도 몰라요.” 강준과 시선을 마주친 최은정의 눈빛은 무척 진지했다. “와~ 이거 또 야근이 눈에 보이네! 김준혁, 너 들어오자마자 고생길 훤히 열었다.” “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저녁에 혼자서 할 일도 없는데요…….” ‘이거 왠지 팀에서 나만 또 왕따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네.’ 강준은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양태식의 자해 공갈단이 그간 벌인 자료들부터 살펴봐야겠네요.” “네, 그래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오늘 하루도 힘내죠. 우리!” 보험조사 업무의 첫 단계는 인지 업무로 보험사에서의 자체적인 인지와 신고제보로 이뤄진다. 그렇게 인지가 되면 그다음 두 번째는 자료조회! 의심되는 사람에 대한 사고전력과 보험계약에 대한 조회를 요청하는 것이다. 물론 협조가 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강준은 보험개발원에서 중고차사고이력정보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이 몇 년 후에는 더 정교한 시스템이 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그렇게 자료를 조회하고 나면 세 번째 단계인 자료 취합으로 넘어간다. 보험금 지급을 위한 품의서와 조사 내역서 등의 관련 서류를 취합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책상 앞에서의 노가다 업무!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자료 분석 단계였다. 피해자의 인과관계, 가해운전자의 사고경위 진술, 피해 상황 및 대물 피해 정도, 입원 기간, 병원의 진료 적합성…… 고려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이거 경찰 업무랑은 또 다른 차원이네…….’ 강준은 혼잣말로 투덜거리면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양태식의 자해 공갈단에게 지급됐던 손해보험금과 그 사건기록들을 리스트로 정리했다. 그리고 그 리스트는 김준혁에게 전달되어 전산 자료화됐다. 둘은 꽤 죽이 잘 맞는 듯 자료 취합이 꽤 빨리 이뤄졌다. “팀장님, 우리 저녁은 먹고 해야죠.” “그럼요, 뭐 드실래요?” “소주 한잔 걸칠 수 있는 부대찌개 어떤가요?” “좋아요. 가죠!” 을지로 뒤편의 부대찌개 집은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서 가게가 문을 닫기 직전이었다. “이모님! 얼른 먹고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천천히 먹고 가요.” 맘씨 좋은 주인이었다. 오랜만에 풍기는 부대찌개의 맛이 일품이었다. “선배님, 여기 자주 오세요?” “왜? 처음 왔는데?” “맛있어서요. 자주 왔으면 좋겠습니다.” “너 이런 거 못 먹어봤냐? 겨우 부대찌개에 왜 그런 소리를 해?” “필리핀에선 한식이 귀하거든요. 게다가 전 콘도에만 갇혀 있어서 몇 개월 동안 한식은 구경도 못 했었습니다.” 김준혁의 말이 짠하게 느껴지는 강준이었다. “많이 먹어라.” 강준은 국자로 크게 한 숟갈 떠서 김준혁의 앞접시에 덜어줬다.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김준혁은 작은 목소리로 운을 띄웠다. “근데 제가 필리핀 있을 때요…….” “어, 뭐? 짚이는 거라도 있냐?” “도박으로 돈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대출도 했었거든요…… 혹시 그 대출한 사람들이 보험사기에도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요?”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자식이 밥값은 하네! 그래, 좋은 방향이야. 대출조직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냐?” “도박사이트에 입출금된 내역들이 실시간으로 보이거든요. 근데 출금이 규칙적으로 되던 곳이 있더라고요.” “그게 어딘데?” “……라성캐피탈이요.” “뭐? 라성?” 강준은 자신이 회귀 전 수사하던 라성캐피탈이 떠올랐다. 연남시에서 활동하던 부동산 기획업자 전대성이 자금을 모았던 대부업체가 바로 라성캐피탈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연결이 되는 건가……?’ “혹시 그 자금내역 확인 가능해?” “그게…… 관리자가 바뀌면서 비밀번호가 바뀌었더라고요…… 물론 뚫을 수는 있지만…….” 강준은 최은정을 돌아보았다. 해킹을 통해 얻어낸 정보로 수사하는 거에 반대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줄여서 정보통신망법에 엄연히 위배 되는 일이죠. 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고 해킹 대상이 불법적인 일을 일삼는 범죄단체라면?” “괜찮나요?” “아뇨. 괜찮지는 않겠죠. 불법적으로 취득한 정보는 재판정에서 효력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역으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뒷감당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단서가 될만한 것들이라면 시도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에둘러서 길게 얘기했지만 송종철 사장의 도박사이트를 해킹하자는 얘기였다. “김준혁 할 수 있지……?” “네 한번 해보겠습니다.” 강준은 소주병을 돌려 깠다. 그리고는 작은 잔들을 모아 ‘쫄쫄’ 따랐다. “자! 한잔 마십시다!” 야근은 그걸로 끝이었다. * * * 이틀 뒤, 강준이 최은정과 함께 찾은 곳은 연남시 중심가의 해성정형외과였다. 그곳은 디스크 수술, 척추교정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있는 개인병원이었다. 그 병원의 간호조무사가 라성캐피탈에 받은 돈이 3천만 원이었다. 서른이 조금 넘은 조무사의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볼 것도 없겠네요. 3천만 원으로 도박에 빠졌으니…… 진단서 허위로 떼주고 빚을 탕감받으려 했겠네요.” 최은정은 단언하듯이 말했다. “확인해봐야죠.” 강준은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것 같았다. 한낱 간호조무사가 저지르기엔 보험사기의 규모가 너무 컸다. 간호조무사의 이름은 최혜리, 정말 도박에 빠져 보험사기까지 가담했다면 어리석은 여자였다. 빌딩 3층의 해성정형외과의 문을 열자 접수대에 있던 간호조무사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을 걸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최혜리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네? 그 언니 그만뒀는데요?” “언제 그만뒀습니까?” “……지난주에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접수대의 간호조무사는 마치 신나는 가십거리라도 찾았다는 듯 되물었다. 최혜리의 퇴직은 예상 못 했던 일이었다. “보험조사팀에서 나왔어요.” “거기서 왜요? 무슨 일인데요?”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간호조무사였다. 보다 못한 최은정이 나섰다. “원장님은 어디 계시죠? 여기 병원을 거쳐 간 환자에 관해 물어볼 게 좀 있거든요.” “아…… 안에 계세요. 근데 진료가 좀 남아서 조금 기다리셔야 할 거예요.” “여기서 기다리죠.” “맘대로 하세요.” 간호조무사는 잠시 후, 원장실에 들어가더니 힐끗힐끗 강준 일행을 살폈다. 뭔가 얘기를 들은 게 분명했다. 강준은 며칠 동안 팀에서 취합한 자해 공갈단의 자료를 다시 살펴봤다. 처음엔 강준도 몰랐지만, 자료를 모아보니 자해 공갈단이 지금까지 해먹은 보험금이 십억이 넘어갔다. 성원화재뿐만 아니라 다른 보험사에도 중복으로 가입한 보험 때문이었다. 도저히 양태식 한 놈이 벌인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양태식이 그놈은 그냥 동네 양아치일 뿐이지. 송종철 사장이 하는 대로 움직이는 하수인…….’ 병원 복도에는 환자복을 입고 설렁설렁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양태식하고 같이 잡힌 놈 중에서 여기 입원한 놈들도 많네요.” “근데, 입원은 다른 병원에서도 많이 했어요. 한 곳에서만 장기 입원하면 의심을 살 수 있거든요.” “그럼, 여기서는 허위 진단서만 떼갔다는 거네요.” “맞아요. 다른 병원에서는 진단서가 있으니 입원시키는 것 정도는 문제가 안 되는데 허위 진단서를 발급하는 문제는 엄청나게 큰 문제예요. 의료법 위반이에요.” “의사면허가 취소될 수도 있겠군요.” 최은정은 강준이 거기까지 생각했다는 데 놀라는 눈치였다. “강준 씨도 법 공부했어요?” “에이 그럴 리가요, 그냥 상식입니다!” 그때, 간호조무사가 의자에 앉은 채 강준에게 말했다. “원장실로 들어오시래요.” 무척 무료하고 귀찮은 표정이었다. 원장은 중년이었지만 꽤 관리했는지 반질반질한 얼굴과 탄탄한 체형의 소유자였다. “성원화재에서 나오셨다고요?” “네, 저희는 최혜리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혜리는 그만뒀는데…… 왜요?” 안색이 변하는 원장이었다. 강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경찰로서의 본능적 감각이었다. “원장님. 여기 해성정형외과에서 발급된 진단서들이 허위로 발급됐다는 건 아시죠?” “……경찰에서도 왔었는데…….” 말을 잇지 못하는 원장이었다. 명패에 쓰인 원장의 이름은 이해성이었다. “이해성 원장님, 그 진단서 원장님께서 발급하신 거 맞습니까?” “……네, 맞아요. 저로서는 정당한 진료행위였어요…… 원래 교통사고라는 것이 단박에 드러나는 게 아니라서…… 경과를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거든요.” 이해성 원장의 진술은 최은정이 생각하고 있던 가정을 무너뜨렸다. 자해 공갈단이 받았던 진단서는 최혜리가 중간에서 허위로 발급한 것이 아니라 원장이 직접 발급한 것이었다. ‘이러면 나가리인데…….’ 강준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기댈 곳은 남아 있었다. 원하는 기억을 읽어낼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이해성 원장의 기억을 한번 들여다봐야 했다. “원장님, 저 온 김에 이것 좀 봐주시죠. 이거 대상 포진 아닌가요?” 강준은 웃옷을 끌어 올린 후, 뒤를 돌아서 등판을 보였다. 등판에 나 있는 여드름을 대상포진이라고 우길 작정이었다. 《참고자료》 보험 범죄의 발생실태와 대책,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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