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자해 공갈단 (4)2021.12.14.
강준은 낡은 스포츠카를 번암교차로로 몰았다. 고속도로에 인접한 곳이라 인적이 드문 곳이기는 했지만, 교통이 편리해 물류창고가 몰려 있었다. ‘자자…… 기억을 한번 되살려 보자고!’ 강준은 그곳이 꽤 익숙했다. 왜냐면 자신이 수사했던 전대성의 물류창고가 여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대성! 그는 용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범죄자였다. 부동산 디밸로퍼! 겉보기에 꽤 근사하게 포장된 인물이라 그가 범죄자인지 아니면 사업가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좌우간 강준은 지금 전대성에게 집중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은 우선 송 사장 비밀금고부터 찾자고!’ 강준은 주변 창고를 살핀 지 30분 만에 박종길의 기억에서 봤던 창고를 발견했다. 주차장까지의 경비는 없었지만, 창고 입구를 굳게 가로막은 문에는 경비업체의 보안이 걸려 있었다. “잘됐네! 누가 올지 한번 볼까!” 강준은 진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위님, 혹시 지원요청 가능합니까?” ―지금 말입니까? “양태식이 어디 있는지 대충 알 거 같아서요.” ―어디십니까? “번암동 물류 창고 많은 곳입니다. 정확한 주소는 문자로 보내드리죠.” 강준은 전화를 끝내자마자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던 콘크리트 벽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쾅! 쾅! 쾅! 삐용! 삐용! 삐용! 강준은 벽돌로 출입문에 달린 자물쇠를 내리쳤다. 자물쇠는 꼼짝도 하지 않았지만, 보안업체의 벨이 울렸다. “이제 슬슬 기어 나오겠군!” 잘하면 송종철의 패거리 중 한 명, 못해도 양태식이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30분도 되지 않아, 경비업체 직원들이 나타났다. “경비업체가 빠르긴 빠르네!” 창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강준에게 경비업체 사람이 다가왔다. “신고받고 나왔습니다. 여기 직원 되십니까?” “보험조사관입니다. 잠시 후에 경찰이 올 거고요.” “아…… 그럼, 박성우 씨랑은 어떤 관계…… 이신데요?” “보안용역 계약자가 박성우로 돼 있나 보죠?” “네, 일단 서류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경찰이 개입되어 있다는 얘기에 보안회사 직원들이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이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잠시만요! 여기에 범죄 은닉자금이 숨겨져 있습니다. 지금 연락하시려는 담당자들이 범죄의 공모자들이고요. 경찰이 온다는 얘기는 빼주셨으면 좋겠네요.” “아…… 그게…… 저희도 사규라는 게 있어서요.” “그게 범죄자들의 도주에 도움을 주는 행위는 아니겠죠?” 강준의 말에 보안회사 직원이 주춤거렸다. “상황은 얘기해 줘야죠. 자기 창고가 털렸는데, 그리고 아직 경찰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보안업체로서는 자기 일을 하는 거고요.” 그 말에 보안회사 직원은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잠시 후, 달려온 외제 세단에서 내린 이는 바로 양태식이었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태식이 아니야?” 강준은 차에서 내려 양태식에게 다가갔다. “어!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송종철 사장 창고에서 왜 네가 나오냐는 거지?” 양태식은 송 사장이 언급되자 얼굴색이 사색으로 변했다. 뭔가 일이 터졌음을 직감한 양태식은 도망치려는 듯 차에 남은 놈들을 돌아봤다. “왜? 창고 왔으니까 둘러봐야지?” “그…… 그게 확인했으니까 됐어!” “저 창고 내가 딴 건데?” “……그걸 왜 네가 따?” “나도 송종철 돈 좀 먹으려고! 왜 안 되냐?”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히 안 되지…… 이 도둑 새끼야!” 강준은 양태식에게 바짝 다가가 물었다. “박성우 부장 지금 어디 있냐?” “……뭘 말하는 거야…… 새끼야?” “나 뺑소니로 친 인간, 네가 부탁이라도 한 거였냐?” “야! 이 새끼 좀 끌어내!” 양태식은 차로 함께 온 양아치 두 놈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문신을 팔뚝에 그린 녀석이 강준의 어깨를 팍 밀쳤다. “어쭈! 이 새끼 봐라! 너 싸움 좀 했냐?” “어이, 아저씨 여기 남의 창고 와서 뭐 하는 짓이야? 안 꺼지냐?”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양아치였다. “싫은데?” 강준은 그의 티셔츠를 잡고는 단숨에 엎어 쳤다. 놀란 두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양태식과 남은 양아치 한 놈이었다. “김준혁이 다 불었다. 너 필리핀 송 사장 조직에다가 부탁한 거였지? 나 죽여달라고? 그래서 송 사장 따까리가 와서 처리해 준 거고?” “시발! 무슨 소설 쓰냐?” “근데 안타깝게도 내가 안 죽고 살아서 일이 틀어졌던 거고…… 안 그래?” 거기까지 말하자 양태식도 더 숨길 것도 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강준을 노려봤다. “새끼…… 인제 보니 존나 끈질긴 새끼네…….” “원래는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이제는 좀 다를 거다! 그냥 새로 태어났다고 이해하면 빠를 거야.” “너 뭐,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인가 본데? 나는 병훈이랑은 다르다. 나 이제 필리핀으로 뜰 거거든. 그럼 네가 무슨 수로 나를 찾겠냐?” “왜 못 찾아? 죄지었으면 지구상 어디라도 쫓아가서 잡아야지.” “증거 있어? 인마! ……어디서 헛바람만 들어서는…… 증거도 없는데 무슨 수로 경찰이 나설 거냐고?” “글쎄…… 내가 잡으면 되지 않을까?” 강준은 양태식의 멱살을 확 잡았다. 그리고 양태식의 기억을 읽었다. [‘태식아, 이제 김준혁 담당은 너다. 알지? 그 새끼 잔머리 기가 막히게 굴리는 거?’] [‘……박 부장님, 그럼 필리핀 넘어가면 제가 정킷방 관리 맡는 겁니까?’] [‘새끼…… 서둘기는…… 다 때가 되면 하나씩 올라갈 거니까 조바심 내지 말고 일단 창고 관리나 확실히 하면서 기다려.’] 양태식은 박성우 부장을 통해 송종철 사장의 조직에 접근하고 있었다. 강준의 뺑소니 사건은 그들을 공범으로 더 끈끈하게 엮어주는 매개체였다. 강준은 한낱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서 동창을 죽여버리려 했던 양태식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개새끼! 넌 이제 감방에서 고병훈이랑 오순도순 지내게 될 거다!” 탁! 강준이 양태식의 발목을 가격하자 땅으로 고꾸라지는 그였다. 강준은 멱살을 잡은 손을 비틀어 양태식을 완전히 제압했다. 나머지 한 명에게 눈빛으로 레이저를 쏘자 그는 치사하게 타고 온 차를 내버려 두고는 달아나버렸다. “봤지? 이게 네가 처한 현실이야…….”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봉고에 탄 형사들이 내렸고, 이진철 경위는 강준이 제압한 양태식을 확인하고는 그를 검거했다. “수배 내린 양태식을 드디어 찾았네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근데 여기 한번 훑어보세요. 전에 술자리에서 말씀드린 송종철 사장 은닉자금이 여기 있을 테니까요.” “아…… 그게 여긴가 보군요!” 이진철은 순경들과 함께 열린 창고를 뒤졌다. 강준이 예측한 대로 출처를 모르는 현금 뭉치가 창고 내의 대형 금고 안에서 발견됐다. 송종철이라는 조직폭력배의 자금원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양태식은 봉고 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는 사색이 된 얼굴로 떨었다. “왜? 박성우 부장한테 어떻게 될 거 같냐? 송종철이 너 죽여버릴까 봐?” 강준은 양태식의 속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야…… 박강준, 내가 입을 열 거 같냐? 난 저거 모르는 일이야……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거라고.” “넌 그저 창고관리인이었다. 이거지?” “……그래 인마.” 강준은 태식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쐐기를 박았다. “물론 너는 여기랑은 상관없지. 암! 그렇고말고! 넌 박성우 부장한테 날 죽이라고 사주한 살인 혐의로 벌을 받을 거야. 고의성이 짙고 계획적이니 아마 무기징역 정도 받지 않을까……?” 사람은 자신이 유리한 대로 상황을 해석하기 마련이다. 양태식은 아직도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입꼬리를 올리며 강준을 비웃었다. “박성우 부장…… 한국에 없어…… 알잖아. 필리핀 슈터가 한국에서 일 치르면 아무런 흔적도 안 남는 거…… 그거랑 비슷한 거야. 뭐로 증명할래?” 그때 이진철이 봉고에 올라타면서 양태식의 말에 대꾸했다. “방금 오기 전에 김준혁이 다 불었어요. 현장에 있었던 결정적인 증인이 있으니 그걸로 수사 착수는 가능할 겁니다.” “하! 난 아니라니까!” “양태식 당신 핸드폰 열어보면 웬만한 통화기록들 있을 거고, 결정적으로 당시 사고를 낸 차량도 YS무역에서 몽골로 수출된 차량으로 확인이 됐네요. YS무역에 가보면 누가 차량을 가져갔는지 확인할 수 있겠죠?”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양태식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진철을 향해 외쳤다. “그거! 박성우 부장이 한 짓이에요! 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준은 양태식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새끼가! 인제 와서 발뺌이냐? 그게 먹힐 거 같아? 송종철 사장한테 그리 전해주랴?” 진철은 강준을 말리며 말을 이었다. “모든 살인에는 목적이 있는 법입니다. 아무 상관이 없는 박성우가 박강준 씨를 죽일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이네요. 오히려 박강준 씨의 손해보험을 활용해 몇억의 보험금을 타낸 양태식 씨가 살인을 저지를 개연성이 더 높아 보이네요.” 진철은 또박또박한 말투로 양태식의 목줄을 죄어갔다. 며칠 후, 연남경찰서는 자해 공갈단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고, 성원화재를 비롯한 보험사 5곳은 보험금 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팀장님, 소송 진행하면 나간 보험금은 돌려받을 수 있는 건가요?” “아마…… 그렇게 되긴 쉽지 않을 거예요. 돈을 다 써버렸다고 하겠죠. 그렇다고 가압류할 제대로 된 자산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니까요.” “말 그대로 응징에 지나지 않는 거네요.” “그래도 미래에 보험사기를 저지를 사람들에게 큰 경고가 되겠죠. 보험사를 상대로 사기를 치다간 감방에 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 보험조사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해요.” 보험조사 2팀의 사무실은 이전보다 더 넓어졌다. 기존의 구석진 사무실은 회의실로 사용하고 새로 할당된 채광이 좋은 공간이 새로운 사무실이었다. “그나저나 오늘 면접 보러 몇 명이나 옵니까?” “한 열 명 정도 되네요. 전직 경찰도 있고…… 보험경력직도 있고…… 다양하네요.” “혹시 서류 심사는 끝난 겁니까?” “그런 셈이죠. 하지만 서류에서 거르진 않았어요. 보험조사관을 스펙이나 학벌로 뽑을 순 없는 거잖아요.” “이 사람도 한번 봐주시죠. 저번에 전산 쪽으로 뽑는다고 해서 한번 찾아봤습니다.” 강준이 건넨 서류를 보던 최은정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은 경찰에 붙잡혔던 사람이잖아요…….” “네 맞아요. 취업 사기에 속아서 필리핀으로 건너가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만들었죠. 송종철의 강압에 못 이겨서요…….” “학벌도 중퇴네…….” “스티브 잡스랑 빌 게이츠도 중퇴 학력이죠.” “우린 애플이나 마이크로 소프트가 아니잖아요?” “그래도 팀장님, 면접 정도는 볼 수 있지 않나요?” 최은정은 강준의 주장을 반박할 수는 없었다. 이번 팀원 선발을 앞두고 스펙과 학벌에 치중하지 않겠다고 자신의 입으로 누누이 말해왔으니 말이었다. 최은정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김준혁 면접 참가하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