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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박순애 질식사건 (3) (9/250)

009. 박순애 질식사건 (3)2021.12.09.

최은정은 강준의 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박강준 씨는 이대로 퇴근할 거 같지 않은데요? 아닌가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눈치는 빠르시네요.” “말해봐요. 저 따돌리고 어디 가려고 했어요? 팀원끼리는 서로 숨기는 게 없어야 한다고요!” 자존심 때문에 머뭇거리던 최은정은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확인해 볼 데가 있어서요.” “가려면 같이 가요!” “근데, 은정 씨는 칼퇴근을 안 좋아하세요? 연장 근무한다고 돈 더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 보험조사관이에요. 사건 해결이 먼저죠.” 입을 꾹 다문 최은정은 박강준에게 할 말은 많았지만, 구구절절한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왜 보험조사팀에서 성과를 내야 하며, 그걸 토대로 그룹 내 입지를 마련해야 하는지를 말이었다. “혹시 승진하고 싶어서입니까?” 오너가 딸인 최은정에게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그야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생각 아닌가요? 강준 씨는 승진하기 싫어요?” “저도 승진하고 싶죠. 하지만 위로 올라가서 뭘 할지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요?” 강준의 일갈에 최은정은 할 말이 없어졌다. 이복 오빠인 최진태를 제치고 자신이 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하는 것까지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 이후에 뭘 할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은정 씨가 성원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하면 뭘 하고 싶은지 묻는 겁니다.” 강준의 물음에 최은정이 놀란 눈을 떴다. 본인이 오너가의 딸인 건 아직 사내에서는 비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최은정을 보며 강준이 씩 웃었다. “사내에서 정말 중요한 정보는 소리소문없이 퍼지죠. 언제까지 저한테 감출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숨긴 거 아니에요. 말을 안 했을 뿐이지….” 최은정이 민망한 듯 강준의 눈을 피하며 변명했다. 그 변명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으니 말이었다. 강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 능청을 떨며 말을 이었다. “……야근할 거면 저녁이나 좀 먹고 가죠! 저 배고픕니다. 혹시 순댓국 잘 아는 데 알아요? 제가 서울 생활은 처음이라 말이죠.” “아…… 알겠어요. 근데 닭갈비 먹은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요?” 화제를 돌리는 강준에게 더 따져 묻지 않는 최은정이었다. 그녀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속내를 강준에게 더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네요. 그럼, 끝나고 먹읍시다.” “말해봐요. 확인해 볼 데가 어디예요?” “최초 신고자 김미리, 김미리가 신대방동에 산다고 하네요. 그리로 가보죠.” “신대방동이라고요? 근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그럼요. 같은 팀인데 정보 취득원은 공유해야죠!” 강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좀 더 친해지면…… 그때 공유해 드리죠! 정보 취득도 실력이라면 실력이거든요.” 최은정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에게 실력으로 밀려본 적은 별로 없었다. 학창 시절부터 사법고시 합격까지…… 그런 그녀는 강준에게 밀리고 있다는 걸 선뜻 인정할 수 없었다. “어디서 돈 주고 흥신소에 맡긴 건 아니죠? 그건 불법 증거수집이라 법정에서 효력도 없어요.” “운전이나 해주시죠. 퇴근길이라 차가 막힐 겁니다.” 김미리가 사는 집은 지은 지 20년은 넘어 보이는 붉은 벽돌의 낡은 빌라였다. “계십니까?” 한동안 기척이 없다가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막 자다가 깬 듯한 남자가 경계하는 눈초리로 강준을 노려봤다. “뭐요?” “김미리 씨 안 계십니까?” “우리 마누라는 왜요? 누구요? 당신들.” “성원화재 보험조사팀에서 나왔습니다. 김미리 씨한테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지금 없으니까 다음에 다시 오든지, 아니면 전화라도 하고 오쇼!” 강준은 남자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 손을 뻗쳐 문을 다시 열었다. “안에서 잠깐 기다려도 되겠습니까?” “뭐야! 당신!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무단침입이야 이거!” 남자가 강준의 멱살을 잡았고, 순간 남자의 기억이 강준의 눈앞에 떠올랐다. ‘게임장에서 보내는 하루. 짙은 담배 연기. 그리고 방 안에 나뒹구는 소주병.’ 남자는 희망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김미리는 그런 남편에게 질려 있었고 말이다. 김미리는 돈이라도 필요한 절박한 상황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돌아가죠. 그전에…… 은정 씨! 이분께 명함 한 장 주시죠.” 최은정은 얼른 남자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김미리 씨 오시면 여기로 연락 바랍니다. 부인의 증언이 꼭 필요합니다.” “뭔 증언……?” “부인께서 말씀을 안 하셨나 본데, 부인은 박순애 씨가 죽었던 날의 목격자입니다.” “박순애가 누군데……?” “부인께서 일하셨던 닭갈비 집의 동료 종업원이었습니다. 혹시 최근에 부인 명의로 목돈이 들어온 적이 없습니까?”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강준이었다. 그런 강준에게 최은정은 더 긴장하는 눈치였다. “이 시발 놈이! 지금 우리 마누라 의심하는 거야! 경찰도 아닌 새끼가 와서는…… 당장 안 꺼져!” “안 그래도 지금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부인께는 꼭 전달 부탁드립니다. 보험사에서는 해당 사건에 대해 공식적인 조사가 들어갔으니까요.” 남자는 강준의 마지막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김미리의 일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있었지만, 뭔가 큰일이 생겼다는 건 직감하는 듯했다. 돌아 나오는 길에 최은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그렇게 막무가내식으로 들이대면 어떻게 해요?” “떡을 먹다가 질식사를 했다고 하는데……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고 김미리가 죽였다고 어떻게 확신하죠?” “죽였다고는 안 했습니다. 박순애의 죽음이 타살이라면…… 분명히 김미리가 열쇠를 쥐고 있을 겁니다.” “김미리도 공범이라는 건가요?” “공범까지는 아니라도 방관자일 수는 있겠지요.” 강준의 말에 최은정은 생각이 많아진 듯 핸들을 잡고 차를 출발시키려 했다. “아까 말했던 순댓국이나 먹고 갑시다…… 이왕 퇴근 시간도 늦었고요.” “오다 보니 번화가에 순댓국집 보이더라고요. 내려드릴 테니 드시고 퇴근하세요. 결제는 이걸로 하고 내일 반납하세요.” 최은정이 강준에게 법인카드를 건넸다. “그럼 할 수 없죠. 혼밥하는 수밖에…….” “혼밥이요?” 회귀한 2005년에는 아직 혼밥이라는 말이 쓰이지 않을 때였다. “밥 혼자 먹는 거요. 혼밥!” “미안해요. 다음에 같이 먹어요.” “다 왔네요. 저기 세워주시죠. 오늘 수고했어요!” 강준은 짧은 인사 후에 차에서 내렸다. 아직 쌀쌀한 봄바람이 강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최은정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자신을 찾아온 것을 알았다. 바로 전날 강준과 자택을 방문했던 김미리가 회사로 직접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어제 저희 집에 찾아오셨다고요?” “무례했다면 죄송해요. 하지만 물어볼 게 있었거든요. 일단 들어가시죠.” 최은정은 구석의 보험조사 2팀 사무실로 그녀를 데려가 커피를 내줬다. 김미리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두 손으로 따뜻한 커피잔을 붙잡았다. “경찰에다 다 말했어요…… 뭘 더 물어보겠다는 거죠?” “김미리 씨는 박순애 씨가 죽은 걸 신고한 최초발견자더군요.” “그게 뭐 잘못됐나요?” “아니요. 근데, 보험사로서는 의문이 생겨서요.” “무슨 의문이요……?” “일단 부검 결과는 미상이지만 떡을 먹고 질식했다는 주장을 하셨는데…… 신고 시간은 새벽 2시였어요. 영업시간은 11시에 끝나는데 왜 3시간이나 지나서야 신고를 하셨던 거죠?” 최은정의 말에 김미리는 예상한 질문이라는 듯 아까보다는 훨씬 안정된 말투로 대답했다. “그야, 같이 술을 마셨으니까요. 남들에게 티는 안 냈지만 원래 그 언니는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제가 가끔 술을 같이 마셔주긴 했어요.” “떡이 목에 걸렸을 텐데…… 그때 어떤 조치를 하셨나요?” “……제가 여기 온 건!” 김미리가 추궁하는 듯한 최은정의 말을 잘랐다. “네, 말씀하세요.”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전 제가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준비해왔다는 듯 또박또박 힘을 줘 말하는 김미리였다. “박순애 씨 앞으로 다수의 생명보험이 가입돼 있었어요. 그런 박순애 씨가 갑자기 떡 질식사로 죽을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세요?” “그야…… 제가 알 바는 아니죠, 그러니까…… 어제 같은 방문은 하지 말아줬으면 해요. 불편해요…… 저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요…….” 그때, 회의실 문이 빼꼼히 열렸다. “굿모닝! 좋은 아침!” 강준이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휴게실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김미리에게 짧게 눈인사를 건넸다. “같은 팀 박강준입니다.” “이분께 드렸던 얘기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나요?” 김미리는 살짝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준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무슨 냄새가 나지 않나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김미리가 어리둥절해하자 강준은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무례해 보일 수도 있는 행동에 최은정이 매서운 눈으로 강준을 말렸다. 하지만 그 순간 강준은 김미리의 기억을 읽고 있었다. 강준의 눈앞에는 중년이 훌쩍 넘은 박순애가 공포에 질린 모습과 그 박순애의 얼굴에 검은 비닐봉지를 씌우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남자의 옆에는 오미영이 박순애의 두 팔을 제압하고 있었다. [웁! 우웁! 우우우웁!] 김미리는 죽어가는 박순애를 돕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상황을 방조했을 뿐이었다. “박강준 씨!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무슨 냄새냐고요? 바로 여기요.” 강준은 김미리의 손으로 직접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게 했다. 그런 강준의 태도에 김미리가 놀란 듯 되물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바로 김미리 당신의 양심이 썩어 있으니까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참!” 최은정도 그런 강준을 말렸다. “강준 씨…… 도대체 왜 이래요…… 회사 이미지에 먹칠할 생각이에요?” 하지만 강준은 침착한 얼굴로 커피를 내려놓고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문구점에서 팔 것 같은 흔한 공책이었다. 하지만 그 공책을 본 김미리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이건 박순애 씨가 작성한 일기 같은 겁니다. 물론 여기에 오미영 씨와 그녀의 남편이 박순애 씨를 죽였다고 쓰여 있지는 않죠.” 강준의 말에 김미리의 표정은 사색이 되었고, 두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박순애 씨의 필체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걸 제가 아침에 우리 회사의 보험계약서와 대조해보니…… 틀리더군요. 경찰은 부검 결과가 미상으로 나왔기 때문에 다른 기초조사도 전혀 하지 않았던 겁니다.” “전 아니에요…….” 김미리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집으로 보험사에서 찾아가자 겁이 덜컥 나 보험사가 사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네. 물론 김미리 씨는 살인범은 아닙니다. 하지만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으실 수 있습니다. 경찰에 그날 오미영과 그녀의 남편이 현장에 있지 않았다고 진술했고, 그들이 박순애를 살해한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죠.” “난 진짜 아니에요! 돈 받은 것도 없다고요!” “물론 그렇겠죠. 오미영이 보험금을 받으면 돈을 주겠다고 했을 테니까요.” “그…… 그걸 어떻게…….” 오미영에게 대가성 돈을 받지 않았다는 건 경찰로서의 통밥으로 때려 맞춘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진실대로 털어놓으시고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시면 경찰도 살인방조죄에 대해서 더 이상 죄를 묻지는 않을 겁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물론이죠. 제가 전에 경찰…… 아니! 잘 아는 경찰한테 확인한 겁니다!” “……실은 오미영 남편이 죽였어요. 비닐봉지를 씌워서 숨을 못 쉬게 했거든요. 오미영은 그걸 도왔고요…… 전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이라고요…… 흐흑!” 감정이 격해졌는지 김미리는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최은정은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는 달래는 말투로 말을 걸었다. “김미리 씨 이해해요.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어요? 이제 다 털어놓으시면 돌아가신 고인께도 도리를 다하시는 거예요.” 위로와 같은 최은정의 말에 김미리의 흐느낌은 더 격렬해졌다. ‘최은정…… 까칠한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사람 마음 다룰 줄도 아네……!’ 강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에게 정보를 준 이진철 경위에게 전화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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