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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자해 공갈단 (2) (12/250)

012. 자해 공갈단 (2)2021.12.12.

최은정은 YS무역을 나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당황스럽네요. 강준 씨, 돈 필요해요?” “네, 필요합니다. 다들 돈 좋아하지 않습니까?” 강준은 최은정이 뭐 때문에 날 선 질문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불법 환전상 김용식, 그리고 필리핀에 있다는 온라인도박 사업을 한다는 송 사장. 최은정이 살면서 겪어보지 않았던 종류의 인간들이었을 터다. 그런 데다 그들이 감춰둔 돈까지 먹자는 얘기를 해댔으니 그녀가 당황하는 건 당연했다. “우린 보험조사관이지 범죄자 잡는 사람들이 아니라고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 형법상 범죄수익이라도 그걸 취하는 건 엄연한 범죄행위예요.” “변호사 맞으시네…….” “그런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강준은 최은정에게 뭐라 길게 설명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도박으로 벌어들인 돈 그놈들이 꿀꺽하게 놔둘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강준은 본능적으로 범죄자들의 수익금을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황 사장은 불법 도박장 운영 혐의로 구속되지만, 돈으로 힘 있는 변호인단을 고용해 고작 징역 8개월 형밖에 받지 않았다. ‘힘들게 수사해서 재판에 넘기면 뭐 해…… 돈으로 풀려나 버리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데요?” “필리핀 송 사장이 빼돌린 돈이 어디 있는지 경찰에 신고해야죠.” “굳이 그럴 이유라도 있는 거예요?”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는요……?” 강준의 말에 최은정은 당황했다. 처음에는 그저 걸림돌이나 되지 않았으면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제 최은정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고 있었다. “여기서 정보를 얻었다고 해도 저들 일에 휘말릴 수는 없어요. 우리도 갈 길이 멀다고요.” “팀장님, 이번 일은 제 개인적으로 처리하겠습니다.” “……네?” “회사에 절대 피해 끼치는 일은 없도록 하죠.” 회사와 선을 긋는 강준에게 최은정은 더는 뭐라 할 순 없었다. 하지만 왠지 강준을 그대로 두는 것도 마음에 놓이지 않았다. “……업무 시간을 비워두는 건 팀장으로서 용납할 수 없어요.” 최은정은 강준이 하려는 일을 돕고 싶었지만, 속내와는 다른 말이 나가버렸다. “그럼요. 업무 시간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죠. 어쨌든 전에 물어보셨던 제 정보원은 공개한 겁니다.” “제……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오늘은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시간이 늦었네요.” “퇴근한다고요? 그럼, 지금 같이 사무실로 복귀할 거죠?” 운전대를 잡은 강준은 슬쩍 최은정을 바라봤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긴 하루였는지도 몰랐다. “전 제 고향에 왔으니 하루 자고 가겠습니다. 먼저 올라가시죠.” “……그럼…… 알겠어요. 내일 뵙죠. 늦지 말아요.” 최은정에게 살짝 서운한 기색이 보였지만, 강준은 애써 붙잡지는 않았다. 부우우웅! 최은정을 보내고 혼자 남은 강준은 핸드폰을 들었다. “이진철 경위님, 오늘 저녁 어떠세요?” * * * 강준은 회귀하기 전 이진철과 자주 갔던 연남경찰서 뒤쪽의 포차를 찾았다. “여기 어떻게 아셨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제가 종종 오던 데거든요.” ‘어떻게 알긴. 우리가 맨날 소주 빨던 곳이다!’ “어쩌다 보니 여기로 오게 됐네요. 싫으세요?” “그럴 리가요? 전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가 좋습니다.” 부담스럽게 접대받는 자리는 질색하던 그였다.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라던가? 진철은 소박한 포차로 데려온 강준에게 마음을 좀 더 여는 눈치였다. “한잔 드시죠?” 꼴깍꼴깍. 강준은 진철의 잔에 술을 채웠다. 동갑내기 남자 둘이었다. 굳이 격식을 차릴 이유 따윈 없었다. “근데 강준 씨, 솔직히 말해봅시다. 고태훈이랑 양태식은 동창이라고 하지만 김용식은 어떻게 안 겁니까?” “제가 말했잖아요, 그 두 놈이 도난차량 구하던 데를 역추적하다가 찾은 거라고요.” “그런 걸 경찰이 아니고서는 찾기가 힘든데…… 혹시 보험사에서도 흥신소 같은 데 의뢰를 하는 겁니까?” 진철은 아무렇지도 않게 강준을 한번 슬쩍 떠보듯이 물었다. 하지만 그런 진철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강준이었다. “보험조사원도 경찰만큼 사명감이 있다고 하면…… 이상한가요?” “하하! 뭐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보험조사관은 보험사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보험금이나 깎아대는 냉정한 인간을 상상하셨군요.”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진철은 강준에게 소주잔을 부딪치면서 솔직하게 답했다. “그나저나 박강준 씨…… 김용식이 정말 걸려들까요?” “마음이 얇은 사람이라 미끼를 덥석 물 겁니다. 송종철 사장이 망하는 걸 알게 되면 같이 돈을 털려고 할 테니까요.” 강준은 송종철의 현금 보관장소를 알아 오겠다고 용식에게 흘린 상태였다. 물론 강준도 당장은 알지 못했다. ‘그 장소를 알려면 송종철을 직접 만나는 수밖에…….’ “근데 경위님, 윗선에다 보고는 하고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매번 그렇게 어떻게 그러나요…….” 말끝을 흐렸지만, 강준은 진철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경제수사과에서 아직 입지가 부족한 그였다. 섣불리 설레발을 쳤다가는 수사 시작도 못 해볼 수 있었다. 강준은 자신의 경찰 동기이자 우직했던 진철이 그 조직에서 성공하는 걸 보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어쨌든 송종철 사장이 입국하게 되면 알려주시죠.” “괜찮으시겠어요?” “그럼요. 대신 자해 공갈단 놈들 입건하시고 수사 경과는 공유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보험금 반환소송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진철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강준이 따라준 잔을 비웠다. “양태식이 주범이라고 하셨죠?” “그놈이 후배들 데리고 조직적으로 하는 거니 조직범죄 혐의도 가능하겠네요…….” “법을 꽤 잘 아시네요?” “제 취미가 형사물, 탐정물 영화 보는 거거든요.” “아……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영화랑 현실은 다르죠. 현장에서는 답답한 일도 많고요.” ‘물론 나도 잘 알지…… 그래도 버텨내라! 그래서 경찰서장도 되고 중앙으로도 진출하고 그래라! 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자격이 있는 놈이니까.’ 강준은 그날따라 술이 잘 받았다. “이렇게 맘 터놓고 술 마시는 거…… 참 오랜만입니다.” ‘나도 오랜만이다. 인마!’ 진철은 술에 취한 듯 얼굴이 시뻘게지고 있었다. “앞으로 같이 잘해봐요! 저 알아둬서 나쁠 거 없을 겁니다.” “아휴! 그럼요! 저도 강준 씨한테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덕분에 팀에서 인정도 좀 받았고요…… 하하!” 술이 조금 오르자 진철은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강준도 그런 진철과 일찍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경위님 가시죠. 2차는 제가 사겠습니다!” “그럴까요? 제가 내일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데…….”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시죠!” * * * 다음날 강준은 본가에서 일어났다. 띵한 머리를 붙잡고 일어난 강준은 어머니가 차려준 북엇국과 잡곡밥을 먹으며 정신을 차렸다. “그래 일은 할 만하니?” “그럼요, 남들도 다 하는 일인데요. 저라고 별다른 일이겠어요?” “그래도 난 마음이 안 놓인다…… 저번처럼 무슨 사고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돼…….” “걱정 마세요. 저를 치고 간 뺑소니 놈들 이번에 반드시 잡을 테니까요.” “정말 잡을 수 있는 거니? 괜히 들쑤시다가 그놈들이 너한테 보복이라도 할 수 있는 거잖니.” “그렇다고 가만 놔둬서 되겠어요? 합의금이라도 받아내야죠. 물론 그놈들은 형사처벌을 면하지는 못하겠지만요…….” 강준은 자해 공갈단 놈 중에서 자신을 친 놈이 분명히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놈들을 잡아두고 한 명씩 기억을 읽어나가면서 단서를 잡을 생각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최은정으로부터의 전화였다. “네, 팀장님.” ―어디예요? “이제 출발하려고 합니다.” ―지금 출발하면 늦는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제 차 스포츠카인 거 아시죠? 사무실까지 한 시간 안에 주파 가능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껍데기만 스포츠카인 고병훈의 카센터에서 빌린 차로는 불가능이었다. ―지금 연남경찰서에 와 있어요. 한국보험하고 서부화재에서도 관계자들이 올 거예요. 이쪽으로 오세요. 간밤에 최은정은 판을 키운 듯했다. 수사기관과의 협조는 잘 이뤄지지 않았지만, 보험사 간의 업무협조는 어느 정도 이뤄지는 편이었다. 최은정은 김성호 이사에게 부탁해 다른 보험사들에 연남시에서 발생한 오토바이 사고 건에 문제가 있음을 알린 것이었다. 강준이 도착하자 이미 경제수사과에는 보험사에서 나온 보험조사관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진철은 간밤에 술로 팅팅 불은 얼굴을 하고서는 바쁘게 관련 자료들을 취합하고 있었다. “이거 수사 들어가셔야 합니다! 아시죠?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거든요.” 한국보험 배지를 단 중년의 보험조사관이 노련하게 형사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우리도 관련자들 입건을 해서 조사해 봐야 하는 사안이니까…… 일단 돌아가 계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입건자 명단을 받아야 우리도 보험금 반환청구를 할 거 아닙니까?” “그…… 그건…….” 곤란해 보이는 진철의 모습이었다. 정작 그런 진철을 도와야 하는 한정수 경사는 오히려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방관하고 있었다. “저기 한 경사님! 진짜…….” 강준은 화가 불쑥 나서 따지려고 말을 꺼낼 때였다. 한정수 경사는 출입구 쪽을 바라보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했다. “어어! 수고가 많아.” 한 경사의 경례를 받은 연남 경찰서장이 보험조사관들이 모인 곳으로 곧장 다가왔다. 보신주의의 대명사인 임철호 서장이었다. “저기 성원화재에서 나오신 최은정 팀장님이십니까?” “네, 제가 최은정인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도 훌륭한 분이시지요.” 그 말을 들은 최은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재벌 딸이라는 이점으로 반칙하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하지만 임철호 서장은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서 편의를 봐주려고 했다. ‘재벌 딸이 팀장이니 이런 건 좋네……!’ 최은정과는 다르게 강준은 자신을 위에서 찍어누르던 임철호 서장이 설설 기는 걸 보니 한편으로는 후련했다. “누구한테 제 얘기를 들으셨죠?” “하하! 그야 비서실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신다면 미리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한 경사 뭐 해? 안으로 모셔!” 다른 보험조사관들이 우르르 따라왔지만 임 서장은 단칼에 그 사람들을 자르고는 최은정과 강준만을 회의실로 불렀다. “자해 공갈단 놈들…… 아주 악질적인 놈들이죠! 성원화재에서 제보를 주셔서 이참에 그놈들을 뿌리 뽑을 좋은~ 기회로 삼을 생각입니다.” 명분과 실리가 맞아떨어지면 조직은 움직인다. 강준은 명분만 쥐고 있었기에 항상 고생만 했었다. ‘그래! 이번 생에는 좀 쉽게 가자!’ 강준은 의례적인 인사말 따위는 건너뛰고 임철호 서장을 향해 본론부터 끄집어냈다. “서장님, 이번 자해 공갈단 중에 자동차 뺑소니범도 있습니다.” “네? 뺑소니범이 있다고요?” “형사과 소관이긴 하지만 이번 보험사기 건 다루면서 같이 수사하면 꿩 먹고 알 먹기 아니겠습니까?” 임철호 서장은 최은정에게 편의를 봐주러 온 터라 대놓고 성원화재 소속인 강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뭐, 그러시죠. 꿩 먹고 알 먹기…… 일타쌍피, 저 그런 거 좋아합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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