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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팀원 충원 (10/250)

010. 팀원 충원2021.12.10.

목격자인 김미리의 실토로 박순애의 보험사기 건은 경찰 수사에 급진전이 이뤄졌다. 당연히 성원화재에서 지급해야 할 4억 원의 사망보험금은 박순애의 친딸에게 지급되었다. 반면 타 보험사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사망보험금의 지급을 미루는 상황이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미 성원화재의 활약이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사님, 약속대로 보험조사 2팀의 팀원 충원해주시는 겁니까?” “검토해보지. 하지만…… 조직이라는 게 절차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게.” 김성호 이사는 박순애 질식사건이 그렇게 빨리 해결될 줄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었다. 혹시나 기대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약속을 이행해줘야 할 순간이 오리라곤 예상하지 못했었다. ‘참나, 이게 무슨 일이람…….’ 김성호 이사가 신경 쓰이는 건 하나가 더 있었다. 보험조사 1팀의 팀장인 이정훈 부장이었다. 그가 최은정이 보험조사팀으로 오면서부터 사사건건 자신에게 반기를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정훈 부장은 김성호 이사가 키웠던 보험조사관이었다. 하지만 최창식 회장의 둘째 아들인 최진태 이사의 라인으로 갈아타고 김 이사의 반대편에 섰다. 이번에 박강준을 끌어들여 보험조사 2팀을 만든 것도 공격 빌미를 주기에는 충분했다. “김 이사님!” 그런 김 이사의 걱정을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이정훈 부장이 씩씩거리는 표정으로 들이닥쳤다. “또, 뭔가?” “이사님, 설마 저희 쪽에서 보험조사 2팀으로 사람을 빼간다는 말이 정말입니까?”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퍼졌나?” “정말입니까?” “왜 안 될 거라도 있는가?” “당연히 안 되죠. 보험조사팀이 둘로 쪼개지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더군다나 직원들 사이에서는 낙하산 인사라는 불만이 자자한 걸 잘 아시잖습니까?” 최창식 회장의 막내딸인 최은정을 지목하는 얘기였다. 하지만 다른 재벌가들을 볼 때 최은정의 인사는 무척 공정한 것이었다. 임원으로 부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험조사관에 결격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최은정은 직무에 넘치는 스펙이었다. 결국, 최은정을 견제하려는 최진태의 오더가 원인이었다. ‘이 팀장, 네가 직원들을 선동해서 최진태 라인에 붙은 거겠지…….’ 김성호 이사는 생각해보니 보험조사 1팀에서 경력자를 끌어온다고 해도 제대로 된 팀워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미지수일 것 같았다. ‘고민이 깊어지는군……. 회장님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서 은정이를 법무팀으로 보내려고 했던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자신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이정훈을 바라보고 있자니 속에서 불쾌감이 올라왔다. “자네, 이런 태도는 조직에 문제가 없다고 보나?” “전, 저희 팀을 대표해서 말씀드린 것뿐이었습니다.” 잘못을 수긍하지 않는 이정훈이었다. 그가 이렇게 대놓고 김성호 이사에게 대들 수 있는 건 오로지 최진태 이사라는 배경 때문이었다. “자네…… 언제부터 그렇게 줄서기에 능했나?”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전 지난 15년간 보험조사팀을 이끈 사람입니다…….” “알지, 알아! 자네는 누구보다 보험조사관으로서 자부심이 있던 사람이야. 그러니까 더 궁금한 거야…… 어쩌다가 최진태 밑에서 헛다리 짚게 됐는지 말이야.” 김성호 이사의 말에 얼굴이 달아오른 이정훈이었다. “이사님이야말로 최은정을 데리고 무슨 짓을 하시려는 건지 돌아보시죠……!” 김성호 이사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홱 돌아서 나가버리는 이정훈을 붙잡을 생각도 없었다. ‘그래…… 이렇게 나온다는 거지! 그럼 나도 강경하게 나가는 수밖에.’ 뚜르르릉! 뚜르르릉! 때마침 최창식 회장의 인터폰이 울렸다. “네 회장님!” ―뭐 하나? 안 바쁘면 집무실로 잠깐 올라와. 김성호 이사는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굳게 입을 다물고는 생각에 잠겼다. 분명 강준이 박순애 사건을 해결한 걸 전해 들은 게 분명했다. 집무실의 최 회장은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모를 화초에 물을 주고 있었다. “이봐, 김 이사. 화초란 말이야, 계속 물도 주고 실제 애정도 줘야 하는 거거든.” “평소 회장님답지 않으십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제일 싫어하셨잖습니까?” “그래…… 맞아. 하지만 나도 나이가 들다 보니 이런 걸 즐기게 되는군.” 최 회장이 무슨 말을 던지려는 것인지 김 이사는 속으로 더욱 긴장됐다. “자네, 진태를 어떻게 생각하나?”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오는 최 회장이었다. 최은정과 강준의 얘기를 물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첫째 아드님인 최진호 이사가 그룹에서 손을 뗀 이후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으시지 않습니까?” “묻는 말에만 대답해. 진태 어떠냐고?”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언제 나한테 돌려 말했나?”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말을 잇는 김 이사였다. 바른말이라도 자기 자식 욕하는 걸 반길 부모는 없었다. “최진태 이사가 사람 쓰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무슨 말이지?” “벌써 그룹 내에서는 최진태 이사 라인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다들 차기 회장 쪽에 붙으려는 거죠.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자기 위치보다 더 큰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말해봐!” 미간에 주름을 잡고 되묻는 최창식 회장이었다. “사실 성원그룹은 그간 보험업과 증권업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건설은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자산을 돌리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죠.” “그건 그렇지…….” 아파트 장사는 대한민국에서 돈만 있으면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였다. 그런 건설을 최창식 회장도 외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로 의사 출신인 그의 장남 최진호는 아버지와 마찰을 빚은 끝에 병원으로 되돌아갔다. 최 회장에게 그런 장남의 행보는 무척 아쉽고도 야속한 일이었다. “최진태 이사가 그런 건설을 중심으로 그룹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뭐?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최근 최진태 이사 쪽 사람들이 부실한 호텔들을 인수해서 체인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걸로 뭘 하려고?” “호텔업을 통해 해외 진출을 노리려는 겁니다.” 순간 최 회장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멍청한 놈! 내실도 없이…… 해외? 밖으로만 쏘다닐 궁리만 하는 거겠지! 배때기에 허세만 가득 차서는! 쯧!” 김성호는 말이 나온 김에 쐐기를 박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볼 때는…… 최진태 이사는 차기 회장감은 아닙니다.” 최 회장의 입에서 깊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김성호에게서 등을 돌리고는 창가에 다가갔다. “……그건 그렇고 박강준 그놈, 일은 좀 하는 것 같던데…… 팀원을 충원해 달라고 요구했다지?” “네, 하지만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인사가 돼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흠…….” “회장님, 한 가지 건의를 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 “은정이 말입니다. 이번 기회에 차라리 보험조사 2팀의 팀장으로 승진시키는 게 어떨까요?” “왜?” “팀원도 이제 늘어날 텐데, 언제까지 팀장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최 회장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넌지시 말을 던졌다. “혹시 1팀의 이정훈 때문이야?”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팀장 달아줘.” “네? 정말입니까?” “나 두말 안 해. 달아줘. 성과를 냈으니 보상을 줘야겠지. 그리고 변호사 자격증도 들고 왔는데 그 정도 대우는 해줘야겠지.” 김 이사는 최 회장이 반대할 줄 알았다. 보험조사팀에서 최은정을 빼내려고 지시를 내렸던 게 엊그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창식 회장도 자신의 둘째 아들에 들러붙은 이정훈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회장은 그런 이정훈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최은정을 팀장으로 내세울 필요가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말씀하신 대로 인사 발령내겠습니다!” 집무실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김성호 이사가 빠져나가자 최 회장은 혼자 중얼거렸다. “하! 어찌 된 일인지…… 박강준 그놈이랑 김 이사랑 똑같은 건의를 하는군!” 최창식 회장은 화초에 주던 물을 마저 뿌렸다. * * * 며칠 뒤 회사의 인트라넷 공고에는 인사이동이 떴다. 최은정은 대리 진급과 동시에 팀장 승격이었다. “축하해요. 최은정 팀장님.” 강준은 최은정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민망하군요, 박순애 씨 사건을 해결한 건 강준 씨였는 걸요.” “같이 한 거죠.” “네, 그렇다고 해두죠. 좌우간 김미리 씨가 열쇠를 쥐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예요?” “보험조사관은 거꾸로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사건을 봐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최초 목격자부터 살펴야 하는 게 순서겠죠.” 강준은 손에 쥐고 있던 커피를 홀짝 마시며 원론적인 대답으로 둘러댔다. “이제 당분간 1팀의 엄청난 견제를 받게 될 거예요.” “견제라…… 조직 간의 알력 뭐 이런 건가요?” 경찰 시절 부서 간의 힘겨루기를 충분히 경험해봤던 강준이었다. 민간회사라고 사람 사는 곳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둘째 오빠는 엄마가 달라요.” “배다른 형제 말인가요?” “뭐 그런 셈이죠. 첫째 오빠는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아빠랑 틀어지고 회사를 나가버렸어요. 둘째 오빠가 차기 회장 후보인데…… 보험조사 1팀의 이정훈 팀장이 그쪽 라인이에요.”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남들이 모두 우릴 지켜보고 있다는 말이에요.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2팀의 존폐를 장담할 수 없어요.” 강준은 책상에 기대 최은정을 잠시 빤히 바라봤다. “왜 그렇게 필사적인 거예요?” “그거야…… 우리 팀이 잘돼야 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안 그래요?” 강준은 최은정이 최 회장의 딸로서가 아니라 진짜 실력으로 인정받으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최은정을 밀어줘 볼까? 최진태를 잡으려면 최은정을 내세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사실 강준은 빙의 전 자신을 죽였던 최진태 회장을 잡는 일에 누군가를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누군가를 믿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최진태가 없는 성원그룹의 미래도 이제는 생각해봐야 했다. 최은정이라면 수십만 명의 보험가입자들을 책임질 보험회사의 경영진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사님께서 팀원 충원을 해주신다는데 신입으로 뽑기로 했어요. 강준 씨는 우리 팀에 어떤 사람이 필요하다고 봐요?” 최은정은 혼자 팀장이 된 미안함에 팀원 선발에 대해서는 강준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전산 쪽 특기를 가진 사람을 뽑아보죠?” “네? 전산이라면……?” “우리가 현장을 둘러보려면 사무실을 지킬 사람도 있어야죠. 게다가 앞으로는 보험사기를 잡는 업무에 전산 자료를 찾아보는 일도 많아질 겁니다.” “일리가 있네요. 이사님께 말씀드려 보죠. 절차라는 게 있는 거니까요.” 강준은 최은정을 보며 씩 웃었다. “김 이사님도 그렇고 보험조사팀은 다들 절차를 참 좋아하네요. 하하!” “그야 여기는 회사니까요.” “그나저나 이제 팀원도 늘었는데, 뭘 해야 하나요?” “아까 말했잖아요. 모두가 우릴 지켜보고 있다고…… 결국은 성과를 내야겠죠.” 최은정의 미세한 조바심이 강준에게 전달됐다. “제가 생각해둔 건수가 있는데…….” “그 건수라는 게 뭐죠?” “제가 아직 마무리를 못 지은 일이기도 하고요. 연남시에 자해 공갈단 하는 양아치들을 좀 알고 있죠…… 아주 고전적인 수법을 쓰는 놈들이거든요.” 강준은 이미 보험사기로 구치소에 가 있는 고병훈을 떠올렸다. 수입차 수리비 과다청구 사건은 제이모터스의 법적 대표자인 고병훈이 주범으로 처벌받았다. 양태식은 그저 자신의 명의로 된 차량의 보험비 과다청구 건에 대해서만 벌금형을 받았을 뿐이었다. 양태식은 여전히 자해공갈단으로 먹고살고 있었다. “일단 한번 나가볼까요?” “지금이요?” “뭐, 다른 일 할 거 있습니까?” “아니요. 그럼 같이 나가봐요.” 팀장이라는 감투를 썼어도 최은정은 어느 순간부터인지 강준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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